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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의 탄생 과정

처음에 미국은 달러의 기축 통화 역할을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특별 인출권과 같은 수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1964년 IMF 연례총회에서 달러의 비대칭적 위상을 반대하던 프랑스는 그러한 수단을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에 의해 좌초되었다. 드골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 체제의 대칭성을 회복하기 위해 남은 유일한 길로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제시했고 프랑스중앙은행은 달러를 금으로 급히 교환했다. 이러한 은근한 협박은 미국의 공식 입장을 변하게 만들었다. [중략] 미국은 미국의 대외 통화 위상이 더 이상 난공불락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1965년에 입장을 바꿔 특별 인출권 창출에 동의했다.[글로벌라이징캐피털,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강명세 옮김, 미지북스, 2010년, p178]

국제 통화 체제에서의 프랑스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구강국이긴 하지만 통화 체제나 금융 체제에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낮은 나라, 그렇기 때문에 강대국들 간의 모임에서도 반골(反骨)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의 이러한 입장이 어떤 경우에는 제3세계의 입장과 동일한 선상이기도 하였지만, 많은 경우 그 반발의 동기는 결코 1인자가 될 수 없는 2인자의 앙탈 같은 느낌이 강하다. 1차 대전 이전에는 영국에,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는 미국에, 그리고 유로존의 위기 중에는 독일에게 각각 들이대는 “영원한 2인자”.

도미노 현상이 될 개연성이 높은 남유럽의 위기

BIS에 따르면 월스트리트는 그리스에 작년 말 기준으로 단지 약 7십억 달러를 빌려줬다. 그건 대단한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나 다른 유럽의 빚을 짊어진 나라들의 디폴트는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데, 이들이 그리스(그리고 기우뚱거리는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 많은 돈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월스트리트가 등장한다.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은 독일과 프랑스에 많은 돈을 빌려줬다. 유로존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전체 익스포져는 2.7조 달러다.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익스포져는 전체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걱정되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대출뿐만이 아니다. 월스트리트는 유럽에서 발생하는 온갖 파생상품 – 에너지, 통화, 이자율, 그리고 외환 스왑들 – 에 보험을 걸거나 베팅을 한 상태다. 만약 어떤 독일 은행이나 프랑스 은행이 망가지면, 파급효과는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Follow the Money: Behind Europe’s Debt Crisis Lurks Another Giant Bailout of Wall Street]

유로존이 작동하는 구조를 볼 수 있는 글이라 소개한다. 유로라는 동일통화로 묶인 유로존은 시작부터 모순을 내재한 채 출범한 체제다. 동일한 경제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들이 하나의 통화로 경제 통일을 이룬 이 사건을 다큐멘터리 Debtocracy는 헤비급 복서와 페더급 복서가 결투를 벌인 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 주변국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해외차입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 주요한 대출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었다.

결국 그리스 등 주변국들은 프랑스와 독일의 돈을 빌려와 프랑스와 독일의 물건을 산 셈이다. 이런 상황을 확대하면 미국과 중국이 처한 상황과 비슷해진다. 차이점이라면 미국은 달러를 발행할 수 있지만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채무국들은 내놓을 게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이들 채무국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해버리면 Robert Reich의 말대로 그 여파는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 그리고 월스트리트로 전파되어 예측할 수 없는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Debtocracy는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택적인 채무불이행 선언을 주문하고 있다. 즉, 소위 “혐오스러운 대출(odious debt)”은 상환의무가 없으니 갚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월스트리트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이 방법은 남미 좌익전선의 일원인 에콰도르가 시도했었다. 재밌는 사실은 후세인 정부를 전복시킨 미국의 강경파들도 후세인 독재정권의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며 같은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부메랑이 될지도 모르는 이 주장을 말이다.

