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남자 차베스

□ 창이 되어 돌아온 민주주의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승리를 거두었다. 소환투표로 인해 정치적 위기로 몰렸던 그는 58%의 지지를 얻어 재신임에 성공했다. 이러한 정치적 외줄타기의 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차베스 그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국민소환 제도는 차베스가 지난 1999년 처음 헌법에 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민주주의의 선도자를 찌를 창이 되기도 한다.

□ 반란의 과정

2003년 8월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차베스의 소환을 위해 헌법 규정에 충족되는 약 3백만 명의 서명을 조직했다. 그러나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서명들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청원을 반려했다.

2003년 11월 반대자들은 새로운 서명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4일 만에 3백6십만 명의 서명을 조직했다. 이번에도 국가선거관리위원회는 단지 1백9십만 명의 서명만이 유효하다는 이유로 청원을 반려했다. 무효서명의 상당수는 중복되어 있거나 심지어 이미 몇 해 전에 죽은 이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선관위의 이러한 결정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9명이 죽기도 했다.

끊임없는 논쟁과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결국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헌법 요건에 충족되는 서명을 모았고 – 서명을 위해 경찰들이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을 징발하기도 했다는 주장도 있다 – 드디어 2004년 6월 8일 국민투표의 실시가 선언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사임압력은 베네수엘라는 물론 남미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 투표의 진행, 그리고 결과

8월 15일부터 진행된 투표는 80%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줄은 길게 이어졌는데 신분확인을 위한 지문 스캔 때문에 – 차베스 자신의 지문마저 잘 인식이 안 되어 곤란을 겪었다 한다 – 투표는 더욱 지연되었다. 당국은 결국 투표시간을 연장하였다.

선관위의 위원 중 한 명인 Francisco Carrasquero 는 8월 16일 국영방송에 나와 예비결과를 발표하였다. 선거과 약 95% 진행된 상태에서의 선거결과는 차베스의 승리였다. ( http://www.rnv.gov.ve/noticias ) 이미 여러 차례 각국의 선거에서 감시 역할을 자임했던 카터 센터의 지미 카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선관위의 발표가 맞음을 보증하였다. ( http://www.cnn.com/2004/WORLD/americas/08/16/venezuela.recall/index.html ) 미주기구의 Cesar Gaviria 는 선거 진행과정에서 부정은 없었음을 확인하였다.

No 4,991,483 = 58%
Yes 3,576,557 = 42%

선거일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투표일이 8월 19일이나 그 이후로 잡혔을 경우 차베스는 그의 6년 임기 중 5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 그가 질 경우 부통령 Jose Vicente Rangel 가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투표가 실시되어 차베스가 질 경우 3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바로 치러야 한다. 차베스는 또다른 도전의 의지를 분명히 내비친 것이다. 물론 그의 반대자들은 또 다른 반대행동을 조직했을 것이다.

□ 차베스에 호의적인, 또는 적대적인 해외인사들

2004년 7월 유럽의 통합 좌파 단체인 GUE/NGL 그룹은 유럽 연합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네수엘라는 “훌륭한 사회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하며, 이에 반해 “사유화된 미디어”가 그러한 국가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2004년 8월 여러 나라의 저명인사들이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과의 연대를 선언하며 그를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하였다. 이 서명에는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 영국의 영화 감독 Ken Loach, 영국의 전임 각료 Tony Benn, 런던의 시장 Ken Livingstone, 시인 Harold Pinter, 역사가 Eric Hobsbawm, 우루과이 작가 Eduardo Galeano, 아르헨티나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Adolfo Perez Esquivel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투표가 있기 몇 달 전인 2003년 9월 소환 운동의 배후로 지목되는 Sumate 는 ‘민주화를 위한 미국의 기부’라는 단체로부터 5만3천불을 받았다. 이 돈은 “선거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서명을 조직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http://www.csmonitor.com/2004/0811/p07s01-woam.html ) 정부는 이들 단체가 이 돈을 받은 죄목으로 그들을 고소하였다. 차베스의 지지자들은 Sumate가 미국이 해외에서 그들의 의도를 폭력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또 하나의 사례라고 지목하였다. 미국 관료들은 2002년의 반정부 쿠데타시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지도자들과 몇 차례 회동하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http://www.cnn.com/2002/ALLPOLITICS/04/16/US.Venezuela/http://www.guardian.co.uk/international/story/0,3604,685531,00.html ) 한편 로이터 통신이 몇 달 전 차베스 반대 시위라며 사용한 사진은 실은 차베스에 대한 지지시위였다. ( http://www.indymediapr.org/news/2004/08/4018.php )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보도 역시 편향된 시각이 대부분이다.

□ 끝나지 않은 반란

한편 선거결과에 따라 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차베스의 반대자들은 여전히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졌다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총체적인 재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http://newswire.indymedia.org/en/newswire/2004/08/808090.shtml , http://www.aporrea.org/dameverbo.php?docid=19524 ) Coordinadora Democratica라는 반정부 단체는 선거결과가 오히려 차베스 하야에 59%가 투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차베스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동시에 나라 곳곳에서 그들의 선거행위가 방해를 받았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의 정국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앞으로도 그와 그의 이념은 가난한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것이지만 자본파업은 보다 일상화될 것이다. 부자들은 세계 5위의 석유수출국이 빨갱이의 손에 놓인 것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급등하는 석유 가격은 차베스 정부에게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석유가격의 급등은 자국의 석유매출의 증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또한 보다 많은 정부보조금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하였고 또 다시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절차에 의해 실각할 뻔했던 차베스가 과연 쿠바식의 전면적인 변혁의 길을 갈지 아니면 그의 반대자들과의 타협을 통한 개량의 길을 갈지는 현재까지 미지수이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남미 각국의 좌경화 경향은 남미가 이제 더 이상 수탈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차베스의 집권 그러한 인간해방의 모범사례가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실험에 그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번 그의 승리를 통해 우리는 전자의 경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시인 Dana Garrett 이 차베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보낸 메시지로 글을 마치도록 할까 한다.

“나는 베네수엘라가 앞으로 전 세계에 경제적 정의와 민주적 자유 사이에 어떠한 모순도 없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I have every confidence that Venezuela will demonstrate to the world in the years ahead that there is no contradiction between economic justice and democratic freedom.”( http://vheadline.com/readnews.asp?id=22452 )

2 thoughts on “위기의 남자 차베스

  1. 흐음..

    베네수엘라는 석유시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항상 석유메이저들에게 골치거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항상 세계 최대의 산유국 중 하나였으면서, OPEC를 설립하고, 석유자산의 국유화를 시도하고, Major들의 권익을 나라것으로 만드는 기준을 세워온 나라였죠. 최근에 갑자기 차베즈 정권이 들어서서 석유 국유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걸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20세기의 대부분을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 정책을 펴왔고, 자본주의의 탈을 쓴 제국주의에 반대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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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네. 최근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장관 야마니에 관한 책인데 거기를 보니 흐음..님 말씀처럼 베네주엘라가 무척 강경파였더군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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