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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플랜

스콧 스미스(Scott B. Smith)의 ‘심플플랜’은 지난번 ‘6인의 용의자’와 함께 자주 가는 한겨레 신문 구본준 기자(‘구본준의 거리가구 이야기’)가 권한 책이라 읽었다. 미스터리 마니아인 그가 2009년 베스트 스릴러 리스트에서 두 책이 공동 1위에 올려놓은 작품들이다. 두 권의 책을 다 읽고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심플플랜’이 ‘6인의 용의자’보다 재미있었다.

읽다가 안 사실인데 이 작품은 국내에 작년에 소개되었다 뿐이지 실제로는 이미 1993년에 발표된 작품이었다. 게다가 1998년에는 샘 레이미(Sam Raimi)에 의해 영화화까지 된 작품이다. 서구권에는 이미 나름 현대 추리소설의 수작반열에 오른 작품인데, 추리소설 마니아인 모중석 씨의 컬렉션으로 이제야 국내에서 소개된 것일 뿐이었다.

이 작품은 사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수사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의 문법의 견지에서 보자면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범인들은 밝혀져 있다. 작가는 추리적 요소를 배제한 채 44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돈을 손에 넣은 세 명의 평범한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파괴시키고, 또 스스로 파괴되는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료상의 회계원 행크 미첼은 아내 사라와 함께 미네소타의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실직자인 형 제이콥과는 거의 대화도 없다. 1년에 한번 부모의 묘지에 함께 찾아갈 뿐이다. 형 친구 루와 함께 한 성묫길에서 그들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44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발견한다. 행크는 돈을 자기가 보관하고 때가 되면 나눠 갖기로 하는 ‘간단한 계획(A Simple Plan)’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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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plan poster” by impaward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A Simple Plan (film)“>Fair use via Wikipedia.

하지만 현실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제 밥벌이도 못하는 형과 루는 이내 인내심이 바닥나 자기 몫을 탐낸다. 거기에다 만전을 기하고자 추락한 비행기에 들렀다가 동네 노인까지 죽여 버리고 만다. 이제 사건은 절도에서 살인으로 비화한다. 나약하고 미성숙한 정신의 소유자인 형은 끊임없이 동요하며 행크를 괴롭힌다.

스콧 스미스는 어찌 보면 이 흔해빠진 설정이 흔해빠진 전개로 빠지지 않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선보인다. 작가는 행크의 1인칭 시점을 통해 독자들을 행크의 시각과 동기화시킨다. 지극히 평범한, 죄라고는 저질러 본적 없는 소시민이 범죄의 유혹에 빠졌을 때의 반응에 대한 작가의 서술은,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 후 극을 전개시키는 것인 양 교묘하고 있음직하다. 이런 방식은 독자들을 행크의 죄책감에 동참시킨다.

이 작품은 한편 ‘정의(正義)’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처음 정의는 주인 없는 돈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돈을 차지한 뒤로 그들의 정의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생물학적인 본능에 충실한 것으로 변한다. 특히 행크의 임신한 아내 사라는 모든 행동을 이러한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이런 동물적 본성은 임신이라는 사라의 몸 상태와 결부되어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주1)

[이하 스포일러]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되는 결론을 빨리 알고 싶어서 조바심 날 정도로 작품은 흡인력이 강하다. 작가의 인간실험은 예상대로 – 또는 예상을 넘어 – 비정하다. 돈은 여전히 행크의 수중에 있지만 그것은 마치 마약처럼 수많은 희생을 낳고는, 신기루처럼 행크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돈은 행크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불행할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일장춘몽에 불과했던 것이다.

p.s. 작가 스콧 스미스는 이 작품이후 무려 13년간 차기작으로 내지 않았다 한다.(창작의 고통~) 그리고 내놓은 작품은 ‘폐허(The Ruins)’. 멕시코의 유적지에 식인식물에 잡힌 청소년들이 겪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인간성의 실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심플플랜’과 유사하다. 역시 영화화되었는데 원작은 읽지 못하고 영화만 본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심플플랜만 못하다.

다른 서평들

(주1) ‘마더’에서 김혜자가 원빈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의 동기부여가 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 1953)

옛날 영화를 볼 적마다 항상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사람들은 이제 모두 죽었는데 저렇게들 아등바등 사는구나’라는 생각이다. 극으로의 몰입을 방해하는 잡념이지만 옛날 영화, 특히 흑백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을 이야기한 흑백영화를 얼마 전에 봤다.

