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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the Subway be with you

HP가 워즈니악의 제안을 거절할 때

자신이 설계하는 새로운 컴퓨터가 애플 사의 자산이 된다는 데 동의한 이후에도 워즈는 그것을 자신이 몸담은 HP에 먼저 제공해야 한다고 느꼈다. [중략] 그래서 워즈는 1976년 봄에 HP의 직장 상사와 경영진에게 자신의 고안물을 보여주었다. HP의 경영진은 큰 인상을 받았지만 HP에서 상품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광이 취미 생활로 만들 법한 물건에 불과하고, 또 HP가 타깃으로 삼는 고품질 시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워즈는 회상한다.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러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애플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스티브 잡스, 윌터 아이작슨 저, 안진환 역, 민음사, 2011년, pp 116-117]

기업이 중요한 맥락에서 그릇된 의사 결정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순간이 있는데 HP에게는 바로 이 순간이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HP에 근무하던 중 자신의 천재성으로 고안한 세계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를 일종의 도덕적 양심에 따라 – 심지어 직무발명도 아닌 것을 – 회사에 선보였는데 HP는 그것을 퇴짜 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제품의 권리는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 이후의 그 둘이 이루어낸 작업들은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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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s Vonhuben (ich selbst) – Self-photographed, Copyrighted free use, Link

구황식이 힙스터의 문화가 된 세상

사실 패전 후 일본의 분식에는 밀가루뿐만 아니라 호박이나 감자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분식까지 포함한 ‘중앙분식협회’였습니다. 그럼 당시 어떤 분식이 소개되었을까요? ‘생활과학’ 1946년 9월호에서 발췌해봅니다.

  • 고구마순 당고 : 고구마의 잎과 덩굴의 가루가 베이스
  • 쌀겨 찐빵 : 쌀겨가 주재료
  • 소바네리 혹은 소바가키(메밀국수 반죽떡) : 메밀가루가 베이스
  • 이소노카오리무시(바다향찜) : 해초의 감태 가루가 베이스

여기서 말하는 분식은 ‘먹을 수 없다고 취급되던 것까지 가루로 만들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헝그리 정신에 기초한 음식인 듯합니다.[일본요리 뒷담화, 우오쓰카 진노스케 지음, 장누리 옮김, 글항아리, 2019년, pp130~131]

분식(粉食)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있어 가져왔다. “가루로 빻은 음식”라는 의미의 분식은 우리가 평소에 먹거리로 삼지 않던 것들, 즉 쌀겨나 고구마의 잎 등까지도 먹을 만한 음식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을 의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시도는 역시 처참한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에도 그 표현 역시 그대로 가져다 쓰며 고스란히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그 빈곤의 시절이 일본의 그것보다 더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그 ‘분식 장려의 문화’를 경험한 세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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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TsengBudae jjigae, CC BY 2.0, Link

즉, 한동안 쌀이 귀했던 우리는 박정희 집권 시기에도 여전히 쌀과 잡곡을 섞어 먹는 혼식(混食)과 분식을 장려했었고, 특히 주말에는 분식을 권장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직 토요일이 근무일이었던 그 시절, 직장인들은 토요일이면 회사 근처 중국 음식점에 가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사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러한 습관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의 행동처럼 박정희 이후의 시기에도 90년대쯤까지도 이어져 토요일이면 업무 단지 근처 중국 음식점은 손님으로 붐비곤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제는 과거 구황식(救荒食)이었던 그 한국화된 분식이 일종의 한식(韓食)으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한류의 붐을 타고 해외에 Korean Food Culture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1 본래 의미의 분식이라고는 하기 어렵겠지만, 대표적으로 한국식 라면, 부대찌개, 떡볶이, 한국식 핫도그 등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싼 맛에 칼로리 보충을 위해 먹던 음식이 힙한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재밌는 시절을 살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선 정치에 대한 상념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可用財源을 적절히 배분하고 어느 정도 경제를 정부 통제하에 두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물론 정부가 통제한다고 해서 예컨대 「인도식 5개년계획」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런 정책은 인디커티브플랜(Indicative Plan)이어야 하며 민간기업을 최대한 참여시키고 그들의 역량을 활용해 가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 자금이 많이 드는 것, 민간이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부문을 정부가 담당하는 식의 개발계획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소신이었다.[부흥과 성장, 송인상 저, 21세기북스, 1994년, p155]

이승만 정부 때 한국은행 부총재, 부흥부 장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재무부 장관 등을 지냈던 경제관료 송인상 씨의 회고록 중 일부다. 송 씨는 한국은행 부총재 시절 포드재단의 기금으로 운영되던 EDI(Economic Development Institute)에 6개월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이 기관은 각국의 고위 경제관료들을 모아 경제정책에 대한 교육을 시켰던 기관이다. 송 씨의 술회에 따르면 노벨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등 꽤 화려한 강사진으로 커리큘럼이 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교육과정을 마련한 데에는 당연히 개발도상국의 경제관료들에게 미국식 시장경제의 도입을 권장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겠으나 송 씨의 회고를 살펴보면 꼭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만을 전파한 것이 아니라 당시 각국 경제개발 과정에서 시행되고 있던 계획경제, 통제경제, 방임경제 시스템 등의 장단점에 대한 토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송 씨는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 인용문과 같은 경제정책에 대한 나름의 주관을 정립하게 된다.

