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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

사드 배치에 대해 국민의 칠할이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아침에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국민 중 일곱 명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기사였다. 연합뉴스와 KBS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중 한 항목이었던 이 조사결과는 어쨌든 한미 양국의 사드 추진 여부에 결정적 변수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른바 “여론몰이”에는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사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응답자의 뜻이 어떠하든 간에 정당한 여론조사라면 당연히 결과에 수긍해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여론조사의 방식이 다분히 결과를 유도하는 방식이라 여겨진다는 점에서 여론조사 당사자들의 양식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에 근거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응답항목인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와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 배치하지 말아야 한다”다.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 과문한지라 알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데 저 항목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드의 배치 여부에 대한 설문이라면 그냥 “예”와 “아니오”로 응답항목을 정하면 될 것인데, 왜 “북한의 위협의 대비하기 위해”나 “중국 등의 강경 입장을 고려해”와 같은 단서 조항을 붙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단서조항이 응답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은 억측에 불과한가?


갤럽의 ‘동성애자의 권리’에 대한 설문조사다. 응답항목은 “합법화되어야 한다(should be legal)”와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should not be legal)”로 단순하다. 만약 후자의 응답항목을 “자녀들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할 때 합법화되지 않아야 한다”라고 바꾸면 응답결과가 당초의 응답항목 결과가 같으리라 생각되는가? 부모는 ‘우리 아이가 게이라면?’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한국에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다는 연합뉴스

한국에 ‘헝그리정신’이 사라졌나…노동의욕 61개국중 54위

오랜만에 추억의 걸작 ‘넘버3’를 생각나게 하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최근 발표한 ‘2015 세계 인재 보고서'(IMD World Talent Report 2015)의 내용을 전하면서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함께 엮은 연합뉴스의 이 기사는 노동의욕이 저하된 트잉여들을 빡치게 하는 기사 제목 덕택에 아침부터 트위터 타임라인에 핫이슈로 등장하였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넘버3의 “헝그리 정신” 일화도 다시 화제다.

“전문가”에 의해 순위가 낮은 것은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받은 항목은 ‘노동자 의욕(Worker Motivation)’ 항목이다. 한국은 이 항목에서 조사국가 61개국 중에서 54위로 최하위권으로 머물렀다. 그런데 그 의욕은 누가 측정한 것일까? 바로 기업 임원의 설문을 통해 측정된 것이다. 고용주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의견이다.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없다는 말은 누가 했을까? 임상혁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다.

한편 가장 자발적으로 일한다는 평가를 받은 국가는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나라다. 이 나라들은 세계 최고의 부국인데도 불구하고 전경련 상무의 분석에 따르면 “헝그리 정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국가랄 수 있다. 한편 전경련 상무는 “선진국이 아닌데 선진국인 줄 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컨대 우리 노동자들은 선진국이 아닌데도 선진국인줄 알고 헝그리 정신이 없어져서 기업 임원들 보기에 노동 의욕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다른 분석을 하는 이의 의견도 기사에 언급돼있다. 허대녕 기초과학연구원 전략정책팀장은 “고급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 기업과 연구소의 환경도 미국 같은 나라보다 너무 열악하다. 야근이 잦은데다 고용 불안도 심하다”고 말했다. 이 의견은 앞서 전경련 상무와 반대되는 의견이다. 허 팀장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노동자는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헝그리하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없다는 의견으로 들린다.

실제로 보고서의 조사항목 중에서 한국이 ‘노동자 의욕’과 비슷한 순위에 머물러 있는(56위) 항목이 ‘생계비(Cost-of-living) 지수’다. 이 항목에서 우리와 비슷한 순위를 차지한 국가는 앞서 노동 의욕이 강하다는 스위스나 덴마크가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임금이 우리나라보다 높다. 우리나라는 그 나라보다 임금도 낮고 노동시간은 더 긴데도 생계비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면 전경련 상무보다 허 팀장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이 아닐까?

기업임원이 노동자의 의욕이 없다고 평가하고 기업이익대변단체 임원이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렇다고 비아냥거리고 그걸 그대로 기사제목으로 쓰는 상황. ‘넘버3’보다 더 웃긴 코미디다.

