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코미디

코미디언이었던 마르크스

만약 이런 국유화 조치들이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칼 마르크스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루초 마르크스의 그것에 가깝다.
If these nationalizations smack of socialism, it is closer to the Marxism of Groucho than of Karl.

앞서의 글에서 인용한 기사의 다른 멘트다. 프래니와 AIG의 국유화 조치 등 美행정부의 일련의 행동들이 우왕좌왕 개념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Floyd Norris라는 기자의 미국식 유머다. 사실 이 농담을 이해하려면 그루초 마르크스 Groucho Marx 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칼 마르크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마르크스 집안사람인데 미국의 코미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코미디언이다. 기자는 바로 그래서 이번 조치들을 그루초의 마르크스주의라고 비꼰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영화를 몇 편 소개한다.

***

Marx 하면 어떤 인물이 떠오르는지? 사회진보운동이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장 Karl Marx 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Marx (들)이 있다. 옛날 코미디 팬이라면 머릿속에 이들을 떠올렸을 법하다. 그들은 바로 30~40년대 헐리웃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표주자로 활약했던 Marx 형제들이다. Chico, Harpo, Groucho 등 세 명이 가장 널리 알려진 – 초기에 Gummo 와 Zeppo 라는 다른 두 형제가 같이 활동하였으나 곧 은퇴하였다 – 이들 형제는 서커스단에서의 오랜 무명생활 끝에 헐리웃에 진출하여 반사회적이고 무질서한 슬랩스틱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었다.

Marx Brothers 1931.jpg
Marx Brothers 1931” by Ralph F. Stitt – This image is available from the United States Library of Congres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under the digital ID cph.3c2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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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들의 코미디에는 세 형제의 나름의 캐릭터와 특기가 일관되게 연출되는 일종의 시트콤 또는 시리즈 – 그러니 사실 개별 영화의 제목은 ‘Marx 형제 무엇을 하다’ 정도 되어야 맞을 – 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Chico 는 이탈리아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캐릭터로 뛰어난 피아노 연주가 장기이며, Harpo 는 농아의 역할을 하지만 뛰어난 하프 솜씨와 재밌는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Groucho 는 – 이 분이 때로 장남으로 오해를 받는데 사실 Chico 가 둘째고 이 양반은 셋째라고 – 숱 검댕이 눈썹과 네모난 수염을 하고서는 아무데서나 시가를 벅벅 피워대면서 상대방을 조롱하는 반영웅적인 캐릭터로 형제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렸다.

우디 알렌은 이러한 Groucho Marx 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라고 칭송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그의 작품 The Purple Rose of Cairo 에서 그들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 푸념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고, Marx 형제의 작품 Horse Feathers 의 삽입곡에서 영감을 받아 Everyone Says I Love You 를 만들기도 하는 등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은 분명 Charlie Chaplin 도 아니고 Buster Keaton 도 아니다. 비록 그들의 작품에서는 Charlie Chaplin 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페이소스도 없고 Buster Keaton 의 작품과 같은 곡예 같은 스턴트이나 빈틈없는 극구성도 결여되어 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한 판 흐드러지게 놀고 즐기는 것, 바로 희극의 원초적 목적을 달성한다는 순수정신이 구현되면 그것으로 그들은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Let’s Have Fun, It’s Playtime!

  • Monkey Business(1931)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이다. Zeppo 까지 네 형제가 미국으로 향하는 유람선의 밀항자로 출연하고 있다. 배 안에서 만난 갱스터의 납치극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역시 형들의 뛰어난 활약에 비해 가장 나이어린 Zeppo 의 활약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 Horse Feathers(1932)

Groucho Marx 가 한 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하여 라이벌 학교와의 축구시합에서 이길 수 있도록 납치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다소 반사회적인 작품이다. 거기에다 이 학장은 자신의 아들(Zeppo)의 정부까지도 넘봐 마침내 나머지 형제들이 그 한 여인과 동시에 결혼한다는 황당하고 심지어 무정부주의적이기까지 한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 단어를 가지고 치는 말장난이 맛깔스러운데 먼훗날의 소위 개그의 원조가 바로 이런 스탠딩 개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A Night At The Opera(1935)