누가 당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손가락을 자를 용의가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를 받을 요량인지? 정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여기 그 질문에 대답한 이들이 있다. 손가락이 아닌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겠다는 네 사나이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어느 가상의 도시에는 할 일도 없이 하루를 때우는 무직자들이 널려있다. 도시에서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곳은 마치 바다 한 가운데의 무인도처럼 탈출할 길이 요원하다.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그들의 손으로 벌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돈을 버는 것 정도뿐이다.

그 창살 없는 감옥에는 석유회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남부석유회사(Southern Oil Company)’, 이른바 SOC. 얼핏 실존하는 석유메이저 SoCal을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이 회사의 유정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을 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더 큰 불을 일으키는 것, 즉 폭발을 통해 산소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에는 폭탄이 없었고 바로 SOC 본사에 충격에 극도로 민감한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만이 있었다. 회사는 그것들을 운반하기로 하고 도시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약을 운반할 운전사를 모집한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대가로 2천 달러라는 거액을 제시한다. 몰려든 사람들 중에서 마리오(이브몽땅)를 포함한 네 명이 선발된다.

새벽의 여명을 뚫고 각자 두 명 씩 두 대의 트럭에 나눠 출발하는 이들. 들쑥날쑥 패인 시골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니 긴장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급회전 길에서 낭떠러지 옆에 세워진 낡은 나무발판을 길 삼아 차를 돌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마저 가슴을 졸이게 한다. 가는 길에 떨어진 큰 바위의 폭파장면 역시 볼거리.

이 영화를 진정 명작으로 만드는 요소는 그러한 극한상황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보이는 희생정신, 비겁함, 광기(狂氣), 나약함, 용기 등이 어떻게 상호반응하며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 때문이다. 영화는 마치 이 네 사람을 실험실 유리관에 넣어놓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찰하는 듯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 내가 강박관념처럼 갖고 있던 흑백영화 배우들의 현실이 그 영화에서는 그대로 실현되는 영화인 셈이다. 덕분에(?) 난 이 영화를 보면서는 적어도 배우들의 실제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한명 이브몽땅의 예전 죽음 소식이 잠깐 뇌리에 스쳤을 뿐이다.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등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었던 이브몽땅이었고 석유메이저 SOC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이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라는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성찰해보는 영화다. 그러한 대처방식은 때로 정치적인 분쟁의 극한상황에서 그 정치적 대의와 상관없이 개인별로 다양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세계관을 앞서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충무로 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8월 31일 저녁 8시 프로로 중앙시네마에서 봤다.

The Quiet American

스피어단장은 잠재적인 재난에 대한 얘기들을 계속했다. 끝으로 나는 그에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아니면 미국이 개입하여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탱크와 다른 군사장비를 남부 베트남 대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준다면 우리는 그들을 도로상으로 끌어올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방식으로 그들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그는 이 말을 농담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제임스 레스턴 회고록 데드라인, 제임스 레스턴 지음, 송문홍 옮김, 동아일보사, 1992년, p297]

미국이 아직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전 사이공에서의 군사 임무를 맡고 있던 영국의 스피어(Spear) 여단장의 말이다. 이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시피 서구인들에게 있어 베트남은 이해가 되지 않는 미궁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웅성웅성 몰려다니는 조그만 노란 땅꼬마들을 현대화된 무기로 큰 힘 안들이고 때려잡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큰 오산임이 밝혀졌다. 똑같은 착각을 프랑스가 했고 미국이 했다.

영화는 이렇듯 서구가 베트남이라는 구렁텅이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던 무렵의 혼란한 정국에서부터 시작한다. The London Times의 늙은 영국인 주재원 토마스 파울러 Thomas Fowler 는 유유자적하는 방관자적인 가치관을 가진 기자이면서, 영국에 아내가 있으면서도 현재는 직업댄서 출신인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푸앙과의 불륜에 맛이 들려있는 상태다.

