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

2007년 5월 29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홍기빈 씨의 강연을 永革님이 정리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퍼 나른다. 내 다른 글에 트랙백을 보내주시긴 하였으나 읽어보니 내용이 매우 충실하여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이 글을 전파하고자 별도의 글로 올린다. 이 글에 대해 합당한 저작권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홍기빈씨나 여하한의 저작권자의 이견이 있을 경우 즉각 합당한 조치를 할 것임을 말씀드리는 바이다.

*이 글은 2007년 5월 29일 고려대에서 있었던 홍기빈 씨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한미FTA 전반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어떤 부문에서는 이익이고 어떤 부문에서는 손해라는 식으로 파편적인 이야기만 늘어 놓는 일은 대중 기만이다. 한미FTA는 단지 무역에 관련된 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이다. 경제통합에는 관세 면제부터 시작해서 통화까지 통합하는 수준까지 있을 수 있는데, 한국과 미국이 맺은 FTA는 정치경제 제도와 운영에서 같은 수준의 통합이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바로 이러한 FTA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도다. 사실 이 번역은 올바르지 않다. Investor-State Dispute, 줄여서 ISD는 어디까지나 재판이 아니라 중재에 관한 제도이므로, 그냥 투자자-국가 분쟁 정도로 옮기는 게 낫다. 정부에서는 ISD를 외국 투자자가 부담할 위험을 달래주어 안심시키려는 국제 표준이라 말한다. 1930년대에 있었던 멕시코 제도혁명당의 국유화나 쿠바 혁명 때 있었던 미국인 소유 사탕수수 농장 몰수 사건은 투자자들의 악몽이다.

혁명정부가 외국 투자자의 자산을 뺏는 일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ISD가 도입된 셈인데, 이 제도의 기원은 중세 유럽 상인법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상인들은 거래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복잡하게 법정에서 해결하기보다 상인 중에 존경받는 사람에게 당사자 둘만 가서 중재받는 길을 주로 택했다. 상인 세계에서는 분쟁 사실이 알려지는 일 자체가 위험하니 당연히 비밀을 지키는 게 원칙이었다.

근대에 국제공법과 사법체계가 성립한 뒤에도 국제거래상인들은 이 방법을 선호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세계은행 산하에 ICSID를 만들어 여기서 이 관행을 흡수하게 되었는데, ICSID에서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했을 때 그 결과에 법적 효력을 갖게 하였다. 그러므로 ICSID를 ISD의 시효로 볼 수도 있으나 엄연히 다른 점이 있다. 본래 ICSID의 판정이 대상국가에 구속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가 개별 투자 사안마다 그 분쟁 해결의 법적 관할권을 ICSID에 넘긴다는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했다. BIT(양자 간 투자협정)나 FTA에서 ISD 조항이 포함되면 개별 사안마다 명시적인 동의 없이 외국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을 이 중재 절차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ICSID에 속한 한 변호사는 90년대까지 ICSID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였는데 BIT라는 ‘백마 탄 왕자’가 와서 깨워줬다고 말한다.

중재 제도에서 당사자의 동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에 중재법이 1966년에 제정되었는 데 아직 널리 이용되지 않는 까닭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중재 절차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ISD는 중재 회부에 대해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 간주 조항을 둔다. 정부는 공공정책은 분쟁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하지만 그조차도 단서 조항을 보면 투자자의 피해가 극심한 경우는 중재 회부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구를 어떻게 넣든 포괄적인 사전 동의 조항이 있으면 결국 국가는 중재에 불려가는 수밖에 없다. 투자가가 국가를 중재로 끌어내는 데 필요한 허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협정문에 규정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 자체도 중재 절차에서 심사한다. ISD는 국가가 투자자를 규제하는 데 이용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투자자가 일방적으로 국가를 공격하는 제도다.

원래 중재는 국가가 사적 분쟁에 개입하기보다 당사자들 사이의 조정을 도모하는 제도다. 국가와 투자자 사이의 분쟁을 사적 분쟁과 같은 절차로 해결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제도의 연원은 철저히 사적 영역에 있는데 제도가 적용되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이다. 중재는 결코 재판이 아니다. 법 논리에 의해 판결이 나는 게 아니라 분쟁 당사자인 대상국가와 투자자를 대표하는 변호사 두 명과 심판관 한 명이 모여 시쳇말로 ‘쇼부를 치는 것’이다. 심판관을 선정하는 방식에는 ICSID를 포함해서 다섯 개가 있다. 한미FTA에서는 그 중 세 가지를 선택했는데 저마다 절차가 조금씩 다르다. ICSID에는 심판관 목록이 갖춰져 있고 그 중 한 명을 고르는 식인데, 대개 국제거래계의 변호사들이다.