그들의 작품 중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오페라 극단에서 벌어지는 치정과 성공의 스토리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이 사이를 오가는 유람선을 배경으로 짜임새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 비발디의 오페라 등 여러 고전적인 노래의 향연, 예외 없이 등장하는 Marx 형제의 뛰어난 악기 연주 솜씨, Groucho 의 물오른 코미디 연기 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들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이 작품에서는 Zeppo 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 The Big Store(1941)

백화점의 유산 상속자이자 인기가수인 Tommy Rogers(Tony Martin)가 그의 백화점 지분을 헐값에 넘기고 음악교육에 전념하려고 하자 백화점 경영진 중 하나가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 하고 Marx 형제가 이 음모를 막는다는 모험극이다. 이 작품에서는 Groucho 의 노래와 군무 등 뮤지컬적인 요소가 대폭 강화되었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이러한 볼거리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극적인 부분이 등한시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어정쩡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재미있게 보았던 80~90년대 코미디 10선

1. 프록터의 행운(Pure Luck, 1991)

감독 : Nadia Tass
주요출연진 :
Martin Short …  Eugene Proctor
Danny Glover …  Raymond Campanella
Sheila Kelley …  Valerie Highsmith
줄거리 :
무슨 일을 해도 불행이 닥치는 재벌 상속녀 Valerie 가 실종되었다. 그를 찾기 위해 사설탐정이 고용되고 그를 돕기 위해 역시 무슨 일을 해도 재수가 없는 프록터씨가 동행한다. 둘 다 재수가 없기 때문에 서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 Valerie 아버지의 생각. Martin Short 의 순발력있는 연기가 돋보인다.

 2.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What About Bob?, 1991)

감독 : Frank Oz
주요출연진 :
Bill Murray …  Bob ‘Bobby’ Wiley
Richard Dreyfuss …  Dr. Leo Marvin
줄거리 :
거만한 정신과 의사 Leo박사의 휴양지에 강박증에 시달리는 Bob 이 찾아온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신경질이 난 박사가 대충 처방을 내리고 보내려 하지만 진드기 같은 Bob 은 휴양지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박사의 가족들과 Bob 이 친해지는 등 Bob 의 인기가 치솟아 박사는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두 멋진 코미디언의 환상적인 호흡이 일품.

 3. 잠복근무(Stakeout, 1987)

감독 : John Badham
주요출연진 :
Richard Dreyfuss …  Chris Lecce
Emilio Estevez …  Bill Reimers
Madeleine Stowe …  Maria McGuire
줄거리 :
한 흉악범이 감옥을 탈출한다. Chris 와 Bill 은 다른 조와 교대로 흉악범의 애인 집 맞은 편 집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문제는 흉악범의 애인 Maria가 너무 예쁘다는 것.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Chris 가 그녀에게 접근하여 사랑에 빠지지만 Maria 는 아직 그의 정체를 모른다. Richard Dreyfuss 의 코미디 연기력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실력인가를 보여주는 작품.

 4. 메이저리그(Major League, 1989)

감독 : David S. Ward
주요출연진 :
Tom Berenger …  Jake Taylor
Charlie Sheen …  Rick ‘Wild Thing’ Vaughn
Rene Russo …  Lynn Wells
Wesley Snipes …  Willie Mays Hayes
줄거리 :
만날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클리브랜드 인디언즈(Cleveland Indians)’ 팀에 새 구단주는 전 구단주의 정부였던 새파랗게 젊은 악녀. 그녀는 팀을 팔아먹기 위해 꼴찌를 유지시키고자 한다. 이를 안 선수들이 일치단결하여 시즌 우승을 이끌어낸다는 전형적인 스포츠 코미디. Charlie Sheen 이 맡은 Wild Thing 을 비롯하여 여러 독특한 캐릭터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고 정통극 출신들의 배우들이 펼치는 로맨스와 불륜 에피소드도 맛깔스러운 디저트다.

