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게임의 법칙

이 책의 원제는 “Monkey business: swinging through the Wall Street jungle”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한글 제목 아래 “Wall Street the rules of the game”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난 첨에 원제인줄 알고 그 문장으로 검색을 하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출판사가 왜 표지 디자인을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마 원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장 르느와르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하튼 제목은 원제가 더 책 내용과 맞닿는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의 게임의 법칙이라기보다는 그 중에서도 일부분인 투자은행의 ‘협잡질(Monkey business)’의 행태와 이에 동참한 신출내기 투자은행원들의 일상을 그린 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게임의 법칙’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바턴 빅스의 ‘투자전쟁’이나 마이클 루이스의 ‘라이어스포커’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에도 법칙의 편린이 소개되지만…

글쓴 이는 존 랄프와 피터 트룹, 두 명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등 탑클래스MBA를 다니던 이들이 DLJ라는 투자은행으로부터 잡오퍼를 받고 입사하여 어떻게 직장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왜 환멸을 느껴 직장을 떠났는지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문체는 유머러스하지만 내용은 역겹고 구질구질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명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다행히 라이어스포커처럼 직격탄은 없는 셈이다.

그들이 그리고 있는 투자은행의 일상은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흥미롭다. 엄청난 보너스, 호화스러운 파티,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야근의 연속, 투자은행 특유의 먹이사슬, 식탐 이상으로 흘러넘치는 색욕(色慾),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투자은행의 협잡질 등등이 생동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트룹이 Global Wireless Asset이라는 정체 모호한 기업의 IPO를 위해 9일 동안 8개국을 돌아다니는 에피소드는 읽는 나마저 현기증이 일 정도다.

다소의 과장이 있겠으나 이 책에는 상기의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자본조달의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 고유계정 거래보다는 – 업무 프로세스와 그 작업의 부질없음이 잘 그려져 있다. 사업계획서 초안 잡기, 자산실사, 이해당사자들의 협의과정, 그리고 로드쇼 등 개별과정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IB가 수행하는 업무일반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자들은 그것이 사기라고 말하고 있다.

성공하면 디벨로퍼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라고 그랬다던가. 저자들의 말처럼 모든 사업계획서 자금조달계획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참여자들에게 희망(때로는 근거 없는)을 안겨줘야 한다.(주1) 투자은행은 현재가치법, 매크로 시장개요 등 감언이설을(합법적인 때로는 근거 없는) 동원하여 투자자들을 꼬드긴다. 투자결정은 참여자들의 몫이다. 투자은행의 문제는 한정된 시장에서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기 위해 스스로 공급을 창출했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저자들이 막판에 회사를 때려치운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그런 협잡질이 신물이 났다기보다는 그 협잡질에 개인의 삶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돈을 많이 벌지만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업무과중이 그 이유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직장으로 각자 헤지펀드를 택한다. 시스템의 모순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안녕히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투자은행의 일상과 관련한 약간의 지식과, 그보다 더 많은 양의 화장실 유머를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술술 읽혀져서 다 읽는데 불과 이틀이 걸렸다.(그래서 약간 돈이 아깝기도) 개인적으로는 라이어스포커나 투자전쟁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책 소개에는 여러 증권회사 임원의 추천 글과 ‘비즈니스 소설’이라는 명찰이 붙여져 있다. 뭐… 책은 팔려야 하니까.

(주1)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제가 Google이라는 검색엔진을 만들건데 그걸로 돈 벌어서 12년 후에는 인공위성도 날리고, 전화기도 만들고, 동영상 사이트도 운영하고 할거니까 돈 좀 빌려주세요” 하는 식의 말도 안되는 희망 따위

One thought on “월스트리트 게임의 법칙

  1. 고어핀드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전 올라온 인용문이 이 책에서 온 것이었군요. 투자전쟁이나 라이어스 포커도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이 책도 함께 읽어봐야겠습니다.

    …도서 지름신을 소환하는 사악한 블로거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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