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y Town

아침 회의가 끝나 모두들 서둘러 자리를 뜨고 있던 어수선한 상황에서 반장이 김정훈에게 다가 왔다.

“이봐 김 형사 내 사무실로 잠깐 오게.”

김정훈은 5분후 반장의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의자에 앉아 있는 반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거기 앉게.”

김정훈은 반장이 가리킨 검정색 가죽의자에 몸을 기댔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네. 어느 소식을 먼저 듣고 싶나?”

“이왕이면 좋은 소식먼저 듣고 싶군요.”

김정훈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반장은 그의 책상에 놓여있던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김정훈을 바라보았다.

“상반기 업무적격테스트에서 자네가 서(署)에서 가장 성적이 좋군.”

“잘됐군요.”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부하직원을 반장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로 기쁘지 않은 모양이군.”

“아뇨. 기쁩니다.”

그 대답역시 감동과는 거리가 먼 대답이었다.

“이제 나쁜 소식이네.”

다시 한번 반장은 김정훈의 표정을 살폈다. 예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업무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네.”

“그거 재미있군요.”

“자네의 성적은 각 부문 모두 최상위이지만 심리테스트에선 꼴찌네. 이렇듯 기복이 심한 성적 때문에 업무부적격 판정이 내려진 거야.”

무표정한 김정훈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업무부적격 판정이란 흔히 내려지지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얼 말하는 겁니까?”

김정훈의 표정이 변하는 걸 눈치 채고서는 반장은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이 업계를 떠나야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업계를 떠난다.

“우선 교육과에 가서 카운슬러와 상담을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만 가보게.”

그의 키는 190c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얼굴은 거인증에 걸린 사람 모양으로 이마가 돌출되어 있었다. 카운슬러치고는 평안함을 주지 않는 –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하는 – 얼굴이었다. 드디어 그 큰 입이 천천히 열렸다.

“실연(失戀)의 아픔이 있군요?”

“그게 중요합니까?”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요.”

“극복했소.”

문득 언젠가 여자와 비스킷을 나눠 먹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입에서 그녀의 입으로 비스킷을 넘겨주면서 바라본 그녀의 아름다운 눈썹이 떠올랐다. 그 미간사이로 거인 카운슬러가 비집고 들어와 빈정거렸다.

“극복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

김정훈은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카운슬러의 억지를 무시하기로 했다.

“실연으로 인해 망가진 당신의 감정체계가 업무수행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형사도 인간이오.”

김정훈이 대답하자 카운슬러는 마치 미끼에 걸린 고기를 바라보는 듯한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뛰어난 형사는 인간이 아니오.”

“그건 또 웬 궤변이지?”

“경찰국장, 당신 반장 모두 인간이기를 거부했죠.”

김정훈은 문득 생기는 호기심에 상체를 바짝 당겨 앉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비단 당신처럼 감정체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뿐 아니라 좀더 상위직급으로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

카운슬러는 마치 누가 이 말을 들을까 주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찬찬히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감정제거수술.”

“감정제거수술?”

“형사에게 있어 감정개입은 치명적인 것이오. 이러한 사실은 형사정책연구원의 비밀프로젝트에서 보고되었고 이 보고에 따라 지난 16차 전국경찰국장회의에서 감정제거수술의 도입이 결정되었소. 그때 이후 모든 경찰간부는 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는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었소.”

김정훈은 짜증나는 표정으로 다시 상체를 의자에 한껏 기댔다.

“당신은 감정제거수술을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따른 결과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날 저녁 바에서 마티니를 마시던 김정훈의 뇌리에서는 그 말이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감정제거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수술날짜는 8월 둘째 주로 결정되었다. 반장은 옳은 결정을 내린 거라고 김정훈을 위로했다. 수술전날 저녁 김정훈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수술 전 2주일동안은 절대 금주하라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한 채 그의 어두운 방안 소파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락음악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웃집의 패기만만한 펑크족이 음악 감상 중인 모양으로 멜로디는 미약했으나 강한 비트가 건물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김정훈은 빈 잔을 채우며 지나간 추억들을 가슴에 떠올렸다. 4월의 잿빛하늘, 6월의 푸름, 9월의 낙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했던 12월의 여인을….

