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부동산

금융위기의 진원지에 존재하는 여전한 위기

26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재고는 이 나라의 주식시장의 총액보다 약간 더 많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층이다. 11조 달러에 달하는 부채의 미국 모기지 금융 시스템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금융 리스크가 가장 크게 집중된 곳일 것이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약 1조 달러의 모기지 부채를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어 국제 금융 시스템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가혹한 경기침체기에 폭발한 이래 10여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Comradely capitalism]

전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이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 여부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그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은 미국 주택시장의 부침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미국 주택시장의 자산 규모는 단일 시장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는 당연히 수많은 투자자들과 그들을 돕는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 풍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의 풍경이었고, 그 이후의 상황은 잘 아는 바와 같다.

두 번째의 큰 변화는 2008년 12월의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긴급 구제조치가 정부의 더 커다란 역할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 전에는 민간이 운영했던(비록 암묵적으로 보증은 하고 있었지만) 모기지 회사들인 프레디맥과 패니메의 대주주가 됐다. 이들은 이제 “후견체제(conservatorship)”, 종결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 일종의 명목상의 한시적인 국유화 체제 하에 있다. 다른 증권화 업자들은 퇴출했거나 파산하였다. 이는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이루어졌던 부채의 증권화가 이제 거의 완전히 국영화됐음을 의미한다.[같은 글]

이코노미스트의 저 기사 제목을 뭐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인용문의 맥락에서 보자면 저 제목은 “동지적 자본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는 현 체제의 상류에 거슬러 올라가면, 즉 전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을 좌우하는 그 시장은 국유화됐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을 묘사한 기사의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것이다. 요컨대 2008년 이후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체제는 사회주의라는 게 기사의 논지다.

한편 “동지적 자본주의” 성향은 채권자 현황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는데, 정부 모기지 채권의 27%에 해당하는 1조8천억 달러의 채권을 Fed가 매입했기 때문이다. 즉, 이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전체 채권 중 60% 이상의 – 심지어는 80% 이상까지 – 보증부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다시 Fed가 매입하여 가동시킨 시장이 바로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이란 의미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그 시장의 주요 공급자와 주요 수요자가 정부부문인 시장, 그렇다면 이 체제는 “시장 사회주의”인가?


미국의 모기지 신규 발행분 조달 재원(출처 : 이코노미스트)

사실 그동안 미국정부는 국영 모기지 회사들을 다시 민영화시키려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1 Fed도 한시적으로 채권을 매입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상시적 조치가 되었다. “국유화”란 표현조차 “후견체제”라는 표현으로 세탁하였지만, 근시일 내에 이런 한시적 체제가 해소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미국 주택시장이 다시 호조를 보인다는 뉴스는 큰 의미가 없다. 리스크가 노출돼 폭락한 시장을 정부보증의 리스크 제로로 둔갑시킨 것은 닷컴버블의 변이인 닷거브버블(dot gov bubble) 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대안은 어쨌든 이들 국영 모기지 회사를 증자 및 수수료 인상 등의 방법으로 건전화시켜 민영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이고 또다시 주택시장을 깊은 악순환의 수렁에 빠트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부터 이미 프레디맥과 패니메는 “정부보증기업(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 : GSE)”이란 이름의 국유기업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보증부 채권이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하였었기에 민영화라는 대안도 사실 허상인 것이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민영화시키기에는 너무 크다.

“Too Big To Privatize.”

뉴욕 한복판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세 자매 이야기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는 서점에 관한 짧은 뉴스인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아 공유한다. 이 서점은 창업자의 세 딸이 각각의 영역을 맡아 운영 중이다. 어떻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아직도 운영 중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딸 한 명이 “우리가 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덕분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사업을 접었어야 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부동산을 팔라는 제의가 얼마나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는 “1년에 백 번”이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지키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에는 “어려움에 놓여 있는 책”이라고 대답한다. 책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교환가치가 높은 곳에서 어렵게(?) 서점을 운영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자영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건물주여야 한다는 시사점과 그런데도 교환가치가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장경제 하에서는 여유 있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역설을 말해주는 웃픈 에피소드다.

