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러시아

중동 사태의 원인제공자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입장

OPEC에서 가장 큰 수출업자로서, 사우디는 배럴당 37달러 수준까지 가격이 내려가게 한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감산을 거부했다. 이는 이란이 오바마와의 핵협정을 통해 향상된 생산능력으로 원유를 수출하는데 대한 혜택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다. [중략] 이러한 어떤 수단들도 이란-사우디의 직접적인 갈등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재 하일지라도 지난달 이란이 USS 트루만(미항공모함 : 역자주)의 1500 야드 내로 로켓을 발사할 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함일 것이다. [Who Lost the Saudis?]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사우디의 집권 왕조가 “47명의 대량 처형이 분노에 찬 반발을 촉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이 더 진행하기 전에 그들의 정보기관이 최고의 비상단계를 유지할 것을 지시”한 사우디 정부의 메모를 공개했다. [중략] 아랍권에서의 탄압과 반작용의 중핵으로서의 사우디 왕조는 국내에서의 점증하는 반정부 세력을 분열시키고 지역에서의 주요한 라이벌인 이란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수단으로 수니와 시아 사이의 긴장을 고의로 높여서 이를 활용하는 분파주의의 선도적인 선동자다.[Middle East tensions escalate in wake of Saudi mass beheadings]

현재의 중동사태에 대한 서로 상반된 입장의 글이라 한곳에 모아보았다. 첫 번째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글이다. 이글은 이번 사태가 사우디의 원유공급량 유지 등에 대한 이란과 러시아의 도발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사우디가 “아라비아 반도에서의 우리의 절친(the best friend we have in the Arabian peninsula)”이며 미국이 왕국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 사태의 귀책은 감히 미항공모함 근처에 미사일을 쏘아서 – 미국의 추가 제재의 위기에 놓인 – 이란이라는 것이 WSJ의 생각이다.

한편 두 번째 인용 글은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World Socialist Web Site)’라는 거창한 이름의 매체의 글이다. 이 글은 사우디 정부가 자국의 대량 처형이 불러올 후과를 잘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사우디는 예상했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포했다. WSWS는 사우디의 이런 행동을 “분파주의의 선동자”라며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애초부터 무리수가 있었던 처형과 이어진 반발, 이에 대한 빠른 대처를 볼 때 사우디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라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는 두 매체의 글이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대결구도는 대략 ‘미국과 사우디 對 러시아와 이란’ 인 것 같다. 지난번 예멘 내전이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면 이번 갈등은 러시아와 미국 간의 대리전의 성격이 짙은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힘의 균형추 이동을 통해 중동에서의 새로운 패권구도를 정립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번 갈등은 단순히 시아와 수니 간의 종교 갈등을 넘어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갈등의 원천인 유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문 컨설팅사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역설적으로 유가가 폭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즉, “이란이 시장에 보다 많은 원유를 공급하려고 시도한다면 사우디가 생산량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인용한 WSJ의 분석과 유사한 논리다. 이란 역시 경제제재가 풀린다면 감산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일시 급등했던 유가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가 저유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 참 역설적인 상황이다.

재밌는 것은 언급된 네 나라 모두 산유국이다.

유가 하락이 反美주의를 패퇴시킬 것인가?

첫 붕괴는 故 우고 차베스가 그의 지역으로 수출하려고 노력했던 反美 “볼리바리안 혁명”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일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예산은 배럴당 120달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가격이 떨어지기도 전에 이 나라는 빚을 갚느라 허덕였다. 외국환 보유고는 줄어들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치솟고 있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밀가루와 화장지와 같은 필수재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란 역시 교묘한 위치에 있다. 이란은 전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사치스러운 지출계획에 쓰일 방탕한 예산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가량 되어야 한다. 핵 프로그램을 좌절시키기 위한 제재조치는 특히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혹자는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라이벌을 힘들게 하는데 유가를 이용하려고 미국과 공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기가 무엇이든, 하락하는 유가는 확실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Cheaper Oil : Many winners, a few bad losers]