그에게 의료관계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매력적인 미국인 알덴 파일 Alden Pyle 이 접근해온다. 셋은 곧 함께 어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와중에 파일이 푸앙을 사랑하게 되고, 파일은 기혼자로서 약점이 잡혀있는 토마스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푸앙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기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 와중에 The London Times는 토마스의 귀국을 명령하지만 푸앙과의 관계를 위해 토마스는 격전지에 뛰어드는 취재를 자처하거나 유력한 군사집단의 우두머리 테이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신문사에 미끼를 던져 귀국을 연기시킨다. 그에게는 전쟁의 두려움보다 푸앙과의 이별의 두려움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자인 토마스의 아내가 토마스와의 이혼을 거부하는 바람에, 흠결 없는 결혼을 꿈꾸던 푸앙은 결국 파일과의 미국행을 꿈꾸며 토마스의 곁을 떠나버리고 만다. 반미치광이가 된 토마스는 파일과 푸앙의 주위를 맴돌지만 자신은 결국 늙은 영국인 기혼자 일뿐이라는 사실을 통감할 뿐이다.

한편 토마스는 취재의 과정에서 파일이 단순한 의료지원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장소에서 수시로 모습을 보이던 그가 결정적으로 사이공 한복판에서 공산주의자의 짓으로 의심되는 폭파사건 현장에서 매우 이상한 행동을 하였고, 이를 지켜본 토마스는 그런 그의 정체를 곧 알게 된다. 연인을 빼앗아간 이 젊은이는 상상외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토마스는 한 공산주의자의 설득에 따라 어떤 음모에 가담하게 되는데, 그 동기가 연적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는지 또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었는지의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자 이 영화가 노리는 재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토마스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프랑스 형사 비고가 그에게 증거를 제시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전쟁 중이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라는 토마스의 말에 비고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시청자 역시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이념과 동서양의 가치관이 심하게 요동치던 현대사의 한복판을 관통하여 수많은 고민거리를 낳았던 베트남전(戰)을 소재로 한 수작 스릴러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 Graham Greene 의 원작을 Phillip Noyce 가 2002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두 주연배우 Michael Caine, Brendan Fraser 의 호연이 돋보이지만 푸앙역의 베트남 여배우의 어설픈 연기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911사태로 인해 상영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한다.

Morning, Hinh. Anything new?
좋은 아침 힌. 새로운 거라도 있어?

Corruption, mendacity.
부패, 속임수.

I said “new.”
난 “새로운” 거 있냐고 물었어.

[극중 대화에서 인용]

볼만한 스릴러 몇 편

beagle2님이 미스터리-스릴러에 늘 굶주리고 있다하시니 또 나름 스릴러 좀 챙겨 보는 이로서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몇 작품을 추천하고자 한다. 그 댓글에서도 썼다시피 개인적으로 최고로 뽑는 스릴러는 케빈코스트너가 주연한 No Way Out 이다.(제일 맘에 안 드는 것은 주인공이다) 치정살인, 정치 스캔들, 냉전의 음습함이 완벽하게 결합된 데다가 특히나 폐쇄된 펜타곤에서의 극적긴장감은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엄청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그런데 사실 다른 좋은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여하튼 무더운 여름날 잠시 더위를 잊고 싶은 분들께 다음 작품들을 권한다.(순서는 무순)

Anatomy of Murder(1959)

영화는, 아름답지만 다소 자유분방한 한 군인의 아내가 술집주인에게 강간을 당하고, 분노한 그의 남편이 술집주인을 살해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지방검사였다가 퇴직 당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낚시와 재즈음악으로 소일하는 약간은 괴팍한 변호사 폴비글러(제임스스튜어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폴은 그날의 정황을 남편의 정신착란에 의한 일종의 정당방위로 몰고 가려 하고 검사측은 이에 대응하여 남편이 정신적으로 멀쩡했음을 입증하려 한다. 특히 검사측은 아내의 자유분방함을 들어 그녀가 강간당한 사실이 일종의 방종의 업보인 것으로 몰아가려 한다. 법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주는 묘미가 대단한 작품.

Spoorloos(The Vanishing)(1988)

렉스호프만과 그의 여자친구 사스키아는 네델란드에서 프랑스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기름이 떨어져 서로 다투기도 했으나 이내 화해하고 즐거운 여행의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휴게소에서 맥주를 사러간 사스키아가 자취를 감추면서 즐거움은 악몽으로 바뀐다. 사스키아가 납치되었다고 믿는 렉스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납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이와 만나게 된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결말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 작품.

The Wicker Man(1973)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스코틀랜드 경시청의 Howie 경사는 어느 날 스코틀랜드 북쪽에 위치한 Summerisle 이라는 섬에 Rowan Morrison이라는 여자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고 홀로 비행기를 타고 그 섬에 당도한다. 괴이하게도 섬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모른다고 증언한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라는 여인조차도 그녀를 모른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Howie 경사는 수사를 진행하면서 Rowan 이 실존하였던 소녀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기독교와 이교도의 충돌, 외딴 섬의 놀라운 풍속 등이 스릴러와 결합된 독특한 작품.

