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新냉전 시대의 도래?”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한편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바로 경제권 통합을 통한 국가간 분쟁의 종식이었다. 즉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서구는 경제권의 통합이 각 나라간의 분쟁을 줄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치와 파시스트의 등장에서 보듯이 또 다른 분쟁의 불씨를 증폭시키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다음 글이 바로 그러한 “두려움”에 대한 묘사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과 영국의 관리들은 국제 무역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시스템, 포괄적이고 유례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들은 무엇을 피해야만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고율의 관세, 특혜 조약, 무역 장벽, 무역 통제, 그리고 “인근국 무력화(beggar thy neighbor)” 정책 등으로 양 대전 사이에 무너지고 만 무역 시스템을 되살리는 것이 그들의 주안점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보호주의로는 전지구적 불황과 그에 따르는 정치적 문제들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만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확신이었다. 그들의 꿈은 당시 전지구적 성장을 촉진시킨 19세기 후반의 개방적 무역 시스템의 회복이었다.[시장對국가(원제 The Commanding Heights), Daniel Yergin and Joseph Stanislaw, 주명건譯, 세종연구원, 1999, pp63~64]
지금의 유럽 상황을 – 특히 서유럽 상황 – 떠올려보면 지나치게 공포감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이제 독일은 더 이상 가공할만한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큼 ‘나쁜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양차대전의 후유증과 소비에트의 침략야욕(?)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인들과 바다건너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한 미국인들에게 위와 같은 논리가 비약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공감이 가기도 한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현재를 보자. 그들이 실현해낸 자유무역은 지구적 차원에서 안보를 지켜냈을까? 전쟁을 막아냈는가? 궤멸적인 제1세계에서의 집단전쟁은 막아냈을지 몰라도 지역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꼭 그것이 역설적으로 자유무역이 원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또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간에 제1세계의 최강자 미국은 – 서유럽의 분쟁을 막아내고자 했던 그 나라 –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위해 거의 유일하게 전 세계 곳곳에서 대놓고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전쟁을 수행한 악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자유무역이 전 세계를 통합한 이후 – 특히 금융에 대한 장벽해체 이후 – 많은 신흥국들이 전쟁에 준하는 경제폭탄을 맞아 신음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자유무역이 금융 강국 본토인 미국과 서유럽마저 혼절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딱 이 시점이 자유무역이 과연 지구촌을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유일한 대안인가 하는 고민을 해볼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도 못 막고 경제위기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강하게 추측되는 자유무역이 과연 신주단지처럼 모셔야할 절대진리인가 하는 의문 말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도 자유무역(free trade)보다는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표현을 즐긴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그것이 좌파진영에서 쓰는 같은 표현과는 다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