5. 클루리스(Clueless, 1995)

감독 : Amy Heckerling
주요출연진 :
Alicia Silverstone …  Cher Horowitz
Stacey Dash …  Dionne
Brittany Murphy …  Tai
Paul Rudd …  Josh
줄거리 :
제인오스틴의 엠마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포동포동한 Alicia Silverstone 의 대표작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사람이 이런저런 해프닝을 겪어가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이지만 (당시로서는) 감각적인 패션과 스타일, 세련된 O.S.T, 그리고 결정적으로 Alicia Silverstone 의 로리타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

 6. 담뽀뽀(Tampopo, 1985)

감독 : 이타미 주조
주요출연진 :
Tsutomu Yamazaki …  Goro
Nobuko Miyamoto …  Tampopo
Ken Watanabe …  Gun
줄거리 :
걸작 라면을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에 관한, 그래서 어이없지만 재밌는 코미디. 남편의 라면집을 이어받았지만 경영과 요리에는 젬병인 귀여운 아줌마를 돕기 위해 트럭운전사 고로가 팔을 걷혀 부치고 나섰다. 과연 그들은 완벽한 라면을 만들 것인가? 중간 중간에 라면(또는 스파게티)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여 잔재미를 더해준다.

 7. 클럽 싱글즈(Singles, 1992)

감독 : Cameron Crowe
주요출연진 :
Bridget Fonda …  Janet Livermore
Campbell Scott …  Steve Dunne
Kyra Sedgwick …  Linda Powell
Matt Dillon …  Cliff Poncier
줄거리 :
90년대에 좀 깔끔하게 꾸몄다는 커피숍에 가면 이 영화의 포스터가 안 걸려 있는 데가 없었을 정도로 포스터만 유명하다. Almost Famous 와 Jerry Maguire로 명성을 얻은 Cameron Crowe 가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시애틀의 독신자 주택에 모여 사는 젊은이들의 성모럴과 라이프스타일을 깔쌈하게 표현한 작품. 캐릭터들이 귀엽고 에피소드가 재미있어 개인적으로 한 열 번은 넘게 본 작품. Tim Burton 이 카메오로 등장하고 그 당시 시애틀을 주름잡던 유명한 그런지 밴드들의 공연장면도 볼 거리다.

 8. 페리스의 해방(Ferris Bueller’s Day Off, 1986)

감독 : John Hughes
주요출연진 :
Matthew Broderick …  Ferris Bueller
Alan Ruck …  Cameron Frye
Mia Sara …  Sloane Peterson
Jeffrey Jones …  Ed Rooney
줄거리 :
청춘코미디의 대가 John Hughes 의 또 하나의 걸작 청춘코미디. 학교에서 인기 캡인 Ferris Bueller 가 감기를 핑계로 학교를 땡땡이깐다. 그를 너무나 미워하는 교사 Ed Rooney 가 그를 찾아 나서고 Ferris 는 친구 Cameron 의 아버지 차인 페라리를 몰면서 애인 Sloane 과 셋이서 멋진 하루를 보낸다. 결국 페라리는 그들의 실수로 고철이 되고 말지만 그들은 여전히 앞날이 창창한 뭘 해도 신나는 청춘이다. 그들을 찾아 나선 교사 Ed 도 괜히 봉변만 당한다. 엔딩타이틀 후의 또 다른 장면이 압권.

 9. 피위의 대모험(Pee-Wee’s Big Adventure, 1985)

감독 : Tim Burton
주요출연진 :
Paul Reubens …  Pee-wee Herman (as Pee-wee Herman)
줄거리 :
천진난만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Tim Burton 의 초기작. 성인극장에서의 이상한 행동때문에 경범죄로 잡혀 들어갔다는 피위허먼이지만 적어도 이 환상적이고 아기자기한 매력적인 세계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톡톡 튀는 멋진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피위가 이를 찾기위해 벌이는 모험담으로 이를 다시 영화화한다는 극중 설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재밌다.

