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석유

오늘 들른 곳들 대충 정리

경제>국외
미국에서의 건설대출 부실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바로 가기
“The purpose of stimulus is, first and foremost, to mitigate unemployment.” [바로 가기]
미국의 임시직 증가 추이 [바로 가기]
민영화 병원을 국유화하라는 영국 녹색당의 요구 [바로 가기]
“OPEC이 현 유가 수준을 꺼리지 않는다.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수요감소가 유가 급락을 야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선만 상회해 준다면 75달러 이상을 넘는 고공비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바로 가기]

경제>국내
“환경부가 ‘녹색뉴딜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2012년까지 864억원을 투입, 주변환경을 개선하고 저소득층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클린코리아사업 예산 197억원 전액 삭감” [바로 가기]    
“이러한 집단 해고에 대해 대학 내의 반발이 심하자 100명을 집단해고 한 영남대와 70명을 해고한 부산대가 최근 해고를 철회하고 이들 시간강사 전원에게 주당 5시간 이하의 강의를 맡도록 했다.” [바로 가기]
“웃기는 것은 중앙은행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대거 포진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시장개입을 표방하는 (케인즈 주의적인) 단체이다. 쿠퍼는 이러한 모양새를 두고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이 군대에 들어갔다고 비꼬았다.” [바로 가기]

유머
주인(?)에 대한 고양이의 본심 테스트 [바로 가기]
“국토해양부는 4대강살리기 사업의 애칭을 짓는 네이밍 공모전을 개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새이름으로 ‘사강나래’가 선정됐다.” [바로 가기]  진작 알았으면 ‘사단날래’로 응모하는 건데
외계인은 존재한다! 궁극의 크롭써클! [바로 가기]    
으아~ 코스프레가 이 정도는 되야~ [바로 가기]
내용물(인체)의 성분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는 셔츠 [바로 가기]  
“아빠 긴히 할말이 있는데요.” [바로 가기]
Berlin Tower Lift-Off!  [바로 가기]

기타
죽음 뒤에 남는 온라인 존재감에 관한 글 [바로 가기]
지하철에서 이걸 사용하면 확실히 오덕스러워 보이겠군요 🙂 [바로 가기]
흡연자/비흡연자였던 쌍둥이의 외모 차이가 처참하군요. [바로 가기]
극적으로 생긴 무인도 Ball’s Pyramid  [바로 가기]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 1953)

옛날 영화를 볼 적마다 항상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사람들은 이제 모두 죽었는데 저렇게들 아등바등 사는구나’라는 생각이다.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잡념이지만 옛날 영화, 특히 흑백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을 이야기한 흑백영화를 얼마 전에 봤다.

누가 당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손가락을 자를 용의가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를 받을 요량인지? 정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여기 그 질문에 대답한 이들이 있다. 손가락이 아닌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겠다는 네 사나이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어느 가상의 도시에는 할 일도 없이 하루를 때우는 무직자들이 널려있다. 도시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곳은 마치 바다 한 가운데의 무인도처럼 탈출할 길이 요원하다.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손으로 벌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돈을 버는 것 정도뿐이다.

그 창살 없는 감옥에는 석유회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남부석유회사(Southern Oil Company)’, 이른바 SOC. 얼핏 실존하는 석유메이저 SoCal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이 회사의 유정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더 큰 불을 일으키는 것, 즉 폭발을 통해 산소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에는 폭탄이 없었고 바로 SOC 본사에 충격에 극도로 민감한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만이 있었다. 회사는 그것들을 운반하기로 하고 도시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약을 운반할 운전사를 모집한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대가로 2천 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한다. 몰려든 사람들 중에서 마리오(이브몽땅)를 포함한 네 명이 선발된다.

새벽의 여명을 뚫고 각자 두 명 씩 두 대의 트럭에 나눠 출발하는 이들. 들쑥날쑥 패인 시골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니 긴장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급회전 길에서 낭떠러지 옆에 세워진 낡은 나무발판을 길 삼아 차를 돌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가슴을 졸이게 한다. 가는 길에 떨어진 큰 바위의 폭파장면 역시 볼거리.

