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늘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에서는 화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삶의 수단」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사회 형태, 특히 가장 발달한 사회 형태는 화폐 없이는 그 구조와 작동을 상상할 수 없거나 적어도 화폐 없이는 매우 불완전할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사회교류화」(Vergesellung) 과정 내에서의 경제 영역에 포함되는 것들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 및 종속 관계를 그 내용으로 하는 다른 많은 구조에도 적용된다. [과거에는] 「부과물」의 모든 종류들, 제물, 「공물」, 기증(Beiträge), 정부적 강권(Gewalt)에 대한 다양한 의무적 급부, 같은 지위의 사람들이나 하위의 사람들에 대한 「선물분배」 등은 최초에는 대부분 현물, 즉 물리적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대부분이 점차 「화폐형식」을 채택하게 되고, 더욱이 그러한 재화들이 「화페형식」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178쪽]

화폐의 발달사에 대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현재까지의 책의 내용이 이 인용문에 잘 요약되어 있는 것 같아서 옮겨 적었다. 인용문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저자는 화폐의 발전은 처음에는 – 거의 대부분 국내외의 왕족과 귀족들 간에 이루어진 행위겠지만 – 제물, 공물, 기증, 그리고 선물의 형태로 이루어진 상호교류 행위가 진행되어오다가 점차 이러한 행태가 시장에서의 교환이라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화폐라는 “사회적 삶의 수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그러하기에 화폐라는 수단은 계급적이고 특권적이고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

인용한 책의 저자 게를로프도 그런 뉘앙스로 계속 이야기하지만 역사경제학자 페르낭 브로델도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끊임없이 물질문명의 발달사는 우리가 아는 것만큼 그렇게 균일하게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증기기관, 신용제도와 같은 문명의 이기들도 시장이 그것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미 발명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생산관계의 역학에 따라 국소적으로만 채택이 되었고 광범위한 범위에서 그것을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즉, 화폐는 특권적인 상품이다.


자료 출처

역사적으로 금은과 같은 쇳덩이가 화폐의 표준수단이 된 이후 패권국이 파운드나 달러 등 금에 연동하는 자국통화를 기축통화로 설정하였고, 현재는 달러가 독보적인 기축통화의 권세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그 화폐패권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 러시아, 중국 등 – 금을 사들이면서 현재 금값이 폭등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트럼프가 암호화폐 확보를 지시하며 그쪽 거래소도 들썩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화폐형식이 지구화되면서 더 이상 전근대적이고 특권적인 수단이 아니라 평등한 수단이 되었다는 생각이 다소 이른 판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화폐 행태의 기술적 측면은 쇳덩이 확보라는 먼 과거와 전자적 화폐수단의 확보라는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저에는 결국 통화증발이 불가능한 그 어떤 것, 즉 금과 비트코인이라는 수단이야말로 화폐라는 것에 대한 인류 공통의 고전적인 선입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대안”에 접근할 수 있는 이나 국가는 예의 그렇듯 소수다. 어떤 이는 현재 상황을 “제2의 브레튼우즈” 상황이라 묘사하기도 하는데 화폐의 계급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요한 변곡점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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