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국내정치

박근호 교수의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읽고

남한의 “진보”세력에게 박정희의 경제신화는 일종의 계륵이다. 남한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 또는 대만과 함께 – 20세기 전간기의 참화를 딛고 기적처럼 경제성장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그 고도성장은 박정희의 집권 기간부터 시작된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즉, 박정희는 경제개발계획 수립, 수출지향형 공업화, 재벌체제 확립 등 경제전반에 대한 강력한 국가통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하여 온 것으로 알려졌고, 이것을 근거로 보수 세력은 그를 소위 “근대화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진보 세력도 그 정도의 사실은 딱히 반박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그래도 민주주의는 진보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도로 항변하곤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쓴 박근호 교수를 “진보” 또는 “보수” 중 어느 것으로 칭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고 나서의 느낌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객관적인 경제학자라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블로거가 쓴 묵시론 적인 경제전망을 담은 책과 어느 경제지 기자가 쓴 저축은행의 흥망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들 책 내용의 불성실함으로 인해 박 교수의 성실함이 더욱 돋보였다. 이미 1993년에 『한국의 경제발전과 베트남전쟁』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이 남한 경제에 미친 영향에 주목한 필자는 2007년 비밀문서에서 해체된 대통령기록물, 美국무성의 한국관련 문서 등을 연구하여 논리를 보강하는 등 치밀한 검증을 거친 결과물이 이 책이다.

1960년대 내내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의 안전보장전략 아래 놓여 있었다. 다만 한국이 ‘미국의 불안정한 의붓자식’이었던 관계는 1965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통해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이행했다. 따라서 한미관계의 분기점은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이었고, 이를 경계로 미국의 한국정책은 명백히 전환되었다. 미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을 공산권진영에 대한 경제적 우위의 증거로 삼으려는 ‘한국모델’ 전략이 행해졌다. 이를 위해 미국이 만든 경제시스템 속에서 개발모델이 된 한국은 우대조치를 받았고,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 요컨대 미국이 ‘한국모델’ 정책을 공들여 추진한 결과, 1965년부터 한국의 고도성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박근호 지음, 김성칠 옮김, 회화나무, 2017년, p364]

해당 인용문이 책의 전반적인 요지를 담은 문구라 생각되어 인용했다. 박 교수는 박정희가 그 어떤 나라의 위정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려 했던 이유를 “한국의 경제성장, 한미관계의 강화, 한국군의 전투력 향상, 그리고 플러스알파”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박의 철저한 계산에 따라 진행된 베트남파병은 이후 박정희의 1965년의 방미로 이어지고 존슨 정부는 남한을 일본과는 다른 공산권에 대한 “자립형 완충지대”이자 “민주주의의 쇼윈도”로 키울 마음을 먹는다. 이를 위한 미국의 지원은 다양한 물질적 지원 이외에도 한국산 제품의 수입확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설립을 위한 학술적 지원, 미국기업의 한국 직접투자를 위한 노력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박정희의 미국을 향한 집요한 구애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달리 반박할 말은 없다. 다만 박 교수가 분석한바, 박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수립한 경제개발계획이 실제 집행에서는 많은 오류가 있었고,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가 전자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제시한 후1, 미국기업의 제조업기지화를 위한 투자가 있은 다음에야 경제가 궤도에 올랐다는 사실은 박정희 체제가 미국이라는 외생적 변수 없이는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그를 “OOO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몰염치한 짓일 것이다. 그리고 이때 기득권층은 미국의 위력을 실감하고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불경스러운 행동임을 깨달았고2 이런 행태가 오늘날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는 대미굴종, 많은 노동자의 희생, 정경유착 및 재벌체제 공고화, 수출지향형 경제성장, 한미일 군사/경제 동맹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씩 곱씹어보면 아직도 이러한 모순들이 그대로 온존하고 있음을 최근의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러한 모순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들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짖어대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보면 그 썩은 뿌리가 이 나라에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 지를 서늘하게 느낄 수 있다. 어쨌든 박근호 교수의 책은 이런 썩은 뿌리의 토대인 “박정희 경제신화”의 허구성을 깨닫게 하는 입문서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책이다. 이 연구가 초석이 되어 이 나라의 대안 경제를 꿈꾸고 실천할 그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대선 후보 공약 리뷰] 그래서 복지는 무슨 돈으로 할 건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주요 후보들은 다양한 복지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10대 공약을 제출하면서 재원조달 방안으로 증세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증세를 염두에 둔 ‘중부담·중복지’를 제안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일찌감치 사회복지세 신설, 법인세 인상을 약속했을 뿐이다.[‘복지 확대’ 약속한 문·안·홍, 재원조달 방안에 ‘증세’는 없다]