10. 바람둥이 길들이기(I Love You To Death, 1990)

감독 : Lawrence Kasdan
주요출연진 :
Kevin Kline …  Joey Boca
Tracey Ullman …  Rosalie Boca
Joan Plowright …  Nadja, Rosalie’s Mother
River Phoenix …  Devo Nod
William Hurt …  Harlan James
Keanu Reeves …  Marlon James
줄거리 :
이상하게도 평론가들의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지만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들이 만난 배꼽을 빼고 돌리는 코미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코미디는 남편을 너무도 사랑하고 믿는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살해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 영화다. 호화캐스팅의 배우들이 망가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Kevin Kline 의 아내 Phobe Cates 가 카메오로 출연한다.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

외국, 특히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외화에서 우리나라는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지는가는 우리 한민족(!)의 지속적이고도 지대한 관심사다. 우리가 유난히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일수도 있고 또는 일본과 중국 등 소위 아시아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로서의 자괴감 때문 일수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여하튼 일단 한반도에 관계된 뭔가가 끼어들면 마냥 극을 태평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외화에서 한국, 한국인, 그리고 한반도에 관련하여서는 이러저러한 왜곡 또는 희화화가 다반사였고 현재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본 중 가장 지독한 조롱은 프랑스 영화 ‘택시’에서였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한국인은 24시간 교대로 운전하는 택시기사였다. 비번인 택시기사는 택시 뒤 트렁크에서 잠을 청한다. 홍세화 씨가 그런 프랑스에서 얼마나 고생했을 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는 장면이다.

그 외에도 어떤 연유에서든 한국과 관련된 소재가 끼어든 영화를 생각나는 대로 몇 개 나열해보면 ‘M.A.S.H’, ‘아웃브레이크’, ‘레모’(주1), ‘007 Die Another Day’(주2), ‘로스트’, ‘오스틴파워’(주3)등등…. 아 그리고 삼성 리모콘을 잃어버려 소동이 벌어지는 다소 황당한 소재의 ‘리모콘과 금붕어’라는 북구 영화도 있다.

이러한 허다한 영화들 중에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영화를 최근 접하게 되었는데  Harold and Kumar Go to White Castle 이라는 제목의 코미디가 그 영화다. Ashton Kutcher가 주연을 맡은 Dude, Where’s My Car?(2000) 라는 개념 없는 코미디를 만든 Danny Leiner의 2004년 작품이다. 둘 다 개념 없이 사는 두 청년이 자동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Harold~에서는 미국 내에서의 인종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가장 큰 미덕은 일단 인종주의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고 어쩌고를 떠나 골때리게 재밌는 코미디라는 점이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투자은행에 근무하지만 동료들로부터 봉으로 취급당하는 Harold와 유복한 의사 집안 출신이지만 백수건달인 인도계 미국인 Kumar는 한 집에서 동거하는 사이인데 이들이 마리화나에 취해 White Castle(주4)의 햄버거 광고를 보고는 뿅가서 기어코 White Castle에 가서 햄버거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나섰다가 겪는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의 고갱이다.

Dude~에서의 이야기 전개방식과 거의 유사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종문제가 양념으로 가미되면서 극의 윤기와 현실감이 더해진다. 그들을 항상 골탕 먹이는 동네의 백인 불량배들, 선배의 투자은행 취직을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주류사회로의 진입을 꿈꾸는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 유색인종은 무조건 범죄자로 여기는 경찰(주5), 유색인종을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봉으로 생각하는 백인 투자은행 직원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자신이 유색인종일 경우 웃음은 공감어린 쓴 웃음이 약간 가미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서 인종문제는 극의 재미를 위해 가미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백인인 감독 Danny Leiner는 미국에서의 인종문제가 단순히 흑백간의 갈등이 아닌 한국계, 인도계 등 다양한 인종간의 다양한 상호관계에서 규정됨을 잘 알고 있었고(주6) 이를 교훈적으로 설교하는 대신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로 승화시키고 있다. 종내는 그 갈등은 주인공들이 White Castle에 도착하여 수십 개의 햄버거를 포식하며 절정감을 느낀 후 통쾌하게 해결된다. ‘하얀 성(城)’의 마술?