대한민국 언론 단상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 매체 대부분은 비애국적 매체로 간주되어 시장점유율 하락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부의 월권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포기했습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명확한 전략이지만, 언론기관이 이득을 얻은 덕분에 결국 국민들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스노든의 위험한 폭로, 루크 하딩 지음, 이은경 옮김, 2014, 프롬북스, 74p]

정부 보안기관의 일급기밀을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일반에 공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인터뷰 발언이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왜 그 기밀을 뉴욕타임스에 제보하지 않고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인 글렌 그린월드에게 제보했는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애국주의와 상업주의가 어떻게 언론기관의 입을 다물게 하는지를 단순명료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2014년 5월 한국의 언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부조리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론의 모습은 스노든이 묘사하는 바로 그 모습이다. 어쩌면 비즈니스 관점까지도 나아가지도 않아 보이고 사주(社主) 혹은 더 위의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 혹은 복종심 – 엿보인다.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로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최근 행태를 보면 언론인으로서의 모습도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포기한 비굴함이 느껴진다. “연성독재”의 압력에 굴종을 택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또 하나의 권력이라고 자부한 것인지 모르겠다.

KBS의 이러한 모습, 나아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몇몇 매체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바람직한 언론의 모습이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자본에 굴종하는 언론’이 되지 않게 하려고 소위 “공영화”를 시켰는데 사익을 추구하는 권력층의 스피커 역할만 할 뿐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언론은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파’ 등과 같은 대안매체에서 그나마 희망의 싹을 본다. 이용자의 자발적인 기부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외부압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이 돋보인다. 어찌 보면 언론이 지향하여야 할 대안적 구조, 즉 “사회화된 매체”의 가능성이 기대된다. 다만 때로 드러나는 지사(志士)적 태도가 언론의 객관성을 해칠 개연성은 있어 보인다.

JTBC는 ‘손석희’라는 1인이 자본의 지원 하에 전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모습은 한 자산가의 기부와 철저한 편집권 독립 보장을 통해 독립매체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의 ProPublica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손석희라는 히트 상품이 가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담고 있는 실험이라고 생각된다.

2014년 현재 국민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 언론 때문에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이 우리 청년의 탓”이라는 KBS 보도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가 힘든 일이라며 취업을 기피하다 보니 고임금을 주고라도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2백만 원 이하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줄고 2백만 원 이상 받는 근로자 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3D 업종의 중소기업들의 경우, 사람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위해 외국인 산업연수생 수를 2만 4천 명 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 결국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습니다.[값싼 외국인 노동자 ‘옛말’… 월 400만 원!, KBS 뉴스, 2014.4.16.]

“우리 청년들의 3D업종 기피 현상” 운운은 꽤 오래된 레퍼토리다. 그런데 이 보도는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을 고집”해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만 올라가고 있다는 상관관계까지 도출하였다. 좀 더 이 논리를 확대해보자면 결국 ‘우리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만 고집하지 말고 3D업종에 취업하였으면 3D기업의 일자리 부족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쓸데없는(!) 고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는 논리일 것이다. KBS는 이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럴듯한 통계자료까지 제시했다.


출처 : KBS 트위터

통계자료의 진위여부는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KBS가 제시한 자료는 해당 포털에서 올라온 ‘월평균 임금수준/성별 임금근로자’ 현황을 가공한 자료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월평균 200만원 미만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4만6천명 감소한 반면, 200만원 이상을 버는 외국인 노동자는 2만2천 명 늘었다. 감소한 절대숫자는 정부가 줄인 산업연생 수와 일치한다. 과연 KBS의 보도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문제는 임금상승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월평균 임금수준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100만원 미만 52 42 -10 -19.2%
100만원~200만원 미만 519 483 -36 -6.9%
200만원~300만원 미만 143 159 16 11.2%
300만원 이상 45 51 6 13.3%

출처 : 국가통계포털

KBS는 ‘우리 청년이 양질의 일자리를 고집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3D 노동시장에 우리 청년이 참여하지 않아 노동수요가 늘고 임금이 오른다는 논리다. 하지만 KBS는 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임금상승의 주범으로 ‘우리 청년’을 겨냥했으면 마땅히 그 근거자료도 제시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한편, 통계적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하였으나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KBS의 제시자료가 2012~2013년 자료인데 여타 노동관련 자료는 최신 데이터가 2012년까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현황에 대한 각종 자료는 2013년까지 정리되어 있어서 다양한 원인 중에 우선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시장 내부를 훑어볼 수는 있었다. 우선 살펴볼 것이 ‘직업별 취업자 현황’이다. 비임금근로자까지 포함한 자료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 통념과 달리 전문가, 사무종사자 등의 소위 화이트칼라 외국인 노동자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반면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는 동기간 4만6천명이나 감소했다. 흥미롭게도 줄어든 200만원 미만의 월급 노동자 숫자와 일치한다.