The Long Goodbye(1973)

유명한 래이몬드챈들러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로버트알트만이 만든 영화. 놀랄만한 반전을 기대할 것은 없으나 70년대 스릴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한껏 배어나오는 작품. 주인공 필립말로우는 루팡3세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하고서는 영화 내내 담배를 물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친구인 테리레녹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테리가 아내 살해범이라 믿는 경찰에게 끌려가 고초를 치룬 뒤 테리의 행적을 쫓아간다. 그 와중에 가출한 작가 로저웨이드를 찾아달라는 그의 아내의 부탁으로 그를 찾아주기도 했고 난데없이 갱들이 그의 집으로 쳐들어와 테리가 가져간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받기도 한다. 포스트느와르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The Big Sleep의 Humphrey Bogart 를 70년대에 재현하는데 멋지게 성공하였다.

The Thomas Crown Affair(1968)

Thomas Crown(Steve McQueen) 은 치밀한 시나리오를 통해 자신이 고용한 사람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부리며 은행을 털지만 그것은 돈이 탐나서가 아니다. 금융전문가이자 이미 충분히 거부인 그는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그 쾌감을 위해서다. 이어 보험조사원 – 마스터키튼의 바로 그 직업 – Vicky Anderson (Faye Dunaway) 이 등장한다. 그녀는 돈을 털린 은행의 전직직원들의 사진 들 중에서 직감적으로 Thomas Crown 은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에게 접근한다(감으로 수사를 하다니!). 이때부터 연애감정과 직업정신의 줄타기가 시작되고 영화는 막판의 반전을 위해 열심히 뛰어간다. 이 작품은 통상의 스릴러적인 긴장감보다는 왠지 모를 고독감을 느끼게 한다.

House Of Games(1987)

데이빗 마멧의 칼날 같은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저글링을 선보이는 서커스 단원들인 것처럼 척척 들어맞는 연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저명한 심리학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Driven의 작가인 마가렛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에게 노름빚 탕감을 도와주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는 ‘노름방(The House Of Game)’으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사기꾼 집단의 속임수에 넘어갈 뻔했지만 예리한 판단력으로 위기를 넘겼고 그들과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마가렛은 이들을 통해 지루한 일상에서의 해방감을 맛보게 되지만 곧이어 끔찍한 사건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리학의 권위자인 주인공과 거리의 사기꾼이 벌이는 심리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Green For Danger (1946)

Alfred Hitchcock 의 걸작 The Lady Vanishes 의 원작자인 Sidney Gilliat 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는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형식미가 잘 갖추어진 수작 스릴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멋진 플롯과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에도깔리는 교묘한복선, 등장인물들 간의 날카로운 대립관계를 세련되게 표현해주는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등이 돋보인다. 특히 Cockrill 형사는 추리 영화에서는 흔치 않게 안티히어로 풍의 캐릭터로 극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모던한 산업디자인 풍의 깔끔한 포스터가 무척 맘에 든다.

Syriana(2005)

전직 CIA 요원이었던 Robert Baer 의 논픽션 저서를 기초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석유재벌과 정부기관과의 유착관계 등을 그리는,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스릴러다. 개혁적인 입장을 표명하면서 초국적자본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한 산유국의 첫째 왕자 나시르의 행보, 그러한 나시르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후에 그를 살리려 노력하는 CIA 요원 Bob Barnes (George Clooney), 대형정유사인 코멕스와 킬런의 합병을 위해 직장상사를 파는 것도 서슴지 않는 변호사 Bennett Holiday, 두 회사의 합병으로 직장을 잃고는 과격 정치단체에 가담하게 되는 파키스탄 소년들, 조그만 에너지회사의 직원에서 일약 나시르의 경제고문으로 격상한 Bryan Woodman (Matt Damon) 등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국제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어느 순간 수렴되는 구조를 띄고 있어 정신 차리고 보지 않으면 스토리를 놓치고 마는 작품이다.

