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가 생각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프로세스

부지런한 악인(惡人)은 땅을 경작하는 반면에 게으른 호인(好人)은 땅을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누가 수확(收穫)하는 것이 옳은가? 누가 굶주리고, 누가 부유하게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사물의 자연적 진행은 이것을 악인에게 유리하도록 결정한다. [중략] 그러나 인류 감정의 결과인 인류의 법률은 부지런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반역자(叛逆者)의 생명과 재산을 몰수하고, 절약하지도 않고 조심하지도 않았지만 선량한 시민의 충성과 공익정신에 특별한 보상을 한다. 조물주는 이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조물주 자신이 다른 방식으로 행하는 사물의 분배 방식을 어느 정도 바로잡도록 지도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조물주가 인간으로 하여금 따르도록 촉구하는 준칙들은 조물주 자신이 준수하는 준칙과는 다른 것이다.[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박세일/민경국 공역, 비봉출판사, 2014년, p312]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이라는 고전적인 경제학 서적을 내놓은 경제학자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내놓은 도덕철학자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경제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그의 이 저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장 위의 인용문만 보아도 우리는 우리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알고 있는 그의 사회에 대한 생각, 즉 개개인의 효용 및 이익의 극대화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사회전체의 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조금은 냉정하고 메마른 사회의 모습과는 다른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는 심증을 가지게 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아담 스미스의 메시지’라는 글에서 애덤 스미스가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신(神, Providence)의 손”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용문을 보더라도 그의 설명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애덤 스미스는 악인과 호인의 경제행위에 대한 결과는 조물주의 준칙에 따라 정해질 것이지만, 또한 조물주는 인간이 그 둘 간의 도덕성에 따른 대가를 “바로 잡도록 지도”하고 있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진행과정은 이 과정까지가 완결인 셈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팔며 경제행위를 하는 상당수는 조물주의 추후 보완작업을 그리 탐탁해 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그 작업이 경제효율성을 저해하고 “보이지 않는 손”의 작업을 역행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이든 일시적인 불황이든 간에 전세계가 불황의 늪에서 헤매고 있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각국 지도자와 국제기구가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은 한국적 스미스주의자들에게는 “사회주의자들의 음습한 노림수” 쯤으로 치부된다. “호인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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