그리스는 지금 극단적인 내핍경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나라의 재산들을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 스페인은 국민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해 폐지했던 부유세를 부활하였다(비록 그 조건은 보다 강화되었고 예상조세액도 미미한, 상징적인 수준이지만). 하지만 이런 미온적이고 장기적인 조치가 남유럽과 유로존 전체의 위기를 해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채무자나 채권자 모두 함께 즐겼던 “혐오스러운 금융시스템”을 털어버리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페르낭 레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큐비즘, 기계, 건축, 공산당, 서민적 레크리에이션 등등.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큐비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인 페르낭 레제(Jules Fernand Henre Léger)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나열해보았다.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중 하나로는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립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2008년 한국에서 열린 ‘퐁피두 센터 특별전 <화가들의 천국>’이 열릴 때에 국내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이 앞서 나열한 페르낭 레제의 그림에 관한 키워드가 포괄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Les Loisirs. Hommage à Louis David
huile sur toile de Fernand Léger – 1948-1949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Georges Pompidou
© ADAGP Paris 2004
© CNAC / MNAM – distr : RMN / Jean-François Tomasian

1881년 생인 페르낭 레제는 건축을 공부하다 1910년경부터 큐비즘 운동에 참가, 피카소, 로베르 들로네 등과 함께 적극적인 추진자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기계문명, 건축, 추상회화의 접점을 모색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1919년 그린 ‘도시’라는 작품을 보면 이러한 경향을 잘 목격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기계문명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이를 즐겨 표현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기계문명과 기술진보에 대해 낙관적이란 점에서 목가적인 反기계문명론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장이 유별날 것은 없다.

그의 작품만의 특징을 하나 들자면 유난히 원통형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기계 플랜트에 들어가는 각종 배관을 염두에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경향에 대해 한 평론가는 큐비즘이란 단어를 재밌게 비틀어 튜비즘(Tubism)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레제의 원통형에 대한 집착은 구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그가 그린 사람들은 원통형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사람들은 뚱뚱해 보인다기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골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난히 뚱뚱한 사람을 즐겨 그렸던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 작품을 맥락 없이 전시장에서 만난다면 그저 평범한 남녀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쯤으로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술진보로 노동자들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작품이다. 예의 원통형 몸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유입된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하고 하이킹을 즐기고 있는데, 기술진보로 직장에서 잘리는 대신 여가를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그린 사회는 이미 이상적인 노동자 중심의 사회가 전제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레제가 이런 낙관적인 이상향을 묘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좌익들이 확실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좌익은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 하에 사회당, 공산당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을 결성한 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1936년 6월 총파업 이후 전국적 규모의 중앙노사협정인 마티뇽 협정(Accords de Matignon)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표적 노동조합의 개념과 단체협약의 효력확장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2주간 유급휴가제’가 도입되어 노동자는 비로소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퐁피두 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레제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를 위한 유급휴가를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휴가는 이전까지 귀족이나 부르주아지의 전유물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프랑스 노동자는 마티뇽 협정 이전까지는 유급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통한 자본가와의 타협, 기술진보로 인한 사회잉여의 증가 등이 노동자의 여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이 시기부터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연히 이 작품에는 혁명까지는 아니어도 사회개혁을 통한 노동자 세상에 대한 낙관이 담기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노동자의 유급휴가는 – 사실 잘 알다시피 그마저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지난한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의 선전선동에 의해 기틀을 다져온 것이다. 일단 무엇이든지 가지게 된 자들은 웬만해선 기득권을 잘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풍을 “사회주의 이론의 결과이되, 전투적인 맑시스트라기보다는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적인 것이라 평했는데, ‘여가’는 이러한 평가에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연기금의 딜레마

캘리포니아의 가장 큰 세 개의 펀드들은 – 2008년 중반 현재 총 4,42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 그들의 예상되는 부채를 7.5%에서 8%까지의 수익률(rates of return)에 근거해서 산정하였다. 이 가정들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554억 달러의 차이(즉 부채와 자산의 차이 : 역자주)를 보이는데, 연간 개인분담금을 조정함으로써 쉽게 보충할 수 있다. 그러나 펀드 매니저가 20세기 동안의 미국 주식 상승률인 5.3%를 능가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장밋빛 시나리오는 타당해보이지 않는다. 스탠포드의 연구진들은 한층 더 보수적이고 — 과거 그리고 최근 역사 모두를 고려하여 — 현실적인 4.14%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대략 펀드들이 리스크가 없는 미재무부 채권에 투자할 경우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치다. 이 결과는 공식수치보다 예상되는 단기부채가 10배 증가하는 것이다.[Pretend pensions]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진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연기금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공식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보다 현실이 더 가혹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의 기사다. 인용한 부분은 향후 예상되는 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계산은 간단하다 잉여와 부채는 결국 유입과 유출의 차이로 설명될 것인바, 유입은 투자수익과 개인분담금이고, 유출은 지급할 연금과 운용비용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투자수익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므로 관건은 투자수익이고, 이것을 예측할 때 수익률(rates of return)을 적용한 것이다.