각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내놓고 있는 반면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 눙치고 있다는 비판기사다. 503이 당초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가계의 세금부담 증가속도가 소득의 그것에 비해 2배에 달했다는 보도도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정부가 세금을 더 걷었고, 현재의 후보들도 세금을 안 걷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지금 공약으로라도 그 세수확보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이는 명확한 기조 없이 세금 우려내기 만만한 상대만을 고를 것이란 정황이다.

즉, 주요 세원인 법인세와 소득세 세입이 2012년부터 역전되어 소득세 세입이 더 많은 것도 한 예다. 진짜 현금이냐 아니냐에 말도 많았지만, 기업의 내부유보금이 증가일로인 상황에서 503은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에 관한 소득세제 개편 등 “사실상 증세”라는 편한 길을 걸었다. 증세냐 아니냐의 논쟁은 사실 경제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슈 같다. 법인세율 인하는 친시장적인 정부에서 가속화되어온 정황이 있고, 그 경제학적 논리로 내세웠던 “낙수효과” 이론은 비웃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법인세 인상을 진지하게 고려할 시점이다.

심상정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거기에 사회복지세라는 목적세도 신설하겠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는 “법인 고소득 대상 누진세율 체계 확립”이란 공약을 내놓았고, 국민의당은 이미 24%로 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제출했다.1 문재인 후보는 “재정지출 개혁과 세입확대”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문 후보 스스로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 그리고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이런 식으로 제시하며 동의를 받겠다”고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입장이 모호하다.2

유승민 후보는 “저부담-저복지”를 “중(中)부담-중복지”로 전환하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우지만, 어떻게 그렇게 복지의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세제 구조 조정 및 세제 개편”이란 표현으로 눙치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탈루소득 발굴 및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정강화”, “대기업 세제감면 재정비”를 이야기하고 있어 가장 소극적인 입장이다.3 경남도 부채를 다 갚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 같다. 요컨대 법인세와 기타 목적세 공약에 있어 심 후보가 가장 적극적, 안 후보가 적극적, 문과 유 후보는 유보적, 홍 후보가 가장 소극적으로 보인다.

한편 가계의 세수부담은 가처분소득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꽤 신뢰를 얻는 주장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담뱃값 인상으로 저소득층이 더 부담이 됐다는 정황에서 볼 때, 결국 가처분소득과 소비와의 상관관계가 적은 부유층에 세금부담을 더 지우는 누진세 인상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심은 소득세 누진강화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자증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은 “선 금융· 부동산 등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후 고소득 세율 인상 최고세율 인상”을 주장하고 있어 세율 인상에 부정적인 인상을 풍긴다.

문 후보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고소득자, 고액 상속ㆍ증여자 과세 강화,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유 후보는 공약집에서 조세에 관한 별도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누진구조라는 큰 틀에서는 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금감면 제도 개선 등에 방점을 찍고 있다. 홍 후보는 달리 언급할 내용이 없다. 종합하면 세금 정책은 심 후보가 가장 강경하고 문과 안 후보가 비슷한 내용, 유 후보가 유보적, 홍 후보는 퇴행적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제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증세가 논의할 시점인 것 같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가 아니고요

