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권위는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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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Bailey Microcosm edited” by Thomas Rowlandson and Augustus Pugin – Ackermann, Rudolph; Pyne, William Henry; Combe, William (1904) [1808] “Old Bailey” in The Microcosm of London: or, London in Miniature (Volume 2 ed.), London: Methuen and Company Retrieved on 9 January 2009..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최근 사법부가 내린 두 개의 재판 판결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하나는 직장내 성희롱을 사유로 해고된 직장인의 해고무효소송 승소건이다.

제시된 사례를 보면 대기업 지점장이었던 원고는 여직원에게는 수차례 전화를 걸어 “집이 비어 있는데 놀러 오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여직원의 귀에 뽀뽀를 하는 등 무차별적이고 노골적으로 회사내 여직원들을 성희롱하였다. 또한 그는 후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여직원들을 만나 회유하기까지 하였고 회사는 이러한 그를 해고하였다. 재판부 역시 “원고의 행위는 여직원들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인 만큼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직원은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일 정도로 원고 행위가 중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심지어 “지점장으로서 직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해 직장 내 일체감과 단결심을 이끌어낸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 승소 이유를 밝혔다.

여기에서 “일체감”이란 비어있는 자기 집에 여직원을 끌어들여서 일체감을 느끼려 했다는 것이고 “단결심”이란 여직원을 회유하여 자신이 해고당하지 않음으로써 직장내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인가보다. 비키니 차림의 여자 사진을 월페이퍼에 걸어두고 이를 여직원들에게 노출시켜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키기만 해도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직장내 성교육을 받았던 지라 이렇게 시대에 역행하는 재판부의 판결은 차라리 용감해 보이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판결은 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쏜 혐의(상해 등)로 구속 기소된 김명호(50) 전 성균관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판결이다. 이 사건은 재판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쏜 사건으로 사건의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꽤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 등이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짙어 증거가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고 하는데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리섬 반장님 도와줘요~).

이러한 부분도 꽤나 의혹이 생기는 부분이거니와 판사가 전치3주의 부상을 입은 사건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무려 징역4년 형을 선고한 점이 놀랍다. 더 황당한 것은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재판과정에 불만을 품고 판사의 집에 찾아가 석궁으로 상처를 입힌 점과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판사들의 명예를 훼손한 점도 인정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 판결을 보면 그의 1인 시위가 이번 판결에 괘씸죄로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1인 시위는 엄연히 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석궁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1인 시위에 대해 그것이 “판사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점을 판결에서 강조한 것이다.

물론 그가 그 앞에서 허위주장을 한 개연성도 있을 수 있겠으나 과연 1인 시위를 통한 자기주장이 사법적인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얼마나 많은 1인 시위가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으로 단죄될 것인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이 두 판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사법부는 자기 밥그릇에는 눈에 불을 켜고 민감한 반면,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성희롱 당한 여직원과 같은 약자에 대해서는 “단결심”과 “일체감”을 이유로 보호해주지 않는 이중적인 조직이라는 것이다.

과연 석궁사건에 대해 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사법부의 권위’가 지켜진 것일까. 진정한 사법부의 권위는 병적인 성희롱을 일삼은 파렴치범에게 소송 패소를 안겨주고, 조직폭력배을 동원하여 사적인 보복을 자행하고 이를 무마시키려고 전방위 로비를 자행하여 진정 사법부의 권위를 유린한 김승연 회장을 구속수감하여야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6 thoughts on “사법부의 권위는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1. 저도 어제 두 판결 보고 딱 이 내용으로 포스팅할까 했으나 귀찮아서 관뒀는데 잘 올려주셨네요.
    진짜 짜증나는 판결 두 가집니다. 사법부에 앉아 있는 인간들 뇌를 좀 보고 싶어요.
    석궁 테러 사건은 그래도 우리 신문에서 꾸준히 사법부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썼고 이번에도 역시 석궁에 혈흔이 없었는데 배쪽에 묻은 것만 갖고 판결을 내린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이 좀 뿌듯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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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지난번에 강간사건 피해자한테는 과잉방어라고 판결내린 사건도 있었죠. 그건 아예 짜증나서 기사를 열어보지도 않았습니다만 암튼 책상앞에서 법전이나 외우던 어린 친구들이 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이 법률시스템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배심원 제도라도 도입하여야 하는게 아닌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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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노씨

    시사적이고, 의미있는 판례들에 대해서 종종 이렇게 논평하시나요?
    판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그 판례들을 비판하는 안목을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교육이 ‘법’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느끼거든요(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점에서 저도 이런 포스트 쓰고 싶었는데요(물론 교양법학 정도의 실력이지만요. ㅡㅡ;; ) .
    정말 반가운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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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할말이 있으면 ‘종종’ 해야지요. 🙂 저도 법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적어도 상식에 부합하는 법판결이 나오길 바라는 소시민에 불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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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ingback: 일다의 블로그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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