이 영화를 진정 명작으로 만드는 요소는 그러한 극한상황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보이는 희생정신, 비겁함, 광기(狂氣), 나약함, 용기 등이 어떻게 상호반응하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때문이다. 영화는 마치 이 네 사람을 실험실 유리관에 넣어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찰하는 듯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강박관념처럼 갖고 있던 흑백영화 배우들의 현실이 그 영화에서는 그대로 실현되는 영화인 셈이다. 덕분에(?) 난 이 영화를 보면서는 적어도 배우들의 실제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한명 이브몽땅의 예전 죽음 소식이 잠깐 뇌리에 스쳤을 뿐이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었던 이브몽땅이었고 석유메이저 SOC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라는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성찰해보는 영화다. 그러한 대처방식은 때로 정치적인 분쟁의 극한상황에서 그 정치적 대의와 상관없이 개인별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세계관을 앞서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충무로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8월 31일 저녁 8시 프로로 중앙시네마에서 봤다.

연합뉴스의 어이없는 실수

연합뉴스가 CNN의 기사를 베껴 쓰면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기사는 북극 지방의 석유 매장량이 당초 예상을 상회할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에 관한 <Survey: Arctic may hold twice the oil previously found there>라는 제목 기사를 번역한 <“북극 석유 매장량, 알려진 양의 2배”>라는 기사다.

“Based on our study, there are 40 [billion] to 160 billion barrels of oil north of the Arctic Circle,” said Gautier. The USGS had previously estimated the Arctic is home to 90 billion barrels of oil.[전문보기]

즉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당초 900억 배럴 정도 묻혀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 곳에 적게는 400억 배럴에서 맞게는 1,600억 배럴까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사다. 추정량의 범위가 너무 커서 과연 최신예측이 기사제목대로 두 배의 매장량이 확인되었다고 봐야할지 반절의 매장량이 확인되었다고 봐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원보고로써의 북극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이 기사의 의도인 것 같다.

한편 연합뉴스의 실수는 사족으로 달려있는 전 세계 석유소비에 관한 언급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The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a division of the Department of Energy, estimates that the world currently uses 30 billion barrels of oil a year.

CNN기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석유소비는 연간 300억 배럴 정도이다. 이 부분을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놓았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는 1일 3천억 배럴에 달한다.[전문보기]

연합뉴스의 정보에 근거하여 분석해볼 경우 북극의 매장량은 긍정적인 수치를 적용한다 하여도 전 세계가 반나절이면 다 써버릴 양밖에 안된다.

Opec oil supply guru

단일상품으로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석유시장은 특히나 비밀주의로 겹겹이 둘러싸여있는 곳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의 비밀(원제 : Twilight in the desert)’의 저자 매튜 R. 사이먼스에 따르면 OPEC 회원국들은 1982년부터 석유생산 데이터의 발표를 중단하였다고 한다. 그는 회원국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생산의 차질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그들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통계의 공백은 새로운 돈벌이 수단을 창출해냈는데 그것은 바로 생산량 추정에 관한 데이터 제공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몇 업체가 있는데 그 중 최근 유명을 달리한 콘래드 거버 Conrad Gerber 가 이끄는 페트로로지스틱스 Petro-Logistics 가 가장 명망 있는 업체라 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에너지소스라는 페이지에서 이 회사와 콘래드 거버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번역해 올려둔다.

[원문보기]

비밀과 거짓으로 둘러싸인 OPEC의 원유공급량을 당신은 어떻게 추정하는가?

4월 25일 사망한 콘래드 거버는 거의 30년간 그 질문에 대답하였는데 그는 제네바에 위치한 그의 페트로로지스틱스라는 회사를 통해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는 선명함을 석유시장에 제공하였다.

그는 석유시장의 기이한 특성을 이용해 먹고 살았다.: OPEC의 월간 공급에 관한 가장 신뢰할만한 데이터는 카르텔의 회원국 에너지 장관으로부터가 아니라, 전 세계의 항구의 안팎에서의 유조선의 움직임을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살피는 스파이들의 연계라는 소위 이차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OPEC의 멤버들은 서로의 공급수치를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조차 여러 데이터 중에서도 페트로로지스틱스의 데이터를 사용했다. 생산에 관한 혼란과 불신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OPEC의 멤버들은 예전에는 정기적으로 국제에너지기구(the International Energy Agency ; IEA)에 동료 멤버 생산에 관한 데이터를 요구하였다. 이는 매우 모순된 것인데 IEA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서구의 석유에 대한 감시견의 성격으로 설립된지라 OPEC에게는 그들은 NATO에게 있어 바르샤바조약기구나 마찬가지인 셈이기 때문이다.

