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껍데기다

미국은 부시를 선택했다. “미국은 전쟁 중에 원수를 바꾸지 않는다” 라는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11월 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40%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이라크 및 테러’로 꼽았으며 전통적으로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경제 및 고용’ 문제는 21%에 불과했다. 이는 부시가 바야흐로 미국인들을 ‘공포의 정치’로 몰아가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그런데 대항마로 나선 케리는 이러한 부시의 공포 정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그는 오히려 이라크 주둔군 증강을 이야기하는 등 보수적인 색채를 한층 강화하였다. 아무리 선거 국면에서 서로가 서로를 베낀다지만 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역시 지휘봉은 부시가 잡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의 단순함은 전쟁터의 지휘관에게 딱 어울리는 품성이었기에 미국인들은 마치 홀린 듯이 부시를 선택하였다. 부시가 사회보장 시스템을 망가뜨리거나 말거나……. 등 뒤에 도청장치를 달고 있거나 말거나…….

전문가들은 향후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1기와 달리 보다 유화적인 체제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쨌든 부시 1기의 일방주의는 별로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부시의 독선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전쟁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해야 했고 유럽과의 외교관계는 전에 없이 악화일로의 상태이다. 분명히 1기의 외교노선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이는 미약하게나마 미국의 대북노선 유화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수정된 일방주의’라고 표현되는 것에 알 수 있듯이 전례 없는 깡패 짓은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시 2기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전쟁을 치루기 위해, 그리고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해 부시가 치렀던 값비싼 대가는 쌍둥이 적자로 불리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이다.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적자폭은 5천 억 달러로 GDP의 5%에 달해 이미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친자본적인(또는 자본 그 자체인) 부시 정부가 적자폭 축소를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전비를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연금개혁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의 축소라는 반개혁 조치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결국 외국을 족치는 수밖에 없다. FTA, 통상압력, 시장개방 압력, 환율절상 압력 등이 그것이다.

당초 이러한 경제압력 수단을 먼저 주창한 이는 오히려 케리였다. 그는 부시가 자유무역 정책을 통해 고용문제 등에 있어 미국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하며 백인노동자 계급의 민족주의적, 보호무역 주의적 기질을 부추겼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위와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되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폐기될 리는 만무하다. 이는 어느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달러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미국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부시, 케리 둘 다 자국의 이익이 되는 경제정책을 혼용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위와 같은 미국의 경제압력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FTA에 목매고 있는 나라이다. 국제투기자본에게 맛있는 먹잇감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있는 나라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되어 있는 나라이다. 또 틈만 나면 덤핑수출을 저지르는 악동으로 소문나있다. 부시, 또는 미국에게 북한은 핵무기를 가진 호전적인 국가로 비난하기 좋은 나라이면 남한은 경제악동으로 골치가 아픈 존재로 비난하기 안성맞춤이다. 부시한테는 한반도 전체가 밥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통상 압력이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은 얼마나 될까? 일단 무역에 있어서는 피해가 예상되지만 적어도 미국의 수출의존도가 해마다 줄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더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환율은 문제가 다르다. 달러대비 원화의 환율보다는 오히려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대비 환율이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의 환율절상 압력은 동북아시아 3개국을 타깃(특히 중국)으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여하한의 요인으로 중국과 일본의 환율이 출렁거릴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이 우리나라의 최대의 무역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부시 2기를 전망하기를 미국의 감세정책이 소비증가로 이어지고 FTA 등 자유무역이 국내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즉 부시 행정부가 언제까지 감세정책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거니와 감세로 인한 혜택은 소수의 자산가에게 집중되고 있음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그러니 전폭적인 소비의 증가로 이어질리 만무하다. 또한 FTA, DDA 등 강대국 위주의 자유무역 확대는 일부 제조업에게만 이득이 될 뿐 농업 등 기간산업에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내수경제를 붕괴시킬 개연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미 시중은행의 대다수를 자유무역 시장에서 뺏긴 상황에서도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이 얻은 교훈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환율절상 압력으로 인한 동북아시아 경제의 혼란이 야기할 악영향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동북아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미국채권의 존재나 무한대의 달러 약세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방어벽이기는 하다). 또한 부시 집권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는 더욱 더 국내경제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유가라는 외부변수는 차치하고라도 문제는 어찌 되었든 수출 의존형 경제에 있다.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수출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환율방어를 위해 쓰고 있으며 이는 결국 또한 세금부담, 수입품 가격 증가 등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보수층은 내수를 활성화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인 부의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확충은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파견법 개악, 신용불량자 방치, 농업기반 붕괴 방치 등을 통해 내수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보수층과 사이비 개혁세력은 그런 와중에도 보다 많은 자유와 성장이 미래의 분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멍청한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전 국민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그 날에도 같은 주장을 할지 궁금하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의 대선이 끝난 와중에 각국의 집권층 혹은 논자들은 부시 미행정부가 미칠 영향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고심하고 있다. 분명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시’의 미행정부가 아닌 부시의 ‘미’행정부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처해 있는 현실과 앞으로의 모습이 이미 부시라는 인물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껍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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