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시장은 분명히 현재 시점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sonnet님이 재인용한 스티글리츠가 말하기를 “비시장 메커니즘은 이 오랜 시간 동안 작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사용하는 정보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는 동안 제공된 정보이다.” 라고 하였는데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다. 이것이 후진적인 구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딜레마였다. 그들은 정보를 얻기에 너무도 능력이 안 되었고 그나마 시장도 암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보란 다양한 것들이 있겠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정보는 역시 공급과 수요를 일치시켜주는 정보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공급이나 새로운 수요의 창출에 대한 동기도 부여해준다. 또한 시장이 없었다면 facebook이나 아이폰, 그리고 구글과 같은 유연성 있는 혁신이 가능했을까? 어느 정도는 회의적이다.(주1) 어쨌든 경제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우리는 이보다 나은 수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한편 sonnet님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경험적으로 보면, 시장은 위기에 취약”하다. 즉 시장이 위기에 빠지게 되면 전통적으로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고 가정되던 공급과 수요가 순식간에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동가능한) 고정환율제이던 브레턴우즈 체제 시절, 자유변동환율제를 지지하던 밀튼 프리드먼은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오르거나 떨어질 경우 이를 공격하는 반대투기가 일어나 투기꾼들은 환율 안정화 세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환율 안정화 투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세를 거스를 수 있는 배짱투자가는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sonnet,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단상]

이 블로그에서도 윗글에서 언급한 투기와 반대투기의 개념을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어 재인용하겠다.

파생상품시장의 참여자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자(hedger)’, ‘그 hedger에게 위험을 넘겨받는 대신 수익을 취하려는 투기자(speculator)’,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시장의 교란으로부터 무위험차익을 실현하려는 자(arbitrageur)’가 그들이다. 이 체제의 신봉자들은 위험은 분산되어야 하며 두 번째 주체 즉 speculator가 없으면 hedger는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여 시장의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논지다.[foog, 부시 행정부의 새 금융규제 수단은 솜방망이?]

즉 파생상품시장도 그렇지만 많은 여타 시장은 hedger와 speculator(또는 risk taker)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주2) 이 둘이 없으면 거래가 없고 시장은 돌아가지 않게 된다. 아파트 시장에서 아파트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면 hedger에 가깝고 그 아파트를 사서 자산가치 상승을 노리면 risk taker에 가깝고 뭐 이런 식이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는 hedger에 가깝고 자본가는 speculator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위기에 도래하면 갑자기 모두가 hedger가 된다. 지금 시장의 자산가치들이 폭락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와중에 speculator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은행은 자산을 청산하며 디레버리징에 몰두하고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은 중도금내기 싫다고 시청 앞에서 데모를 한다. 현 시점에서 당장 생각나는 speculator는 두명 정도인데 하나는 워렌 버핏이고, 또 하나는 박현주다.

좀 지루하게 썼는데 사실 여기까지의 요지는 내 잡문보다 sonnet님의 유려한 글을 읽는 편이 훨씬 심미적으로 유익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과드린다. 하지만 내가 이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기에 독자 분들의 양해 바란다. 즉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sonnet님이 스티글리츠의 입을 빌어 하고 싶은 글의 또 다른 요지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sonnet님은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와 거부를 보이는 것처럼”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것이 반드시 “본능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모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whatever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여겨지지 않거니와, 더불어 더 나은 시장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장의 한계 또한 다시 한번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시장을 거부하는 이들을 또 싸잡아 “시장반대원리주의자”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

그린스펀이 이번에 자신이 Fed 의장에 있을 때 취했던 행동이 “부분적으로(partially)” 잘못 되었음을 인정하였는데 그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회위원회의 민주당 의장 헨리 왁스만이 그를 압박했다. “당신의 세상에 대한 관점, 당신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다고 알아챘고 그것이 작동 안 하지 않았느냐?” 그린스펀이 인정했다. “그게 정확히 내가 40년여 동안 일해 왔기에 그것이 예외적으로 잘 작동하였다는 상당한 증거에 놀란 이유다.”
The congressional committee’s Democratic chairman, Henry Waxman, pressed him: “You found that your view of the world, your ideology, was not right, it was not working?” Greenspan agreed: “That’s precisely the reason I was shocked because I’d been going for 40 years or so with considerable evidence that it was working exceptionally well.”[guardian, Greenspan – I was wrong about the economy. Sort of]

