Paths Of Glory

개인적으로는 영화 감상할 때 롱테이크니 트래킹샷이니 하는 현란한 영상문법보다는 내러티브에 빠져드는 편이다. 영화에서의 영상기법이나 소설에서의 문체는 그 자체로도 감상포인트이긴 하나 역시 매력적인 이야기를 꾸며주는 양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리큐브릭의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각적 요소의 탁월함과 현란함은 그 자체로도 매료될만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개미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는 장면이나 참호 속을 시찰하는 장면은 유사한 장면의 연출에 있어 고전으로 남을만한 – 또는 지금 재탕을 해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일만한 – 표본으로 남을 교과서적인 사례이다. 물론 지나친 비주얼함이 극의 집중에 방해가 될 만도 하나 적어도 개인적으로 그로 인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반전(反戰)영화로 자리매김하였고 프랑스 군인에 대한 – 또는 군대 체제에 대한 – 신랄한 시각으로 말미암아 1975년까지 프랑스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는 이 작품은 큐브릭의 영화이력의 이정표로 인정되고 있는 역작이다. 그의 개인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배우 Susanne Christian 은 그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였던 서부전선에서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던 Broulard 장군은 개인영달을 위해 가능성 없는 개미고지의 점령을 명령하고 Dax 대령은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피해를 뻔히 알고도 진격명령을 내린다. 일부 부하들이 진격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진격은 막대한 피해만 남긴 채 실패한다. 분노한 Broulard 장군은 희생양을 위해 무고한 사병 셋을 군사법정에 회부한다.

전직 변호사였던 Dax 대령은 그들을 변호하지만 법정에는 기소장도 없었고 증거제출도 거부한 채 사병들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그 와중에 Broulard 장군의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령이 양심적인 장교의 고백에 의해 밝혀지지만 군부는 사형언도를 취소 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내용을 Broulard 장군의 축출에 활용한다. 이러한 더러운 암투에 Dax 대령은 진저리를 치지만 부하사병들이 포로로 잡힌 한 독일소녀의 노래에 나지막한 허밍으로 동참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명백히 잘못된 명령임에도 이에 복종하였으나 이내 부하들을 감싸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한 Dax 대령의 캐릭터는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법보다는 고뇌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었다. 그럼에도 말미부분에 암시되는 새로운 희망은 약간 작위적인 면이 없잖다. 차라리 부하사병들이 독일소녀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보다는 그녀를 더 그악스럽게 약 올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배신당하는 Dax 대령의 모습이 더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2 thoughts on “Paths Of Glory

  1. flogsta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말씀하신 장면처럼 끝낸다면 좀 더 드라마틱하겠지요. 고독한 의인의 모습도 부각되었을 것이고…. 하지만 제게는 절망적으로 보일 것 같네요. 영화를 보면서까지 절망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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