국내법은 여기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고려되는 규범은 단지 국제법상의 일반규칙과 해당 BIT 또는 FTA 협정문뿐인데, 국제법에는 확립된 원칙이 없다는 게 일반원리이므로 세 명의 변호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체코의 노바TV 사건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체코가 투자자에게 한 푼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런던 판정이 나오고 6개월 뒤 스톡홀름에서는 1억 7천만 불을 배상하라는 결정이 나왔다. 이는 체코 1년 의료보험 예산에 해당한다. ISD로 물어야 할 배상금은 국채로 변상할 수 없으며 판정 즉시 현금으로만 갚아야 하는데 체코 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징수하여 충당하였다. 만약 배상금을 제대로 물지 않으면 사설 투자평가기관의 국가신인도가 추락할 게 뻔하다.

중재 과정에서 변호사 셋이 고려하는 가치는 오로지 투자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가 하나뿐이다. 미국 기업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 사이에서 벌어졌던 중재의 결정문은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환경보호 조치와 같은 동기라든가 의도 등은 고려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알려진 ISD는 90년대 후반부터 그 수가 폭증하고 있는데 정확히 몇 건이나 되는지 집계할 수가 없다. 중재 심판은 종국적이므로 차후 국제사법재판소 등에 제소할 수도 없다.

ISD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간접 수용’이라는 개념도 매우 위험하다. ‘수용’은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취득하면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고, 몰수는 보상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국유화는 대규모 몰수를 말한다. 그렇다면 간접 수용은 무엇인가? 국가가 직접적으로 소유권을 가져가지 않아도 재산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경우 수용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개인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거리에서 토스트 가게를 꾸리고 있다고 가정하자.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토스트를 많이 구입하여 장사가 잘되고 있는데, 동사무소에서 신호등을 없애고 지하도를 뚫어서 이용객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면 간접수용에 해당한다.

간접 수용을 참작하면 국가가 산업 정책을 펼칠 여지가 거의 없어진다. 국가가 전략 산업을 선정했다면 여기에 선택되지 않은 외국인 투자 기업이 제 자산을 침해받지 않을 리가 없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개방해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웃기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펼칠 필요도 없이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한 번 펼쳐 보자. 자유무역을 하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어떻게 되는가. 비교 우위가 낮은 산업은 도태된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 정부는 한민족은 장보고의 후예니까 잘해낼 수 있다고 한다.

또 오늘날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던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는 추세인데, 미국 택배회사 UPS의 경우 캐나다 정부가 운영하다 민영화한 택배 회사가 예전에 국가 지위에서 누리던 설비 등을 갖고 경쟁하는 게 불공정하다고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상태이다. 이 사건에서 캐나다 정부가 배상금을 물게 되면 앞으로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는 모두 철저히 시장의 논리에 따라 공급될 터이므로, 수지가 나지 않는 벽지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없게 된다.

투자자가 이렇듯 어마하게 넓은 범위에 걸쳐 국가를 중재로 회부할 수 있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권리를 지닌 투자자의 범위도 무지하게 넓다. 벡텔이라는 미국 회사가 볼리비아 어느 지역에 상수도 공급을 맡았는데 시장 논리대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1인당 한 달 평균 임금이 100불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수도 요금이 평균 30불이 나오게 됐다. 돈이 생기면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 물값을 내야 할지 고민한다는 농담이 생겼다. 사람들이 빗물을 받아 용수로 쓰기 시작하자 벡텔은 볼리비아 정부에게 이를 금지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항의하던 사람들을 진압하던 와중에 17명이 죽었다. 계엄이 선포되었는데도 소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볼리비아 정부는 벡텔을 추방했다. 벡텔은 ISD로 볼리비아 정부를 중재 판정소로 불러 내었다.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와 FTA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볼리비아와 미국 사이에는 BIT가 없지만 벨기에와 볼리비아 사이에는 BIT가 맺어져 있다. 벡텔은 벨기에에 유령 회사를 설립했다. 벨기에에서는 법인 설립 요건에 거의 제한이 없다. 그 유령회사가 벨기에 투자자의 이름으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받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협정문 어디에도 투자자의 개념에 최대 주주라는 말이 없다. 소액 주주는 물론 기업의 채권단까지 투자자에 해당한다.

