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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애널리스트의 개사곡

2007년 3월, 이 고소장(告訴狀)은 S&P가 특정 모기지 채권이 악화되어 등급이 강등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달에 한 애널리스트는 2006년의 채권들을 면밀히 관찰한 후 몇몇 친구들에게 제목 란에 “Burning down the house — Talking Heads” 라 쓴 이메일을 보냈다. 고소장에 쓰인 이메일은 다음과 같다.

With apologies to David Byrne…here’s my version of “Burning Down the House“.

Watch out
Housing market went softer
Cooling down
Strong market is now much weaker
Subprime is boi-ling o-ver
Bringing down the house

Hold tight
CDO biz — has a bother
Hold tight
Leveraged CDOs they were after
Going — all the way down, with
Subprime mortgages

Own it
Hey you need a downgrade now
Free-mont
Huge delinquencies hit it now
Two-thousand-and-six-vintage
Bringing down the house.

출처

토킹헤즈의 비디오 보기

Material Girl 을 듣다가 생각난 서구의 80년대

어떤 소년들은 내게 키스하고 어떤 소년들은 껴안는데
뭐 괜찮아.
만약 그들이 적당한 신용을 제공하지 않으면
그냥 떠나버리면 돼.
Some boys kiss me, some boys hug me
I think they’re O.K.
If they don’t give me proper credit
I just walk away
(Madonna – Material Girl)

유난히 천진난만한 코맹맹이 목소리로 신용거래를 통해 창출되는 애정관계를 묘사한 마돈나의 명곡 Material Girl. 마돈나는 “우리가 물질적인 세계(material world)에서 사는 것을 알지 않느냐”면서 “난 물질적인 소녀야”라고 선언한다. 이 노래는 그녀의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인 Like A Virgin의 수록곡이다.

이 앨범이 발표된 1985년의 미국은 마돈나가 이야기한 바대로 물질적인 분위기가 충만할 때였다. 이 시기,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었고, 경제는 활황세였기에 말 그대로 “돈이 말을 하는” 시기였다. 당시 분위기는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 ‘미국의 싸이코(American Psycho)’에 잘 표현되어 있다.

넌 네 자신이 커다란 자동차의 운전대 뒤에 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몰라.
넌 네 자신이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아내와 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몰라.
넌 이렇게 자문할지도 몰라. 음, 내가 여기 어떻게 왔지?
You may find yourself behind the wheel of a large automobile
You may find yourself in a beautiful house with a beautiful wife You may ask yourself, well, how did I get here?
(Talking Heads – Once In A Lifetime)

바로 이 질문에 대해서 유머러스한 경제학자 사트야지트 다스는 ‘부채’덕분에 그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흠~ 아닌 게 아니라 그래프를 살펴보니 마돈나가 “난 물질적인 소녀야.”라고 외치고 있던 시점에, 미국의 싸이코가 친구의 명함이 자기 명함보다 더 고급스럽다는 사실에 눈썹이 떨리던 시점에 미국의 빚이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돈나를 껴안으려는 소년이 제공하는 신용이나 싸이코가 만든 고급 명함의 재원은 바로 빚을 통해 조달한 것이 되는 셈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때쯤이면 미쏘 대결구도에서 강경노선을 택한 레이건은 군비확장을 위해 빚을 늘렸고, 소련의 패배가 확실해진 일극(一極)체제에서 미국은 더 거침없이 빚을 늘렸다.

이렇게 빚이 는다고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다. 당시는 영미권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전의 온정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노동자들을 살벌하게 길거리로 내쫓던 시기였다. Fed 의장인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살인적으로 올려 채무자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냈다. 서민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당신은 공공의 적인 10번지(다우닝가 10번지인 영국 수상관저)에 의해 위협받게 될까요?
파워게임을 하고 있는 그들.
당신의 임금인상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잉여를 취하고 당신만 책임을 집니다.
Are you gonna be threatened by
The public enemy No. 10
Those who play the power game
They take the profits -you take the blame
When they tell you there’s no rise in pay
(The Style Council – Walls Come Tumbling Down)

패션 스타일에 있어서는 거품이 생겨나는 경제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풍성하고 과장된 스타일이 유행했다. 머리는 한껏 치켜 올려 세웠고, 어깨선에도 과장된 디자인이 적용됐다. 대중음악들도 마돈나의 노래처럼 화려하고 거침없고 빠른 템포의 춤곡이 인기를 얻었다. 화장을 한 남녀들이 저마다의 미모를 뽐냈다.

