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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경제의 또 하나의 악재, 유럽은행들의 에너지 관련 대출

전 세계적으로 순수 에너지/발전 기업의 약 35%에 해당하는 175개의 기업이 고위험의 사분면에 놓여 있는데, 이는 높은 레버리지와 낮은 부채상환비율의 조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도합 1,500억 달러의 부채를 재무제표에 담고 있다. 이들 175개 기업 중 50개 기업이 자본잠식 혹은 100이 넘는 레버리지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은 위태롭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주가가 5달러 미만으로 떨어져 휴지조각이 되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2016년 파산할 위험이 높다.[The Crude Downturn for Exploration & Production Companies, Deloitte Center for Energy Solutions]

기록적인 저유가 시대의 지속으로 에너지 관련 기업의 재무적 위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유가가 상승하지 않는 한은 현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방도가 없는 상황이지만, 유가는 당분간 현재의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의 배경에는 ▲ 이란의 시장 가세로 인한 공급 증가 ▲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불황, 및 석유 위주의 에너지 소비 탈피로 인한 수요 감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석유수요 증가율이 과거 1990년~2013년 평균 6.2%에서 2013년~2020년 2.9%로 감소할 것이라는 IEA의 전망은 석유수요가 근본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다.

전문가의 가격전망은 에너지/발전 기업의 입장에서는 매우 암울하다. J.P. Morgan의 경우 2016년 국제유가를 기존의 48.88달러/bbl에서 31.5달러/bbl로 크게 낮추었다. 좀 더 장기적인 전망도 어둡다. IEA는 2015년 연차보고서에서 2020년 실질 국제유가를 표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80달러로, 저유가 시나리오에서 배럴당 50~60달러로 전망했다. 2년 전에 쉐브론의 CEO가 배럴당 100달러가 정상적인 가격이라고 호언했었지만, 이제 아무도 100달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업이 기술개선이나 인력감축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지만 유가급등이 없이는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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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652541

한편 이러한 에너지/발전 기업의 위기는 금융권으로 전이될 개연성이 크다. 인용기사의 한계기업의 부채가 1,500달러 수준으로 추산되는데, 한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의 관련기업들의 총부채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이런 많은 부채는 미국과 유럽의 주요은행들이 고유가 시절 에너지/발전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보도된 바로는 대륙으로는 유럽(분석에 따르면 전체 자산의 약 3~5% 수준), 국가로는 프랑스의 금융기관이 특히 에너지 사업에 많은 투자 및 대출을 실행하였다. 다만 이들 기관 상당수는 정확한 거래내용이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유럽의 : 역자주) 은행이 보유한 담보, 헷지가 어떠한 형태인지나 그들의 차입자의 신용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유럽의 은행은 보다 통일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공개한 내용으로는 모두가 관리 가능한 이슈라는 은행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예는 더 나쁘다. 도이치 은행은 자신들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익스포져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저 그 분야에 대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수준이라고만 말하고 있다.[European Bank’s Crude Awakening]

관련기사들을 종합해보면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 공히 에너지 기업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예를 들어 웰스파고는 전체 자산의 2%, 유럽은행들은 전체 자산의 3~5% 수준), 미국은행들이 비교적 익스포져를 정확히 공개하고, 이미 많은 자금이 펀딩에 성공했고, 충당금 등을 쌓아두고 있지만 유럽은행들은 통일된 기준도 없고, 많은 자금이 미인출 상태이고, 발표내용들도 은행의 주주들이 만족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경제의 침체, 이에 따른 마이너스 정책금리 등의 상황과 맞물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악순환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갈 길이 갈수록 험난하다.

초저유가 시대에 대한 단상

지난 5년간 미국의 셰일 생산이 치솟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초과하였고 이로 인해 18개월 동안 유가는 75% 아래로 떨어졌다. 금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이벌인 이란이 제재의 해제에 따라 시장에 재진입할 준비를 함에 따라 원유가 30% 떨어지며 폭락이 가속화되었다. [중략] 미국의 셰일 생산자들은 2010년에서 2014년 기간 동안 배럴당 평균 가격이 100달러에 달했던 빠른 확장기 동안 조달한 대규모 부채를 갚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댔다. 만약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위로 오르지 않는다면 많은 기업들이 올해 파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Saudi Arabia says $30 oil is ‘irrational’]

석유업은 최근에 들어서야 석유 메이저, 국영석유기업, 대형 석유화학 기업 등의 존재 때문에 매우 안정적인 사업 분야로 인식되는 것이지, 그 초기에는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의 투전판이었다. 금을 찾아 헤매는 황금광시대의 채굴업자처럼 석유를 찾아 헤매는 이들 역시 “검은 황금광시대”의 남루한 채굴업자였던 것이다. 다만 주요한 차이라면 원유의 발견에서 굴착, 그리고 상품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볼 때, 궁극적으로 석유생산업이 금광업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개연성일 것이다.