뭐 리뷰가 다소 심각하다고 해서 이 영화를 심각하게 감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실생활도 개념 없을 것만 같은 Ashton Kutcher가 한국계 배우 John Cho(주7)로 바뀐 것뿐 지저분 개그가 주는 즐거움은 똑같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극의 전개의 밀도가 속도감 측면도 Harold~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현재 속편이 다른 감독에 의해 제작 중에 있는 것 같다.

p.s. 천재소년 두기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주1) 좀 엉성한 수퍼히어로 영화인데 주인공 Remo의 스승이 한국인이라는 설정이다.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이해도는 빵점. 밥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다.

(주2) 주적이 북한으로 설정되어 있어 차인표가 캐스팅을 거절했고 대신 와튼 출신의 릭윤이 맡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영화

(주3) 악당킬러가 한국인이었던 시리즈가 있었다

(주4) 당연하게도 White Castle 측은 홈페이지에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전격배치하여 마아케팅에 잘 활용하고 있다

(주5) 무뇌아 경찰 들이 웃음을 안겨주는 또 하나의 코미디로는 Superbad를 추천한다

(주6) 개인적인 느낌으로 그가 실제로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있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묘사가 아닌가 싶은 장면이 몇 개 있었다

(주7) 이 배우는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인기 TV시리즈 Ugly Betty에도 등장한다

스카우트를 보면서 들었던 잡념

임창정 주연의 스카우트를 봤다. 선동렬이라는 실존인물의 스카우트 일화를 다룬 코미디물일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전혀 – 전혀? 거의 –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소설처럼 실존인물과 허구인물이 뒤섞여 광주라는 시대와 장소가 가지는 맥락에서 선동렬이라는 인물과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이 기묘하게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애초에 이런 정보를 모르고 영화를 봤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의 내가 불성실하거나 기획사의 마케팅이 잘못 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어쨌든 그렇다고 많이 당혹스럽지는 않았고 그런 대로 재밌게 본 편이다. 그런데 하여튼 80년 광주에 임창정이 우연치 않게 찾아가게 된 계기를 선동렬이 마련해 준 것까지는 이해가 갔으나 그 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린 옛 애인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좀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다. 어쨌거나 앞에 말했던 것처럼 나름 재미있게 보았고 임창정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며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는 제법 감동도 먹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백일섭을 보면서 나머지는 보는 동안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백일섭은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가? 이덕화와 함께 연예계에서 알려진 이명박 빠이면서 얼마 전에 이회창에 대한 위협적 언사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인데 과연 그는 이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알고 있었을까?

백일섭이 정치적 의도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 선동렬의 아버지로 분한 그가 등장하는 부분은 정치와 관련 없는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 이런 의문은 영화의 정치적 의도와 배우의 정치적 입장은 꼭 일치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결국 그 의문은 팀 로빈스나 워렌 비티(주1)처럼 정치적 소신이 제법 뚜렷한 이들은 직접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꼭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그것에 매치시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론 맺었다. 어차피 배우는 껍데기다. 위장이다. 살인자로 출연하는 배우가 살인자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주1) 워렌 비티는 의 엑스트라들에게 자본주의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존 리드의 이론을 강의했다. 그들은 강의를 들은 후에 파업에 들어갔다. 믿거나 말거나.

Repo Man(리포맨, 1984)

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존립근거가 신용사회, 즉 ‘상호간의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우주인의 UFO 라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접시 모양이 아니라 자동차 모양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영화일 수도 있다.

“뭐 재밌으면 됐잖아”

라고 감독이 한마디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펑크 음악에 대한 애정이 유난할 것 같은 – 그래서 실제로 차기작으로 펑크씬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인 시드와 낸시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 감독 Alex Cox 가 바로 그 펑크적 감성으로(“연주 못하는 게 뭐? 신나면 되잖아?”) 만들었고 의도한 바대로 영화사에서 Rocky Horror Picture Sho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컬트 아이콘이 되었다.