이제 현대 자본주의에서 그런 시절이 다시 올까? 경기순환론을 믿는 이라면 사회의 생산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어떤 혁신을 통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시기가 다시 온다면 사람들은 이전에 얻은 교훈을 통해 보다 현명한 경제활동을 할까? 아니면 다시 한 번 “난 물질적인 소녀야”라고 외칠까?

그렇지만 내 희망을 봐. 내 꿈을 봐.
우리가 쓴 현찰들.
(오~) 난 당신을 사랑해. 오~ 당신은 내 월세를 내주지.
(오~) 난 당신을 사랑해. 오~ 당신은 내 월세를 내주지.
But look at my hopes, look at my dreams
The currency we’ve spent
(Ooooh) I love you, oh, you pay my rent
(Ooooh) I love you, oh, you pay my rent
(Pet Shop Boys – Rent)

“아버지를 위한 노래” 후기

영화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은 작품이다.

30년간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고 자신의 노래 때문에 자살한 이들 때문에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은 흘러간 팝스타 셰이언이 아버지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의 임종을 목격하고, 그가 생전에 집요하게 찾아 헤매던 한 나치 군인을 찾아 나선다는, 그럼으로써 결국 일종의 영혼의 치유를 받는다는 흔하고 상투적인 가족영화, 로드무비 스타일이다.

중간 중간에 극 전개와 별로 관련 없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잔재미를 주는데, 이런 캐릭터들은 바로 영화의 원제 This must be the place와 같은 이름의 곡을 만들었고, 음악감독과 카메오를 맡은 David Byrne의 영화 True Stories에서 등장하는 괴상한한 캐릭터들을 흉내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투적인 스토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나치군인을 찾아내어 그를 통해 왜 아버지가 그토록 그를 찾아 헤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과 (여기에서 그 늙은 나치군인이 보여준 연기는 맘에 들었다) 연출에서 오버한 감이 보이지만 그에게서 셰이언만의 복수를 하는 장면은 그래도 볼만 했다. 하지만 말미에서는 공항장면에서 다시 상투성을 재연한다.

p.s. 1. Talking Heads의 팬으로서는 당연히 극의 백미는 This must be the place를 부르는 David Byrne 의 막간 공연.

p.s. 2. 극중 David Byrne과 셰이언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David Byrne이 실제로 그의 예술품으로 만든 연주가 가능한 빌딩.

p.s. 3. 셰이언의 분장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The Cure의 Robert Smith를 흉내 낸 것.

p.s. 4. 국내 출시명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정말 재앙이다. 아버지를 위한 여정도 아니었고, 셰이언은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p.s. 5.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큐브 홈페이지에는 Talking Heads가 “1981년 해체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1991년.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길

얼마 전 폴 크루그먼이 자신의 뉴욕타임즈 블로그에 “내일의 칼럼을 위해서(For tomorrow’s column)”라는 짧은 멘트와 함께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히트곡 Road To Nowhere의 뮤직비디오를 올려놓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인지라 반갑기도 했고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칼럼을 찾아 읽어보았다. 짐작대로 그의 글은 도로, 교육 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미국 정부가 제 갈 길을 잃어가고 있다는 중의(重義)적인 의미로 ‘길(road)’을 언급한 것이었다.

칼럼에서 크루그먼은 미국이 한때 이리(Erie) 운하나 주간(州間) 고속도로 등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기반시설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전 세계를 매혹시켰는데, 이제 지방정부들이 예산절감을 위해 유지관리에 돈이 드는 도로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없애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두고 “미국은 이제 가로등도 꺼져 있고 포장도 안 된 목적지도 없는 길 위에 놓여있다(America is now on the unlit, unpaved road to nowhere)”고 묘사했다.

케인지언으로서 당연하게도 그는 정부가 사상 최저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도 이렇듯 재정난을 핑계로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단기적으로 경제를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한편으로, 뜬금없이 크루그먼이 언급한 그 도로의 경제사적 또는 도시계획사적 의미에서 대한 잡념이 생겼다. 그가 공공서비스로써 당연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도로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등에 대한 여러 잡념들 말이다.