어쨌든 민간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전후 개발도상국들에게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체제를 불문하고 통제경제는 일종의 불가피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권력집중과 자원집중의 수단을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대의민주제 등 정치선진화는 체제를 떠나서 상당히 요원한 일이었고 부패는 필수적으로 뒤따랐다. 이승만 정권 역시 그러했고 냉철한 이코노미스트 행세를 하던 송 씨도 재무부 장관 재임 시절인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연루된 뒤 옥살이를 했다.

요컨대 그 와중에 한국이 더 이상 퇴행하지 않고 다행히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제1세계가 도울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특수성과 독재정권을 절차적 정당성이 어느 정도 확보된 대의민주제로 전환시킨 국민적 저항의 존재 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요즘의 세계를 보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많은 선진국조차 다양한 모순으로 인해 뿌리가 흔들리는 광경을 보면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선 새로운 정치 체제라야 경제와 사회를 구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국이 예정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게임

그러나 연준이 소비자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산 가격 또한 올렸다. 이는 호니그와 같은 은행 감시자에게 경고등을 울리는 인플레이션의 한 형태였다. 캔자스시티연준 지역에 있는 은행들에게 주요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농장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랐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도 그렇고, 유정이나 시추공의 가치도 그렇다. 이러한 자산들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서 담보가 된다. 그리고 가치가 올라가면 보다 공격적인 대출을 자극하게 된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은행들은 농장주, 기업,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대규모 대출을 확대했다. 호니그는 자산 가치가 매우 빠르게 상승하면 건물이 준공되는 순간 대출이 대환(refinance)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단기 대출이 연장되는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The Lords of Easy Money : How the Federal Reserve Broke the American Economy, Christopher Leonard, 2022년, Simon & Schuster]

연준 혹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금융회사와 개발업자, 그리고 심지어 정부가 반드시 인플레이션을 – 특히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 – 싫어하는 것은 아닌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금융회사 담보의 건전성이 높아지고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 개발업자는 금융회사의 공격적인 대출을 통해 더 높은 레버리지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 정부는 자산 가격이 높아지는 만큼 세금을 더 많이 걷을 수 있다. 단기 대출은 낙관적 시나리오에 따라 개발사업의 보다 이른 단계에서부터 가능하게 되고, 건물이 준공되면 또 다른 공격적인 금융회사는 앞선 대출을 채간다. 시장경제에서의 금융자본의 순기능이 잘 작동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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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n Shebs, CC BY-SA 3.0, Link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파국적 비극으로 끝장난 대표적 사례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라 할 수 있다. 사태의 원인으로 그동안 수많은 상황이 언급되었지만, 어쨌든 근본적인 원인은 자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시장참여자들이 자산 가격을 엉터리 자산실사, 분식회계, 위험한 부외금융 등을 통해 위험을 감추고, 떠넘기고, 외면한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이랄 수 있다. 물론 알다시피 그 이후 글로벌 경제는 그 모순을 그대로 유지한 채 플레이어만 몇몇 교체하고 똑같은 게임을 다시 진행 중이다. 그사이 투자자산의 종류와 금융 국경은 보다 자유로워져서 판은 더 커졌는데, 상업용 부동산 등에서는 서서히 위험신호가 들려오고 있어 주의를 요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이 게임이 보다 위태하게 진행 중이란 점이 우려스럽다. 지난해 한국의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은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다. “영끌족”의 고통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급기야 레고랜드 사태, 둔촌주공 사업 등에서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무장해제하고 특례보금자리론 등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여 자산 가격을 원위치시켰다. 문제는 막대한 가계부채 비율과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 이 게임이 지탱할 수 있냐는 것이다. 판돈의 가격(금리)은 올라가고 새로 판에 낄 전주가 나서지 않는 한 언젠가는 판이 엎어질 건데 총선을 앞둔 정부나, 집값 하락이 두려운 집주인이나, 담보 부실화가 걱정스러운 은행은 모두 또다시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리파이낸스해줄 것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채로

40%의 확률로 전망하기에 대해

경제학자와 통계학자들에 관해 좋아하는 오래된 농담이 하나 있다. : 미래의 불황에 대한 예측을 요청받았을 때 당신은 언제나 “약 40%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왜? 50/50은 동전 던지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질없다. 75/25는 너무 일방적이다. 40%는 딱 적절한 예측이다. 40%라는 예측이 유용해보이게 해주는 것은 만약 불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당신은 언제나 “내가 예측했듯이 불황은 확률이 낮은 이벤트였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만약 불황이 발생했다면 당신의 경고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발생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확률로(예를 들면 40%) 경고한 것이다.[Can Economists Predict Recessions?]