찰리쉰과 따로 떼어놓으면 모르겠지만 옆에 두면 형제인줄 알 것 같은 에밀리오에스테베즈가 질풍노도의 펑크족에서 현대 신용사회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은 Repo-Man(Repossesing Man의 준말로 자동차를 할부로 사고 할부금을 갚지 않는 사람들의 차를 다시 ‘재소유’ 즉 뺏어오는 직업을 의미한다고)으로 변신한 Otto 역을 맡았고, 따분하고 지저분한 중년을 대표하는 듯한 외모의 소유자 Harry Dean Stanton 이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변변히 모아둔 것도 없는 중년 리포맨 Bud 역을 맡으면서 에밀리오와 투탑을 이루고 있다.

어쨌든 이 둘을 축으로 차를 뺏어오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자주 들르는 편의점에서 이어지는 펑크족 강도들과의 만남, 외계인 시체를 트렁크에 실은 채 정처 없이 떠도는 과학자와 이를 뒤쫓는 정부기관 간의 해프닝 등이 상영시간 내내 골고루 배합되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p.s.1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있는데 Otto 가 이전에 친구였던 펑크족 강도들을 슈퍼마켓에서 맞닥뜨리는 그 짧은 몇 초에 매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슈퍼마켓의 진열장의 상품들이 하얀 포장에 그저 Food, Milk 등만 쓰여 있다는 점이다. 선진화된 미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저러지 않을까 싶은 그런 초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던 이 장면은 어느 블로거에 따르면 스폰서가 붙지 않은 탓에 억지로 찍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 한편으로 어쩌면 감독이 초창기 애드버스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한편으로 이와 반대로 토마토 공격대 2탄에서는 스폰서가 붙어야 영화 펀딩이 되는 영화계의 현실을 비꼬아 아예 노골적으로 상품광고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p.s.2 Bud 가 Otto 에게 ‘믿음’이 기반을 두는 신용사회가 맘에 든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이런 사회를 꿈이나 꾸겠냐고 일갈하는 장면이 있는데 매우 의미심장한 대화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끊임없이 주입되는 과잉소비의 지출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할부소비나 외상을 조장해왔고 오늘날 이러한 왜곡된 지불행태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리포맨은 바로 그러한 소비와 지불의 간극에서의 갈등을 해결하는 ‘응달 속의’ 집달리 들인 것이다. Bud 가 자본주의의 더러운 쓰레기나 치우는 마름이면서도 자본주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다.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2006)

Jack Black 이라는 배우에 대해 처음 존재감을 느꼈던 영화는 아마도 귀여운 구피 Will Smith 가 주연을 맡은 1998년작 Enemy of the State에서였을 것이다. 그나마도 엑스트라에 가까운 정부의 첨단추적시스템 오퍼레이터들 중 하나였던 그런 있으나마나한 배역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가 John Cusack 주연의 감각적인 코미디 High Fidelity에서 제법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했을 때에도 그저 신경질적이고 콤플렉스 강한 뚱보 역의 조연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영화의 말미에서 그는 Marvin Gaye 의 노래를 멋지게 불러 제켰고 이것이 그의 영화인생과 음악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역사적인 장면이 되고 말았다.

이후 MTV 의 각종 수상식에서 사회를 보는 등 미국의 청년문화의 새로운 (나름대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Tenacious D 라는 배우가 만든 이래 가장 실력 빵빵한 밴드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 판 To Sir With Love 인 School Of Rock에서 그의 뛰어난 키타 솜씨와 노래 솜씨를 선보이더니 자신을 닮은 Peter Jackson 의 블록버스터 King Kong 에서는 순수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어느덧 주류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진지한 표정만 짓고 다니기에는 너무 장난기가 넘쳐나는 종합 예술인이다. 하여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와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본 작품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를 Tenacious D 의 동료 Kyle Gass 와 함께 만든 것이다.

‘운명의 피크’를 찾아 음악의 지존이 되겠다는 두 아티스트의 역경과 고뇌를 담은 이 작품에 Meat Loaf, Ben Stiller, Tim Robins, 심지어 Ronnie James Dio 까지 우정 출연하여 Jack Black 의 병풍이 엄청 탄탄함을 과시하고 있다. Ben Stiller이나 Will Ferrell 유의 촌철살인 화장실 유머에 탄탄한 음악이 실려 있어 몇 배 가속된 강도 높은 유머 특급이 되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