Kiss Me Deadly(1955)

장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같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바 있는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1955년작. 느와르 필름의 최전성기에 만들어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미스테리한 미녀의 죽음, 구사일생한 터프가이 탐정,그 터프가이를 배신하는 또다른 미스테리의 여인,그리고 그의 섹시한 여비서 등 거칠고 을씨년스러운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하였다는 크리스티나라는 여인을 태워준 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녀를 뒤따르던 악당들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난후 ‘나를 기억해 달라’는 크리스티나의 마지막 말을 힌트삼아 사건을 역추적 한다. 이 와중에 정체모를 악당들은 그를 을러대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The Conversation(1974)

Francis Ford Coppola 가 대부1편을 완성하고 대부2편을 만들기 전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Blow Up 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로 만든 스릴러다. 형식상으로 스릴러의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일종의 심리드라마이다. 도청을 밥벌이로 하는 한 중년사내 Harry Caul (진해크만)는 어느 거대기업으로부터 도청 의뢰를 받는다. 그러나 이 의뢰가 기업이 저지를 범죄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 해리는 도청내용을 의뢰자에게 건네지 않는다. 이후 도청내용을 넘겨받으려는 기업 실무자 Martin Stett(해리슨포드)과 해리 간의 갈등이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결국 예상치 못한 반전의 지적쾌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스릴러로써의 미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지적쾌감이 통상적인 스릴러의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보다 한 차원 높은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할 수 있다. 훔쳐보기의 은밀한 매력에 대한 잔혹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

12 Angry Men

누가 보아도 사건의 전말이 빤한 살인사건의 재판에 참여하게 된 12명의 배심원들. 재판소 밖은 끈적끈적한 습기로 가득 차있고 배심원들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살인하였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한 소년 용의자의 유죄판결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한 신중한 배심원이 다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후 벌어지는 교묘한 논리싸움과 편견에 대한 저항은 숨 막히는 긴장감을 자아내 이 영화가 상영시간 내내 조그마한 배심원 대기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한다. 법정극의 달인 시드니 루멧과 냉철한 연기의 달인 헨리 폰다가 만나 다시 볼 수 없는 명작을 엮어냈다.

Manchurian Candidate : 지적사고를 요하는 스릴러

인간의 의식은 조정당할 수 있을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영화라는 매체는 이러한 소재를 지속적으로 이용해왔다. 의식의 조종, 이중성격, 기억의 불충분함과 같은 인간의 의식과 성격에 관한 것들이야말로 영화의 극적긴장감을 구성해주는데 있어 최고의 요리재료이기 때문이다.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나단 드미가 감독하고 덴젤 워싱턴(베넷 마르코 소령 역)이 주연한 2004년작 ‘맨추리언 캔디데이트(The Manchurian Candidate)’는 가공할 음모집단에 의해 의식을 조정당한 한 전도유망한 정치가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이다. 복잡한 플롯으로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즘의 스릴러 경향을 보면 그다지 정교하게 구성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지만 실은 이 초현실적인 영화의 오리지널이 1962년산이라면 한번쯤 흥미를 느낄 것이다.

시대를 앞선 걸작 스릴러로 평가받는 오리지널은 존 프랭큰하이머가 감독하고 프랭크 시나트라(베넷 마르코 소령 역), 로렌스 하비(레이몬드 쇼 역) 등이 출연하였다. 한국전 당시 소대가 통째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이후 소대원들은 한결같이 레이몬드 쇼 하사가 영웅적으로 그들을 구했다고 증언하고 그 결과 레이몬든 쇼는 전쟁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영웅담은 국제적인 규모의 음모집단에 의해 조작된 것이고 레이몬드 쇼를 비롯한 소대원 전부는 철저한 마인드컨트롤에 의해 조정을 받고 있었다. 결국 최면상태에서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과 그 아버지까지 죽인 레이몬드 쇼는 로봇이 되어버린 스스로의 몸을 자신의 의지로 포기하고 만다.

오리지널 작품은 이러한 으스스한 설정 아래 매카시즘, 전쟁의 광기, 그리고 가공할 음모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영화의 원작자 리차드 콘돈은 이러한 음모론을 현실로 받아들인 이 중의 하나이다. 그는 실제로 현실에서도 이러한 의식의 조정이 음모집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반공주의적 메시지로 전락하지 않고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며 마침내는 상상 못할 반전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 오리지널 영화의 미덕이다.

스릴러를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관객이 반전의 묘미를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나단 드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험을 감수했고 일단은 원작보다 조금 더 꼬아서 반전을 시도했기에 어느 정도 그 모험은 성공했다라고 평가내릴 수 있다. 더불어 오리지널이 담고 있던 매카시즘 광풍의 시대상황은 요즘의 정치상황에 맞게 일극체제의 신안보주의 상황으로 적절히 대치되었다.