도로는 철도와 함께 문명의 현대화를 이끈 원동력 중 하나였다. 서구 자본주의 초기, 도시는 주로 철도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성장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졌고 그 뒤를 자동차도로가 이었다. 즉, 20세기 초 미국에서 포드의 모델 T와 같은 자동차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르꼬르뷔제와 같은 도시계획가가 담대하게 제안한 격자형 고속도로 체계와 같은 초안이 ‘고속자동차도로(motorway)’ 등으로 실현되며 대도시와 도로로 연계되는 교외단지가 새로이 형성된 것이다. 그 선두주자는 당연히 미국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공급능력과 소비력, 넓은 영토, 개인 운송수단을 선호하는 소비성향, 스스로 주요 산유국이면서도 해외에서 나는 석유를 석유 메이저를 통해 값싸게 확보할 수 있는 능력 등 높은 마천루와 쭉 뻗은 고속도로의 쾌적함을 누릴 자격을 충분히 갖춘 나라였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오랜 동안 승용차로 중산층 교외 주거단지에서 몇 키로 떨어진 도심의 직장에 다니거나 쇼핑센터에서 구입한 물품을 차 한 가득 싣고 와 소비하는 문화에 익숙해져왔다.

이와 같은 현대 도시의 풍경은 20세기 초 거대도시와 과학기술에 매료된 도시계획가들이 꿈꾸는 세계였다. 일례로 르꼬르뷔제는 도시는 하나의 기계와 같아서 곡선이 될 여지가 없다며 미국의 고층건축과 자동차 사회, 그리고 직선의 고속도로를 찬양하였다. 사상가들의 이러한 영감, 경제력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 각국 의사결정권자들의 호응, 그리고 개발업자의 교외단지 개발이나 도심 재개발을 통한 수익추구 행위 등이 뒷받침되어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 주요 대도시는 대부분 미국의 대도시 풍경을 닮아 있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위기로 인해 바로 미국에서 그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한다. 미국인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차들이 중고시장에 나오거나 압류 당하고, 또는 차주인 스스로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운전을 자제한다. 주택이 압류당해 교외단지는 텅 비어가고 있다. 거기에 크루그먼이 지적했듯이 기존의 도로는 노쇠해졌고 심지어 없어지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주 기능이나 소비기능이 넓게 분산되어 있는, 거기에 대중교통망이 의외로 발전되어 있지 않은 미국형 도시구조에서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즉 직장, 주거, 상업 등 각각의 기능이 거리가 떨어진 용도지역에 집단적으로 배치된 상황에서 그것을 이어주는 주요수단이 승용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고속도로인데, 그 기능이 마비된다면 도시의 기능이 둔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때 그 풍경은 이상적인 도시계획과 고도의 물질문명, 그리고 미국식 개인주의의 이상적인 결합을 상징했지만, 오늘날 그것은 그 쇠퇴해가는 물질문명의 영향을 받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미국식 조닝(zoning)의 시대적 한계랄 수 있다.

US 131, M-6, 68th St interchange.jpg
US 131, M-6, 68th St interchange” by Michigan Department of TransportationMichigan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한편 이런 조닝과는 다른 좀 더 실험적인 시도가 다른 경제체제에서 있었다. 니콜라이 밀루틴이라는 소비에트 도시계획가가 주창한 ‘선형도시(linear city)’형의 스탈린그라드 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은 철도, 공업지구, 녹지대, 주거지구 등이 샌드위치처럼 선형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형태다. 즉, 이 도시는 각 기능이 떨어져 있던 현대의 전형적인 도시와 달리 직장과 주거가 녹지를 사이에 두고 길게 선형으로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는 이렇게 좌우로 계속 같은 패턴으로 뻗어가면서 커간다.

이 계획은 원래 스페인의 건축가 아르뚜로 소리아 이 마타가 1882년 제안한 선형도시 개념이 원형이다. 이 제안은 산업발달에 따른 화물수송 등의 도시적 요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하는 목적이었다. 마드리드 일부, 앞서 말한 스탈린그라드 등 몇몇 도시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되었던 이 방식은 “도시 없는 도로”인 고속도로가 도시와 도시, 도시와 농촌을 잇는 방식과 달리 계속 각종 기능을 도로 옆에 배치하며 도농 통합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도시 발전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시 밀루틴으로 돌아가 그는 소리아의 선형도시 개념을 활용해 사회주의적인 ‘직주근접의 계획원리’를 구현하려 했다. 즉 공장과 완충녹지를 사이에 두고 배치된 주거지에 기거하는 노동자는 직장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편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이 계획의 단점은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선형도시가 계속 확산되면서도 직주근접이 되고자 한다면 물적 계획뿐 아닌 직장과 주거의 계획적 배치와 같은 완고한 사회계획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기에 자본주의적 자유 개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굳이 선형도시를 언급한 이유는 이제 미국식 도시구조는 낡고 비효율적이니 대안으로 선형도시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하면 다른 대안이 고려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애초 우리는 도심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확산하는 도시, 그 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를 당연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모습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좀 더 다양한 꿈을 꾸었다.