“자산소유자의 사회”에서 “투자자의 사회”로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송파와 가까운 위례신도시, 하남 미사지구 등에서 입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송파구 아파트 전셋값이 더 떨어지거나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면 갭 투자자들은 전세 재계약 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 [중략] 송파구에서는 월평균 500~600건의 아파트 매매가 이뤄진다.. 부동산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저금리로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갭 투자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송파구 전세 하락, 무슨 일이?…떨고 있는 갭 투자자]

전세(傳貰) 제도는 – 법률상의 전세권과는 구분되는 –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거래관행이다.. 또 다른 말로는 우리만의 독특한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즉, 월세와 달리 임차인이 집값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보증금을 내고 월세 없이 거주하는 이 독특한 관행 덕에 임대인은 집주인은 큰 돈 들이지 않고 집을 구입했다. 그런데 임대인은 왜 임대기간 동안의 월세수입을 포기했을까? 바로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집값 상승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이 월세수입보다 더 클 것이라는 기대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대출금을 “불확실성이 높은 거래에 투자되는 돈” funny money 으로, 다른 학생은 금융용어를 빌려 미래의 “위험회피 수단” hedge 또는 미래에 대한 내기에 건 돈 bet 으로 불렀다. 자신들을 채무자로 간주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문화[일상생활]기술지적 文化記述誌的 증거에 따르면 미청산 부채를 보유한 사람들은 지불기일을 넘기기 전까지 자신을 “채무자”로 여기지 않는다. 나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주택금융 채무자가 더 정확한 명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한다.[크레디토크라시, 앤드루 로스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6년, p169]

학자금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에서 채무자라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학생들의 일종의 자기최면 혹은 부정에 관해 서술한 내용이다. 어쩌면 부채경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현대인들 대부분은 이러한 자기최면을 걸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송파구의 아파트 소유자는 저자가 스스로를 칭하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주택 소유자”로 간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자산가치의 많은 부분을 임차인의 전세금과 대출로 채웠을 것임이 확실해도, 본인은 그것을 “갭투자”, 그리고 인용문의 학생들처럼 “hedge”와 “bet”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GMAC 회장 존 래스콥은 다음과 같이 공언했다. 신용을 제공하려는 GMAC과 같은 금융회사들의 노력은 “만인에게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야말로 사회주의자들이 인류에게 줄곧 환기시켜 온 바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의 경로는 파괴를 일삼는 사회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개량을 모색하는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해 추구될 것이다.” [중략] 애초 이러한 선전전은 미국 내에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차단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1940년대 후부터는 줄곧 사회주의 블록과의 전 세계적인 경쟁 구도하에서 진행되었다.[같은 책, p96]

부채 활성화를 통해 체제위기를 돌파하려 했던 20세기 초 자본주의자들의 비전은 현대에 이르러 더 진화하였다. 당시의 금융기업 회장이 희망했던 “풍요로운 안식처와 공정한 기회”를, 보다 적극적인 현대의 투자자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풍요로운 유동성과 공정한 갭투자를 통해 달성하려 하고 있다. 즉, 당시 위정자들의 목표가 “자산소유자의 사회(ownership society)”였다면 현대사회의 비전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자의 사회(investment society)”인 것이다. 어쨌든 전셋값 하락으로 송파구의 투자자는 신규 투자자금 몇 백억 원이 필요할 것 같다.

가계부채 단상

두 번째 척도는 2000~2005년 급격히 변화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간단히 말해 가계부채) 비율이다. 이는 일부 국가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체코공화국의 경우 2000년 8.5퍼센트였던 수치가 2005년 27.1퍼센트로 상승했고 [중략] 한국은 33퍼센트에서 68.9퍼센트로 증가했다. [중략] 성숙한 시장경제 국가들의 경우 비율 자체는 높지만 증가율은 신흥 시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를테면 일본은 2000년 73.6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77.8퍼센트, 미국은 104퍼센트에서 132.7퍼센트로 증가했다.[축출 자본주의, 사스키아 사센 지음, 박슬라 옮김, 글항아리, 2016년, p163]

읽고 있는 책에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가계부채 문제가 언급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세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있어 인용해보았다. 이 인용문에는 특이한 두 범주의 네 국가가 언급되어 있다.. 2000~2005년 기간 동안의 추세를 볼 때 체코와 한국처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진 않으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들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크지만 증가세가 둔한 나라들이 언급된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 증가세나 비중의 변화를 보면 확실히 한국은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나라랄 수 있다. 해당 기간 동안 한국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50% 미만에서 그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증가율은 109%다. 그 기간 동안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여 마침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벌어진 미국의 28%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이란 점이 인상적이다. 비중의 변화나 증가율에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두드러진 나라였다.

최근 추세는 더욱 극적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해당 비중은 160.7%다. 2005년 기준 132.7%였던 미국의 비중은 2013년 기준 115.1%, OECD의 비중은 135.7%다. 미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부채청산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의 경우 금융위기 당시에도 인위적인 저금리 상황을 조성하면서 제대로 된 부채청산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부채청산의 이연은 저금리 기조 하에 더욱 더 지연되고 있다.

