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국내정치

박정희는 누구인가?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바쁜 시기도 있었고 나름대로 시련의 시기도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단 탓이다. 이제 좀 삶이 안정되었으니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까 한다. 예열 차원에서 역사학자 박태균 씨의 통찰력 넘치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강의 영상을 올린다. 한반도의 현대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 박정희에 대한 연구야말로 한반도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열쇠 하나를 제공하는 연구가 아닐까 싶다.

“법복과 털외투는 악행을 감춰주지”

Edwin Austin Abbey King Lear, Act I, Scene I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jpg
By Edwin Austin AbbeyMetropolitan Museum of Art, online database: entry 10049, Public Domain, Link

넝마 옷 사이로 보이는 악행은 크게 보이는 법이지만, 법복과 털외투는 그 모든 걸 감춰주지. 죄에 황금 칠을 하면 강력한 정의의 창이라도 상처 하나 못 입히고 부러지는 거다. 누더기로 무장하면, 난쟁이의 지푸라기라도 뚫을 수 있다.[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태원 옮김, 웅진씽크빅, 2014, p190]

아버지로부터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그러한 아버지는 섬길 마음은 없었던 두 딸에게 버림받고 황야에서 길을 잃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리어 왕의 독백이다. 이성의 끈을 놓은 와중에도 이렇게 문득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어 동행하고 있던 에드가로부터 “광기 속에 이성이 있다”는 찬사를 받는다.

오 후보자는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장 재직 시절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를 해임한 고속버스 회사의 해고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중략] 이는 2013년 2월 변호사로부터 85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검사의 면직에 대해 “가혹하다”고 한 판결과 대비돼 입길에 올랐다.[800원 판결과 ‘윤석열, 술, 인연’…대법관 후보 오석준 청문회]

한 인물이 리어 왕의 그 촌철살인에 그대로 적용되는 두 가지 경우에 동시에 관여하고, 지금 대법관 후보로 행세하고 있다니 인간세상의 부조리는 문명의 진보와 무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것이 문제다 저것이 문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염세적인 생각도 든다.

탈원전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에 관하여

조선일보는 2020년 1월 14일,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의 자료를 받아 <한수원, ‘1778억 이득’ 초안 보고서 19개월간 덮었다>라는 기사를 냈고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6일 이후 현재까지 조선·중앙·동아·경향·한겨레·한국일보 6개 주요일간지 지면 기준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총 326건인데 이 중 121건이 조선일보 기사였다. 타 언론사의 경우 25~50건이였다.[보수진영은 왜 ‘월성 1호기’를 겨냥했나, 공시형, 참여사회 202104, p8]

2012년 설계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는 당시 행정절차를 무시하고1 7천억 원에 달하는 수리비를 들여 재가동시킨 이후에도 막대한 적자 운영이 이어왔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이 시설의 경제성 분석에 관한 자료를 삭제하며 감사에 저항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검찰은 자료 삭제를 이유로 산자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하였다. 극우 매스미디어는 이 이슈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을 흔들고자 함이다.


월성1호기는 운영 연장 이후에도 계속 적자였다(출처)

사실 현 정부의 최대 실책 중 하나가 대통령의 무리한 인사권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함에도 대통령이 인선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부처가 정부의 공약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과하게 시비를 거는 상황은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한 자정작용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원자력 기득권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선언적으로는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표방한 현 정부의 정책 이행속도는 여러 면에서 지지부진한 편이다.

신재생 정책에 있어서도 초기에 새만금 등지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수소경제’와 ‘그린뉴딜’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히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탈원전이 불러올 부정적 이미지를 – 전기료 인상 등 – 극우 매스미디어가 계속 부추긴다면 극단적으로는 임기말에 탈원전 정책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이 지자체 정권 교체만으로도 도전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 정부의 많은 것이 그렇지만 부동산과 탈원전 등의 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배경에는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규제는 양질의 사회주택 공급을 병행했어야 함에도 그 역할을 방기하여 가수요를 부추긴 정황이 있었고, 탈원전 역시 원전 폐쇄로 인한 공백을 신재생발전으로 재빨리 메워야 함에도 현재 수요공급의 조절이 적절히 이루어질지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철저한 개혁이 초래할 결과는 결국 개혁에 대한 염증과 수구로의 회귀다.

