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베끼는 나라

필자도 삼성경제연구소(SERI, 이하 삼성연)를 좋아한다. 삼성연의 보고서를 이메일로 받아보고 있다. 가끔 글을 쓸 때 참고도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그들의 인적자원이 국내 최고급이라는 사실이다. 아는 선배도 그곳에서 고액연봉 받아가며 일한다. 선거 때만 되면 각 캠프에서 이런 저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써준다고 하니 요즘 바쁠 거다.(이걸 정학유착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면 양반일 텐데 오늘자 경향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어쩌면 이미 상식에 속하는 이야길지 모르지만) 또 한 번 필자를 우울하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무현 당선자 책상에는 인수위 보고서와 삼성연 보고서가 같이 놓여 있었다. 386 측근 참모가 SERI와 같이 만든 보고서였다”면서 “핵심 내용이 ‘대미·대북관계는 진보적으로, 사회경제 정책은 보수적으로’였다”고 회고하였다 한다.

‘대북관계에서의 (상대적인) 진보성과 사회경제에 있어서의 보수성’

이것이 정확하게 참여정부의 스탠스였다. 앞서의 언급에 있어 대미관계는 대북관계와의 종속성으로 인해 레토릭만 자주를 외치다 제 풀에 스러져버린 굴종적인 것이었음은 이미 증명되었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있어서는 집권초기 약간이나마 진보적 시도가 있었다. 토지공유론으로 유명한 헨리조지 주의자로 알려졌던 이정우 씨의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기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김수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 진보적 인사들과 함께 토지문제에 메스를 가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기사는 “개혁적 소신을 유지한 이정우 전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 이동걸 박사 등의 조기퇴진 배경에는 삼성생명 상장과 개혁정책을 둘러싼 청와대 386 및 관료들과의 파워게임이 있다”는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증언을 전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삼성연이 한·미 FTA의 논리적 기반도 제공했다는 평가다. 삼성연은 한·미 FTA 개시선언 직후인 지난해 3월 ‘도대체 왜 한·미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서비스시장 개방론’을 처음 이슈화했다고 한다. 이후 노대통령은 FTA 대책과 양극화 해법으로 강조해온 ‘지식서비스업 강화론’을 강조한다. 삼성연이 대통령 이하 국민의 상투머리에서 놀고 있다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삼성연의 연구원들은 훌륭한 인적자원들이다.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아이디어도 상당하고 쓸 만하다. 문제는 그들의 계급성이다. 그들 스스로는 지식 ‘노동자’일지 모르나 그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삼성 자본’의 프레임을 통해 필터링된 아이디어들이다. 연구원 개인적으로 FTA를 찬성하든 말든 연구소의 보고서는 FTA 찬성으로 나온다. 삼성의 수많은 천재적인 머리들이 불법세습을 위해 전환사채 발행을 고안해냈듯이 사주와 자본을 위해 머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뻔뻔하게도, 또는 무능하게도 자신의 머리를 비워둔 채 민간기업의 경제연구소의 머리를 빌어다 썼다. 그러고서는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선언했다. 이런 무기력증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한편으로 또 NLL에 대한 하나마나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다. 보수적 경제 운용으로 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진보적 대북관계로 우익적인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것인가? 그러니 “사람을 죽였대도 이명박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것은 어쩌면 참여정부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가만 보면 알량한 지식 쪼가리 몇 개를 가지고 지식인이나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회다. 그런데 정작 써먹으려면 알맹이가 없다. 청와대 386이란 치들이 그랬을 것이고 그것이 희극 버전으로 일어난 사건이 신정아 사건이다. 사회가 바로 서려면 정말 똑똑한 이가 우대받아야 한다. 그런데 새치기와 거짓으로 행세하는 이가 너무 많은 이 세상엔 헛똑똑이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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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정부 정책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베끼는 나라

  1. 새사연

    고승덕 변호사 관련 글 보러 왔다가 이것도 트랙백 걸고 갑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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