직업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91 93 2 2.2%
사무종사자 20 24 4 20.0%
서비스ㆍ판매종사자 87 87 0 0.0%
농림ㆍ어업숙련종사자 24 23 -1 -4.2%
기능원ㆍ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330 284 -46 -13.9%
단순노무종사자 239 250 11 4.6%

출처 : 국가통계포털

또 하나의 변수를 살펴보자면 ‘근속기간별 취업자 현황’과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 현황’이다. 두 통계 공히 2년 이상의 장기취업자 수가 많이 늘어났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현황이 단순한 산업연수생의 미숙련노동에서 취업기간이 긴 노동자의 숙련노동 위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기간 우리나라 전체의 제조업과 건설업의 상용월급여액은 각각 3.7%, 6.5% 상승했다. 임금의 자연적 상승요인도 있다는 의미다.

근속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192 159 -33 -17.2%
6개월~1년 미만 163 130 -33 -20.2%
1~2년 미만 228 208 -20 -8.8%
2~3년 미만 101 112 11 10.9%
3년 이상 107 150 43 40.2%

출처 : 국가통계포털

한국에서의 동일직업 근무기간별 취업자수(단위 : 천명)

구분 2012년 2013년 증감 증감률
6개월 미만 88 72 -16 -18.2%
6개월~1년 미만 111 100 -11 -9.9%
1~2년 미만 206 176 -30 -14.6%
2~3년 미만 114 130 16 14.0%
3년 이상 271 282 11 4.1%

출처 : 국가통계포털

요컨대, 외국인 노동시장은 3D업종의 저임금 노동자 일색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점차 사무직, 전문직 종사자의 수도 늘고 있는 상황이며, 산업연수생 제도 등에 의해 노동력이 공급되는 기능원 등의 미숙련노동은 일시적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그와 함께 근속기간은 유의미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어 이것이 임금의 자연적인 상승분과 함께 임금상승의 주요원인일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상승은 KBS의 주장처럼 우리 청년의 3D기피 때문일까? 외국인 근속연수가 우리 청년 때문에 느는 것인가?

KBS의 보도가 안타까운 이유는 밑에 깔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뉘앙스 때문이다. 잔업까지 포함해서 3백9십만 원을 받고 있는 고소득(?!) 외국인 노동자의 사례를 가지고 우리 청년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외국인에게 주지 않아도 될 고임금을 준다는 그 주장이 담고 있는 시각이 인종주의적 시각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 외국인이 되었든 내국인이 되었든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KBS는 우리 청년이 3D시장에 어서 편입되어 임금이 하향평준화 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일까?

전경련의 보도 자료까지도 멋대로 각색하는 한국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이 ‘대기업 40% “불황·규제 탓…채용 줄이겠다”’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상위 6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2013년 신규 채용 계획에 대해 5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도 자료로 내놓았는데, 해당 기사는 이를 토대로 작성한 기사다.

기사를 보면 응답 기업 157개 중 39.5%인 62개 기업이 작년보다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달리 보면 응답 기업 중 60.5%인 95개 기업은 작년보다 신규채용을 늘리거나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기사는 톤을 바꿔 채용을 줄이겠다는 응답을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채용을 늘리겠다는 응답보다 줄이겠다는 응답이 많아 그 정도는 수긍할 수 있는 톤이다. 문제는 채용규모 축소 이유에 대한 분석이다. 전경련의 자료는 해당업종 경기악화, 국내외 경기악화, 기타, 회사 내부사정 순으로 그 이유를 적시했다. 하지만 한경은 여기에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규제’였다. 전경련의 ‘신규채용을 줄이려는 이유’ 항목에 ‘규제 때문에’라는 답은 어디에도 – ‘기타’에 해당할지 몰라도 –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한경은 기사에 난데없이 “불황보다 더 큰 문제”라며 규제를 탓하고 있다. 애초 규제를 언급하지 않은 전경련까지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전경련도 기업이 채용을 줄이려는 이유를 ‘불황’과 ‘규제’에서 찾았다. [중략] 불황보다 더 큰 문제는 ‘규제’다. 유통 등 상당수 업종에 속한 기업들이 규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제히 고용을 줄이는 추세다. [중략] 각종 경제민주화 규제가 양산되는 흐름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업의 신규 채용은 더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높다. [대기업 40% “불황·규제 탓…채용 줄이겠다”]

그들이 예로 드는 대표적 규제는 ‘중소기업 보호업종 지정’, ‘정년 연장’, ‘기업 내부거래 규제’와 같은 이른바 “경제민주화 관련 규제”다. 요컨대 ‘대기업이 신규채용을 줄이려는 주된 이유가 불황’이라는 취지의 설문조사가 한경에 의해 “경제민주화가 불황보다 더 큰 문제”라고 각색된 셈이다.

