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사태에 대해

요즘 한미 간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 없는 개방을 합의한 일로 말미암아 민심이반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블로고스피어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한 것 같은데 벌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수십만에 달하고 있다 한다. 주요 신문에서 계속하여 중계보도 하듯이 기사로 삼을 정도다.

뭐 이 블로그가 특별할 것도 없지만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지라 한두 마디 끼적거릴까 해도 솔직히 지금은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문제에 대해 글을 진지하게 적자고 하면 건드려야 할 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무작위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문명의 발달과 육식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단위면적당 곡물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육식이 ‘자본주의적인 평등 확산’(주1) 현상에 따라 더욱 확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생산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집단사육, 항생제 투여, 동물사료 배식 등의 시도가 오늘날의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식량안전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만 막으면 우리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한국산 소는 절대 안전한가? 이러한 고민 하에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시 일본산 소를 전수조사 하였다 한다. 그렇다고 광우병 걸리지 않은 소는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 항생제 투여는 면죄부가 발급되는가? 결국 이러한 고민의 해결책이 유기농 작물 등에 대한 ‘근거리 농업 네트웍’(주2)을 통한 소비일 것이다.(주3)

‘근거리 농업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하는 논거에는 가까워서 믿을 만 하다라는 것보다는 가까우니 그나마 믿을 만 하다는 논리이다. 공산품이야 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환경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데(주4) 농수축산물은 근대에 들어와서 환경문제가 전면에 개입하게 된다. 이점이 이전의 고전경제학파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의 우월성을 격파하는 무기가 된다. 소위 비교역적 품목(non-trade concerns)론이 그것이다. 쉬운 예로 리카도가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던 당시 유럽 내륙의 곡물이 유전자 조작 곡물이었다면 그는 법의 폐지 주장을 재고하였을 것 아니냐 이거다. 요컨대 ‘자유무역에 있어서 농수축산물의 예외성 인정’에 관한 문제다.

두서없이 늘어놓았는데 요컨대 쇠고기 개방 문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다. 그것은 자유무역의 부작용, 식량의 생산과 소비 체계의 부조화, 육식 소비로 인한 환경적 재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소비불평등 등 여러 근본적이고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이 미제국주의의 실체를 두드러지게 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두드러지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자칫 일부에서 보이는 이명박 정부를 절대악으로 상정하는 저항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도 있지 않은가 우려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나 스스로도 나의 식습관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나 스스로도 상당히 먹거리를 개념 없이 소비하는 멍청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고 내 살이 될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것이므로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p.s. 시위 현장에 대한 사진을 봤는데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는 퍼포먼스를 봤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아니 한우를 잡아먹을거면서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니??!!

함께 읽어볼 글 : ‘광우병 정국’ 단상,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주1) 자본주의라고 불평등만 조장하라는 법은 없고 중국과 인도의 하등인종들도 돈만 있으면 제1세계의 백인들이 누리는 식생활과 문화생활을 누릴 자격이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이 자본주의적인 평등이라 하겠다. 이건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2) 이것도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3) 문제는 이런 대안이 집단적인 생활협동조합 등 건전한 소비자 운동으로 승화될 수도 있고 소위 럭셔리한 organic shop에서의 과시적 소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

(주4) 극적인 예외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미국에 수출된 중국산 아동용 장난감이 환경적으로 유해하여 대규모로 리콜된 사례가 그것이다

6 thoughts on “잡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사태에 대해

  1. w0rm9

    지금은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치고 있지는 않나 우려되네요.
    광우병 공포에 대한 과장이 심해질수록 오히려 설득력을 잃게 되니 말이죠.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하랬다고
    광우병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협상 과정에서 잘못했던 점을 냉철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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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원래 집단이성이 발동하기 전에 먼저 집단감성이 발흥하기 마련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서 위안을 삼아야죠. ^^ 이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대안이 찾아지겠죠. 그러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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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ishin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원래는 이런 근본적인 성찰의 문제도 함께 거론하려고 했는데, 촛불집회에 1만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정치와 민심 문제에만 집중해서 썼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쓰시면서 표현할 재주가 없으시다니요… 두 글이 서로 보완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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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암튼 marishin님의 글이 쇠고기 정국에 관한 글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제 글이 그런 글의 보완적 성격을 가진다고 말씀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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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beagle2

    marishin님과 foog님의 글 모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들어 육식을 줄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차마 채식은 엄두가 안 나네요.)

    진보신당을 필두로한 좌파세력이 대중의 후퇴로에 자리를 잡은 다음 지금의 열기를 한미 FTA에 관한 진지한 고민 등의 방향으로 연착륙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그럴만한 역량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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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실제로 완전채식은 몸에도 좋지 않다고 합니다.(그렇게 채식생활만 해오다 최근 포기한 어떤 이의 경험담입니다)

      암튼 말씀하신대로 지금의 반 광우병 기운을 반FTA로 끌고 가야하는 것이 진보진영의 숙제인데 사실 그 사이를 가로막는 각종 편견들이나 세력들이 현존하고 있으니 쉽지는 않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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