번역한 인용문에 언급된 베네수엘라나 이란, 그리고 기사에 언급된 다른 나라인 러시아를 보면 공교롭게도 미국과 그리 친하지 않은 나라들이란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이 지금 떨어지고 있는 기름 값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상황전개도 자못 흥미롭다. 셰일오일이라는 21세기 자원의 출현, 에너지 효율적인 자동차 등의 기술발전,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 또는 음모? – 사우디의 공급량 유지 등으로 말미암아 원유 수출로 먹고 살고 있는 이들 “反美” 국가들이 고통 받게 된 것이다.

즉, 미국이 과거에 반미국가를 괴롭히는 방법이 보다 직접적인 제재나 해당 국가의 독재정부 지원이었다면, 이제는 더 싸게 셰일오일을 퍼 올리고 연료효율이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된 셈이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말이다. 기사는 그런 상황을 은연중 즐기면서도 유가 하락이 지정학적 위기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이들 국가의 먹거리 중 원유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답이겠지만 국제적으로도 지정학적 위기 해소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돈의 힘

Assaut-Kin-Tchéou.jpg
Assaut-Kin-Tchéou” by loki11 – Le Patriote Illustré.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04년 4월, 다카하시가 영국의 이런저런 모임에서 가끔 마주쳤던 쿤 로브 Kuhn Loeb & Co. 의 제이콥 쉬프 Jacob Schiff 와 친교를 맺게 된 것이 일본의 금융사, 그리고 정치사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유태인이었던 쉬프는 당시 유태인을 박해하던 러시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쉬프는 일본 국채 인수를 결심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알선에 의해 일본은 이후 4차례나 추가적인 외채 발행에 성공한 것이다. 다카하시 고레키요의 분투와 제이콥 쉬프의 도움으로 일본은 런던뿐 아니라, 뉴욕과 파리의 시장 등에서 총액 8,200만 파운드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외채 발행 규모는 러·일전쟁에 소요된 전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한마디로 외채 발행의 성공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이끈 숨겨진 요인인 것이다.[금융 대 국가 그 거대한 게임, 구라쓰 야스유키 지음, 이승녕 옮김, 중앙 books, 2009년, p30]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융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하는 목적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이기도 하거니와 전쟁을 치르자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 수행국은 전비를 인용문의 예처럼 빌리거나 이게 여의치 않으면 남북전쟁 당시 링컨 행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화폐를 증발하기도 했다. 승전국은 배상금이나 획득한 영토에 대한 약탈의 권리를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향유할 수 있었고, 패전국은 경제적 피해와 더불어 사회적 소요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알다시피 이 전쟁 이후 일본은 우리나라를 챙겼고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 사례를 읽다보니 얼마 전 이 블로그에 올렸던 김옥균의 국채 발행 실패 사례가 생각났다. 대표적인 개화파인 그가 악화(惡貨)의 발행을 반대하며 시도했던 국채 발행 계획이 위의 경우처럼 누군가의 도움으로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마도 개화파의 정부 내 입지는 매우 커졌을 테고 갑신정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꿈꾸던 자주적인 나라 건설에 한발 더 내딛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옥균은 실패하고 다카하시는 성공했다. 대한제국은 수구세력에 의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이었고 일본제국은 백인들의 국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돈의 힘이다.

국가자본주의의 대두와 그 의미

국가주도의 자본주의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 서인도회사를 보라. 그러나 이번 주 우리의 특별 보고서가 지적하듯, 이 아이디어는 드라마틱할 정도로 되살아나고 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국유회사들은 이머징마켓에서의 정부부처들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 기본전제들은 경제가 성숙하게 되면 정부가 이들을 폐쇄하거나 민영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주요 산업에서건(매장량 기준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10개의 원유/가스 회사는 모두 국유회사다), 주요 시장에서건(중국 주식시장 총가치의 80%, 러시아의 60%가 국유회사의 몫이다) ‘전망 좋은 고지(the commanding heights)’를 포기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선제공격을 가하고 있다. 거의 모든 새로운 산업을 보면 새로운 거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 예를 들어 차이나모바일은 6억 명의 소비자를 거느리고 있다. 2003년과 2010년 사이에 있었던 신흥지역의 해외투자의 3분의 1은 국가가 지원하는 회사들의 몫이었다.[The rise of state capitalism]

