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 그 1년 후

인디펜던트紙가 신용위기가 도래한 지 일 년여에 즈음하여 ‘Credit crunch one year on’이라는 제목으로 금융계 인사 10명의 감회를 엮은 기사를 게재했다. 이 중 현재 콜롬비아의 교수로 재직중인 저명한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씨의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다른 이들의 글 중에서도 쓸만한 글이 있으면 따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Joseph Stiglitz, professor at Columbia University and 2001 recipient of the Nobel Prize for economics

미국과 영국에서 기업이윤의 약 40%가 금융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산업에 대한 그런 후한 액수를 정당화시켜주는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 이 산업은 위험을 관리하고 자본을 할당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음 그것들은 그 둘 다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1년 전에 나는 현재 드러난 것만큼 나빠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는다.

베어스턴스, 패니메, 그리고 프레디맥의 구제는 파렴치한 짓이었다. 유동성에 관해서는 무엇인가는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도덕적 해이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취해질 필요는 없었다. 이 구제는 처음 문제를 야기했던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베어스턴스 주주들은 10억 달러를 손에 쥐고 걸어 나갔다. 패니와 프레디를 위해 납세자들은 그들(패니와 프레디 : 역자주)의 주주와 채권보유자들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공수표를 내주십사 요구당하고 있다.

미국은 너무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반응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비하라는 것이다. 그보다 우리는 사회간접자본, 대중교통시설, 그린테크놀로지에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여야 한다.

은행들이 자율규제를 하고 자신들만의 위험관리 시스템과 평가기관에 의존하여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터무니없다. 우리는 왜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 문제는 규제자들이 그들이 규제하고 있는 사람들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한때 파티가 열렸었고 아무도 흥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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