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무모하고도 치기 어린 부동산 투자

자본주의 세계에서 기업 간의 경쟁은 창조와 파괴, 합법과 불법, 페어플레이와 더러운 협잡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치러진다. 위험(risk)을 감수하고 수익(return)을 올려야 하는 기업, 그리고 그곳에 종사하는 종업원은 사회에서 정한 룰에 따라 행동함을 원칙으로 하지만 기업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 수시로 룰을 어기고 우회로로 빠지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때로 기업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해묵은 감정 때문에 다른 기업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위 라이벌 기업 간의 신경전인데 서로 기죽지 않기 위해 때로 불필요한 경쟁을 벌여 쓸데없는 비용을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 자 머니투데이의 한 기사에 따르면 이랜드가 최근 이상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랜드가 표적으로 삼고 있는 매물은 세이브존의 세일&리스백(Sales&Lease Back) 매장이다. 이에 대해 잠깐 설명이 필요한데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Sales&Lease Back은 한 회사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을 매각하고 이를 다시 재임대하는 형식이다. 즉 유통기업인 세이브존은 현금 확보를 위해 자신의 매장을 매각하였지만 이를 다시 재임대함으로써 매장의 영업활동은 지속할 수 있는 기법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머니투데이 기사는 이 매장을 매입한 곳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부동산 투자 회사”라고만 하였는데 이 회사는 현재 통상 REITs라 불리는 법인체다. 그리고 이들 법인체는 통상 5년 정도의 투자기간을 거쳐 투자수익을 올리고 법인을 청산하는 한시적인 투자기구다. 세이브존이 2003년 이 회사에 매장을 매각했으니 정확히 5년이 되는 올해 그 매장이 다시 매물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랜드는 왜 이 매장을 매수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2001아울렛 신규 출점 핵심 상권에 위치한 세이브존 매장들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 근거는 첫째, 현재 돈줄이 마른 이랜드는 2003년 당시 매각 가격 1천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의 매입여력이 없으며, 둘째, 해당매장들은 2018년까지 세이브존 임대를 매각조건으로 걸고 있어 2001아울렛 출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 다 타당한 지적이다.

기자는 그 대신 세이브존의 당시 매장 매각은 까르프 인수를 둘러싼 이랜드와의 경쟁을 위한 탄알 마련을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흙탕물이나 끼얹으려는 이랜드의 사감(私感)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즉 매장을 재매입하려는 세이브존과 이랜드가 경쟁을 한다할지라도 세이브존이 우선매입권이 있어 결국 이랜드가 해코지를 할 경우 매입가만 높이게 되므로 이랜드가 그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러모로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랜드와 세이브존에 대한 관련정보를 잘 알고 쓴 기사다. 물론 이랜드는 이 혐의를 부인하겠지만 말이다. 기사는 “금융계 일각에서는 박성수 회장이 ‘위험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주의를 주면서 끝을 맺고 있다. 이에 대해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기업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경쟁을 하고 때로 이로 인해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쟁들은 국가와 시민사회에 의해 자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업 스스로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자기반성을 통해 자제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업의 그러한 못된 행동도 최소한 기업의 존망을 뒤흔드는 모험이어서는 곤란한데 바로 지금의 이랜드가 그렇다.

이랜드는 지금 대부분의 계열사가 자금흐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사 간의 갈등도 전국적인 이슈가 될 만큼 악화되어 있다. 그나마 유일한 탈출구는 홍콩증시 상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의 경쟁자의 기업 활동에 분탕질을 치겠다는 것은 단순한 치기를 넘어서 회사를 담보로 하는 도박이다. 만에 하나 이랜드가 매입가를 높게 불렀는데 세이브존이 우선매입권을 포기하면 속된 말로 독박 쓰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 피해자는 이랜드의 노동자다.

박성수 회장 이하 경영진은 기업이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최소한 사감을 위해 기업을 이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정도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10 thoughts on “이랜드의 무모하고도 치기 어린 부동산 투자

  1. 티에프

    진짜로 이랜드는 알다가도 모를 회사라니까요.

    세이브존도 원래 이랜드가 2000년대 초반 2001아울렛의 성장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아서… 2001아울렛의 성장을 주창하던 직원들이 나와서 만든거잖아요. 근데 아직도 2001아울렛이 신규출점을 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홈에버는 뉴코아아울렛과 과거 까르푸의 짬뽕을 만들어놨는데.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형태가 되버리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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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세이브존이 그런 회사였군요.. 하여튼 이랜드는 여러모로 우군을 적으로 만드는 재능이 있군요. 홈에버의 어정쩡한 스탠스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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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디스카운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아스팔트에 삽질 수준이지만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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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티에프

    예. 그래서.. 2001아울렛이 최근까지 신규매장이 없었던게. 그러한 이유때문이였어요. 내부의 직원들은 성장가능성이 어마어마 하니 신규출점을 공격적으로 하자고 했는데. 이랜드측은 다른데에 관심을 가졌고, 성장 가능성에 의구심을 넣으니… 그 분들이.. 차라리 우리가 나와서 이런 성장가치를 밝히자고 한게 세이브존이였죠.

    그래서 서로 사이가 않좋아요. 원래 뉴코아도 세이브존이 먼저 인수할뻔한걸 이랜드가 가로챈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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