즉 그는 지난 40년간 시장은 정상적으로 잘 작동했기에 그가 부분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극히 최근, 길게 잡아도 그가 물러나기 몇 년 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그는 “백년에 한번 일어날만한 신용 쓰나미(once-in-a-century credit tsunami)”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번 신용위기가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시장경제에 내재된 모순이 발현된 것이라기보다는 극히 예외적으로 순식간의 불가항력적인 교란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같은 상대적인 진보주의자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요컨대 sonnet님의 글에서 비판받고 있는 시장원리주의자, 또는 시장근본주의자는 – 그린스펀은 시장근본주의자 중 체제내 세력? – 시장주의자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하고 있고 스티글리츠나 sonnet님은 – 또는 크루그먼까지? – 그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둘의 공통점이 신용위기가 시장의 근본모순이 아닌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하는 관점, 즉 시장본질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요컨대 내가 궁금한 점은 그것이다. 현재의 시장위기를 해결한 후 그것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을 만큼 시장은 절대적으로 보존할 가치 있는 것인가? 또는 적절한 통제장치만 마련되면 시장은 다시 순수한 시장예찬론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상태의 시장으로 순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만 되면 시장은 공산주의자들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경기변동 및 공황의 두려움으로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적으로 위 질문 중 어떤 것에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것에는 회의적이다. 전후 자본주의는 그 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였다기보다는 주로 임시변통적인 변수에 의해 “예외적으로” 작동하여왔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할 정도의 저유가(低油價), 이를 위한 침략전쟁, 이를 지원하는 군사력과 방위산업, 노동운동 해체/비정규직 확산 등을 통한 소득양극화, 이에 따른 소비침체를 이연시키는 모기지와 같은 대부(貸付)경제,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을 이용한 과소비, 중국 등 신흥국으로부터의 저가상품 유입 등 몇몇 특수한 변수가 운 좋게도 그때그때 시장의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그리고 그 모순은 지금 폭발한 것이다. 이건 쓰나미가 아니라 화산폭발이다. 오랜 동안 마그마가 내부에서 응축되어 왔던 산에서 터진.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예외적인 변수들 말이다. 저것은 전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예외적인 변수였지 모든 시장에 항상 따라다니는 행운의 과자들이 아니다.

(주1) 또 역으로 어느 정도는 부정적이기도 한데 한 예로 월드와이드웹의 창시자로 알려진 Tim Berners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적재산권으로 묶어 배타적인 사업이윤을 취득하려 들었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조화의 문제이기는 하다.

(주2) arbitrageur는 좀 특수한 존재니까 생략

18 thoughts on ““결국 시장은 복구되어야 한다”

  1. 천마

    확실히 시장을 “예외적인 위기 상황이 아닌 평시에는 완전히 믿을 수 있다”는 주장이 의문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관련 서적을 자주 접하거나 한 입장이 아니라면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겠죠.

    저도 전쟁사라면 그래도 관심이 있어 책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경제학 부분은 초보라서 잘 모르지만 시장주의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사실 시장이 평시에 알아서 잘 작동한다지만 그 주장대로면 담배나 마약등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말이 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자동차등 교통기관이나 각종 레포츠의 안전장비도 국가의 강제가 아닌 시장에 맡기면 해결되나요? 고래 사냥 금지등 동물보호도 시장원리에 역행하는 건 아닌가요?

    위의 의문은 시장주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오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강제하는 일인 것만은 사실이라서 말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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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sonnet님도 비판하고 있는 시장원리주의자들 중에는 그런 주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꽤 유명한 경제학자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었고 – 누구인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 제가 읽은 어떤 책에서도 그런 취지에서 창녀, 마약상, 아파트 투기꾼의 존재의의를 인정하더군요. 그들에게 정부와 규제는 일종의 버그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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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onofspace

      경제학자는 아니지만 복거일이나 공병호 같은 사람은 장기매매까지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을 했지 않습니까.. 어안이 벙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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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목 보고 헉, foog님도? 라고 생각했으나..
    다 읽고 다시 제목을 보니..
    ” “가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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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contender

    1. foog님. 먼저 이 글에 대해서 사과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전 좋은 정보 얻어가고 있고요 그런의미에서 foog님 고마워용~ ㅋ

    2. 이정환님도 오늘 쓰신 글 보니까 ‘자본주의, 좀 고치기만 하면 계속 굴러갈 수 있을까.’라는 글을 쓰셨던데 요새 economist도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달아났는데.. 참고로 제 홈페이지에 올려났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직까지 다 읽어보진 못했고요. 지금 읽어볼려고 합니다. ㅋㅋ

    3. 전 개인적으로 ‘현재의 시장위기를 해결한 후 그것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을 만큼 시장은 절대적으로 보존할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도 현재 우리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리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결국 자본주의로 되돌아갈려고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foog님이나 이정환님 분들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은 지금 당장 혁명은 하지 않더라도 분명 지금보다는 더 나은 자본주의 혹은 더 나은 체제를 만들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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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요즘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제 본업이야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놈인데 말이죠. ^^; 존재와 의식의 파편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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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eagle2

    “만약 다시 시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우리는 이전의 시장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핵심적인 구성요소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 이 말씀에 크게 동의합니다. 저도 요즘 비슷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요.순수한 자본주의가 불가능하듯 시장과 사유재산이 완전히 사라진 순수한 사회주의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경제-사회 체제의 다음 버전부터는 (현존 사민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라 불리우는 것의 어떤 것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지만 끔찍한 사태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혼자생각에 빠져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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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xarm

    hedger, speculator, arbitrageur는 ‘놈놈놈’ 같기도 하네요.
    ‘겁 많은 놈, 겁 없는 놈, 약삭빠른 놈’ 정도가 되려나요? ㅎㅎ
    (비유가 얼추 맞게 됐나요? @_@;)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야, 이 바보들아, 이렇게 하면 되자너~’
    라며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ㅎㅎㅎ
    foog님께서 한 번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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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히치하이커

    어차피 치룰 일이라면 새로운 무언가, 조금 더 공정하고 탄탄한 기초를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됐음 하는데, 이게 참 말만 쉬운 일이겠죠.

    요즘 같은 시기엔 푸그님의 글이 더더욱 머리에 쏙쏙 박힙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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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Pingback: a quarantine station

    1. foog

      이상하군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여하튼 영양가 만점의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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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Pingback: a quarantine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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