2016년 1분기 기준 가계대출은 예금취급기관 825.5조원, 기타금융기관 332.9조원으로 도합 1,158.5조원이다. 이에 실질적인 가계대출이라 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대출 243.3조원을 합하면 전체 가계대출은 1,401.8조원에 달한다.1 이 대출규모는 가처분소득 대비하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위험하거니와 정부, 가계, 기업 부채의 비중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전체 부채 중 가계부채 비중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이렇게 질과 양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용도는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의 가계대출 증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 이후 급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투입됐다.2 덕분에(!) 최근 수도권 집값은 오르고 있다. 아파트고 단독주택이고 할 것 없이 경매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소위 “갭투자” 열풍과 브렉시트는 미국의 금리인상을 늦출 것이라는 예측 하에 불꽃은 더욱 더 화려하다.

관건은 그 불꽃이 언제까지 타오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한다. 올 8월부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의 일시상환이 시작된다. 연도별 주택매매 건수는 2015년 119만 건으로 사상 최대 건수의 주택거래가 이루어졌다. 2017~2018년 신규로 입주할 가구 수는 70만 가구로 예측된다. 과연 그때 현재 청약열풍에 편승한 이들이 모두 새 아파트에 입주할 것인가? 빚으로 산 집을 가지고 시도한 “갭투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멘붕 상태인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 펀드

The eastern part of the City of London, seen from the south bank of the Thames in February 2016
By 0x010C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8515449

총 90억 파운드 이상의 투자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상업용 부동산 펀드(commercial property fund)들이 월요일 환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중엔 AVIVA의 18억 파운드와 Standard Life의 29억 달러에 이어 영국에서 가장 큰 상업용 부동산 펀드 M&G의 44억 파운드 자산 포트폴리오가 포함되어 있다.[Brexit fears hit more UK property funds]

일종의 부동산 시장에서의 서킷브레이커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미 추락하는 파운드화로 인해 단기적으로 한차례 홍역을 겪었을 영국의 부동산 시장은 EU 시장의 접근성 하락으로 인한 금융 수도로서의 위상의 추락이라는 악재까지 겹쳐 중장기적으로 앞날을 한치 앞도 점치기 어렵게 됐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투자자와 펀드 간에 맺은 약정에 있지도 않거나 예외적으로 인정될 환매 금지를 발동시킨 것으로 보인다.

통상 상업용 부동산 펀드의 수익은 자산 취득 후 운영을 통해 얻어지는 영업수익(operating income)과 펀드 만기 시의 자산 매각을 통해 얻어지는 자본수익(capital gain)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상업용 부동산은 특히 자본수익이 수익 중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인데, 이 구조가 환매를 통해 망가지게 되면 펀드의 실패가 명확하기에 어쩌면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도 있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영국 부동산 시장에서의 서킷브레이커가 주식시장에서의 그것과 같은, 시장을 진정시키는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다시 환매가 허용되었을 때 부동산 시장이 진정 기미를 보일까? 혹시 브렉시트가 무효화되고 금융기관의 탈출계획이 무산된다면 모를까, 불특정다수가 많은 종류의 주식을 다루는 주식시장과 달리 영국 부동산이라는 한정된 시장이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The Big Short 感想文

전에 읽었던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스크린에 옮긴 동명의 작품 The Big Short를 어제 감상했다. 원작자가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금융폭탄” 중 하나인 MBS의 발명가 루이스 라니에리를 언급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자칫 영화감상의 맥락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CDS니 CDO니 하는 복잡한 금융공학 발명품의 개념을 모델, 요리사 등 비전문가의 입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달지 극중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한달지 하는, 굳이 구분하자면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타일을 빌려 매끄럽게 극을 진행시켜 나간다.

2005년 5월 19일 마이크 버리(Mike Burry)는 그의 첫 서브프라임 모기지 계약들을 성사시킨다. 그는 도이치뱅크로부터 6천만 달러의 신용부도스왑(이하 CDS)를 구입했는데,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채권에 각각 1천만 달러를 지불했다. [중략] 그는 모기지 풀 중 가장 부실한 것을 찾아다니며 수십 권의 투자설명서를 읽고 수백 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는 여전히 그때까지도 매우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들을 작성한 변호사들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읽은 유일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The Big Short, Michael Lewis, Norton, 2010, pp49~50]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마이크 버리는 영화에서 주택시장의 붕괴에 베팅한 소수 중에서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버리는 “음악이 흐르는 동안은 춤을 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외골수적인 기질을 타고난 펀드매니저였다. 그래서 그는 – 당연히 해야 할 일인 – 모기지 채권의 투자설명서를 샅샅이 읽고 시장이 붕괴될 것임을 직감한다.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마크 바움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역시 면밀한 점검을 통해 춤을 추는 대신 음악이 꺼질 것이라는 것에 돈을 걸고, 시장의 붕괴를 기다린다.