이코노미스트가 레닌의 이미지까지 동원하여 새로이 대두되는 ‘국가자본주의’의 기류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굳이 레닌을 다시 호출한 이유는 인용문에서 사용한 ‘전망 좋은 고지(the commanding heights)’라는 표현을 그가 즐겨 썼기 때문이다. 즉, 국가가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제권을 쥐기 위하여 ’전망 좋은 고지‘를 장악함으로써 국가경제를 신흥 지배계급이 의도하는 대로 끌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령탑’이란 표현으로 의역하면 더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굳이 이코노미스트가 이러한 기류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인용문에서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국유회사의 활동이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듯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舊 사회주의 블록의 거인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등이 자본주의에 편입되었지만, 이들이 1980년대 이후의 서구에서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의 흐름과는 다른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그리고 그들의 경제력이 전체 자본주의 경제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하면서 전체 흐름마저도 변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의 나머지 부분은 이러한 흐름의 장단점을 서술하고 있는데, 여태 쭉 논의되어 왔던 주장들이다. 효율성, 비효율성, 안정성, 정실인사, 관료주의 등등.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국가자본주의’의 대두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코노미스트에 시각에 동의하는 한편으로, 그 흐름 자체가 ‘기업의 자유’를 신조처럼 여기고 있는 시장주의적인 서구의 시각을 위협할 정도의 (아직까지는) 이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기업들이 국가가 소유하고 유지한다는 것과 소위 이념적으로 ‘인민에 봉사한다’는 의미가 정확히 등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양상으로는 이들 국유기업들이 좌익이 지향하는 ‘계획적’ 운영을 통한 ‘시장의 실패’의 보완이랄지, 공익에로의 기여랄지 – 예로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는 직접 빈민의 복지를 지원한다 – 하는 장점과 달리, 자본주의 경쟁에서의 효율성을 위한 ‘국유(state owned)’의 장점이 더 부각되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이들은 자유화된 해외시장에서는 국가가 아닌 또 하나의 ‘독립적인 공급자’로서 기능한다. 이는 그들이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반하는 반골이 아니란 사실을 말해준다. 기업경영의 형태가 여태의 형태와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변화의 기운은 감지된다. 민영화/국유화를 가르는 몇몇 학문적 주장들로 포장된 선입견 들은 신흥시장의 대두에 따른 국유기업들의 선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드러난 서구기업들의 후진적 경영행태 들이 알려지면서 적어도 기업의 의사결정은 어떤 만고불변의 진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 셈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한 공공부문 노조가 월스트리트의 주요 금융회사들의 CEO와 이사회의 의장을 별도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등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변화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단상

여태 투표를 하면서 거대 양당 중 한 명을 찍은 것은 단 한번뿐이다. 그의 이름은 노무현이었다. 이른바 사표론(死票論)을 혐오하는 바, 그에 동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당시 남북간 관계가 살얼음을 걷던 상황에서 이회창 씨의 대북관이 심히 우려스러웠기에 나름으로는 차악(次惡)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쨌든 노무현 前 대통령은 적어도 대북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나의 기대치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

