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느끼고…

RSS로 구독하는 블로그가 있다. 그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폭넓은 지식과 글 속에서 느껴지는 냉소적인 유머감각이 맘에 들어 자주 읽고 있다. 얼마 전에 그의 글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모순된 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몇 자 적어 트랙백을 날렸고 이런 저런 주제로 서로간의 대화가 확대되었다. 그 와중에 또 다른 분이 수고스럽게 여러 글을 적어주셔서 심도 깊은 대화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블로그의 장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스탠스를 각자의 블로그에 적고 트랙백을 날림으로써 대화의 큰 맥락이 자신의 블로그에 온전히 기록되는 와중에도 일종의 네트웍이 형성되는 그러한 것 말이다.

몇몇 분들은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블로거와 글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대화’라고 표현했다. 혹자는 ‘논쟁’, ‘말싸움’이라고 표현할지 몰라도, 그리고 그런 논쟁이 가끔 블로그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번 대화는 서로의 글에서 첨삭할 것들을 조언하며 공극을 메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내 스스로의 빈 공간이 많이 채워졌다. 그분들의 글로부터 모르던 사실들을 새삼 알게 되기도 하고 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인터넷을 뒤져 잊었던 사실을 새로 상기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대화방식에도 한계는 있는 것 같다. 일단은 어느 일상의 대화에서든 또는 어느 인터넷에서의 토론이든 대개 그러하지만 어느 순간 대화의 주제가 수렴되기보다는 발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뭐 이런 한계야 굳이 이번 대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니 그런가보다 할 수 있는 문제다. 사실 짜증나는 것은 댓글러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이것은 그 분의 잘못도 아니고, 또 나의 잘못도 아니라고 보지만 마치 이걸 무슨 이종격투기인양 부추기는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 “블로그 파이트의 효도르”, “이지스함급의 방어력” 운운 – 갑자기 나 스스로가 – 저런 댓글을 보고 순간적으로 호승심을 느낀 나 자신이 – 한심해져버렸다.

그래서 정말 아쉽지만 이제 이 대화가 더 진행된다 할지라도 동일 주제에 대한 추가 포스팅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막말로 내 블로그에서 내가 어떤 주제로 떠드느냐는 온전히 내 맘이므로 이런 글 올리지 않고도 그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내가 먼저 옆구리 찔러놓고 그분이 추가 관련 포스팅 계획이 있다는 글까지 올려주셨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어 트랙백을 보낼까 한다.

대꾸를 안 하겠다는 이유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한심하지만 적어도 지금 마음상태는 그러하다. 그분께 본의 아니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부디 추가 포스팅하시겠다는 계획에는 차질이 없었으면 하는 이기심 가득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14 thoughts on “블로그 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느끼고…

  1. 천마

    죄송합니다.(_ _) 구경거리 취급하려던게 아닌데…. 토론이 진행되면서 나온 글들이 모두 상당한 수준의 글이라 하도 감탄을 해서 흥미진진하다고 한건데 불쾌하셨나 봅니다. 시과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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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제가 댓글 올린 분들의 사과를 받자는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오히려 좋은 댓글 남겨주신 천마님의 사과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과를 하시니 제가 더 송구스럽네요. 그냥 제가 변덕이 심한 놈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천마님이 이해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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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OMO

    저도 foog님의 생각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리있고 논리적으로 말해도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미친 소리가 되기도 하더군요. 그렇지만 그것은 비단 블로그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대화나 신문 사설에서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각각 소통에도 장단점이 있달까요?

