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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를 괴롭히는 학생들을 찍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상념

# 페북에 누군가 올린 기간제 교사를 괴롭히는 고등학생들의 동영상을 보았다. 굴욕적인 장면이지만 교사는 학생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단다. 암튼 학생들은 그저 교육받았을 뿐이란 생각도 든다. 기간제는 괴롭혀도 된다는, 이미 사회가 괴롭히고 있으니까 말이다.

# 기간제, 파견직, 비정규직.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노동계급의 힘도 함께 발달하며 임금을 올리니까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본가가 고안해낸 노동자 아래 노동자다. 사회는 그러고는 상대적 우위에 놓인 노동자를 “귀족노조”라고 매도하여 노노분열을 부추겼다.

# 노노분열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너희들이 천대받는 것은 나때문이 아니라 귀족노조때문이다’라는 착시효과를 일으키기 위해서인데, 이게 꽤 잘 먹혀들었다. 누구도 “귀족자본가”라고 부르지 않지만 정규직만 많은 회사도 “착한 회사”라고 칭송한다.

# 이제 정부는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저성과자는 자르고 취업규칙도 불리하게 고칠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노동자 지위 향상 – 비정규직 양산 – 정규직 고용안정 해체 – 모든 노동자의 각자도생’의 과정이 진행 중이다. 명심할 것은 치킨집은 차리지 말 것.

# 이러한 경제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회적 요인은 바로 문화다. 노동자를 천시하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는 것이 용납되는 문화가 제도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그 학생들만 욕할 수는 없다.

오늘 있을 중대한 판결

오늘 중대한 판결이 내려진다. 대법원은 오늘 오후 2시 노모씨 등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쌍용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던 중 회생절차를 밟고, 2009년 2,405명의 해고를 단행했다. 노조의 거센 반발 속에 결국 최종 165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지만 이중 153명은 부당해고라며 2010년 소송을 제기했고 오늘 그 소송의 최종 판결이 나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경영상 판단에 따른 정리해고의 허용 범위다. 근로기준법 제24조에 보면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주관적인 관점이 강하게 배어있는 애매한 표현으로 인해 노동계와 재계는 수많은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갈등이 수많은 죽음을 초래한 쌍용차의 정리해고 사건인 것이다.

하급심 결과는 엇갈렸는데 정리해고의 근거였던 2008년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에 대해 각각의 재판부가 달리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1심은 “유동성 부족 사태를 극복할 방법이 없어 … 해고를 단행”했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2심은 “신차종 판매에 따른 미래 현금 흐름이 전부 누락되고 …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엇갈린 판결은 “경영상의 필요”의 해석의 어려움을 잘 말해준다.

공지영 씨의 책 ‘의자놀이’에 의하면 안진회계법인의 보고서는 쌍용차의 건물, 구축물, 기계장치 등 유형 자산 평가에 문제가 있다며 자산 평가액을 전년도보다 5,177억 감액하기도 했다. 금융노조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이러한 손상차손 과다 계상으로 말미암아 쌍용차의 부채비율이 187%에서 561%로 급증하였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전문가의 무미건조한 의견이 회사와 노동자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인 것이다.

경제적 의미가 있는 소송에 대한 판결은 경제학 이론이나 금융, 회계 등 실무에 있어서의 법제도의 발전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전과 노선의 수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례로 건물의 일조권이 해당 건물의 시장가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결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있을 판결은 어쩌면 일조권보다 훨씬 중요한 노동권에 대한 시금석이 될 판결이다. 이제 “긴박한”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릴 때가 됐다.

거세당한 노동자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Soul is the rhythm of sex. and it’s the rhythm of the factory too. The working man’s rhythm. Sex and the factory.”

더블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음악영화 The Commitments의 대사다. 공장노동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밴드에게 매니저 Jimmy가 소울 음악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인데, 노동, 섹스, 그리고 음악을 서로 연결시켜 이것들이 리듬이라는 공통요소로 묶인다는 논리가 인상적이다. 규칙적인 기계음을 반복하면서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장이라면 이러한 주장이 그리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러한 시각을 확장해보자면 노동의 박탈은 하나의 거세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하지 않는 노동자는 기계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속처럼 그 존재의의 자체를 부정 당하는 것이기에, 거세당한 생물과도 같아진다. 아니, 거대한 기계로부터 거세된 생물의 생식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잃은 남성 노동자는 일상의 삶에서도 남성적 힘을 잃은 性불능자로 낙인찍혀 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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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monty”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eBay.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Full Monty“>Fair use via Wikipedia.