특검이 이재용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한 사실에 대한 브리핑의 캡처 이미지를 트위터에서 봤다. 자막에는 “특검 ‘경제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게 더 중요’”라고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무딘 칼날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던 특검의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브리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아쉬움도 있는 발언이다. 오히려 “경제를 세우기 위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식의 브리핑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느 발언이 더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은 정의가 경제를 희생하고서라도 이 사회가 지켜야 할 상보(相補)적 성격의 개념인지, 아니면 정의(正義)와 경제가 함께 가는 것이라는 – 또는 부정적 효과를 가지는 – 상관(相關)적 성격의 개념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저자가 내한공연(!)을 열만큼 신드롬을 연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명불허전 우리가 정의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많이 깨부수면서도 동시에 대중의 통념을 위로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정의는 공동체의 정서를 지켜내는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공동체가 계급, 성별, 인종별 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정의의 정의(定義)가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1 체제를 유지한 남한에서는 특히 그렇다.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 유신 시대의 포스터 (c) 민족문제연구소

이재용 씨의 혐의는 무엇인가? 뇌물공여를 통해 소위 “삼성그룹” 내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안에 대한 주주의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태의 진행상황은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글로 적은 바 있는데, 과연 합병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닌지는 우선 논외로 하겠다.2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 분화를 유지해야 할 현대사회에서 이재용 씨가 그 기능적 분화를 정치적 압력으로 무마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정부가 아닌 보통사람의 돈으로 운용되는 투자도구이니 만큼 그들에게 있어 “정의”는 보통사람의 경제적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엉뚱한 “국익”을 내세운 사적이익 추구에 복무한 것으로 보이는 혐의다.

분화는 근대사회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세계이다. 전체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으로 분화한다. [중략] 이렇게 분화한 각 사회적 단위들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이 주어진다. [중략] 그리고 다양한 영역이나 조직은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다. [중략] 아니 갈등하거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다양한 국가기관과 그 기관들에 속한 수많은 국가관료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국가이성비판, 김덕영 지음, 다시봄, 2016년, pp121~122]

정의의 문제로 돌아가자. 근대사회의 한 기능인 기금운용본부에게 있어 정의는 무엇인가? 연금 납입자의 경제적 이익이다. 운용본부가 그 이익을 위해 결정을 했다면 본부가 합병을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 결정을 존중해줄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런데 만약 외압에 의해 합병을 찬성했다면 정의가 무너졌다고 여길 합리적 이유가 있다. 이때 실현된 정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상층부를 위한 정의다. 한편, 그렇다면 이 정의가 최소한 국가 단위의 공동체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벌 체제에 내재화된 경제신문들은 하나같이 특검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곡소리가 났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가로 관찰할 수 있는 시장은 별로 반응이 없다. 재밌는 일이다.

기금운용본부의 기능적 분화 무력화 시도가 경제에 장단기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3 하지만 원론적인 부분에서 살펴볼 때 이재용 씨의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는 시장의 본원적 기능, 즉 균형가격의 탐색을 방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가 기금운용본부의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본부는 시장의 합병할 양사의 합병비율이 균형가격에 부합하는지 독립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장주의자들이 경제발전의 대전제로 여기고 있는 이상향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즉, 기능적 분화를 거친 독립적 기관의 각각의 정의가 서야 원론적 경제가 바로 서는 것이다. 이재용 씨는 시장의 균형가격 탐색을 방해한 자본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가는 적어도 시장주의자가 아니다.

때가 되자 본색을 드러내는 조선일보

국회가 탄핵의 정치적 관문이라면 헌재는 탄핵의 사법적 관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 요소다. 최대 7~8개월을 잡는다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상황이라 해도 임기는 거의 채우는 셈이 된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카드를 내고 2선 후퇴를 제의했을 때 야권이 이를 받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문씨, 안철수씨 등이 ‘웬 떡이냐’면서도 더 먹으려고 반대했다가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야권의 과욕과 두뇌 부족이 빚은 결과다.[이제 ‘박근혜’는 과거다]

오늘자 김대중 칼럼 중 일부다. 그간 마치 반정부 투쟁의 선봉에 서기라도 한 것처럼 살벌한 구호를 외쳐대던 조선일보의 본색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김 씨는 그간 박 대통령의 탄핵을 미적거리던 야권의 우려사항 중 하나를 지적했다. 바로 탄핵절차를 밟자면 의도한대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임기에 필적하는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씨는 그런 현실을 지적하며 야권이 “과욕과 두뇌 부족” 탓에 김병준 총리 카드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놓쳤다고 조롱한 것이다.1