그래서 석유업은 진작부터 프로젝트파이낸스라는 금융기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다. 계속기업의 신용이 아닌 미래의 잠재적인 현금흐름을 분석하여 장기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인 프로젝트파이낸스는 가진 것이라고는 땅속의 원유밖에 없는 석유업자들에게 딱 어울리는 조달기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조달기법은 1930년대 미국의 유전개발에 적용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BP의 영국 북해 유전 개발에는 9억4천 달러의 조달을 위해 66개의 금융기관이 신디케이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세대 석유업인 셰일 생산에 뛰어든 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이저가 아닌 회사가 셰일 분야에 뛰어들려면 결국 프로젝트파이낸스를 활용하는 것이 유리했다. 자금조달을 위해 필요한 사업성분석은 당시의 유가인 배럴당 100달러를 비용은 그들의 주장에 근사값인 배럴당 60달러 정도를 적용했을 것이다. 이 금액을 재무모델에 적용하면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지 않아도 채산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자금조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유가가 그 가격을 유지하는 한 모두가 행복했을 시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요소들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새롭고도 중요한 요소는 최근 석유 섹터가 부담하는 부채의 현저한 증가다. 투자자들이 기꺼이 원유자산과 매출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원유기업들은 부채 수준이 광범위하게 상승하는 와중에도 대규모 자금을 차입할 수 있었다. [중략] 생산자들이 변제능력이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오일 섹터의 이러한 과중한 부채부담이 석유 시장의 최근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중략] 높은 부채 수준으로 인해 유가 하락이 생산자의 재무상태표를 악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원유자산 판매의 결과로써(예를 들어 더 많은 생산량이 선물로 팔린다) 가격하락을 부추기면서 신용수준을 조이게 된다. 둘째로, 낮은 유가는 현금흐름을 감소시키고 기업이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유동성 부족의 위기를 증가시킨다. 부채 상환 요구 조건은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질 생산을 지속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이것이 시장에서의 공급 감축을 지연시킬 수 있다.[Box: Oil and debt (February 2015)]

하지만 2014년 중반 이후 유가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지옥도가 펼쳐졌다. 수요를 넘어선 공급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이미 유가 하락의 환경을 조성했지만, 석유업 벤처들의 높은 레버리지 활용으로 말미암아 셰일 업자들은 – 파이낸셜타임스의 인용기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 빚을 갚기 위해 전력을 다하여 펌프질을 해대야 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가격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닷컴버블에서 볼 수 있었던 버블이 석유업에서도 복합적인 요인과 맞물려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세가 꺾인 중국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노쇠한 유럽을 보면 가까운 미래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 같지는 않다. 공급 쪽을 보면 비록 사우디가 배럴당 30달러가 비정상적이라고 주장을 했다지만 스스로 감산 추세를 주도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사우디가 총대를 멘다할지라도 최근의 사우디-이란 분쟁 등을 감안할 때 산유국의 공동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셰일 업자들에게나, 전통적인 산유국에게나, 그리고 그들로부터 사업을 수주했던 건설/조선업자들에게나 모두 우울한 전망이다.

중동 사태의 원인제공자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입장

OPEC에서 가장 큰 수출업자로서, 사우디는 배럴당 37달러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가게 한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감산을 거부했다. 이는 이란이 오바마와의 핵협정을 통해 향상된 생산능력으로 원유를 수출하는데 대한 혜택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다. [중략] 이러한 어떤 수단들도 이란-사우디의 직접적인 갈등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재 하일지라도 지난달 이란이 USS 트루만(미항공모함 : 역자주)의 1500 야드 내로 로켓을 발사할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함일 것이다. [Who Lost the Saudis?]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사우디의 집권 왕조가 “47명의 대량 처형이 분노에 찬 반발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이 더 진행하기 전에 그들의 정보기관이 최고의 비상단계를 유지할 것을 지시”한 사우디 정부의 메모를 공개했다. [중략] 아랍권에서의 탄압과 반작용의 중핵으로서의 사우디 왕조는 국내에서의 점증하는 반정부 세력을 분열시키고 지역에서의 주요한 라이벌인 이란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수단으로 수니와 시아 사이의 긴장을 고의로 높여서 이를 활용하는 분파주의의 선도적인 선동자다.[Middle East tensions escalate in wake of Saudi mass beheadings]

현재의 중동사태에 대한 서로 상반된 입장의 글이라 한곳에 모아보았다. 첫 번째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글이다. 이글은 이번 사태가 사우디의 원유공급량 유지 등에 대한 이란과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사우디가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우리의 절친(the best friend we have in the Arabian peninsula)”이며 미국이 왕국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 사태의 귀책은 감히 미항공모함 근처에 미사일을 쏘아서 – 미국의 추가 제재의 위기에 놓인 – 이란이라는 것이 WSJ의 생각이다.