그런 개인사에 비추어볼 때 현재의 정국은 매우 묘하다. 처음으로 선택한 보수 정치가가 물러난 지 일 년여 만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그와 그의 전임자가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놓은 남북 해빙 무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그 자리엔 핵실험과 그에 따른 주전론이 횡행하고 있다. 살아있어야 할 것은 스러지고, 죽어야 할 것은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아침에 뒤적거린 동아일보는 당연하게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익적 대응방안’에 초점 맞추고 있다. 북한이 핵공격을 해올 경우 우리나라가 핵우산 안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따지고 있다. ‘통일’연구원에 적을 두고 있는 자가 핵우산은 충분치 않다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는 습관성 발작이라 진단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남북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둘을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동북아는 중국과 일본 –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미국 – 이라는 두 거대한, 독자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부닥치는 곳이고, 남북한은 그 완충지역인 셈이다. 노무현 씨가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고 난 격렬히 저항했지만 적어도 그의 현실정치에 있어서의 고충은 이런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미FTA를 한미동맹의 강화의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증거는 – 참여정부도 그러한 관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사실 미국은 남한을 ‘동맹’의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 있어 남한, 더 큰 개념에서 한반도는 미일 동맹의 군사적 부담을 덜어주는 주체, 중국 영향력의 확대저지선 정도의 역할일 뿐이다.

한 예로 지미 카터의 안보담당보좌관이기도 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주한미군이 일본에 더 많은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고도 미일동맹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의 저서에 적은 바도 있다. 남한은 그만큼 찬밥이다. ‘자본주의’로 전향한 중국과 러시아도 형식적으로는 형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한을 푸대접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동맹국과 체제라도 같은 남한이 부러울 판이다.

진실이야 어떻든 북한은 그간의 다자간 대화에서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다 경제도 파산지경인 상황이고 남한과 미국의 우호적 태도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남은 카드는 자연스럽게도 군사적 옵션이다. 가장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적들에게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핵무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겨누고 있는 것은 이전에도 계속 그래왔듯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 대화는 언제나 상호간의 오해와 양측의 극우주의자들의 도발, 더 나아가서는 과연 주변 강대국들이 동북아에서의 종전(終戰)을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모호함으로 인해 더딘 진행을 보이거나, 심지어는 이번과 같이 흐름이 역류되기도 한다. 지난 반세기를 증오의 세월로 보내왔으면서 십년 동안의 해빙무드를 견디지 못하고 ‘퍼주기’라고 저주하는 세력들이 주류인 이 사회에서 어쩌면 지난 십년은 사치스러웠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유가폭등, 그리고 휘발성

금융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치는 광경을 관전하는 동안 유가 또한 극적으로 폭락했다. 타임紙는 폭락의 이유를 크게 수요 감소와 투기세력의 후퇴를 들고 있다.

미교통부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8월에 전년도 동월 대비 150억 마일, 또는 5.6%나 덜 주행했다. DOT는 이는 1개월로 치면 년 단위로 역사상 가장 큰 폭의 하락이라고 말했다. .. 경제학자들이 “수요 붕괴”라고 부르는 것들의 명확한 증거다.
According to the U.S. Department of Transportation, Americans drove 15 billion fewer miles in August, or 5.6% less than they did the year before. DOT says it’s the largest ever year-to-year decline recorded in a single month. .. – sure proof of what economists call “demand destruction.”

“OPEC은 중국이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 OPEC 회담 전에 워싱턴의 유라시아 그룹의 에너지디렉터인 로버트 존슨이 한 말이다.
“OPEC needs to see China maintain its rate of growth,” Robert Johnston, energy director for the Eurasia Group in Washington said before the OPEC meeting.

금융기관들, 투자은행과 투기세력들이 석유선물에서 돈을 빼내는 바람에 유가 하락이 가속화되었다. 이것이 가격이 수요보다 더 빨리 떨어진 원인이다.
Banks, investment banks and speculators have pulled money out of oil futures, further driving oil prices down; that’s one reason why prices have fallen far faster than demand.

상징적인 두 국가의 수요는 모두 그동안 거칠 것 없이 오른 유가와 세계적인 금융위기 탓에 크게 줄고 있다. 금융기관과 펀드들 역시 금융위기를 맞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투자청산이라고들 표현하는데 현금 확보라는 표현도 괜찮을 것 같다 – 열풍에 따라 석유선물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자제하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산유국들은 추운 겨울을 보낼 것 같다.

