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플랜

스콧 스미스(Scott B. Smith)의 ‘심플플랜’은 지난번 ‘6인의 용의자’와 함께 자주 가는 한겨레 신문 구본준 기자(‘구본준의 거리가구 이야기’)가 권한 책이라 읽었다. 미스터리 마니아인 그가 2009년 베스트 스릴러 리스트에서 두 책이 공동 1위에 올려놓은 작품들이다. 두 권의 책을 다 읽고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심플플랜’이 ‘6인의 용의자’보다 재미있었다.

읽다가 안 사실인데 이 작품은 국내에 작년에 소개되었다 뿐이지 실제로는 이미 1993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게다가 1998년에는 샘 레이미(Sam Raimi)에 의해 영화화까지 된 작품이다. 서구권에는 이미 나름 현대 추리소설의 수작반열에 오른 작품인데, 추리소설 마니아인 모중석 씨의 컬렉션으로 이제야 국내에서 소개된 것일 뿐이었다.

이 작품은 사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수사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의 문법의 견지에서 보자면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범인들은 밝혀져 있다. 작가는 추리적 요소를 배제한 채 44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손에 넣은 세 명의 평범한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시키고, 또 스스로 파괴되는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료상의 회계원 행크 미첼은 아내 사라와 함께 미네소타의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실직자인 형 제이콥과는 거의 대화도 없다. 1년에 한번 부모의 묘지에 함께 찾아갈 뿐이다. 형 친구 루와 함께 한 성묫길에서 그들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44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발견한다. 행크는 돈을 자기가 보관하고 때가 되면 나눠 갖기로 하는 ‘간단한 계획(A Simple Plan)’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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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plan poster” by impaward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A Simple Plan (film)“>Fair use via Wikipedia.

하지만 현실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제 밥벌이도 못하는 형과 루는 이내 인내심이 바닥나 자기 몫을 탐낸다. 거기에다 만전을 기하고자 추락한 비행기에 들렀다가 동네 노인까지 죽여 버리고 만다. 이제 사건은 절도에서 살인으로 비화한다. 나약하고 미성숙한 정신의 소유자인 형은 끊임없이 동요하며 행크를 괴롭힌다.

스콧 스미스는 어찌 보면 이 흔해빠진 설정이 흔해빠진 전개로 빠지지 않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선보인다. 작가는 행크의 1인칭 시점을 통해 독자들을 행크의 시각과 동기화시킨다. 지극히 평범한, 죄라고는 저질러 본적 없는 소시민이 범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의 반응에 대한 작가의 서술은,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 후 극을 전개시키는 것인 양 교묘하고 있음직하다. 이런 방식은 독자들을 행크의 죄책감에 동참시킨다.

이 작품은 한편 ‘정의(正義)’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처음 정의는 주인 없는 돈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돈을 차지한 뒤로 그들의 정의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생물학적인 본능에 충실한 것으로 변한다. 특히 행크의 임신한 아내 사라는 모든 행동을 이러한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이런 동물적 본성은 임신이라는 사라의 몸 상태와 결부되어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주1)

[이하 스포일러]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론을 빨리 알고 싶어서 조바심 날 정도로 작품은 흡인력이 강하다. 작가의 인간실험은 예상대로 – 또는 예상을 넘어 – 비정하다. 돈은 여전히 행크의 수중에 있지만 그것은 마치 마약처럼 수많은 희생을 낳고는, 신기루처럼 행크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돈은 행크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불행할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일장춘몽에 불과했던 것이다.

p.s. 작가 스콧 스미스는 이 작품이후 무려 13년간 차기작으로 내지 않았다 한다.(창작의 고통~) 그리고 내놓은 작품은 ‘폐허(The Ruins)’. 멕시코의 유적지에 식인식물에 잡힌 청소년들이 겪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인간성의 실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심플플랜’과 유사하다. 역시 영화화되었는데 원작은 읽지 못하고 영화만 본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심플플랜만 못하다.

다른 서평들

(주1) ‘마더’에서 김혜자가 원빈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의 동기부여가 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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