이 블로그에서도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의 우리나라 주택시장에 대한 엉터리 예측을 조롱한 글을 몇번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기존의 경제적 현상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춘 이라 할지라도 그 패턴을 경험삼아 미래를 예측하기란 – 물론 여러 이유로 본인의 의견과는 다른 시장이 좋아할만한 의견으로 인기를 얻기 위함도 있다 –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용한 농담은 그러한 만만치 않은 경제학자(또는 통계학자, 또는 분석가)의 태생적 임무의 고단함에 관한 농담이라 생각된다.

경제에 관한 입장 차이는 흔히 미래에 대한 이러한 당파성 혹은 주관적 희망이 섞인 예측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 시장자유주의자라면 시장이 어떻게든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라 예측하고 사회주의자라면 시장이 가진 고유한 모순으로 인해 현재의 난관이 심화될 것이라 예측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 미래예측을 40%의 확률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면 본인의 분석력에 대해 큰 비난은 받지 않을지 몰라도 양측의 호감을 얻는데는 실패하거나 미디어적 상업성이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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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critica, CC BY-SA 3.0, Link

그런데 어쨌든 누군가는, 특히 경제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이는 미래에 대해 40% 이상의 확률로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현재의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감세를 해야 한다’ 혹은 ‘증세를 해야 한다’의 의사결정은 40%의 확률을 본인이 원하는 더 개선된 이벤트의 확률로 전환시키기 위한 로드맵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 그 과정은 상당 부분 좌충우돌이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죽고, 금리를 낮추면 자산거품이 도래했다.

그 즈음이 되면 경제학자가 근엄한 목소리로 그 좌충우돌에 대해 ‘내가 40%의 확률로 부작용을 예측하지 않았느냐’하고 꾸짖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좌충우돌이 시행착오를 통해 사회의 정치적 합의로 도출되는 것이라면 희망이 있을 텐데 오히려 그것이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정치적 양분화만 가속화시킬 우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진다면 경제학자는 더 이상 40%의 확률을 제시할 여유가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 비극이다.

연준의 금융만능주의

9월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기간 동안 호니그는 연준이 하고 있는 작태에 대해 가장 압축적이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미국의 심각한 경제침체가 은행 대출의 기회 박탈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이미 빌려줄 돈이 많았다. 각종 심각한 문제가 악화되어가는 실물 경제에서의 진정한 문제는 연준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금융 시스템 밖에 놓여있었다. 금리를 제로 상태로 유지하고 금융 시스템에 6천억 달러를 쏟아붓는 것은 – 위험한 대출이나 금융적 투기 이외에는 갈 곳이 없는 돈 –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기능장애를 해결할 수 없었다. “난 고금리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난 그런 적도 없어요. 난 제로 금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고출력의 수십조 달러를 투입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니그가 덧붙였다.[The Lords of Easy Money : How the Federal Reserve Broke the American Economy, Christopher Leonard, 2022년, Simon & Schuster]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 있던 글로벌 금융위기에 즈음하여 연준이 어떠한 정책을 시도하였고 이로 인한 내부의 갈등과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인용한 부분은 당시 캔자스시티 연준 총재이자 FOMC의 멤버였던 토마스 호니그(Thomas M. Hoenig)의 활동과 견해에 관한 에피소드다. 호니그는 당시 열린 FOMC에서 2010년 무렵부터 버냉키의 제로 금리 및 양적완화에 반대하며 버냉키에게 박힌 인물이다. 결국 그의 외로운 투쟁이 헛되게도 연준은 엄청난 돈을 경제 시스템에 쏟아부으며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양적완화라는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의 시대는 당시의 경제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후과는 어쩌면 최근 몇 년간의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라는 또 다른 ‘뉴노멀’의 시대를 초래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고찰은 뒤로 하고 내가 저 글을 인용한 이유는 호니그의 금융만능주의에 대한 경고에 어느 정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금융만능주의란 실물경제가 금융과 긴밀하게 결합하여 작동하기 시작한 이후 실물경제의 모순을 금융적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을 묘사하고자 생각해낸 표현이다.

