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노동자로, 다시 노예로

■ 설탕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을 하나 언급해보자. 노예제도 반대론자들이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무엇일까? 설탕이라고 한다. 설탕 사업은 17세기와 18세기 남미 등지에서 특화된 대규모 플랜트 농업으로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수송해온 노예를 쓰는 대표적인 사업이었기 때문에 노예제도 반대론자들은 차마 도의적 차원에서 설탕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설탕 대신 꿀을 먹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노예제도를 기초로 한 설탕 플랜트의 대량생산 덕에 설탕의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였고 유럽인들은 상류층은 물론 중하류 층까지 설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차와 초콜릿 등 연관 산업이 크게 융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들은 열량이 높은 설탕을 섭취한 덕에 유럽 소재 공장의 생산성도 크게 증가하였다. 결국 남미로 끌려간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부유한 유럽 만들기, 즉 자본주의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셈이다.

■ 노예에서 노동자로

그러함에도 원칙적으로 노예제도는 자본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 부단히 자신의 모습을 변신해야 하는 제조업의 자본가들에게 식솔의 생계까지 챙겨줘야 하는 일종의 재산 개념인 흑인노예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근로대중에게 신체의 자유를 줌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욱 이익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 북부의 자본가들은 인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이윤추구의 동기로써 노예해방을 추구하였다.

이후 노동-자본의 대립관계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로 노동해방을 둘러싼 갈등이라 할 수 있으나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과제는 역시 고용안정과 임금상승에 관한 것들이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와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용계약을 체결하며 노예와는 또 다른 해고의 자유를 누리는 한편, 유아노동의 교육효과를 강조하면서 노동자를 ‘해고’의 자유를 가진 노예로 다루곤 하였다. 노동자와 좌익은 이에 맞서 파업의 권리를 획득하고 고용안정,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의 개선에 힘을 쏟았다.

■ 노동의 시민권 획득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시기 동안 자본주의의 고유한 재생산 위기와 노동계급의 부단한 투쟁을 통하여 노동자의 고용안정은 이른바 케인즈 주의적인 국가기제 안에서의 계급타협의 산물인 ‘노동기본권’의 쟁취를 통하여 일정정도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노동계급이 자본가들에게 자신을 자르지 말아달라는 구걸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기업을 가꾼 주인임을 선언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한편으로 노동의 안정은 그 시기 재생산의 기제에 도움이 되었기에 자본으로서도 노동에게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숨통을 튀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안정 등 ‘노동의 기본권’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가 또 한 번 위기를 겪게 되는데 주요하게는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산의 유연적 축적, 자본의 세계화, 공공서비스의 후퇴, 보다 강화된 경쟁의 도입 등으로 특징져지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일개국가가 더 이상 자본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초국적 자본에게 자신의 국가를 세일즈 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며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갔다.

■ 시민권 박탈의 주역, 신자유주의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계급이 일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사민주의 국가들마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해치는 일련의 조치들을 단행하였고 그것은 ‘국가경쟁력의 강화’라는 레토릭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유연화’는 아직 노동기본권의 본래적 의미조차 제대로 관철되지 않는 제3세계 국가에게마저 무차별적으로 강요되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 네델란드의 반절만큼도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서 네델란드식 노사협조 체제를 구축하자는 웃기지도 않는 난센스가 주장되어지는 남한 땅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9월 13일 노동부가 입법예고한 파견근로 관련 법안의 개정안과 제정안은 이 난센스 희극의 최신판이다. 입법 예고된 안을 보면 지난 90년대 말 제정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비정규직을 생산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근로자파견법이 또 한 번 무소불위의 군홧발로 노동기본권을 작살내게 될 것이다. 노동문제에 조예가 깊다는 한 여당 의원은 인터뷰에서 이 법의 취지가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굴복하는 법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면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며 알아서 잘 하라는 뻔뻔한 멘트를 잊지 않는다.

■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지난 시기 피로써 쟁취한 투쟁의 성과는 ‘세계시민권’을 갖고 있는 초국적 자본과 자국의 시민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노동, 그리고 이에 무력하게 심지어는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을 드는 국가권력 사이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해있다. 그 옛날 노예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며 공장에 취업했던 노동자는 이제 그나마 신분이라도 보장되었던 노예생활을 그리워해야 할 판이다. 아무리 무자비한 주인이라도 자기 노예가 다쳤다면 그것은 재산의 손실이기 때문에 치료는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남한 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치면 그것은 바로 노동자 신분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지금 열린우리당을 점거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또 내일 비정규직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정규직들은 더 이상 ‘노동귀족’이 아니다. 여태까지 근로파견업종을 몇몇 직종으로 제한하였던 기존법이 새로 고쳐질 법에서는 몇몇 직종을 제외하고 전 업종에 걸쳐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리스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길은 하나다. 또다시 노동의 정당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 최고의 유망직종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인력파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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