Oil well.jpg
Oil well” by Original uploader was Flcelloguy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그들의 예산을 높은 유가에 맞춰놓은 국가들은 당장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유가폭락을 부추긴 금융위기가 또한 그들의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최근 그루지야와의 분쟁 등 여러 안보적인 문제로 해외자본의 급격한 이탈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는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현재의 금융위기나 급격한 유가변동의 공통점이다. 즉 그것은 영어로 volatility로 표현되는, 우리말로 하자면 ‘가격변동성’ 정도로 해석되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는 volatility의 형용사격인 volatile이 ‘휘발성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휘발성’이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이 더 와닿는다. 즉 현재의 세계경제는 휘발성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이는 크게 ‘증권화’와 ‘유동화’, 그리고 ‘경제통합’과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증권화/유동화에 대한 개념은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 번 설명했고 다른 경제관련 글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듯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가격을 매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증권으로 만들어 유동화 시키는 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인데 투자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이면에는 극도의 ‘휘발성’으로 시장변동폭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경제통합, 특히 금융시장 통합은 이 휘발성의 전염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다시 석유로 돌아가서 메릴린치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갈 거라고 큰소리치던 때가 엊그제인데 1/4토막 났다.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으로서야 천만다행이지만 문제는 이 유가가 언제 또 튀어 오를지 예측이 한층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인의 자동차 운전거리가 짧아진다니 그러려니 하지만 석유선물 시장은 여전히 모든 투자자들에게 열려있고 또 언제 그들이 메뚜기 떼처럼 달라붙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변동리스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야 석유로부터 자율적인 경제, 대안에너지 생산체제 구축 등에 힘써야겠지만 – 현 정부는 원자력 사용증대를 통한 녹색성장이라는 어이없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OTL – 더 큰 틀에서는 금융시장의 증권화/유동화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금융규제의 틀 – 사실 유가변동성이 아니라도 시급한 일이지만 – 을 마련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멜라민이 식품첨가물이 아니어서 현행법으로 규제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어이 없는 상황은 현재의 금융시장도 비슷한 것 같다.

미국의 석유 파이프라인 정치와 러시아-그루지야 사태

US oil pipeline politics and the Russia-Georgia conflict

By Alex Lantier
21 August 2008

미국언론들이 그루지야의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그루지야 대통령 미하일 사카쉬빌리를 미국이 지원했던 분명한 이유 하나는 그루지야가 코카서스와 카스피 해로부터의 석유와 가스 수출의 주요 통행국가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루지야가 그루지야에서 탈퇴한 남오세아티아에 있던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에 폭격을 가하면서 그루지야와 러시아 사이의 적대가 분출된 8월 7일은 파이프라인 정치와 중앙아시아에서의 그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대리국가들(proxy states)을 공격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이러한 정책의 큰 윤곽은 소비에트의 1991년의 붕괴 이후부터 과거 소비에트 국가였던 곳들과 미국과의 관계를 규정하였다. 그 시절 미국의 투자자들은 이전 소비에트 경제의 많은 부분을 획득하고자 몰려들었고,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카스피 내만의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몰려들었다. 1990년대 초반 서방의 에너지 기업들은 카자흐스탄의 텡기즈(Tengiz) 유전, 아제르바이잔의 Azeri-Chirag-Guneshli(ACG) 유전,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의 다울레타바드(Dauletabad) 천연가스전과 같은 수많은 사업들을 개발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였다.

착수단계에서부터 미국 회사들과 자문들은 과거 소비에트 국가들에로 하여금 미국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적대적이라고 여기는, 특히 러시아와 이란과 같은 나라들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 경로에 동의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한 파이프라인은 미국의 라이벌에게서 통행료 수입과 파이프라인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그들의 권한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적 레버리지를 제거했을 뿐 아니라 친미 지역 동맹을 함께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워싱턴에 제공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빌 클린턴 정부는 러시아, 이란, 중국의 영토를 우회하면서 카스피 해의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두 개의 주요한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착수한다. 첫 번째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양의 항구들로 수출하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 때문에 워싱턴은 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TAP)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해 1995년에서 1996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일하고 평화를 유지하도록 탈레반을 지원하였다. 이 계획은 결국 북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는데 실패한 탈레반의 무능력 때문에 좌초되었다.