그리고 음모집단의 정체도 오리지널의 중국-소련 연합 공산주의자에서(이 부분이 영화의 묘미인데 언뜻 이러한 설정때문에 반공주의적인 영화로 보이나 실은 매카시즘의 비판이 감독의 진정한 의도로 추측된다) 사모투자펀드 ‘맨츄리언 글로발’로 설정되어 보다 현대적인 ‘공공의 적’(!)을 창조해냈고, 오리지널에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맨츄리언’이라는 단어의 타당성도 나름대로 부여하고 있다.

극중 캐릭터의 분석도 나름대로 진일보하였는데 다만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레이몬드 쇼의 어머니 역할은 그녀의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에서 같은 역을 연기한 엔젤라 랜스베리의 소름끼치는 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준다.

히스테릭한 반공주의 시대를 비판하였던 오리지널이 21세기인 2004년에 또다시 리메이크되었다는 사실은 관객으로서는 즐거움일지 몰라도 리메이크가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광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불행한 시대상황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비판의 대상은 미국 일극체제의 안보에 대한 공포로 변하였는데 그것이 반공주의만큼이나 조작된 정치적 허상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이 영화를 국제적인 무기 암거래를 소재로 한 2005년 작 ‘전쟁의 지배자(Lord Of War)’와 비교하여 감상하면 보다 흥미 있을 것이다.

지루한 스릴러 The Black Dahlia

블랙달리아(Black Dahlia)의 시작은 다소 복잡하다.

1947년 1월 9일 미국 L.A.에서 소름끼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발견되었다. 시체의 신원은 무명여배우였던 엘리쟈베스 쇼트.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찢겨져 있었으며 사체에는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세척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그 선정적인 소재로 말미암아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언론은 온갖 추측성 보도를 해댔고 정신 나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수하였다. 하지만 아직껏 진범이 잡히지 않은 미결사건이다.

소재의 충격성은 많은 미스터리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LA Confidential로 명성 높은 추리작가 제임스 엘로이가 살을 보태 소설 블랙달리아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작품성이 높이 평가받았는데 심지어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이 노벨 문학상감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심리 스릴러의 대가로 불리는 브라이언 드 팔마라면 이 작품을 영화화할 자격이 충분하다. 그의 걸작 Dressed To Kill이나 다소 부족하긴 하지만 Snake Eyes 등을 생각해보면 그 공력으로 충분히 이 다소 복잡하지만 독자의 감성을 쥐어짜는 듯한 최고의 심리 스릴러 소설을 충분히 멋지게 영상에 옮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할 정도다. 요즘 뜨는 배우 조쉬 하트넷을 비롯하여 연기파 배우 힐러리 스웽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스칼렛 요한슨 까지 개성 넘치는 배우들을 총동원한 이 영화에서 스릴은 느낄 수 없고 연기는 밋밋할 뿐이다. 원작을 읽으면서는 느꼈던 피해자에 대한 형사의 처절한 연민의 독자로서의 공감이 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배우들은 감정을 표현하려 애썼지만 이미 극진행이 너무 지루하여 제 풀에 지쳐버린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뱀파이어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던 힐러리 스웽크나 그나마 선전하였으나 이마저도 극에 겉도는 느낌이었다. 마땅히 등장하여야 할 마지막 반전도 왠지 의례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역시 원작이 영화화하기에 너무 벅찼나 하는 생각이다. 원작은 극적반전이나 고도의 추리기법과 같은 정통 스릴러적인 맛보다는 동시대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던 실제 사건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임으로써 마치 내 이웃이 살해당하였고 그에 충격 받은 것 마냥 울림이 강한 드라마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사건을 엄정히 수사해야 할 담당형사가 흔들리는 모습은 스릴러치고는 이단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기부여는 원작소설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해설하다 제 풀에 지쳐버린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복잡한 설정이 스치고 지나가 관객들이 따라잡을 틈이 없다. 요컨대 원작에 너무 충실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 된 것이다. 차라리 가지 칠 것 치고 새로운 스토리를 창출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성공한 작품이 바로 제이슨 본 시리즈다. 만약 이 시리즈의 제작진들이 원작에 블랙달리아 제작진만큼 집착했더라면 관객들은 영화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스파이물의 사례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영화화는 또 하나의 창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