한편 두 번째 인용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라는 거창한 이름의 매체의 글이다. 이 글은 사우디 정부가 자국의 대량 처형이 불러올 후과를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우디는 예상했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포했다. WSWS는 사우디의 이런 행동을 “분파주의의 선동자”라며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애초부터 무리수가 있었던 처형과 이어진 반발, 이에 대한 빠른 대처를 볼 때 사우디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라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두 매체의 글이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대결구도는 대략 ‘미국과 사우디 對 러시아와 이란’ 인 것 같다. 지난번 예멘 내전이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면 이번 갈등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은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힘의 균형추 이동을 통해 중동에서의 새로운 패권구도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번 갈등은 단순히 시아와 수니 간의 종교 갈등을 넘어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갈등의 원천인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문 컨설팅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유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즉, “이란이 시장에 보다 많은 원유를 공급하려고 시도한다면 사우디가 생산량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용한 WSJ의 분석과 유사한 논리다. 이란 역시 경제제재가 풀린다면 감산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일시 급등했던 유가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가 저유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재밌는 것은 언급된 네 나라 모두 산유국이다.

사우디-이란 국교 단절에 대하여

중동에서 세계의 관심은 ISIS가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민간인들에 대한 위협에 쏠려 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더 큰 이슈는 천여 년 동안 반목하고 있는 시아와 수니 무슬림 사이의 갈등이다. 그 대부분의 기간과 그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아는 수니의 손 안에서 차별에 – 때로 잔혹한 범죄에 – 직면해왔었다. 그러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니가 지배하고 있는 걸프 지역의 여타 국가들은 시아가 권력을 장악한 이란을 그들의 전략적인 천적으로 여기고 있다.[The Global Economy Confronts Four Geopolitical Risks]

이 글을 읽고 글쓴이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려가 현실화되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이란과의 외교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시아파 반정부인사를 처형하였고, 이에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사우디 총영사관 등을 공격한 데에 따른 조치다. “반정부인사”의 처형이 현지시각으로 1월 2일 치러진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초스피드 국교단절이 아닌가 짐작된다.

한편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 유가가 한때 3% 일시 급등하는 등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전문가는 양국 갈등으로 원유 공급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지 않지만 투기적 요소 등에 의해 유가가 상승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또한 이번 사태가 주요 유전지대를 둘러싼 갈등도 배경에 있다는 점에서 유가 폭등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여하튼 현 사태는 이 지역에서 촉발될 수 있는 지리정치학적 리스크를 증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의 배경에 오랜 기간 동안의 종교적 갈등이라는 표면적 이유이외에도 이 지역의 후진적 정치체제와 이를 용인 내지는 장려하고 있는 서구열강의 이기주의1 2 3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사우디가 처형한 “반정부인사”는 무려 47명이다. 21세기에도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 국가는 이토록 많은 인명을 국가의 이름으로 처형하고 있는데, 서구에서 이런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서 비난성명이라도 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4

영화 시카리오는 멕시코의 미국과의 접경도시인 시우다드 후아레즈에서의 패권을 둘러싸고 마약 카르텔 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살육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FBI요원은 미국 수사당국이 겉으로는 마약 카르텔을 응징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카르텔 간의 힘겨루기를 막후 조종하여 지역의 거짓 평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역시 지금 시카리오에서의 그 수사당국과 같은 태도가 아닐까?

그 점에서 사우디의 이번 행동에는 오바마 집권과 세일원유 등을 배경으로 악화되어온 사우디-미국 동맹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5 석유를 위해 사우디의 후진적 정치체제와 지역맹주 자리를 인정해왔던 미국이 이란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사우디로서는 분명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우디는 원유 공급량 유지를 통해 유가 전쟁에서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이란이라는 새로운 라이벌 카르텔의 급부상을 초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가 하락이 反美주의를 패퇴시킬 것인가?