또 하나의 계획은 코카서스에의 친미 성향의 소국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서쪽으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카스피 해의 동쪽해안에 위치한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연결하는 해저 카스피해 횡단 파이프라인과, 바쿠(아제르바이잔)-티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 파이프라인은 카스피 해 에너지 수출의 상당량을 지중해로 보낼 것이었다. 이 파이프라인은 특히 카스피에서 서구로 향하는 에너지 루트에 대한 러시아의 오랜 지배에 대한 결정적인 반격으로 여겨졌다.

이 사업의 정치적 성격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최근 “브리티시 페트률룸이 30%를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는 40억 달러짜리 BTC 파이프라인은 카스피의 석유를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또는 러시아를 통해 보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루지야로 길이 잡혀있었다. 10마일짜리 파이프라인이 카스피 해의 석유를 잘 설치된 이란의 파이프라인 시스템으로 연결할 수도 있었다.”라고 보도하였다.

클린턴 정부의 관리들은 무모하게도 바쿠-티빌리시-세이한(BTC) 파이프라인을 위해 로비를 감행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아제르의 수도 바쿠 근처의 ACG 유전에서 그루지야의 수도 티빌리시를 거쳐 세이한의 지중해 항구까지 석유를 수송할 것이었다.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터키가 BTC 파이프라인에 찬성하는 국제조약에 서명한 후 클린턴은 2000년에 그 파이프라인이 “20세기 말에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고 말한바 있다.

2001년에 입각한 부시 행정부는 동일한 기본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의 군사력과 전략적 영향력을 사용하기로 계획하였다. 많은 고위관리들이 소비에트에서의 미국 에너지 기업의 초기투자에 직접 개입하였다. 국가안보 보좌관을 거쳐 국무장관이 된 곤돌리자 라이스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석유 메이저 쉐브론의 이사회에 소비에트 관련 전문가의 자격으로 종사하였다. 이 시기 쉐브론은 텡기즈 유전에서 주요지분을 획득한다.

부통령 딕 체니는 석유 인프라회사인 핼리버튼의 CEO로 재직하였고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에 의해 조직된 카자흐스탄의 석유자문위원회 위원이었다. 이 자문위원회에는 석유 메이저 쉐브론과 텍사코의 CEO들도 위원이었다. 1990년대에 체니는 또한 아버지 부시의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했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핼리버튼 이사진과 아제르 정부사이의 회담을 주선하였다.

부시 행정부는 러시아에서 전혀 다른 정부를 만나게 된다 :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2000년에 자신이 고른 후계자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권력을 넘겼다. 석유 매출 덕에 러시아의 경제가 소비에트의 붕괴를 초래했던 절망적인 추락로부터 서서히 살아났다. 그리고 푸틴은 보다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실행할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회복은 푸틴의 권력쟁취 이후에 전 세계 유가가 치솟기 시작하자 가속도를 낸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의 테러리스트 공격의 여파로 푸틴은 표면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위한 물류기지라는 명목으로 실시된 카스피 지역 군사기지에로의 미군배치를 묵인한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배치를 통해 미국은 자신들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이해관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가장 명확하게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를 중국의 태평양 해안과 연결하는 경쟁적인 네트웍인 “범아시아 글로벌 에너지 가교”를 마련하겠다는 중국측 계획의 일시적인 좌절을 초래하였다.

그루지야는 곧 서방의 파이프라인 계획에서 주요한 통과국가로 부상하였다. 2002년 런던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샤 데니즈(Shah Deniz) 가스전에서 바쿠와 티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동쪽 도시 에르주룸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BTE)과 함께 BTC 파이프라인의 건설을 시작하기 위한 국제 컨소시엄이 출범하였다. 또한 BTE 파이프라인을 에르주룸에서 비엔나까지 연장되는, 소위 “나부코(Nabucco)”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 시장으로 연결하는 계획들도 세워졌다.