정부 관료들이 ISD를 반드시 한미FTA에 포함하려는 의도는 아마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에 쐐기를 박아 다시는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려는 데 있어 보인다. 투자자가 투자에 매력을 느끼는 금융허브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 같은데 국민경제 순환 구조가 붕괴한 상태에서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베네룩스 같은 모델 도입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대선 후보에 나선 사람들이 경제 성장률 7%를 언급한다. 작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4.9%였다. OECD 국가 중에 높은 편이다. 대기업은 이윤으로 투자와 고용을 하기는커녕 자사주 매각을 통해 소유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 경제와 사회 영역을 잇는 혈맥을 다시 세우려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한미FTA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이 비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민 가는 일에 대한 판단과 유사한데 다른 나라로 건너가서 일이 잘 풀릴지, 잘 안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그 불확실한 미래를 감싼 안개에 대한 이미지를 보고 결정을 내린다. 미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찬성 여론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싶다.

0 Comments on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성격과 위험성

  1. 저는 에 나온 정태인 씨 강연부분에서 ISD 관련 내용을 읽었습니다. 읽고나니 아찔하던데 과연 우리나라가 이에 잘 대응할지… 걱정이네요.
    문제는 이런 부분이 별로 여론화되지 않고 어물쩡하게 넘어가며 FTA 체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인데, 설령 여론화되도 또 괴담이라고 하며 멋대로 할 거 같고. 답답하네요.@_@;;

    1. “이런 부분이 별로 여론화되지 않고 어물쩡하게 넘어가며 FTA 체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인데” 바로 이 부분에서 저는 그 원죄를 올바른 경제적 세계관을 견지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정태인씨도 그 정부에 몸담은 만큼 죄를 물어야 하나 어찌 보면 그나 이정우 교수 정도는 현실참여 비판세력이자 자신의 과오를 철저히 인정하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정도로 봐줘야겠죠. 나머지 정치적으로는 급진적인 자세를 취하되 경제적으로는 천박한 바닥을 드러내는 노무현 이하 소위 386것들은 이제라도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똑바로 인식하고 한나라당의 FTA체결을 저지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 ‘어쩔수없이’ , ‘개방하지않는나라는100%망한다’ , ‘전세계적 조류’ 라고 하길래 저도 어쩔수없음 협상이라도 잘하면 좋지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또 아니군요

    1. 과연 노무현 정부가 어떠한 동기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전 세계적 조류에 따라야 한다’라고 설파했는지에 대한 진행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어떻게 경제정책을 짜야할지 고민하던 새 정부에게 미국유학파 신자유주의 추종 학자들 혹은 기업연구소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우리나라를 금융허브로 만들어야 되고 그러자면 세계최고의 국가 미국의 수준으로 제도와 법률, 그리고 경제시스템을 정비하여야 하니 한미FTA를 조기에 체결합시다’라고 꼬드긴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간나면 한번 뒤져볼만한 주제일듯…

  3. 홍기빈 씨는 소유제도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 저작권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미 FTA에서 ISD는 진짜 극약 중에서도 극약이라, 이게 작동하기 시작하면 헌법 119조 2항은 굳이 개헌으로 삭제할 필요도 없이 사문화되어 버리겠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조약에 대한 사전 위헌 심사가 불가능한 게 진짜 큰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1. 한미FTA면 헌법은 한방이죠. 헌법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식, 국민정서 뭐 이런 것들도 한방에 날아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4. 강연을 직접 들은 듯 생생한 정리네요. 永革님 블로그도 즐겨찾기에 추가!

    한미 FTA를 전체적 관점에서 조망한 홍기빈씨의 글은 프레시안에서도 읽은 적이 있는데 분량은 짧지만 저는 우석훈씨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보다는 홍기빈씨의 글이 훨씬 좋더군요.

    1. 저는 홍기빈씨의 글을 읽어본 적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 내용이 팍팍 머리에 들어오게 잘 설명이 되어 있더군요. 부분부분 송기호 변호사의 사례와 겹치기는 하지만요. 여하튼 소중히 보호해야할 분이로군요. 🙂

  5. foog님을 포함해서 영혁님과 한미 FTA를 염려하시는 많은 분들과 좀 나누고 싶은 시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한미 FTA중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염려하시는데,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 몇 년간은 이 제도가 미국보다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써 먹힐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일단 트랙백으로 제 글을 올리기는 했지만 혹시 몰라서 링크를 마져 달아 봅니다. 워낙 오래된 포스팅에 다는 댓글이라 보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리먼 브러더즈, 대박과 쪽박의 기회를 지켜보며
    http://crete.pe.kr/4218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천천히 읽어보고 나중에 댓글 자세히 올리도록 하죠. 일단은 여기 쓰신 글로만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 같다고 해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찬성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어떤 우리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틀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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