연구진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7.5%~8%의 수익률은 매우 낭만적인 수치로 보인다. 어떤 상품이 매년 평균 그 정도의 투자수익을 안겨줄 수 있을까? 미국의 연기금이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입장에서 주식편입비율을 높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기사에서 나와 있다시피 주식의 평균 수익률은 5.3%였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은 미재무부 채권 수익률에 근접한 4.14% 정도 일 것이니 연기금 측의 입장은 현실과 많이 차이난다. 신문기사는 펀드매니저가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일단 수치상으로 별 차이가 없어보일지 몰라도 수익률이 4%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지적해둔다. 기간을 얼마나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4% 정도의 수익률이 매년 복리로 계산된다면 일정기간 후에는 수익이 순식간에 몇 배 이상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관계로 목표 수익률의 설정은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신문이 지적한 바처럼 펀드매니저는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을 것이고, 그러한 리스크 부담의 대표적인 사례는 90년대 중반 바로 캘리포니아 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실제로 발생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분석결과처럼 연기금의 예상부채가 비현실적일 경우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수령연금의 규모를 축소시키거나, 개인분담금 액수를 높이거나, 또는 두 가지 조치를 동시에 취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캘리포니아 만의 문제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연금제도의 개혁에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역시 연금제도 이슈가 개혁이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가 적자 보전 대책에는 부정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개혁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되므로 정치인들이 싫어할 옵션이다.

지난번 ‘2010년 대한민국 재정’ 관련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아직은 이러한 연금고갈의 문제가 짧은 시일 내에 도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현재까지 거의 30조원에 달하는 흑자를 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한 후부터 수령연금의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만큼 새로운 세대가 개인분담금으로 자산을 메워주거나 혹은 일정정도의 수익률을 시현하여야 할 것인데 둘 다 그리 만만해보이지는 않는다. 인구구조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눈먼 돈은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큰 판이 새로 짜여야 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후 자본주의의 성공을 보좌했던 연기금이 21세기 자본주의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인지?

오바마와 코카콜라

멜로 영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프랑스 영화 ‘남과 여’(1966년)를 보면 주인공들이 그들의 자녀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과 여는 각각 와인을 즐기는 와중에 남자주인공 장은 아들 앙뚜완에게 어떤 음료수를 각각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는지를 묻고는 아이들을 위해 그 음료수를 주문해준다. 그 음료수는 바로 코카콜라. 1966년의 작품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당시면 이미 프랑스에 가장 미국적인 음료 코카콜라가 대중적인 기호식품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랄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입성이 ‘남과 여’의 정적인 전개만큼 평화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먹을거리에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에게 있어 코카콜라는 처음에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타락한 음료였다. 1950년대 전후 미국 대중문화의 유럽으로의 유입시기에 발맞춰 진입을 시도한 코카콜라는 프랑스의 좌우를 넘어선 연합전선의 십자포화를 맞아야 했다. 와인 등 전통음료산업의 위기감,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거부, 특히 미국식 대중문화의 거부감 등 온갖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었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게 뭔지, 또는 공화제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때면 우리가 미국이라는 처녀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하곤 했다. 우리에게 그 처녀란 미국이었고 민주주의였으며, 코카콜라, 햄버거, 청결한 잠자리, 혹은 미국의 생활방식이었다.’[코카콜라의 신화, 프레드릭 앨런 지음, 현준만 옮김, 열린세상, 1996년, p63]