그 결과로 그루지야는 2003년 겨울 예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의 축출로 이어진 “장미 혁명”이 벌어진, 러시아와 미국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대립하는 지역이 되었다. 미국이 지원하는 야당에 의해 선거결과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었던 총선에서 야당은 일련의 시위를 조직했고 결국 의회를 장악했다. 미국의 집중적인 훈련을 수료한 그루지야 군부는 당시 국무부장관인 콜린 파웰을 비롯한 미국의 최고위 관리들이 세바르드나제가 사임하라고 개인적으로 개입하는 동안 한쪽으로 비켜나 있었다.

이런 미국산(made-in-the-USA) 공격은 세바르드나제의 협력자 중 좀더 미국과 친했던 이들에게 일련의 권력을 안겨주었는데 가장 주되게 콜롬비아 대학에서 교육받은 변호사 미하일 사카쉬빌리를 들 수 있다. 사카쉬빌리는 2004년 1월 공식적으로 그루지야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2003년 있었던 의회 선거 캠페인에서 세바르드나제와 사카쉬빌리의 가장 큰 차이은 그루지야에서의 인종적 소수 지역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었다. 세바르드나제는 아드자리안(Adjarian)의 정치가 아슬란 아바쉬드제(Aslan Abashidze)와 연합했다. 반면 사카쉬빌리는 노골적으로 이 지역 전체에 대해 티빌리시가 총체적인 통제를 행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세바르드나제가 아드자리아, 아브카지아, 남오세아티아 등과 같은 그루지야의 지방정부의 탈퇴와 독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명백한 허가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2004년 사카쉬빌리는 아드자리아에 그루지야 군대를 동원해 침공하여 협박함으로써 아바쉬드제를 추방하는데 성공한다. 재임기간 동안 그는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오세아티아와 아바카지아를 위협하였다. 

미국의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장미 혁명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것은 2005년의 BTC 파이프라인의 개통의 1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이는 미국 대외정책에서 가지는 가치는 그루지야 정부가 러시아의 압력으로부터의 자유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장미 혁명으로 말미암아 그루지야 정부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루지야 민족주의에 굳게 헌신하던 세바르드나제를 교체하고, 그루지야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사카쉬빌리 치하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그루지야의 항상적인 공격위협에 놓여있던 소수지역에 국한되었다.

장미 혁명 이후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 정치지형의 보다 광범위한 전개는 미국에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점증하는 모스크바와의 무모한 대립에서 사카쉬빌리를 지원하는 미국의 계산이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대한 저항이 커감에 따라 결국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양으로 잇는 TAP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좌절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루지야를 통한 코카서스 파이프라인이 워싱턴이 용인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 수출의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통로가 되었다.

2007년 12월 러시아가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동 카스피 해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연간 200억 큐빅미터의 최초 수출용량을 지닌 이 파이프라인의 건설은 중앙아시아 정부들이 주요한 석유 및 가스 자원을 코카서스에서 현존하는 미국이 지원하는 파이프라인에 연결될 잠재적인 카스피 횡단 파이프라인에 의존할 것이라는 미국의 희망에 엄청난 일격을 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웃한 서쪽의 중국으로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2001년 미국의 중앙아시아로의 주둔으로 인해 좌절을 맛본 중국은 이후 많은 파이프라인 계약을 체결하였다. 카스피 북쪽 지역의 카자흐 유전과 중국 북쪽의 신장(Xinjiang) 자치지역의 중국 파이프라인 네트웍을 잇는 카자흐스탄-중국 석유 파이프라인이 현재 건설 중이며 2009년 10월에 운영을 개시할 것이다. 그 지선이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유전을 향하는 평행하는 천연가스 라인도 건설 중이다.

** 파이프라인 링크를 클릭하시면 지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