어떤 기념일에 대한 괴롭힘,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데이도 ‘근로일’로 창씨개명을 한다. [중략]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중략]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 그리고 1990년 메이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정운영,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웅진지식하우스, 2006, pp22~23]

이 기념일이 뭐라고 이렇게 끊임없이 일제가, 이승만이, 박정희가 괴롭힐 일인가 싶다. 하지만 그만큼 어떠한 대상물에 – 여기서는 기념일 – 대한 호칭은 중요하다. 모욕적인 호칭은 대상물의 지위를 규정하고 많은 경우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한다. 일제의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말살했다. 우리가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로 부르고 나이 어린 편의점 서비스 노동자를 “알바”라고 부르면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아가 현재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법에 의해 자영업자로 규정 ‘당하고’ 있다. “사장님”이니까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바로 실질적인 사장님이 노동자를 고용하며 응당 치러야할 노동의 대가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 문제다. 호칭은 그만큼 중요하다.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가 산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무분별한 태양광 시설이 재해를 키웠다는 주장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최근 집중호우와 함께 산사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태양광 발전시설의 난개발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 정부가 ‘탈원전’과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내세우면서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소는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500헥타르(ha) 정도씩 늘어났던 산지 태양광 설비는 2017년 1435ha, 2018년 2443ha 규모로 신규 증축됐다. [나무 자르고 패널 놓더니 폭우에 와르르… “태양광이 산사태 피해 키웠다”]

조선일보가 현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기조가 이번 집중호우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도는 문재인 정부의 집권 시기인 2017년과 2018년에 임야의 태양광발전소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사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현 정부의 잘못인양 몰아가고 있지만, 실은 사업자의 사업 준비나 인허가 일정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발전소의 인허가가 이전 정부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오히려 현 정부는 2018년 임야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함으로 인하여 지목의 변경이 잡종지로 변경되는 등의 부당한 이득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당 발전소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였다.

정부는 2018년 10월 제6차 부담금 운용심의위원회에서 산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면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대체 산림자원 조성비 감면 기간 설정 및 감면 대상 변경안’을 심의·의결했다. [중략] 같은 해 11월에는 산림자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산지 태양광발전시설을 일시사용허가 대상으로 전환해 지목변경을 금지했다. [중략]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이 같은 조치에 따라 산지 태양광발전시설 신규 허가 면적은 2018년 2천443ha에서 2019년 1천24ha로 58% 줄었다. 또 허가 건수는 2018년 5천553건이던 것이 2019년 2천129건으로 62% 감소했다.[[팩트체크] 산지 태양광설비와 산사태 연관성은?]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은 때로 단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정책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것이 경제지표로 발현되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는 장기적인 정책과제를 뚝심 있게 밀고나가기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더군다나 정부의 수권정당이 바뀔 경우 정책적 연속성은 더욱더 유지하기 힘들다. 한편으로 때로 정치적 이해가 다른 집단은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이전 정부의 잘못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땔감으로 쓰기도 한다. 조선일보와 김종인처럼.

블로그에는 글도 안 쓰는 제가 청와대 게시판에 글 하나 올렸습니다

청룡봉사상을 없애야 합니다[해당 페이지 가기]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포항경찰서 소속 A 경감은 지난 26일 ‘청룡봉사상이 우리의 자존심을 구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폴넷)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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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청장은 지난 20일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조선일보가 심사해 1계급 특진하는 방식에 대해 유지 입장을 밝혔다. <"자존심 구기는 청룡봉사상 없애야" 경찰간부 공개반발>

2019년 5월 29일 자 노컷뉴스 보도의 일부입니다. 이 사회는 지금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부 기관의 수사권 조정, 버닝썬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김학의/장자연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검경의 수사 등 검경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사건에 대한 이슈로 온 국민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버닝썬 수사는 “명운을 걸겠다”는 경찰청장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고,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재수사 역시 다시 답답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뒤에 무언가 정당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인 청룡봉사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 판에 경찰이 그동안 조선일보라는 특정한 매스미디어와 공동으로 특진의 기회까지 주는 상을 일선 경찰들에게 수여해왔다는 사실은 속담에서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게 또 기사 속에서 보도된 많은 일선 경찰의 생각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폐지가 어렵다는 경찰청장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적폐를 없애고 깨끗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 시대적 요청입니다. 반공 제일주의도 오래된 적폐였고, 공직자의 접대 관행도 오래된 적폐였고, 관권선거도 오래된 적폐였습니다. 경찰과 특정 매스미디어와의 유착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경찰청장의 발언 역시 앞서 사례와 같이 오래된 또 하나의 적폐라 생각합니다.

청룡봉사상 폐지해주십시오.

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