거버씨의 회사는 – 오일무브먼츠 Oil Movements 와 로이드인텔리전스마린유닛 Lloyd’s Intelligence Marine Unit 과 함께 – 비록 그들 고객 몇몇이 과연 그들의 데이터가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시장 동향, 심지어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것들의 단순한 예측에 불과한 것인지 의심하는 와중에도 유동하는 석유시장의 정보에 대한 주요한 원천이었다.

OPEC의 비밀주의는 그들의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었는데 특히 카르텔이 – 최근 몇 개월 같은 경우처럼 – 그들의 공급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그들이 진짜로 약속을 이행했는지 아는 것이 석유시장에 중요할 때 그렇다.

그는 언제나 오직 정보를 얻는 것이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고만 말하면서 페트로로지스틱스가 어떻게 정보를 얻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우린 유정의 생산량을 측정하기 위해 낙타를 타고 사우디 사막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OPEC의 감산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어두운 예술에 관한 한 조각을 위해 몇 달 전에 그에게 물었을 때 그가 한 농담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유조선들이 항구를 떠날 때 그들의 목적지와 유조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공급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첨가한 말이다.

거버 씨는 그러고서는 우리에게 석유 항구에서의 “스파이”부터 석유회사의 “우호적인” 임원들에 이르기까지 데이터를 유출시키는 다양한 자료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정보가 100% 정확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인정하였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합리적인 추정뿐인 나이제리아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블랙홀이 있으니까요.” 그의 말이다.

페트로로지스틱스는 운영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객들에 대한 메시지에서 그는 “우리는 페트로로지스틱스가 고품질의 서비스를 계속 공급할 것이며 자문위원회가 현재 선정 중이라고 확신합니다.”

거버 씨가 생산 여력으로 표현되는 OPEC 국가들에 관한 최신 공표 데이터는 3월에 카르텔의 생산을 일 2천5백5십만 배럴로 놓고 있는데 이는 2월의 2천5백8십만 배럴/일 에 비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목표인 650,000 배럴/일에을 상회하는 것이다. OPEC의 생산은 5월 후반 장관들이 만날 예정이며 대부분의 분석가들이 4월에는 카르텔이 공급을 더 줄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감한 이슈이다. 시장은 분명히 숫자에 관한 거버 씨의 직감을 기대하고 있다.

원유생산 감소추세인가

전 세계 원유생산이 2008년 7월 7,482만 배럴/일로 정점에 이르렀고 이제 7,100만 배럴/일 로 감소하고 있다. 원유생산은 비(非)OPEC 산유국의 생산이 감소하는 와중에 OPEC의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2010년 12월까지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후 OPEC 산유국의 생산이 비(非)OPEC 산유국의 누적생산 감소를 상쇄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감소율이 3.4%로 증가할 것이다. IEA의 WEO 2008의 예측도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제 전미에너지정보부(The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 EIA)와 국제에너지기구(the International Energy Agency : IEA)는 원유보존과 대안의 재생가능 에너지원에 집중하기 위해 감소하고 있는 세계 원유생산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어야 한다.[World Oil Production Forecast – Update May 2009]

원유생산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하락추세로 돌아서리라는 묵시록적 예언은 석유가 우리의 삶에 큰 변수로 자리 잡은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 예언들은 희한하게도 적들의 공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즉, 언제부터인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이 주장을 하고 그것이 시장에 파급효과가 커지면, 유가가 상승하게 되고 산유국과 석유회사들은 이를 통해 이익을 증대시키는 프로세스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카나리아의 경고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 화석연료라는 말 그대로 원유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고 유전의 고갈로 말미암아 그것의 생산과정이 점점 더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십 년 사이 대규모 유전은 발견되지 않았고 기존 유전에서마저 생산비용은 증가하고 있다한다. 석유모래와 같은 보완재도 각광받고 있지만 재생 불가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석유는 지구가 몇 십억 년에 걸쳐 만들어낸 자원이다. 인류는 그 유구한 역사에 점 하나에 불구한 20세기에 그 자원의 대부분을 소진시켜버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인류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발판삼아 유례없는 부의 향연을 누렸다. 무거운 쇠로 된 마차를 기계동작으로 끌고 다니고,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실내를 유지하고, 플라스틱이라는 경이로운 재료를 만들어 소비재의 혁명을 일으켰다. 잘 쓰고 잘 먹었다. 하지만 이제 그 경이로운 자원이 가까운 시일 후에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봐야 할 것 같다. 태양의 부존재보다는 몇 백만 배 가능성 높은 이야기다.