<신은 나의 동반자>라는 책에서 콜로넬 로버트 L. 소코트가 적은 글을 재인용한 글이다.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이들이 한때 그들의 슬로건을 The United Taste of America로 진지하게 생각한 것만큼이나 코카콜라를 소비하는 이들도 코카콜라를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였음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로 대표되는 그 반대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카콜라 그 자체가 이미 1950년대에 미국적 대중문화의 대표적 코드 중 하나였음은 자타가 모두 인정하였던 셈이다.한편 프랑스와 코카콜라 간의 무역전쟁은 뇌물공세, 금지입법, 이념전 등 다양한 양상을 띠더니 급기야 양국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미국언론은 프랑스를 쇄국주의라 비난했고 먀살플랜의 원조금을 삭감시켜야 된다는 주장까지 해댔고, 급기야는 프랑스가 코카콜라를 반대하는 이유는 프랑스 좌익들이 코카콜라의 나라를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매카시즘까지 동원되었다. 결국 미국 내 프랑스상품 불매운동이라는 무역전쟁으로 발전한 이 사태는 코카콜라의 프랑스 내 판매를 실질적으로 허용하는 새로운 보건법의 제정으로 막을 내렸다. 코카콜라의 승리이자 우익의 승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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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a-Cola logo” by The Coca-Cola Company – Brands of the World.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 뒤로 코카콜라의 세계화는 거칠 것이 없었다. 미국 대중문화는 모든 대중문화 중 선두에 서있었고 코카콜라는 그 상징이었다. 그 결과로 코카콜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이를 통해 200여 나라에 500여개가 넘는 브랜드의 음료를 팔고 있으며, 회사 전체로는 총 매출 약 320억 달러(연차보고서  참조, 2008년 기준)의 초국적 매머드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 종류의 음료수 브랜드가 쌓아올린 거대한 제국의 현황이다. 한때의 적들도 이제는 코카콜라의 길들여진 입맛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싹트고 있다. 한때 월스트리트저널이 진지하게(!) 몸매가 너무 좋아서 인구의 반절 이상이 비만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개진을 한 바 있는 오바마가 바로 그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언론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탄산음료세(Soft-Drink Taxes)`를 검토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비만 퇴치와 관련해 정크푸드와 탄산음료에 과세하자는 주장은 오래전에 제기됐으며 오바마의 이번 발언은 그러한 맥락의 연결선상에 있다.

또한 탄산음료에 대한 과세는 오바마가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헬스케어 시스템 개혁에 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즉 헬스케어의 전 국민 적용에 따라 필연적으로 증가되어야 할 예산을 탄산음료세로 충원한다는 것이 그들의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현재 코카콜라, 펩시콜라, 카길 등 관련업체들이 이런 제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로비 중이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논리가 과거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국가가 세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안 된다는 이념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vast majority of Americans have heartburn when the government uses the tax code to tell them what to consume, We’re going to remain vigilant.”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은 정부가 소비할 것에 대해 세금을 통해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속 쓰림을 느낀다. 우리는 불침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원문 보기]

아름다운 코카콜라 병 디자인, 그 유려한 로고, 하얀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할아버지, 여유롭게 콜라를 마시는 하얀 북극곰 등. 사실 우리는 코카콜라를 마셨다기보다는 코카콜라를 둘러싼 풍경을 향유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환상이 현실에서의 뚱뚱하고 병든 몸에 대한 대가라면 그 대가는 너무 비싼 것도 사실이다. 소비를 만끽할 수 있는 상품이 반드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당위는 없지만, 적어도 선후관계와 사실관계는 알고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 소비자’로서의 덕목일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서둘러 환골탈태하여야할 대표적 기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소통이 없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나누기’

일본경제신문은 일본 기업 단체(일본 경제단체 연합회, 이하 경단련)와 노조단체(일본 노동조합 총연합회, 이하 연합)의 양자간에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잡셰어링의 도입을 위한 논의를 재개하고 있다고 보도(1/8)[최근 일본의 Job Sharing 도입 논의와 전망,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2009. 2.21, p2]

이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나의 일자리 나누기와 일본의 그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1) 우리나라는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고 일본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상이다. 2) 우리나라는 정부가 하향식으로 공공기관의 임금을 강압적으로 깎는 방식이고 일본은 노사간의 논의를 통한 방식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여타 국가도 일본과 진행양상이나 추진방식은 매한가지다.

물론 일본에서의 일자리 나누기 추진현황이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따라할 수 없는 특수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예나 다른 나라의 예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의 보편적인 원칙은 바로 이해당사자 간의 소통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윤호 장관의 심플라이프

이윤호(사진) 지식경제부 장관은 30일 “이번 (촛불시위) 사태를 치르면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좌파 세력이 있는지 절감했다”며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가 아직 굉장히 취약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윤호 지경 “좌파 얼마나 많은지 절감”, 동아일보, 2008년 7월 31일]

이 기사로 판단해 본 그의 머릿속

촛불시위 참여자 = 좌파 세력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파괴세력

참 단순해서 좋다. 이런 사람은 지식경제부 장관보다는 무식경제부 장관이 어울릴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 분은 인구의 절반이 골수 좌파이고 사회주의당이 지난 십 수 년을 집권했으면서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는 프랑스 같은 나라에라도 가면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혼절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스웨덴에라도 가면 코마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