첫 붕괴는 故 우고 차베스가 그의 지역으로 수출하려고 노력했던 反美 “볼리바리안 혁명”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일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예산은 배럴당 120달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가격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 나라는 빚을 갚느라 허덕였다. 외국환 보유고는 줄어들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치솟고 있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밀가루와 화장지와 같은 필수재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란 역시 교묘한 위치에 있다. 이란은 전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사치스러운 지출계획에 쓰일 방탕한 예산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가량 되어야 한다. 핵 프로그램을 좌절시키기 위한 제재조치는 특히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혹자는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라이벌을 힘들게 하는데 유가를 이용하려고 미국과 공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기가 무엇이든, 하락하는 유가는 확실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Cheaper Oil : Many winners, a few bad losers]

번역한 인용문에 언급된 베네수엘라나 이란, 그리고 기사에 언급된 다른 나라인 러시아를 보면 공교롭게도 미국과 그리 친하지 않은 나라들이란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이 지금 떨어지고 있는 기름 값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상황전개도 자못 흥미롭다. 셰일오일이라는 21세기 자원의 출현, 에너지 효율적인 자동차 등의 기술발전,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 또는 음모? – 사우디의 공급량 유지 등으로 말미암아 원유 수출로 먹고 살고 있는 이들 “反美” 국가들이 고통 받게 된 것이다.

즉, 미국이 과거에 반미국가를 괴롭히는 방법이 보다 직접적인 제재나 해당 국가의 독재정부 지원이었다면, 이제는 더 싸게 셰일오일을 퍼 올리고 연료효율이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된 셈이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말이다. 기사는 그런 상황을 은연중 즐기면서도 유가 하락이 지정학적 위기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들 국가의 먹거리 중 원유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답이겠지만 국제적으로도 지정학적 위기 해소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 법안의 입법 좌절에 관하여

SNS와 서명운동까지 동원하여 오바마 정부가 관철하려 했던 미국의 석유/가스회사들에 대한 세금감면 폐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오바마 정부는 이번 회기에서 미국의 5대 석유 회사들이 향후 10년간 내야할 2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세금을 감면시켜주는 혜택을 폐지하여 재정확충과 재생에너지 개발에 쓸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표결로는 51대 47로 앞섰지만 필요한 찬성의원 수 60표에는 미달하였다.

법안 반대를 주도한 공화당의 논리는 언제나 그렇듯 명쾌하다. 세금감면을 폐지하면 가솔린의 소비자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세금을 감면해주지 않으면 석유회사들이 새로운 유전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 때문에 공급이 달려 가격이 오른다는 논리다. 민주당은 반면 유가는 정부의 각종 조치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격하였다. 유가가 단순히 국내 생산만이 아닌 국내외의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는 논리다.

단순히 이 사안만 놓고 보자면 흥미롭게도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민주당이 자유방임주의 논리를 따르고 공화당이 국가개입주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넓게 보아 양당 모두 현재 어떤 경제학 관념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는 집권당으로서의 실용과 야당으로서의 반발심에서 비롯된 행동유인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Think Progress의 분석에 따르면 보다 흥미로운 행동유인도 엿볼 수 있다. 바로 돈.

  • 법안에 반대한 47명의 상원의원은 석유/가스회사로부터 23,582,500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세금감면의 폐지에 찬성한 51명의 상원의원은 5,873,600달러를 받았다.
  • 거대 석유기업에 대한 지원에 찬성한 상원의원은 평균적으로 폐지에 찬성한 의원보다 4배 이상의 기부를 받았다.
  • 2011년 이후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거대 석유기업의 이해에 부합하는 안건에 7번 찬성했고 클린에너지를 반대하는 안건에 3번 반대했다.

[Senators Who Voted To Protect Oil Tax Breaks Received $23,582,500 From Big Oil]

지난번 ‘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또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댓글 대화에도 언급하였듯이, 나는 미국의 입법시스템과 그것을 지키고 다듬는 시스템이 문명사회의 그 어느 곳보다도 선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독과점이 강해지고, 정치권의 역할이 많아지고, 정치인이 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의원은 그들의 유권자로부터 격리되어 정경유착의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힘을 얻으며 유행하는 구호가 “우리는 99%다”인데, 이 구호는 그 운동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진행됨에도 현실정치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99%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1%만큼 돈이 많지 않다. 1%는 이해관계도 단순하고 돈도 충분하다. 그리고 99%중 상당수는 이 1%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한 선동에 동화되어 투표할 것이다. 1% 덕분에 기름 값을 절약했다고 생각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엑손모빌 자산 국유화 조치에 대한 국제중재 결과의 함의

서구의 석유회사와 베네수엘라의 대중주의적 대통령 간의 최근의 한판 싸움에서, 대부분은 엑손모빌을 패자로 여기고 있는데, 파리의 국제상업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 ICC)가 그들의 유전지대가 국유화된 이후, 이 세계에서 제일 큰 석유회사는 그들이 요구하는 손실의 대부분을 보상받지 못하는 것으로 판결 내렸기 때문이다.

