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道者로서의 野球人의 자세

삼진아웃을 당한 김명지는 락커로 돌아와 벤취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러나 실망스런 표정은 아니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초연한 의지가 표정에 나타나 있었다. 2루수가 그런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이봐. 슬러거 또 삼진이네?]

[그러게.]

김명지는 마치 남의 일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자네 20타수 연속 무안타에 6연속 삼진인거 알고나 있나?]

[알지 알고 말고.]

2루수에게 눈도 돌리지 않은채 김명지는 역시 조금의 사심도 없이 대답했다. 저멀리 떨어져 있는 수비코치는 둘의 대화를 바라보다 기가 찬듯외면했다. 말많은 2루수는 눈치도 없이 계속 시비를 걸었다.

[자네 요새 무슨 고민있나?]

[아니? 컨디션 아주 그만이야.]

[엥?]

2루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김명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질문공세가 이어질 법 했으나 공수교체가 되어 2루수는 땡볕이 내려쬐는 운동장으로 뛰쳐 나가야 했다. 김명지는 지명타자여서 예의 자비로운 표정으로 두손을 깍지낀채 배에 올려놓은 편안한 자세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팀내에서 유일하게 그의 지성을 인정하는 에이스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자네 요새 타격자세 좋더군.]

김명지는 에이스를 힐끗 쳐다보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그런데 6타석 연속 삼진이라…]

[그러게.]

[뭐야. 불교에 귀의라도 했나?]

상대팀 수퍼브로스(Super Bros)의 수위타자가 막 포수의 미트로 들어갈 공을 시원하게 쳐내어 2루타를 뽑아 냈다. 수퍼브로스의 홈구장이어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에이스의 궁금해하는 눈빛을 조롱하던 김명지가 한마디 툭 던졌다.

[자네 야구가 뭔지 아나?]

[뭐라고? 음… 야구야 스포츠지.]

난데없는 질문에 에이스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끼고 있던 팔짱을 거꾸로 바꿔 끼면서 대답했다.

[요즘 그 생각을 하고 있지.]

[야구가 뭔가 하고 말인가?]

[응.]

수퍼브로스의 날쌘돌이 유격수가 다시 단타를 쳐내어 상황은 무사 일삼루가 되었다. 그러자 코끼리처럼 구석에 앉아 있던 거대한 몸집의 감독이 에이스를 찾았다.

[어이 에이스 몸풀어.]

에이스는 철학적 대화를 끝내지 못한게 못내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글러브를 집더니 불펜쪽으로 향했다. 이번엔 타격코치가 다가 왔다.

[4할을 눈앞에 두던 친구가 3할도 위험하게 되었네 그려.]

비록 최근 극심한 난조를 보이고 있지만 4년연속 리그수위타자였던 김명지에게 타격코치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3할이던 4할이던 그게 중요한건 아닙니다.]

에이스와의 대화가 도중에 끊어진 것이 신경에 거슬린 김명지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어떤게 중요한가?]

배불뚝이 타격코치가 모자를 고쳐 쓰면서 비꼬듯이 물었다.

[야구의 본질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대답을 했지만 타격코치가 이해할리 만무하다.

[뭐라고? 야구의 본질?]

어이없다는듯 타격코치는 따분한 미소를 지었다.

[네 야구의 본질.]

김명지는 ‘본질’에 힘주어 대답했다.

[야구의 본질이 뭔데?]

[여타 구기와 비교해 경기방식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야구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앞으로의 나의 야구인생에 있어 이정표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저는.]

대답하기가 귀찮았던 더이상의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김명지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으면서 또박또박 대답했다.

[어떻게 다르지?]

거기서 물러날 타격코치가 아니었다. 김명지는 짝발을 짚고 서있는 타격코치를 한심하다는 듯이,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거의 모든 구기는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공을 몰고 갑니다. 그리고 목표지점에 공을 가져다 놓으면 점수가 나지요. 마치 섹스와 같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공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점수나기가 유리합니다. 또한 처음 출발한 지점에 다시 돌아와야만 점수가 나는 경기입니다. 됐습니까?]

심기가 불편해진 김명지는 더이상 묻지 말라는 의미에서 ‘됐습니까’에 힘을 주어 대답하고는 운동장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명지의 소원이 이루어지려는지 김명지의 소속팀인 보어텍스(Vortex)의 환상적인 트리플플레이가 성공하였고 공수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도대체 뭔 소린지 의아해 하던 타격코치가 운동장으로 나가버렸다. 동시에 운동장에 있던 선수들이 락커로 밀려들었고 이번에는 팀내에서 그에 이어 타격 2위인 루키 3루수가 김명지의 옆에 자리잡았다.

[선배님 제 수비 어땠어요?]

날카롭게 뻗던 공을 라이너로 잡아내어 트리플플레이에 한몫을 한 3루수가 으스대면서 은근히 자신의 호수비를 확인하려 했다.

[스타트가 느리더군.]

기껏 자랑스럽게 물었던 3루수는 무안해져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야구계의 전통적인 서열관계도 무시한채 운동화끈을 조여매면서 비아냥거렸다.