물론 폴 크루그먼의 주장대로 당장은 생산성 향상 및 생활의 편의를 위해 교통시설 등 기반시설을 짓고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당연시되는 그러한 시설들의 수요발생 원인과 문제점을 따지고 들어가 그 구조적인 개선을 관찰해야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가 기본 상수로 여기고 있는 도로와 자동차와 같은 스톡들도 그것의 적정선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검증된 근거는 없다. 크루그먼도 모를 것이다.

물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의 비정상적인 작동이 도시와 그 교외의 모습을 단숨에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다. 물적 계획은 단기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처럼 오랜 변형을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에너지 위기가 서구 도시의 대중교통망 확충으로 이어졌듯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있을 것이다. 자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 부동산 시장의 질적 변화, 그리고 교통에 대한 새로운 고민 등 시대적 요구로 인해 현대도시들은 새로운 철학적 고민을 떠안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 Road To Nowhere는 폴 크루그먼이 생각했던 비관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상향을 향한 길’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노래다.

09.29.09: Seattle — 성난 이의 아침식사

David Byrne of Talking Heads.jpg
David Byrne of Talking Heads”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여기 시애틀에서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내게는 선전선동으로 보이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입에 거품을 물거나 내 요거트를 호텔 다이닝룸에 뿌리는 등 격노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 다시

오늘자 뉴욕타임스 1면의 사진을 보면 이란의 핵시설이라고 소문이 난 어떤 종류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단지 그러한 것들의 그래픽 스타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이라크 침공 전에 범람했던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을 닮았다. 대량살상무기들이 저장되고, 감춰져 있고, 또는 제조되고 있는 건물들의 사진들…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우리를 우리가 현재 놓여져 있는 곤경으로 현혹시켜 이끌었던 소문들이었을 뿐임이 증명되었다. 사람들은 당시 그것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의 단편적인 기억력을 감안할 때에 그들은 두 번째 그것에 몰두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난 이것이 절대 핵시설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다. — 다만 추측성 사실관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의 방식이 똑같다는 점은 지적한다.

전망

같은 면에서는 유럽에서 많은 나라들이 중도우익 정치가를 선출하면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의견을 달리 해줄 것을 간청한다. 기사가 말하는 바, 중도우익은 기존의 “일반적인 복지 혜택, 국유화된 헬스케어, [그리고] 탄소배출에 관한 엄격한 제한”을 수용하였다. 이 세 가지 아이디어라면 미국에서 그들은 좌익으로 분류될 것이다. 비록 작가가 말하길 – 아마도 맞겠지만 – 유럽에서의 좌익은 전통적으로 이보다 더 나아가지만 말이다. 그러한 것들이 아직도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 그리고 현재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자”이라는 (그리고 그래서 미국인이 아니라는) 고함치며 소란을 떠는 지적들은 전망의 예정된 “붕괴”에 이르게 하고 있다.

부활

다른 면의 기사에서는 경제가 바닥을 치고 다시 호조를 띄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놀랍지 않은 한편 (경제 붕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또는 은행가들의 오만과 탐욕을 제한하기 위한 어떠한 심각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는 일종의 좋은 소식을 위한 좋은 소식일 뿐인 것 같다. — 일종의 기분 좋은(feel-good) 것. 경제는 하도 오랫동안 상태가 안 좋아서 필연적으로 잘못 인도하는 고장 난 시스템의 그 어떤 것의 “재림”이나 회귀를 도모하는 것은 아마도 현재로서는 최선의 아이디어가 아닐 것이다. 이 나라의 많은 것들이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골드만삭스와 다른 이들이 경기침체로부터 수익을 얻는 등 갈퀴로 부를 그러모으는 동안, 다른 이들은 불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 that isn’t the real world.

이글을 쓴 David Byrne은 전설적인 펑크/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리더였으며 현재 솔로로 독립하여 음악가, 프로듀서, 화가, 설치 아티스트, 자전거 애호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블로그에 올린 원문 보기 / Talking Heads 팬사이트 / 한국어 팬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