“ICC는 엑손이 원한 돈의 10%만 인정했지요.” 차베스가 최근 말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아서 결정을 내리세요.”

[중략]

“엑손은 그들의 [최초의] 투자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의 프로젝트의 가치(the value of the project)는 인정받지 못했어요.” 독립적인 에너지 분석가 크리스 넬더가 알자지라에게 한 말이다. 회사는 120억 달러를 요구했는데, 이는 2007년 오링코 벨트에서의 중유 자산이 국유화당한 이후의 잠재적인 미래수입의 손실분과 다른 비용 등을 감안한 것이다.

[Exxon ‘Loses’ Venezuela Nationalisation Case]

2007년 차베스 정부는 새로운 석유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에 따르면 외국의 석유회사들은 베네수엘라의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로레우스데베네수엘라(Petroleos de Venezuela : PDVSA)의 소수 지분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엑손과 또 하나의 미국기업 코노코필립스는 이를 거부했고 베네수엘라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하지만 쉐브론텍사코를 비롯한 대부분의 석유회사들은 그대로 남아 PDVSA의 파트너가 되었는데, 퇴출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엑손모빌은 세계 최대의 석유기업이라는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베네수엘라의 자산이 PDVSA와 나누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였는지, 어쨌든 ICC에 해당 건을 회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의 패배였다. 다만, 위 인용문의 에너지 분석가 크리스 넬더가 ICC의 판결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블름버그의 기사에 따르면 ICC가 엑손의 몰수된 자산에 대해 미래가치를 계산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엑손의 기대보다 적게 계산했을 뿐이다.

“ICC의 결정은 매우 제한적이었는데 1997년 PDVSA와 엑손이 맺은 계약에 근거한 결정일 뿐입니다. 인정된 9억7백만 달러는 가치측정(valuation)이 아니라 2035년까지 이 사업으로부터 배럴당 27달러의 – 1997년의 가격 – 미래현금흐름인, 엑손이 손실을 입고 기대하는 것에 비해서 과도하게 할인된(discounted) 금액입니다.” 변호사이자 카르카스 자본시장의 수석 채권 트레이더인 러스 달렌의 말이다.[Chavez Calls Exxon’s Venezuela Arbitration Demands ‘Crazy’]

하지만 엑손모빌은 또 하나의 카드를 가지고 있다 한다. 바로 한미FTA 이슈로 인해 우리에게도 어느새 친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 ICSID)다. 소송에 매우 익숙한 기업인지라 한 곳만이 아닌 다양한 중재기구를 활용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양측 모두 ICC보다는 엑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하는 모양이다. 차베스는 이미 “ICSID의 여하한의 결정에 불복하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서 의미를 곱씹어볼 것은 첫 번째 인용문의 ‘프로젝트의 가치(the value of the project)’, 두 번째 인용문의 ‘가치측정(valuation)’이 가지는 의미다. 이 표현은 한미FTA에서의 ‘공정한 시장가격’과 유사해 보인다. 한미FTA에서는 여하한의 국가의 수용이 있을 경우 “수용이 발생하기(수용일) 직전의 수용된 투자의 공정한 시장가격과 동등”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시장가격이라 함은 기대 현금흐름이 반영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앞서의 두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참여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 씨는 그의 저서 에서 이 개념에 관해 언급한다. 그가 소개한 일화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간접수용 시 기대이익이 포함되는지를 물었다. 김현종 씨는 기대이익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기대이익은 무엇일까? 바로 ‘공정한 시장가격’의 구성요소, 더 정확히는 투자자가 기대하는 미래 현금흐름을 의미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현종 씨가 대통령에게 잘못된 사실을 알렸다고 판단한다.

엑손모빌과 베네수엘라의 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상으로 몰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에 의한 국유화나 수용과 같은 공익을 위한 처분은 개별협약에 의해서든 또는 한미FTA와 같은 포괄적인 국가간 협약에 의해서든 그 수용에 대한 가격을 정해놓게 마련이다. PDVSA는 엑손과 개별협약을 통해 배럴당 27달러로 미래현금흐름을 고정시켜 놓은 – 결과적으로 유리한 – 계약을 체결했고, 한미FTA에서는 ‘공정한 시장가격’이라는 개념을 담은 협약을 발효할 예정이다.

어느 쪽이 더 똑똑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