[조금만 있으면 제가 선배님 제치겠어요?]

[그럴것 같아.]

마음좋은 선배는 아무런 사심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머쓱해진 3루수가 제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왔다.

[아이고 제가 설마 하늘같은 선배님을…]

[우리가 5할타자가 되지 않는 이상 항상 지는거야.]

[예?]

[보게 반타작도 못하는 타율을 가지고 수위타자라 한들 무슨 소용있나? 나하나 아무리 잘났다고 몸부림친들 결국 상대팀의 9명의 수비수에게 지는거야.]

끈을 조여매던 3루수는 돌연 이 구도자적 자세로 게임에 임하는 대선배에게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과연 그렇군요.]

문득 이 선배는 자신의 야구철학을 이 새까만 후배에게 설파하고 싶은 지적허영심에 사로잡혔다. 김명지는 3루수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6번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7번타자가 배트 2개를 락커앞에서 연신 흔들어대고 있었다.

[우리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타이어를 작살내고 수없이 미트질을 했지만 정작 야구 그 자체로부터는 소외되고 있었던 거야. 자네 소외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뇨.]

3루수는 바보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오무려서 대답했다.

[하기야 나도 그 소외라는 것에 대해서 요즘 이책 저책 보면서 공부하고 있지.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소외란 말이야. 이놈의 야구에서보다 확실하게 나타나지. 야구는 스포츠야. 스포츠란 무었인가? 수렵과 전쟁으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아가던 미개한 인간이 수렵과 전쟁없이 먹을걸 얻으면서 분출할 길없는 그들의 폭력적 성향을 스포츠를 통해서 풀어낸거야. 그것까진 좋다 이거지. 그런데 어느날 경제활동과 폭력을 분리하였던 인간들이 그들의 대안적 폭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족속이 생겨나기 시작한거야. 남의 폭력을 지켜보면서도 그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는거야. 이게 바로 소외야. 그리고 이제 한번 보자고. 야구는 그 소외된 스포츠중에서도 최고야. 야구는 바로 경기에 임하는 야구선수도 소외되는 운동이야. 야구선수는 짜릿하게 공을 쳐내는 그 순간에 자기의 폭력성을 해소시키기 보다는 그날의 타율, 최다안타기록, 그날의 삼진아웃수, 그날의 실책수등 왠갖 숫자놀음에 찌들어 야구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숫자를 신봉하는 거지. 숫자 그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야. 더나아가 야구도 아무것도 아니지. 루상에 나갔다가 홈에 들어오지 못한들 어떠한가? 1루에 나가서 1루수의 엉덩이를 한번 톡 쳐주는 것도 기분좋은 일아닌가? 삼진을 당한들 어떤가? 상대팀 투수가 정말 멋진 공을 한번 던져 자기를 속인다면 ‘녀석 솜씨좋은데’하면서 한번 웃어주면 그만 아닌가? 이제야말로 정말 우리가 진정으로 숭배해 마지않던 그 지긋지긋한 숫자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구.]

봇물터지듯 터져나오는 대선배의 충고아닌 충고에 루키 3루수는 매던 끈을 다시 매야할지 아니면 ‘잘알아들었습니다 선배님’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몹시 갈등을 겪었다. 그런 그의 난처한 입장을 해결해준겄은 보어텍스의 갑작스런 타격 폭발이었다. 일순간에 2점이 났고 다음 타선을 위해 이 철학자 야구인은 자기 배트를 들고 타격준비를 해야만 했다.

타석에 들어선 철학자는 그의 20타수 연속 무안타라는 숫자를 통렬하게 깨버리는 만루 장외홈런을 날렸다.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인 관계로 수퍼브로스의 팬들은 다이아몬드를 돌던 김명지에게 경기 그자체를 즐기는 태도로써의 격려의 박수보다는 차가운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그리고나서도 김명지가 한일이라곤 락커로 돌아와 앉아 양손을 깍지끼어 배에 척 얹어놓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경기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11 thoughts on “求道者로서의 野球人의 자세

    1. foog

      정확히 보셨네요.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노골적으로 패러디했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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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트손

    흥미롭습니다. 철학적인 물음을 받은 느낌이고 삶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네요. 한편으로는 서글퍼 지기도 하네요. 우리주변에 본질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하나둘 떠올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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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dlinuf

    또 하나의 단편소설이 탄생했군요.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글을 읽고서 김명지가 이야기한대로 공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점수내는 것이 유리하지만, 수비입장에서 보면 공에서 가까울수록 상대편을 이길 수 있겠다라는 것과 목표지점에 공을 가져다 놓으면 상대팀에게 점수를 주지 않는다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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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꽁트를 몇편 올리면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여기 올린 꽁트는 다 소싯적에 끼적거리던 것들입니다. 그냥 다시 퍼다 나른거죠. 소위 말하는 날로 먹는 포스팅. -_-;

      공격과 수비에 대한 말씀을 들으니 왜 수비수는 하필 그 위치에 서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확률적으로 그 쪽에 가장 공이 많이 왔던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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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ingback: The,Bea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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