하지만 그 상황은 조선일보가 원하는 상태일지는 몰라도 야권, 더불어 국민이 원하는 미래는 아니다. 대체 야권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총리와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2선 후퇴도 거국내각도 – 김병준 총리 체제가 거국내각도 아님은 물론이고 – 그 어느 것도 헌법적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박근혜를 보수 세력의 본류가 아닌 일탈자로 취급하여 골방에 처넣고 전열을 정비하여 보수 재집권을 노리는 조선일보나 원할 극히 어정쩡한 상태다.2

이 사태의 본질은 “저잣거리 아녀자의 국정농단”이나 “최태민 교주에 정신적으로 지배당한 위정자의 일탈”이 아니라 헌정 이래 지속되어 오던 사익추구집단의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하는 상호 사익추구다. 지난번 수사결과 발표에서 검찰이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칭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가장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직접 정유라를 지원한 삼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죄목도 현재까지는 뇌물죄가 아닌 강요죄다. 언급되지 않은 이가 바로 주범이다.

경제범죄가 악랄한 점은 그 범죄 구성요건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안한화와의 방산 업체 거래에 있어, 최순실 씨등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러한 심증이 법정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판결나기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고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칼럼이 원하는 상황이나 검찰의 발표 내용은 그러한 길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다. 그게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기승전순실’이라고 지금 교육, 의료, 재난구조, 인사, 경제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가 최순실 씨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일 정도다. 믿기지 않기는 하지만 그 부조리의 신경망에서 최순실 씨만 걷어내고 보면, 그간 사익추구집단이 얼굴만 바꿔가며 해오던 짓이다. 김대중 씨가 원하는 김병준 총리 체제는 그렇게 얼굴만 바꾼 사익추구의 체제다. 따라서 야권은 이번 기회에 이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정말 두뇌 부족이다.

한데 김용철 씨는 그들의 서술구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100% 실존인물이 100% 실제 벌어졌던 일을 꾸미고 저지르고 있는 양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의 이건희 가족, 현 대법원장인 이용훈 판사, 돌아가신 두 대통령과 현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검찰 등 지배계급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그런데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다. 그 이유는 만약 이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화라면 이건 나라가 두 번 뒤집어질만한 대사건이고, 사실이 아닌 것을 김용철 씨가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건 사상최대의 인격모독이자 무고이기 때문이다.[‘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사회가 청년에게 각자도생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히 젊은 층일수록 부동층의 비중이 높아서 정치권이 표심을 잡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었다. (아래 참조) 이글을 쓴 사람들은 그 정치적 성향을 굳이 나누자면 “진보”측으로 여겨진다.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적인 투표성향의 노인층에 대항하여 청년층이 투표를 해야 한다는 – 즉 청년층은 야권을 지지할 것이라는 –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젊은 부동층은 벚꽃구경가느라 투표안한다. 지들 앞길을 지들이 망친다.”
“10대 20대에서 43%. 그러나 투표를 하는 사람은 4.3% 정도??”

실제로도 청년층의 대통령 지지도를 보면 反여권 성향이 강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를 제외하고는 위 베스트 댓글이 비아냥대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여태의 투표에서도 청년층의 투표율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투표해서 뽑은 정치권이 실제로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1 이는 주요하게 이미 청년층의 비중이 갈수록 작아지는 과소대표성 경향을 보이고 있고, 정치권이 이를 간파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14년 ILO 보고서는 각국 청년의 교육 및 고용현황을 비교하였는데, 이를 보면 우리 청년의 열악한 처지가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1996년 및 2006년 각국의 교육수준을 지수로 표현해놓았는데, 우리나라는 각각 5.96과 7.34를 기록하였다2. 이 수치는 각 년도 2위, 1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과 고용률은 1996년 꼴찌에서 두 번째, 2006년에는 꼴찌를 기록했다. 요컨대, 남한은 최고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이 가장 열악한 고용수준에 시달리는 나라다.