    적어도 사람들 과의 대화를 위해 편하고 적당히 진지한 블로그가 있단 것에 위안을 삼으렵니다. 누구나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 시킬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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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뭐 이번 케이스야 누가 제 글이 ‘미친 소리’라고 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말씀의 취지는 공감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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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aylene

    이론..;ㅅ; 트랙백이나 댓글을 통한 건설적인 대화는 굉장히 보기 좋던데, 저는 그런 걸 많이 못보고 자라서요(..) 항상 진흙탕 싸움에 감정이 섞인 욕설이 오가는 댓글들이 너무 많아서 온라인에서의 의견교환이나 토론은 힘들지 않나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민노님이나, foog님 등을 보고 우와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하고 감동을 받았었는데… 아쉽네용.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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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런 걸 많이 못보고 자라서요”

      불우한 어린 시절을~ ^^;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로 만나뵙겠습니다.^^(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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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우재

    치열하고 또 즐거웠으면 그뿐 아니겠습니까. 저도 더불어 즐거웠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합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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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그렇지요. 날 더운데 열낼 필요도 없고 세상사는 즐거운 것이 최고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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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히치하이커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즉각적으로 감정을 느끼며 대화할 수 없기에 블로그로 논쟁을 하다보면 더 쉽게 지치더군요.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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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뭘로 하든지 쉽지 않긴 하죠. 말이든 글이든… 블로그는 조금 인터벌이 길고 또 각자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발언한다는 점에서 좀 더 실험적이면서도 난해한 측면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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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foog

    일단 이 블로그에는 해당 주제에 관해 글을 올리지 않기로 하였으나 sonnet님께서 새로운 글에 저의 다른 멘트를 굳이 언급하셔서 그 글의 댓글로 아래 글을 적었으니 혹시나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 <– 이모티콘의 생활화

    ——————————————————————————————————–

    따로 이 대화와 관련해 제 블로그에 글을 올리진 않기로 마음먹었으나 sonnet님 글에 제 멘트가 언급되어 있으니 여기에다 간단히 제 의견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길 잃은 어린 양'님의 의견이 어떠한 객관성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일단 그 짧은 댓글에서의 저의 멘트에 대해 반대의견을 주신 것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첫째.

    저의 멘트와 sonnet 님의 멘트가 틀립니다.

    저는

    “특히 박정희 시대에 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누가 봐도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낀 것이었다.”( http://www.foog.com/468 )

    라고 말했는데 sonnet님은

    “게다가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장면, 그리고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을 노골적으로 베꼈다" (foog)라고 생각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라고 하셔 사실관계가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즉 제가 언급하지도 않은 “이승만의 경제개발계획”이 등장합니다.

    둘째.

    sonnet 님이 저의 그 짧은 멘트에 왜 그런 발언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궁리를 하셔서 ‘길잃은 어린 양’님의 글을 반박글이라고 추천해주셨을텐데요. 요는 제가 어떠한 관점에서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이 북한 및 사회주의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하는지에 대해 그럼 먼저 질문을 하고 거기서부터 논점을 확대하시는 것이 옳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sonnet 님은 그렇게 하시기보다는 저의 관점을 sonnet님이 나름대로 가늠하신 후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개발계획은 ‘필연적으로 자급자족형 자립경제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예측으로 나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것은 바람직한 대화가 안된다고 봅니다.

    무릇 두 가지 사물이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닮았겠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틀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가 물론 주관성의 차이겠지만 상당한 정도로 유사성에 대해서 부인하고 차이만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논의는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죠. 지난 번 말씀하셨듯이 서로간에 ‘재해석’만 하고 있는 꼴이겠죠. 🙂

    아래 링크는 이정우 교수가 생각하는 소련의 계획경제와 박정희의 계획경제의 유사성에 대한 언급이니 참고바랍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1010142519

    날 더운데 건강조심하시고요.

    출처 : http://sonnet.egloos.com/3851742#1177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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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nooe

    아..대화의 가능성을 시도해보려는 글을 하나 올리고 이 글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는 설문조사까지 하시고..foog 님의 시도들을 좀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함께 공부하고 대화할 수 있는가, 사회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거든요.
    그 작은 시도에대한 트랙백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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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아주 예전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 저는 굳이 따지자면 요새 블로그를 공부의 수단으로 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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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Pingback: nooeg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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