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가치’ 간의 실질적인 구별에 관한 메모

그러나 이 논리 자체는 노동뿐만 아니라 토지도 또한 상품의 가치에 뭔가를 기여한다는 낡은 반대론에 대처하지는 못했다. ‘부’와 ‘가치’ 간의 실질적인 구별이 올바르게 확립되자 비로소 토지의 역할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명이 가능했다. 물론 매우 일찍부터 상품의 사용가치는 그 교환가치와는 다르다는 것이 인식되고 있었다. 유명한 물과 다이아몬드의 예증은 스미드 이전의 여러 저작자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상품의 교환가치는 종종 그것의 효용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던 경제학자들도 허치슨 이전에 있었다. 그러나 리카아도가 항상 ‘부’(사용가치의 합계로 그것의 창조에는 토지와 노동이 함께 공헌한다)와 ‘가치’(그것은 노동만에 의해 결정된다)에 대해서 강조했던 구별이 정확히 정식화되었던 것은 (비록 몇몇 초기의 경제학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이 구별을 채용했다 하더라도) 잠시 후의 일이었다. 일단 이러한 방식으로 토지가 가치의 결정요소에서 제외되어 버리면 남는 문제는 오직 노동이 상품의 가치를 주는 것은 그것에 지불된 보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 그 자체의 지출을 통해서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뿐이었다. [노동가치론의 역사, 로날드 L. 미크 지음, 김제민 옮김, 풀빛, 1985년, p100]

12 thoughts on “‘부’와 ‘가치’ 간의 실질적인 구별에 관한 메모

  1. 미키맨틀

    푸그님은 위의 도서를 포함한 여러 양서를 소장하고 계시겠죠:)
    부럽네요.
    뱀발:혹시 푸그님은 경제학을 전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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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_~

    더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생겨난 수많은 지구상의 무생물에게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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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리에라

    토드 부크홀츠는 자신의 유명한 책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서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이윤증대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나 경영법과 같은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간과한다. (p.190)”

    “마르크스가 빠뜨린 것은 무엇인가? 상상력, 독창성, 경영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p.190)”

    한 마디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를 독점, 착취하고 있다고 여겨지던 경영자, 자본가들도 여타의 노동자들처럼 ‘경영노동’ ‘지식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기업이 축적하는 이윤의 일부를 분배받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지적에 대한 마르크스 주의적 비판으로는 어떤 견해가 있을 수 있을까요.
    혹 그것도 ‘가치’와 ‘부’의 개념적 구분작업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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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부크홀츠 책은 저도 읽었지만 유별난(!) 건망증 탓에 마르크스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암튼 그가 그렇게 이야기했군요. 뭐 딴에는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마르크스가 ‘인적자본’, ‘상상력’, ‘독창성’, ‘경영능력’ 등을 무시했다고 비판하게 된다면, 그 비판은 그대로 거시경제를 연구한 모든 학자들이 같이 들어먹을 욕이 되겠죠. 거시경제학자들이 개별상품에 대해, 예를 들어 MP3플레이어에 대해 아이팟과 아이리버의 독창성과 상상력의 범주까지 다룰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요?(거기에다 제가 알기로 ‘인적자본(Human Resource)’는 20세기 중반에나 가서야 경영학 분야에서 등장한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인간에게 감히 자본/자원이란 용어를 붙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 것 연구하라고 경영학도 따로 있는 마당에 다른 범주의 ‘가치론’을 그러한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군다나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 등으로 나누면서 오히려 부크홀츠가 언급한 독창성이나 경영능력이 자본가 간 잉여가치의 차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미 다른 경제학자들보다 더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는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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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리에라

      부크홀츠의 지적은 ‘이윤’의 존재를 ‘노동’이라는 유형의 생산요소 말고도 ‘경영능력’이나 ‘상상력’ ‘창조성’ 따위의 무형의 생산요소들로 충분히 설명가능하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제가 10억원이 있고 이를 A기업에 제공해 그 기업이 100억의 이윤을 남기었다면 내가 자본제공에 대한 대가로서 이를테면 그 1/5인 20억을 가져가는 것이 타당하냐입니다.

      그러니까 부크홀츠등이 말하는 ‘위험감수’ 따위와 같은 것들이 과연 ‘생산요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자본제공 노동’ 혹은 ‘위험감수 노동’ 따위의 대가로서 이윤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죠.