미국과 이란, 그 애증의 관계

미국에게 있어 이란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국가였다. 첫째, 과거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서 공산권 확산의 저지선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였다. 둘째, 더욱 중요하게 주요 산유국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게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두 가지 사유로 인해 미국은 무하마드 팔레비 국왕의 독재정치를 배타적으로 지원하는 입장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며 미국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이익도 향유할 수 있었다.

이란 지도

미국은 산유국으로부터 석유를 얻는 조건으로 대신 거대한 양의 무기를 제공했다. 심지어는 지난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국의 적이었던 사담 후세인에게 무기를 수출하기도 했다. 무절제한 미국의 무기수출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 예로 1963년부터 73년까지 닉슨 행정부는 이란에 1억2800만 달러의 무기를 판매했고, 73년부터 76년까지는 그 판매액이 11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 머리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소련이 무기를 선적한 배를 멕시코에 보냈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인가?”[제임스 레스턴 회고록 데드라인, 제임스 레스턴 지음, 송문홍 옮김, 동아일보사, 1992년, p375]

이란 왕정은 반공(反共)을 철저한 국시로 하는 동시에, 과거 페르시아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국왕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결코 현대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었으나 그것은 미국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팔레비 국왕은 석유국유화를 추진하던 민족주의자 모사데그의 대체재였다. 이란은 그저 중동 공산화의 차단기 및 석유공급지의 역할에 충실하므로 그것으로 만족스러웠으며, 나아가 무기까지 수입해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원래 이란은 – 나아가 중동지역 전반이 – 당초 대규모의 석유가 발견될 즈음에는 영국의 텃밭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석유회사가 모사데그 총리가 주도한 호전적인 민족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국유화되고 쫓겨나고부터 그 지역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당초 자국의 석유생산만으로도 충분했던 미국은 점차 원유공급처 확보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중동을 그들의 원유공급처 및 무기수요처로 삼아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왔던 것이다.

수구왕정인 사우디와 이란이건 희한한 이슬람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담 후세인이건 간에 자국 및 자국 석유메이저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정치체제와 정치지도자라면 그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미국은 특히 이 지역에서의 석유 메이저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그렇게나 철칙으로 간주하고 있는 – 비록 미법무부는 상당기간 이에 반발하였지만 – 메이저 간의 담합과 협력을 묵인해주곤 했다. 석유는 단일상품으로써는 가장 큰 규모의 무역규모를 자랑하는 상품이자, 경제를 넘어선 정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란을 포함한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절대적 우위는 1950년대 이후 이슬람 민족주의를 주창한 나세르의 등장과 이에 감화된, 또는 내몰린 중동 각국 정권 수뇌부의 대중주의적 움직임, 이스라엘과 중동 간의 갈등격화 등으로 말미암아 점차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1970년대 초반 마침내 1960년 설립되었으나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제4차 중동전쟁을 맞아 석유무기화에 성공하면서 수요자 주도의 석유시장과 중동에서의 서구의 – 특히 미국의 – 패권은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하이라이트는 분노로 가득 찬 기괴한 얼굴을 한 늙은이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왕정 타도였다.

귀여운 OPEC 마크

대체 이란 왕정은 어떻게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황금의 샘(원제 The Prize)’에서 저자 다니엘 예르긴은 이란 왕정의 붕괴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 내에서 국왕이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더 나쁜 것은 그들에게는 국왕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예르긴의 책에 따르면 미국의 국방부 정보국은 1978년 9월 28일, 국왕이 “향후 1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예측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4개월 후인 1979년 2월 1일 호메이니가 테헤란에 입성한다.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미국과 이란의 호시절의 종말이었고 이후 관계는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에게는 원유확보와 무기수출, 그리고 지정학적 우위 등 여러 면에서 불이익이 되고 있다. 또한 당연히 주변국들에게 미국과 사이가 멀어진 이란은 새로운 구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음은 비록 실제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지정학적으로 이란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더군다나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비동맹 산유국의 – 심지어는 중국까지 아우르는 – 연합 가능성은지금도 상존하고 있다.