이러한 가정이 바로 영화 The Full Monty의 전제조건이다. 입지우위를 상실하고 쇠락해버린 철강공업도시 셰필드에서 노동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래서 해고노동자 가즈와 데이브는 가즈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장에서 좀도둑질이나 시도하는 등 부질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즈는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고, 데이브는 아내와 정상적인 성생활을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남성성의 상실.

탈출구 없는 그들의 삶에서 기회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 여성전용 남성 스트립쇼가 인기를 얻는 것을 본 가즈가 친구들에게 스트립쇼로 돈을 벌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런 엉뚱한 계획이 세워진 데에는 스트립쇼를 본 여성들이 자신들의 배우자를 멸시하는 광경을 지켜본 가즈의 울컥함도 한몫했다. 즉, 자본으로부터 거세당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남성성의 과시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성공리에 스트립쇼를 마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일상을 박탈당한 이가 삶의 끈을 부여잡을 수 있는 다른 무언가로 – 예술, 스포츠, 이 영화에서는 스트립쇼 –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슷한 설정으로 Brassed Off, Billy Eliot, 그리고 서두에 언급한 The Commitments가 떠오른다. 감동의 무게도 비슷하게 둔중하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당의정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전제조건이나 전개과정이 실제 삶에서 벌어진다면 이건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해고당한 일군의 노동자가 알랭드보통이 이야기한 “지위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이, 기껏 스트립쇼라는 사회적으로 백안시되는 노동행위였다는 사실은 희극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비극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쇼무대에서 주인공의 아내들이 남편들의 모습에 흥분하는 상황을 통해 지위에 대한 불안의 해소(흥행성공을 인한 물질적 보상)와 남성성의 회복이라는 극대화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물론 제작진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거세된 노동자로서의 남성성은 회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쪽의 성공이었을 뿐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이러한 거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가즈와 데이브처럼 스트립쇼를 통해 뽕도 따고 임도 보는 운 좋은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도 노동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대량해고에 맞서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고,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수많은 해고노동자가 식량보조카드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거세된 자존심은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천시 무단방류

Business Insider라는 웹사이트가 재미있는(?) 자료를 하나 만들어주었다. “10 Companies Making A Killing After Laying Off Their Employees(노동자를 해고한 후 떼돈을 번 10개의 기업)”이란 포스팅인데 말 그대로 사람 자르고 돈번 회사들 리스트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수많은 기업들이 수많은 노동자들을 잘랐다. 명분은 회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를 자르면 당연히 당장의 비용이 절약되니 이익을 개선할 수 있다(장기적인 노동역량은 별개의 문제로).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과연 그 많은 기업들이 모두 다 어려웠으며, 또한 어려워서 해고를 단행하였음에도 그 해고가 과연 적정한 범위였는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아래는 해당 포스팅을 표로 간략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회사 해고계획 회사수익 애널리스트 예상
Ford 2010년2월 1천명 해고발표 2분기 주당 68센트 주당 41센트
Siemens 2010년1월 1590명 해고발표 3분기 30억불 영업이익 예상 영업이익 27억불
Xerox 2010년1월 2500명 해고발표 주당 24센트 주당 21센트
Sallie Mae 2010년4월 2500명 해고발표 몇몇 아이템 제외후 주당 39센트 몇몇 아이템 제외후 주당 29센트
BASF 2013년까지 3700명 해고예정 2010년6월기준 순익 15억 달러 순익 13억 달러
Wells Fargo 2010년7월 3800명 해고 주당 55센트 주당 38센트
Microsoft 5800명 이상 해고 주당 51센트 주당 46센트
Pfizer 2010년5월 6천명 해고발표 주당 60센트 주당 53센트
Hewlett-Packard 2010년6월 9천명 해고발표 주당 1.09센트 주당 1.05센트
Bank Of America 2008년12월 3만~5만명 해고발표 주당 28센트 주당 23센트

적어도 위 표에 나와 있는 기업들에게 해고가 과연 필수불가결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익실현의 선후관계는 자세히 따져봐야 할 것이나 적어도 ‘사운이 기울어 어쩔 수 없이’라는 핑계는 댈 수 없는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저건 그냥 우천시 무단방류다.

“우리 기업들이 따라 하고 싶을 미국식 해고”

사전 통고도 없고, 예비 기간도 없는 이런 해고 절차는 130년 이상된 오랜, 미국 사회의 관행이고  주에 따라 조금씩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도 인정되는 관습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자유의지에 따른 고용”(Employment at Will)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원칙은, 고용계약서에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 고용주와 피고용자 양측 모두가 어떤 이유에서나, 심지어는 아무런 이유 없이도 고용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고용주와 피고용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매우 합리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용주에게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때나 고용관계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줘서, 최고 수준의 고용 유연성을 보장하는 아주 “비지니스 후렌들리”한 정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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