수술은 간단한 것이었다. 간단한 각막수술이 있었고 그 뒤에 앉은 채로 귀에 총한방을 발사한 것이 끝이었다. 총에서 발사된 아주 작은 크기의 캡슐이 뇌를 떠다니며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이 의사의 설명이었다.

병원을 나선 김정훈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상쾌한 바람이 부는 더없이 쾌청한 하늘이었다. 그레이타운(Greytown)이라는 도시이름이 어색할 지경이다. 고개를 내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김정훈은 사람마다 어렴풋한 색깔이 배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실적은 놀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가 1년 동안 공을 들인 거물 마약밀매업자를 잡아들이는데 성공했고 그 외에도 몇 건의 마약사건을 해결해냈다. 그는 경찰서에서 월마다 시행하는 ‘이 달의 형사’로 선정되었다.

어느 한가한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반장과 김정훈은 반장의 사무실에서 한가로이 헤이즐넛을 즐기고 있었다. 반장이 피워 문 여송연 향기가 사무실안을 떠다니고 있었다.

“최근 자네 심리치료의 효과가 눈부시더군.”

“고맙습니다.”

“다음주에 화잇타운(Whitetown)에 가줘야겠네. 그 곳에서 대규모의 마약거래가 있을 거라는 정보가 있어.”

화잇타운, 그가 1년 전에 머물렀던 곳이다. 전 같으면 그 이름만으로도 아픔을 안겨주었을 그런 곳이다. 김정훈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매리제인(mary jane)건 말씀이시군요?”

“역시 벌써 알고 있었군.”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반장이 대답했다. ‘저 녀석은 너무 똑똑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눈에 비치던 김정훈의 모습에 붉은 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김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에 뒤를 돌아보며 반장에게 물었다.

“반장님 눈에는 제가 무슨 색으로 보입니까?”

“물론 무색이네 자넨 부하직원일 뿐이니까. 자네는 내게 색깔을 느끼나?”

“저도 물론 무색입니다.”

하며 문을 닫고는 나가버렸다.

사무실로 향하는 김정훈의 눈에는 온통 붉은 색뿐이었다. 수많은 범죄자들, 창녀들, 몰염치한 들의 몸은 붉은 색을 뿜어내며 경찰서안을 오염시키고 있었다.

10월의 첫째 주 수요일 오후 화잇타운에 도착한 김정훈은 그녀가 머물고 있는 – 혹은 그녀가 머물렀던, 그러나 사실여부는 중요치 않다 – 빌딩의 1층에 있는 스낵바에서 해물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파스타를 입안에 우물거리면서 밖을 바라본 김정훈의 눈에 한 남루한 밤색코트 차림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다!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사이 무색이던 그녀의 모습이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걸 느꼈다.

‘그래 저 여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여자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김정훈은 지금이 아니면 남은 평생 그녀와 말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예언적인 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스낵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챘다.

“너.”

하고 김정훈이 말했다. 그가 팔을 낚아채는 바람에 여자는 몸을 돌려야 했다. 그녀는 짧게 ‘오랜만이군요.’라고 대답했다. 김정훈은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강렬한 코발트빛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김정훈의 양복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익숙한 동작이었다. 양복 바깥으로 나온 그녀의 손에는 김정훈의 리볼버가 쥐어져 있었다. 김정훈의 눈에는 방아쇠를 당기는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붉은색이 순식간에 그녀의 팔, 어깨, 가슴으로 퍼져나가 그녀의 온몸이 붉은색으로 보였다.

김정훈의 하얀 셔츠역시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는 어이없게도 과일가게 문 앞에 진열된 오렌지 상자위로 넘어졌다. 오렌지가 여기저기 굴러 떨어졌다. 여자는 총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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