1996년 초, 옐친 대통령은 서구 중심적 외무장관인 고지레프를 갈아치우고 그보다 경험이 풍부하며, 과거 공산 체제의 정통 국제 분석가였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Evegenniy Primakov)를 그 자리에 앉혔는데, 프리마코프의 장기적 관심 대상은 이란과 중국이었다. 몇몇 러시아 분석가는 프리마코프가 유라시아에서 미국의 일등적 지위를 감소시키는 것을 지정학적 목표로 삼는 세 국가간의 새로운 ‘반패권’ 동맹을 만들고자 조급하게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거대한 체스판, Z. 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 옮김, 삼인, 2000년, p155]

나아가 현재 이란 정부는 새로운 중동 역학관계를 위해 자신들만의 핵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 미국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 그러고도 보란 듯이 큰 소리다.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우리가 서방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서방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한다”고 호언하고 있다. 세계 네 번째 규모의 석유 수출국이며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매장고를 자랑하는 나라의 수장의 말이니만큼 허언은 아니다.

오바마는 이러한 이란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더 심한 제재를 당할(either give up its nuclear program and get rewarded for doing so, or it will face intensified sanctions)”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이다.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외적 수사와 물밑 협상은 또 다른 것이다. 아흐마디네자드 역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오바마가 이스라엘을 핵보유국으로 언급한 것은 어쩌면 이러한 차원에서의 관계개선의 제스처였을 것이다.

1차 오일쇼크와 반팔 정장


아랍 석유공급 중단에 대한 최초의 두려움과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일본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통산부(MITI)는 일종의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청사빌딩의 승강기 운행을 단축시키는 것이었다. 하절기 에어콘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남성패션의 변화로 나타났다. <절약형 의상>, 즉 반소매 상의가 업무용 정장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승강기의 단축운행은 지속되었으나, 새로운 정장(반소매 옷)은 마사요시 오히라 수상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유행되지는 않았다.[황금의 샘(원제 : The Prize) 제3권, 다니엘 예르긴 지음, 김태유 옮김, 고려원, pp176~177]

석유, 자본주의, 도시

우리는 미국에서 도시 간 또는 도시 내에서 포괄적인 통행자 철도 서비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곤 한다. 1950년대에의 값싼 연료, 경제 활황, 그리고 새로운 주간(州間) 도로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철도가 인기를 잃어갔다. 미국인들은 승용차 소유가 가져다 준 개인주의적 자유를 포용했고 보도조차 없는 너무나 자동차 의존적인 광범위한 교외개발을 시작했다.
It’s easy to forget that we used to have comprehensive passenger rail service in America, both between and within cities. Then, in the 1950s, cheap gas, a booming economy and the new Interstate Highway System made rail unfashionable. Americans embraced the individual freedom that car ownership brought and started building far-flung suburbs so automobile-dependent that they didn’t even have sidewalks.[출처]

요즘 석유의 개발에 관한 역사책을 탐독하고 있는데, 실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의 전후 활황은 상당 부분 값싸고 이용가치가 너무나 다양한 석유라는 마술과 같은 자원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초기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대한 반성으로 각광받은 케인즈주의적인 분배 시스템에 의해 경기가 부양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실은 석유가 전제되어야 함이 합당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전후 미국의 강대국으로의 성장은 석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스스로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유국인 이 나라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연합국이 소비한 석유의 90%를 공급하였다. 이는 무기 수출과 함께 미국의 본원적인 자본축적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위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석유는 미국의 도시화와 산업화를 가속화시키면서 국가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그 결과 넓은 교외주택과 대배기량의 자동차는 미국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신화는 깨져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의 유가폭등세와 석유고갈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평범한 미국인조차, 아니 전 세계의 문명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두려움이 되었다. 더군다나 승용차 없이는 일상생활의 영위조차 어려운 미국의 기형적인 도시화는 이제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보기에는 호쾌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시스템은 유사시에 ‘지탱불가능한(unsustainable)’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가 얼마 전 서둘러 전국적 차원의 철도 신설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이 석유 시대의 가장 상징적인 도시 개발 형태이긴 하였지만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형태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갈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국주의는 무엇으로 사는가?