영화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뛰어난 안목으로 시장의 붕괴를 예측했는가 보다는 – 그런 부분을 다 설명하다보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터이니 – 이들의 선지자적 태도와 이후의 시장의 어리석음이 어떻게 서로 긴장감을 유지해가며 갈등하게 되는지를 주로 조명한다. 부실이 증가함에도 그 자산과 연계된 CDO 채권의 값은 상승한달지, 신용평가사가 투자은행을 상대로 채권등급 장사를 한달지, 기자는 시장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기사쓰기를 거부한달지 하는 등의 부조리가 선지자들을 괴롭히는 상황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이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바 주인공들의 승리로 결말이 난다. 마이크 버리는 400%가 넘는 수익률을 시현하였고, 마크 바움은 개인적으로도 1억 달러를 번다.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이들은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비극적인 코미디다. 우리가 알다시피 월가나 금융당국 그 어느 곳에서도 시장의 붕괴에 대해 책임진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화는 후일담으로 버리만 네 차례의 회계조사를 받는 등 당국의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승리자는 결국 부조리한 세상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평온해진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다. 시장도 안정을 찾은 듯 하고 Fed도 금리를 인상했다. 그렇다면 이제 경기는 늘 그랬듯이 경기변동설에 따라 다시 상승기로 접어드는 것일까?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주식시장은 동반 폭락하였고, 유가는 30달러 바닥을 뚫고 내려갔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고신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마치 투자은행이 증권화와 부외금융을 통해 버블 붕괴를 이연시켰던 것처럼, Fed 등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긴축재정을 통해 더 큰 버블의 붕괴를 이연시키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컨틴전시 사회주의(Contingency Socialism)”

민스키는 규제자들에 대항하는 은행가들이 벌인 게임과 모럴해저드와 대마불사의 문제 사이에 연계가 있음을 언급했다. 대마불사를 언급하면서 민스키는 “미국은 일종의 컨틴전시 사회주의의 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특정한 조직들의 부채는 공공연한 정부 개입이나 독점적 가격결정권의 부여를 통해 보호받는다. 크거나 거대한 기업들은 그들의 채무에 대해 묵시적인 공공적 보증을 (예 : 컨틴전시 부채)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은연중에 공공적 성격을 갖는 부채는 우선적인 시장적 치유로 이어질 것이기에 거대 기업이나 거대 은행을 선호하는 금융적 편견이 발생한다.”(, Hersh Sheferin/Meir Statman, Santa Clara University, Nov. 2011, p51)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경제학자 Hyman Minsky가 사용한 “컨틴전시 사회주의(Contingency Socialism)”이라는 표현은 약간 낯설지만 이 표현에서 쓰인 ‘사회주의’가 지난 금융위기 당시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빈자를 위한 자본주의”라는 표현에서 사용된 ‘사회주의’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간주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맥락상 그가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뉘앙스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민스키는 이렇듯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는 위기상황을 피할 방법 몇 개를 제시했는데, 그는 정부의 크기, 고용정책, 산업정책, 그리고 금융개혁 등의 범주에서의 대안을 각각 제시했다. 우선 정부의 크기나 고용정책에 있어서 그는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긍정적이다. 산업정책에 있어서는 뉘앙스가 다른데 대마불사가 불가능한 규모로 기업의 크기를 제한 할 것을 제안했다.

시장주의 경제학과 거리를 두는 민스키지만 기업에 대한 생각은 시장주의 원칙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불공정한 이득과 모럴해저드를 초래할 수 없도록 기업의 크기를 제한하는 공격적인 반독점 정책을 지지했다. 사견으로 그의 대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시장주의 대안과 같다는 점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순진한 대안이라는 점이다. 즉, 자본주의 소비선순환을 받들고 있는 기업이 모럴해저드를 초래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프레디맥과 패니메다. “정부보증회사(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라는 특수한 지위에서 금융위기를 거치며 국유화된 이 회사들은 부동산 소유사회라는 “미국인의 꿈”을 실현할 “항구적인 의무”를 자임하던 회사들이다. 이 의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모럴해저드를 유발하며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 하지만 그 모럴해저드가 없었더라면 미국 자본주의는 “컨틴전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도 전에 망했을지도 모른다.

반독점 정책이 구글이나 애플의 규모를 제어하는 문제와 이 회사들의 규모를 제어하는 문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실상 ‘미국의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항상적인 사회주의’ 시스템의 핵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패니메와 프레디맥, 또는 신용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 금융기관의 규모를 모럴해저드를 유발하지 않을만한 규모로 제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도 현재의 낮은 금리수준으로 그들의 채권을 인수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