실제로 현대의 경제 시스템에서 화폐, 채권, 주식, 증권화, 유동화, 보험 등 실물경제를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한 각종 금융적 수단이 고안되면서 금융은 실물경제의 활력을 불어넣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문이 된 것이 사실이다. 개인이 집을 한채 사더라도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라는 금융수단이 아니고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경제행위가 되었다. 그렇기에 금융을 통한 유동성 공급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에서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에 큰 몫을 담당하였고, 전 세계 경제는 통합된 금융 시스템으로 묶여 돌아가는 생태계로 발전하여 왔다.

한편으로 이미 많이 알고 있다시피 금융은 한편으로 그 자체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주택시장에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을 공급하여 전체 경제 시스템이 망가졌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들 수 있다. 결국 금융 시스템이 실물 경제에 공급하는 유동성의 적정량은 실물 경제가 창출해낼 수 있는 사용가치(worth)가 감내해낼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다. 만약 유동성 공급이 이 가치를 초과하게 된다면 일부 자산의 가격에 거품이 끼면서 사용가치와 무관한 교환가치(value)가 형성될 것이다. 이것이 허다한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다.1

2010년 버냉키의 시도는 실물가치가 형성되고 있지 않은, 즉 기초체력이 없는 경제 시스템에 양적완화라는 근육 촉진제를 억지로 주입하였던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단기간 경제는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촉진제의 비용은 지금 연준의 재무제표, 과도하게 공급된 부동산, 미국채를 잔뜩 사들여놓은 주요국의 외환보유고 등에 임시로 쌓여있다. 이러한 거품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실물 경제의 기능마비로 인해 더욱 커졌고 이로 인해 파월의 연준은 그간의 제로 금리를 끝내고 고금리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해 한국의 아파트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많은 시장참여자는 연준의 정책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실물과 금융이 글로벌 단위에서 연계가 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시장참여자도 금융정책 기관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연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다시 원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 관심도의 증가가 연준이 할 수 있는 능력의 증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교환가치의 증감이 사용가치의 증감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금융 GURU들의 오만함일 것이다.

한 샌프란시스코의 인공지능 개발자가 올린 트윗을 보고 느낀 단상

트위터에 올라온 글이다.

“민트플라자에서 월 700달러를 내고 30일간 머물 예정이다. 몇몇 인공지능 개발자들과 독립적인 해커들이 여기 머문다.”

라는 트윗과 함께 그가 잠을 잘 캡슐의 사진을 올렸고, 이어 타래로 제법 그럴듯한 그 캡슐이 설치되어 있는 곳의 공용 공간의 사진들을 올렸다. 많은 이들이 ‘합법적으로 지어진 공간이냐’, ‘따로 책상은 있느냐’, ‘화장실은 더럽지 않느냐’, ‘주차는 어떻게 해결하냐’ 등의 질문을 던졌고 원래의 글을 올린 이는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고 있다.

어쨌든 이 공간을 보면서 생각나는 공간은 우선 창도 없이 사실상 잠만 자는 값싼 숙소의 역할을 하는 한국의 고시원이나 일본의 캡슐호텔이다. 노동자 이하 빈곤층이 장기적으로 묵는다는 점에서는 고시원이, 공간 디자인의 유사성에 있어서는 캡슐호텔이 어울린다. 요컨대 인공지능 업계에서 근무하는 실리콘밸리의 노동자가 묵을만한 제대로 된 주거지의 느낌은 아니다.

런던, 뉴욕 등 주요 대도시의 높은 임대료는 팬데믹 이후 임대료는 더욱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어떤 노동자는 임금의 절반 가까이를 집세로 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영상을 올렸고, 캡슐에서 지내겠다고 트윗을 올린 이가 머무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높은 집세로 인해 도시경쟁력이 악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도시가 공동화/슬럼화/범죄화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의식주 중에서 노동자가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주(住)다. 대도시는 생산과 소비의 입지가 우월하다는 점에서 높은 주거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감안하더라도 고임금의 노동자마저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용으로 인해 자산소유자가 노동소득자로부터 전유하는 몫이 계속 커진다면 그것은 공멸의 길임은 상업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사태가 잘 말해주고 있다.

부동산이나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때로 신규로 진입한 이가 주택 매입이나 권리금 차익을 통해 일정 정도 이윤을 향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노동자나 자영업자는 노동소득을 목적으로 근무지 근처에 거주하거나 장사를 한다. 그들 대부분이 이제 대출을 통해 자산을 보유하고 이에 대한 차익을 기대하기에는 자산은 너무 과점되어 있고 기대 인플레는 낮기 때문이다.

솔직히 저 트윗을 보고 처음 떠올렸던 것은 고시원이나 캡슐호텔이 아니라 19세기 말 노동자나 홈리스들이 숙소로 삼았다는 ‘관(棺)으로 만든 여관(coffin hous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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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uthor – West, Rebecca (1996). London. London Crescent Books, a division of Random House Value Publishing, Inc (Avenel). Public Domain,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