      제가 들은 대답중에 가장 전형적이고 진부한 대답은 “그런 것들이 정당화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자본을 제공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모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였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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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리에라

      주류경제학에서는 이미 개별 상품에 들어가는 창조성이나 상상력을 이론의 범주 안으로 끌어들여 설명을 시도해 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내생성장론이라는 것도 그런 무형의 요소들을 중요한 생산요소의 하나로 가정하고 그것들이 경제성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으로 압니다. 같은 양의 노동과 같은 양의 자본을 투입하는데 왜 산출물들이 A기업과 B기업 또는 A국가 B국가에서 양과 질이 다른가. 이걸 설명할 방법으로 경영학 등에서 중요시하던 요소들을 추가적인 생산요소로 도입한 것 같거든요.

      문제는 그런 요소들이 무형의 요소이니 만큼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그러다보니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죠. 단지 상상력을 제공했다는 다소 애매해보이는 이유로 수백억 수천억의 자본을 분배받는 것에 불만이 없을리 만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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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리에라

      이런 종류의 논란 혹은 논쟁들은 주류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사이에 가치니 부니 생산요소니 하는 개념들이 제대로 서로에게 이해되어 있지 않으니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잉여가치는 노동의 대가이며 따라서 노동자에게 가야할 몫이다”는 주장과 “니들이 말하는 잉여가치는 경영자 자본가들의 창조적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의 대립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도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가치’개념이 명확하지 않구요. 보통 귀차니즘 때문에 시간투자를 제대로 안하고 흘려듣거나 해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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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oog

      과문한지라 내생성장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네요. 🙂 위키피디어에서 정보를 검색하니까 간략하게 ‘미시경제학의 토대를 바탕으로 거시경제적 접근을 함으로써 약점을 극복하려 했다’라고 설명되어 있군요. 여하튼 요점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거시경제학, 특히 마르크스 이전까지의 경제학에서 소위 ‘가치(value)’라는 것은 상품의 교환에 있어서 이용할 수 있는 등가물을 노동량으로 보면서 개념화된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뉘앙스 상에서 ‘가치 있는(valuable)’의 의미가 아니라 ‘부(wealth)’와 대별되는 측정단위인 노동으로 가늠할 수 있는 교환가치로써의 가치라 할 수 있죠. 마르크스는 그 이전의 선배들이나 그 이후의 후배들처럼 거시적 차원에서 노동을 사회노동 일반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경제를 분석했을 따름이죠. 물론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자본가는 상대적 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 등을 향유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회 전체적으로 창출된 가치 중에서 다른 자본가로부터 더 많은 부분을 ‘전유(appropriate)’할 뿐입니다. 개별자본가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죠. 제가 생각하기로 부크홀츠의 비판이나 내생성장론자들이 어느 자본가, 혹은 어느 나라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국민소득’ 또는 ‘화폐자본’ 등 가치와는 다른 범주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아는 한에 설명을 해봤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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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eagle2

    가치와 부가 다르듯이 가치와 이윤 역시 다르지 않나요? 가령, 10년 전에는 생산라인의 노동자들이 1시간 노동을 해야 1자루의 볼펜이 생산되고, 그걸 100원에 팔아 10원의 이윤을 남겼었는데 이제는 발전된 생산기계와 프로세스의 개선 덕분에 10분의 노동만으로 1자루의 볼펜을 만들게 되어 종전과 같은 가격으로 팔아도 20원의 이윤을 거둘 수 있게 됐다면 이 경우 이윤의 총량과 이윤율은 증대되었지만 볼펜의 가치는 하락했잖습아요?

    물론 제가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아무튼 가치론은 매번 접할 때마다 궁금증이 해소되기는 커녕 더 혼란스러워지고 ‘이게 정말 현실과 관계가 있는 이론인가?’ 하는 의문이 왕왕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의 절대적인 요소는 노동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가와 지배세력은 늘상 창조성과 혁신, 기업가 정신 등등을 이윤의 원천이라고 떠벌리는데 그렇담 노동자 없이 한 번 돈 벌어보라지요. 한명의 천재가 수백만을 먹여 살리네 어쩌네 하며 지들이 일 다하는 듯이 떠벌리지만, 실상 파업과 노동쟁의, 노동조합을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쇄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봅니다.

    가방끈 짧은 애의 짧은 생각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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