9월, 아이젠하워는 편지를 통해 이든에게 <실제보다 훨씬 나세르를 중요한 인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국 외무차관 이본 커크페트릭 경은 “대통령이 옳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이 잘못 알고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 만약 나세르가 그의 위치를 공고히 하여 점차적으로 산유국들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는 동안 우리가 뒷짐만 지고 있다면 그는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정보에 따르면 그는 우리를 좌초시킬 마음을 먹고 있다. 만약 중동의 석유가 한두 해 동안 우리에게 공급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금보유고는 바닥날 것이다. 그리고 금보유고가 바닥나게 되면 영국 화폐통용 지역은 와해될 것이다. 또 영국 화폐통용 지역이 와해되고 금보유고가 바닥나게 되면 우리는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 다른 어떤 지역에도 군대를 파견할 여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위비조차 지불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자국을 방위하지 못하는 나라는 결국 소멸될 것이다”라고 격렬히 반론을 제기했다.[황금의 샘(원제 : The Prize), 다니엘 예르긴 지음, 김태유 옮김, 고려원, 1993년,pp321~322]

예전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드라마도 있었지만 이 인용문은 제국주의 또는 패권주의 국가가 무엇으로 사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그들의 식민지인 인도나 사실상의 식민지나 다름없던 중동으로부터의 막대한 무역차익과 석유 자원을 통해 지탱되는 체제였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위대한 서방의 정치인으로 추앙해마지 않는 윈스턴 처칠마저 뼛속깊이 제국주의자였을 뿐 아니라 식민부 장관직을 수행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입장은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위에서 인용하고 있는 사태, 즉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따른 나세르 축출작전이 시도되었던 시기, 영국은 노동당 집권시기였다.

왜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국가의 대외정책은 쉽게 바뀌지 않는가? 그것은 그들의 체제가 정치적으로 세분화되기 이전에 이미 식민지 – 또는 신식민지 – 자원의 수탈을 기초로 공고화되어 있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좌파가 집권하더라도 가용자원은 역시 식민지로부터 수탈하여야 하는 체제를 바꾸기는 어렵다.

영국 외무차관의 발언은 그 핵심적인 벽돌을 제거할 경우 패권주의가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영국은 진작에 빼앗긴 기축통화의 지위와 함께 이 수에즈 사태에서 이집트에 – 사실은 미국에 – 굴복함으로써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패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오늘날의 미국이 당시의 영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금본위제와 연계되지 않는 달러본위제의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 미국 스스로 중추적인 산유국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은 20세기 형 패권주의의 핵심적인 필요조건이 되었다. 통화와 자원, 이것은 21세기 형 패권주의에도 역시 유의미한 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생산과 포획법규

미국에서 초창기 석유산업의 골격을 형성하고 석유생산에 관한 법규를 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영국 관습법에 기초를 둔 <포획법규(捕獲法規)>였다. 그것은 사냥 중 동물이나 새가 타인 소유지로 옮겨 갔을 때, 그 땅의 소유자만이 그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법규였다. 같은 논리로 땅의 소유자는 그 땅 아래에 있는 무엇이라도 파낼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판사가 말했듯이 어느 누구도 지하에 묻혀 있는 광맥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포획법규>가 적용됨에 따라, 같은 유전지대에 있는 땅 소유자들은 석유를 월등히 많이 생산하거나 인근 유정의 생산을 감소시킨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산하는 만큼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이웃 유정의 소유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양을 단시간 내에 퍼올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급속생산의 촉진은 생산량과 가격의 불안정을 가져 왔다. 석유는 수렵용 새들이 아니었다. <포획법규>는 주어진 유전에서의 궁극적인 생산량을 감소시키는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 그러나 그 규칙의 이면에는 다른 효과도 있었다. 제한적인 규칙에서와는 달리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석유산업에 참여하게 하고 필요한 기술을 습득케 하였다. 또 생산이 빨라짐에 따라 더 넓은 판로개척이 가능케 되었다.[황금의 샘(원제 : The Prize), 다니엘 예르긴 지음, 김태유 옮김, 고려원, 1993년, pp44~45]

