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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스스로 악마가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하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2012년에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의한 세금회피와 관련한 스캔들로 대중이 분노하고 이로 인해 G20이 행동에 나섰을 때, OECD는 국제적인 법인세 체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3년 후에 “기반 부식과 이윤 이동(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 또는 BEPS라 알려진 패키지가 탄생했다. [중략] 예를 들어 이로 인해 이들 기업들의 이윤과 세금 납부에 관한 국가간 과세 당국 보고서의 공유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표준은 오로지 거대 초국적 기업에만 적용되었고 보고서는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아 시민사회에 필수적인 투명성을 담보해내지 못했다.[Decision Time for the Future of Corporate Taxation]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다뤘던 바,1 초국적 기업들, 특히 인터넷과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생산물의 특징상 더욱더 자유롭게 그들의 이윤과 비용을 지구적 범위에서 이윤극대화의 지역으로 이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개별국가의 과세정의를 초토화시키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예외적으로 초국적 기업이 징벌적 과세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의 제시는 요원한 가운데 인용문에서 언급하는 프로젝트가 OECD 등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전히 온갖 꼼수를 – 꼼수이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 동원하고 있는 기업의 세금회피 시도를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2017년에도 구글은 네덜란드의 쉘을 통해 227억 달러를 버뮤다로 송금했다. 같은 해에 페이스북은 13억 파운드의 매출을 올린 영국에서 7백4십만 파운드의 세금을 냈다. 보다폰은 2016~2017년 기간 동안 이윤의 거의 40%를 조세회피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생산물의 유동성, 국제적 로비, 과세당국간 협조체계의 미흡이 이런 과소과세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ICRICT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단일 과세를 위한 토론을 지지하는데, 이를 통해 그 기업들의 전 세계에서의 수입을 통합하여 그들의 이윤을 이동시키는 데 드는 이전비용의 지불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국제적 이윤과 상호연결된 세금은 기업의 매출, 고용, 자원, 그리고 심지어 각국의 디지털 사용자와 같은 객관적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지역에 배분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초국적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에 대해 20~25% 정도의 지구적인 기초 실효 법인세율의 도입을 지지한다.[같은 글]

ICRICT는 인용문의 저자가 의장으로 있는 국제 법인세 과세 개혁을 위한 독립적 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for the Reform of International Corporate Taxation)를 가리킨다. 저자는 BEPS와 같은 협의체보다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가진 단일 과세나 지구적 법인세율 적용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조치 없이 초국적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이 악마가 안 되려면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리히텐슈타인 등 이른바 조세피난처에 대한 독일 정부의 강도 높은 수사가 시작되는 등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관련글) 그런데 개인적으로 받아보고 있는 HedgeFund.net 뉴스레터에 최근 이와 관련하여 ‘Offshore Accounts’ 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설이 있어 간략히 이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논설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가장 비협조적이라고 소문난 조세피난처는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안도라 등을 들 수 있고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인기 있는 피난처는 케이맨 군도, 버뮤다, 바하마 등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에게는 스위스, 모나코,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이 인기 있다고 하는데 역시 지역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논설은 이런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본래 글의 의도인 조세피난처와 국외 은행계좌의 정당성에 대한 변호(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도 잊지 않고 있다. 우선 이 글은 조세피난처는 이미 수십 년간 존재해왔던 것인데 최근 들어 달러화 또는 유로화의 자산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하자 서구의 수사당국이 수사에 나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These foundations and individual accounts have existed for decades and are only now under scrutiny since the dollars (or Euros) have grown to a significant and perhaps noticeable amount.

본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필자는 개별 경제주체의 경제적 이윤극대화 추구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즉 돈세탁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금융 테러리즘(financing terrorism)’같은 불법행위는 반대하지만 한편으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소득세를 적게 내려는 이른바 절세 행위는 납세자의 ‘의무’라는 것이 그의 논지다.

But as a U.S. tax payer, it is my duty to pay as little income tax as possible (on a rate basis, but as much as possible on an absolute basis) while still staying within the legal boundaries of our tax code.

필자는 결국 각국은 조세피난처를 비난하기에 앞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들이 ‘합리적인’ 사람들, 또는 자본들의 정상적인 현금흐름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반성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세율이 똑같아지지 않는 이상은 이런 세금유출을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하며 끝을 맺고 있다.

김경준 씨 사건으로 제법 이름을 날린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국가 시장에서의 선물가격과 현물가격의 차이를 이용한 거래가 대표적이지만 각국의 금리차이, 환율차이를 이용한 다양한 차익거래 기법도 존재한다. 이는 일체화되어가고 있는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같은 환율, 같은 금리로 수렴한다는 가정 하에 순간적인 비정상 상황을 이용하여 차액을 챙기는 기법이다. 그런데 세금회피를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도 일종의 세금에 대한 ‘차익거래’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각국의 세금체계와 세율이 다름을 이용하여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딴에는 필자가 말한 것처럼 합리적인 경제행위다. 그러나 요는 이것이다. 세금회피자들은 각국 간 조세협약, 세법 등의 허점을 이용하여 대개는 도의적으로는 인정될 수 없는 범위에서의 조세회피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오늘날 자본(또한 고소득자인 개인 역시)은 다국적 신분을 활용하여 소득은 이윤포착 기회가 많은 A국에서 벌고 납세행위는 세율이 0이거나 무의미한 수준의 조세피난처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내에서 활동하던 론스타일 것이다. 그들이 HedgeFund.net의 필자의 주장처럼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면 돈도 케이맨 군도에서 벌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 들어 이런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주요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자본유치에 대해 일종의 공정경쟁을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쿄토 의정서에서 CO2 감축을 위해 의무감축량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또 이래놓고 미국이 빠져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