각국 노동시장에서의 청년층의 교육수준

출처 : At work but earning less : minimum wages and young people, Damian Grimshaw, ILO, 2014, p13 에서 재구성

성인소득 대비 청년소득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청년고용률

출처 : 같은 보고서 p16 에서 재구성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가 보자.. 청년의 상황이 이러한데 앞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정치권이 청년층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다. 많은 청년층 노동자들이 해당사항일 최저임금을 올리는데 인색하던 여권이 부랴부랴 총선공약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놓았지만, 이런 그들이 또 지자체에서 실시하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는 예의 “포퓰리즘”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보수층은 “흙수저”3,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비난하고, 진보층은 투표를 안 해서 그런 것이라 비아냥댄다.

이 나라는 여태의 노동자와 자본가의 역학구도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노년층은 정치4, 경제5, 문화6 등에서 권력을 잡고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어 노자(勞資)간의 대립에 중층적으로 고통 받는 新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더군다나 젠더의 문제로 가면 한층 복잡해진다. 남녀간 임금차이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문화적으로도 “여혐”문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고통 받는 청년, 여성, 노동의 이슈가 맞물려 피해의식을 특정계층에 쏟아 붓는 양상으로 추측되는 상황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各自圖生 이외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사드 배치에 대해 국민의 칠할이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아침에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국민 중 일곱 명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중 한 항목이었던 이 조사결과는 어쨌든 한미 양국의 사드 추진 여부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른바 “여론몰이”에는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사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응답자의 뜻이 어떠하든 간에 정당한 여론조사라면 당연히 결과에 수긍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여론조사의 방식이 다분히 결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라 여겨진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당사자들의 양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근거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응답항목인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와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다.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 과문한지라 알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데 저 항목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드의 배치 여부에 대한 설문이라면 그냥 “예”와 “아니오”로 응답항목을 정하면 될 것인데, 왜 “북한의 위협의 대비하기 위해”나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와 같은 단서 조항을 붙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단서조항이 응답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은 억측에 불과한가?


갤럽의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설문조사다. 응답항목은 “합법화되어야 한다(should be legal)”와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should not be legal)”로 단순하다. 만약 후자의 응답항목을 “자녀들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바꾸면 응답결과가 당초의 응답항목 결과가 같으리라 생각되는가? 부모는 ‘우리 아이가 게이라면?’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빨갱이” 사냥의 희생양이 될뻔했던 어떤 정치인

1963년

이 무렵 군정연장 원대복귀 민정참여의 거듭된 번의 속에 곤욕을 치른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우여곡절 끝에 63년 8월 31일 민주공화당의 총재와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통령 선거가 벌어지게 됐다. [중략] 윤보선은 황태성 사건까지 끌어들여 연일 박후보의 사상관계를 융단폭격했고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박정희 후보는 “저들이 나를 빨갱이로 몰려 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중략] 63년 10월 10일 대선을 닷새 앞둔 시점에서 민정당 유세반의 김사만이 경북 영주에서 느닷없이 “부산 대구에는 빨갱이가 많다”고 후려쳤다. [중략] 사흘간의 개표 끝의 최종결과는 박정희 4백70만표, 윤보선 4백54만표로 불과 16만표의 차이였다.[박정희, 윤보선에 16만표 차이로 승리, 박상길 전 청와대 대변인, 한국 현대사 119 대사건, 월간조선 엮음, 1993년, pp168~169]

2015년

동아일보 종편 채널A가 민언련을 ‘종북세력’으로 묘사했다가 정정보도는 물론 손해배상도 물게 됐다. 민언련이 제기한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을 깨고 원고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중략]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2013년 5월 종북좌익척결단 조용환 대표를 출연시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세력 5인방’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민언련에 대해 “강정구와 송두율을 비판하는 언론을 비판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언론을 공격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선동한다”며 “우리나라 안보를 해치는 일련의 선동을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에 종북세력의 선동 세력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조용환 대표는 “(민언련이) 북한 노동당 통전부 225국의 컨트롤을 받는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을 이어갔다. [채널A, 민언련에 ‘종북’ 딱지붙였다가 손해배상 1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