자본주의의 사적소유체제에서 자원개발의 권리체계가 자리잡아가는 초기과정을 설명해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다.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아직 지하에 묻혀있는 자원의 규모와 정확한 경계를 가늠할 수 없었던 그 시절, 결국 국가는 고육지책으로 지하권(地下權)을 지상권(地上權)의 소유자에게 부여했다. 마치 석유가 날아다니는 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본문에도 나와 있다시피 석유는 배타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꿩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자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살풍경하고 말이 안 되는 전제조건 때문에 생산업자들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더욱이 아직 유전개발기술이 초기단계인지라 매장량의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석유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에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프리미엄을 얹어주고서라도 남들보다 더 빨리 석유를 뽑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마르크스가 상품생산 경제에서 자본가는 불변자본(즉 생산기계)의 가치를 최대한 빨리 상품에 이전시키기 위해 노동자의 초과노동도 불사한다고 하였는바, 이 경우엔 그것이 자원채취에 적용된 셈이다.

여하튼 이 사례는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이 불러올 폐해의 전형적 사례로 뽑을 만 하다. 실제로 그 당시 석유시장에서는 무절제한 생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증가, 공급과잉으로 인한 시장가격 붕괴, 이로 인한 채산성 악화에 따른 시스템 붕괴 등의 악순환이 발생하였고 이에 따른 피해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결과론일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공적(公敵)으로 간주되는 독점기업 ‘스탠다드 오일’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진정될 수 있었다.

석유산업의 맹주 ‘스탠다드 오일’은 무자비한 사업방식을 통해 시장수요를 초과하는 생산시장을 정리해나갔다. 과잉시설을 소유한 한계사업장을 손아귀에 넣어 정리하고, 스스로는 대형화, 표준화, 품질향상, 구매파워를 이용한 운송가격할인 등을 통해 이익을 증대시켜갔다. 이를 통해 미국의 석유산업은 주먹구구식의 산업분야에서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산업분야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당연하게도 수많은 희생과 탈법행위가 뒤따랐다.

하지만 시장은 늘 그렇듯이 유기체처럼 역동적이어서 ‘스탠다드 오일’의 독주를 용인하지 않았다. 국내외에서의 독립 석유업자의 등장, 독점에 따른 폐해에 대한 사회고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국가에 대한 독점기업의 해체명령에 따라 시장은 또 다시 격렬한 경쟁의 장이 펼쳐진다. 그리고 여전히 포획법규는 석유자원의 무절제한 채취를 부추기고 있었다. 또 다른 조정자가 나설 시점이었다.

도허티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유전을 <공동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공동으로 유전을 개발하여 생산된 원유를 각 유전의 소유자에게 배분토록 하는 방법이었다. (중략) 그는 연방정부가 선도적 역할을 하여야 하며, 최소한 업체간의 협력체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략) 많은 석유업계 사람들은 생산기술에 대한 그의 평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고, 연방정부의 개입을 요구한 그를 석유업계의 배신자로 생각하였다. (중략) 텍사스주 최대의 정유회사였던 험블사의 사장 윌리엄 패리시는 1925년에는 도허티의 생각을 비웃었으나, 1928년에는 석유업계가 도허티의 <보다 나은 생산방법>의 덕을 보았다고 감사하였다. 패리시는 유전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운영하도록 하는 <공동조업>의 주창자가 되었다.[같은 책, pp374~376]

결국 적어도 초기 석유시장에서 생산의 무정부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석유업계는 – 다른 모든 자본가들과 마찬가지로 – 정부 규제 없는 야경국가를 꿈꾸었지만 시장의 무정부성으로 말미암아 무절제한 생산, 자원낭비, 이윤율 저하, 독점기업의 출현, 이에 대한 반발, 이합집산 등을 되풀이하였다. 결국 최소한 ‘공동조업’을 하여야 했고 최후조정자로서 연방정부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산업부흥법에 따라 제정된 석유법에 의거하여, 익스는 각주의 월별 할당량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몇 년 전 같았으면 그와 같은 할당량 배정은 각지의 석유업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려움을 한껏 겪고 있던 석유업계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일들은 익스의 책임하에 진행되었으며 그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1933년 9월 2일, 미국 석유생산량을 하루 30만 배럴로 줄이기 위해 익스는 각 석유생산주의 주지사에게 각주의 석유생산 할당량을 통보했다. 그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고 석유산업계 운영방법의 일대 전환이었다.[같은 책, p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