애초 현 정부의 공약도 “경제민주화”라기보다는 경제구조 정상화 정도에 그치는 미세조정 성격의 공약이었고 그나마도 어느새 “창조경제”라는 정체불명의 구호에 가려 퇴색해가고 있다. 그런 슬로건을 한경은 친자본단체의 설문조사 내용과도 다른 식으로 각색해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푸어가 다 무슨 시가 10억급 아파트 사는 줄 알아?”

며칠 전에 “하우스푸어(house poor)”라는 표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트윗했고 적잖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당혹스러운 반응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반응이었다. 이 반응은 쌍욕이 난무한다는 점에서도 신선했지만, 그보다는 글쓴이의 “하우스푸어”라는 표현에 대한 무지가 더 내 흥미를 자극해서 여기에 소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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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매스미디어에서 부동산 시장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이 “하우스푸어”인데, 그 중 푸어(poor)라는 표현이 가지는 뉘앙스가 읽는 이로 하여금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 정책적인 관점에서나 여론 모두 – 것이 내 트윗의 요지였는데, 내 트윗에 거친 반응을 보인 이는 바로 그런 편견으로 나를 공격한 셈이니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우스푸어”라는 표현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던 표현이다. 과문하여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 이런 표현을 본격적으로 쓰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영어이긴 하지만 외국의 논문이나 신문기사에서도 이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표현이 언젠가부터 우리 언론에 지속적으로 소개되며 경제를 바라보는 주요인자 중 하나가 되었다.

외국의 사전 사이트의 힘을 빌리면 하우스푸어는 “대부분의 돈이 집에 묶여 있어 현금이 모자란 사람”이랄 수 있다. 이 간단한 정의의 기준에서 보면 외국에 비해 훨씬 많은 비중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우리나라 주택소유자의 대부분이 하우스푸어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매스미디어는 이 정의에서 좀 더 구체화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도 가계부채 부실화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기준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43%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고 주택가격은 급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택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하우스푸어’들이 늘어나고 있다.[가계부채 부실 이대론 안된다]

또 그는 “부동산경기 침체와 내수부진이 심화되면 빚을 내 구입한 집 때문에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나 신규 자영업자 등이 새로운 서민금융 수요층으로 편입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빚을 내서 집을 산 900만 가구 중 70만 가구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가 넘어 빚을 갚기 어려운 하우스 푸어다.[“국가재정 서민금융에 투입… 가계빚 연착륙 도와야”]

주택거래 실종은 이제 고점에서 집을 사서 고생하는 ‘하우스푸어’의 개인적인 하소연에 그치지 않고 밑바닥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건설사, 협력업체, 이삿짐센터 중개업 등 서민업종까지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깜깜한 부동산시장, 매의 눈으로 상품 골라라]

하우스푸어의 핵심적인 특징이 잘 요약되어 있어 인용해보았다. 첫 번째 특징인 “주택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상황은 당초 정의와 부합한다. “DTI가 40%가 넘어 빚을 갚기 어려운” 두 번째 상황은 한국적 맥락의 하우스푸어를 더 구체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점에서 집을 사서 고생하는” 이들이 한국적 하우스푸어의 특징을 완성시켜주고 있다.

요컨대, 우리 매스미디어나 정책당국이 생각하고 있는 하우스푸어는 “부채비중을 높게 잡아 고점(즉, 2000년대 중후반)에서 집을 사서, 집만 있고 자산이 거의 없는” 주택소유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표현인 셈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집 한 채밖에 없는 서민층’,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빈자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하우스푸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에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하우스푸어가 고통 받고 있다’고 떠들어대서 나온 결과가 강남 투기지역 해제 등을 골자로 하는 5.10대책이랄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DTI 규제완화가 빠졌다며, 더 규제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 빚 얻어 집산 하우스푸어가 고통 받고 있으니 DTI를 풀어 빚을 더 얻게 하자는 희한한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 트윗에 썼듯 지금 하우스푸어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 시장참여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소비를 꺼리고 있다. 부동산에 대한 시장적 요법이 – 이미 5.10대책 이후의 시장이 증명하듯 – 별무소용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매일경제는 DTI 타도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