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의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법’에 관한 글을 읽고

진보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창비주간논평에서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이라는 글을 올려놓은 것을 SNS의 여러 친구들이 링크해놓아 알게 되었다. 읽어본즉, 전체적인 논지는 진보진영과 사측의 주장들을 중립적인 견지에서 살펴보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좋은 취지이긴 하나 몇몇 부분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어 정리해본다.

한진중공업이 400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하면서 염치도 없이 174억원의 배당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진숙씨의 투쟁에 공감하고 희망버스에 동승하게 된 데는 이런 보도가 한몫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회사는 작년에 570억원의 적자였다. 그래서 현금배당을 하지 않고 100주당 1주의 주식배당을 실시했다. 적자 난 회사들이 주주들에게 이런 식으로 주식배당 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이 주식배당을 당시의 주가로 곱해본 금액이 174억원이다. 그런데 그 환산법은 틀렸다. 주식물량이 늘어나면 원칙적으로 그만큼 주가가 하락한다. 다른 요인도 작용했겠으나, 3만 6천원이던 배당 당시의 주가는 요즘 3만 1천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른바 “174억 원의 배당잔치”에 관한 부분이다. 인용 글에 설명하고 있는 그대로 사측은 주식배당이라는 일종의 무상증자를 통해 주주에게 배당을 실시했고, 이는 김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엄청난 배당을 한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배당의 금전적 가치가 174억 원인 사실관계(참고글)는 변함이 없다. 신주발행에 따른 주가희석은 결과론일 뿐이다. 회사전망과 시황이 좋으면 오히려 호재가 되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회사가 “570억 원의 적자”가 났다는 또 하나의 사실을 밝히며 주식배당이 호들갑떨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적자의 내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회사의 적자, 재무제표상 당기순손실은 정확하게 510억 원이다. 하지만 그 손실은 부동산 PF분쟁에 따른 대손상각비 560억 원이 반영된 장부상의 손실일 뿐으로 영업이익은 2,014억 원이 났다(참고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조선소 노동자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희망버스를 주도하는 분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다. 국가가 계획에 의거해 노동력을 배분하는 사회주의체제다. 먼 장래엔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날 상황에선 사회주의체제가 비효율적이어서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런 구호는 접어야 한다. 목표가 실현 가능해야 운동도 지속 가능하다.

김 교수가 어떠한 사회주의를 살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사회주의”라는 발상은 참 기이하다. 물론 과거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경직된 노동배치가 체제의 비효율로 이어졌다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동의하는 바이지만, 현실 사회주의 역시 현실 자본주의처럼 유동적이며 충분히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 내가 이전에 ‘크록스 사회주의’란 글에서 묘사한 그런 체제 정도로 말이다.

더불어 구호라는 것은 사실 축약된 의미를 담고 있기에 오해의 소지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그 구호의 극단적 성격을 비판할 근거는 되기 어렵다. 노동진영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우리사회의 살벌하고 대안 없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의미함이지 절대적인 해고반대와 비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 짧은 구호에서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것은 또 하나의 매카시즘이다.

한진중공업이 일감을 영도조선소에서 필리핀조선소로 빼돌렸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필리핀에선 인건비가 1/10밖에 안되고 도크 규모도 훨씬 커서 큰 배를 수지맞게 수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리해서 한국의 신발회사나 섬유회사들은 수지를 맞춰갔고, 또 그 덕분에 중국이나 베트남 인민들의 소득이 향상되었다. 이게 맑스도 강조한 자본의 범세계성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범세계성”을 강조한 것은 자본의 작동원리를 살피고자 함이지 그러한 작동원리의 합당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의 책을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 텐데, 김 교수는 왜 굳이 마르크스를 인용하여 자본의 제조업 기지 이전을 합리화시키는지 의아하다. 굳이 예를 들자면 다른 주류 경제학자의 더 좋은 이론적 주장을 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진보진영도 이 정도는 납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러한 자본의 경영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부작용으로는 한진 사태와 같은 대량해고 이외에도 노동의 질 저하, 기존 제조업 기지 인근 경제의 공동화, 세수의 감소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자본과 노동 간의 자유의 비대칭성과 국민국가 경제의 쇠퇴는 노동자 뿐 아니라 국민경제 자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의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결국 김 교수는 자본의 세계화와 회사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인정하자면서 조남호 회장이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논지를 보건데, 김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배당도 부실하게 받고 파업으로 인해 일도 제대로 못하니 고통분담은 할 만큼 한 것 같다. 내 생각에 이는 일개 자본가에게 주문할 고통분담은 아니고 국가  또는 전 세계 차원에서 경제 시스템과 자본/노동의 새로운 관계를 고민할 일이다.

추가

사측의 부동산PF 예상손실을 2010년 충당금으로 쌓은 것이 합당하며 그것이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였던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고, 2010년의 배당이 노조 측에 의해 과장된 것인지 또는 그 이전의 배당이 합당한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실 것.

5 thoughts on “창비주간논평의 ‘한진중공업 사태의 해법’에 관한 글을 읽고

  1. 좌완유격수

    김기원은 좌파의 공격에 맞서 ‘시장맹신은 있어도 신자유주의는 없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아니었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며 참여정부를 옹호하던 친노 혹은 중도적 학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좌파와는 꾸준히 대립하고 있죠. 이번 글도 그런 평소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디자인 연구소 라는 좀 웃기는 이름을 달고 노동자에게 노상 투쟁포기와 양보를 요구하는 김대호와 김기원류의 사람들이 소위 정통보수보다 더 싫고 한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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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conomic View

      전 사실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그런 전력이 있었군요. ‘시장맹신은 있어도 신자유주의는 없다.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 아니었다’ 이 이론은 김상혁 사마에게 사사받는 것인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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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ticky Post author

    이 트윗은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멘트답니다. 말씀에 공감하면서 애초 “중립적 견해” 운운은 사실 글 쓴 의도가 그렇게 보이게끔 하는 정황을 비꼬려는 의도가 있었던 표현입니다. 말씀대로 특정 포지션이 분명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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