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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수위에 도달한 한국 매스미디어의 언어오염 현상

한국의 매스미디어가 보도기사를 쓸 때 사용하는 언어의 오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자들 스스로 언어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언어사용에 유연성(?)을 가지기로 마음먹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 보도의 기본원칙인 언어적 엄격함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매스미디어는 언제부터인가 보도기사에서 ‘존버’, ‘줍줍’, ‘영끌’과 같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고, – ‘곱버스’나 ‘떡상’과 같은 표현은 이미 오래전에 시민권을 획득했다 – 심지어는 매스미디어 스스로 미투(MeToo) 현상을 조롱하는 듯한 ‘빚투’와 같은 어이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매스미디어와 온라인커뮤니티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이들 표현이 신세대에게 더 직관적이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이 가상자산 관련 기사에서 더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다만, 이런 현상이 일반화되다 보니 뻔히 올바른 표현이 존재함에도 신문뿐만 아니라 지상파에서까지 ‘내로남불’이나 ‘돈맥경화’라는 정체불명의 사자성어를 쓰고 있는 상황으로까지 언어오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어쨌든 왜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번 추측해보자면 짧은 시간에 정해진 물량의 보도를 쏟아내야 하는 보도 노동자의 근로조건 탓도 있지 않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 스스로 언어와 문어에 대한 수호자인, 기록하는 이로서의 – 기자(記者) – 자존심과 자긍심이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쓴 글은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남아있을 것입니다.

백래시의 창시자들은 누구인가

적의 얼굴을 알 수 없을 때 사회는 그것을 만들어 낸다. 하락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집값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 같은 것들은 공격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1980년대에는 그것이 대체로 여성들이었다. 한 전직 신문 편집자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에서 “(1980년대 물질 만능주의를 야기한 원인은) 레이건이나 월스트리트가 아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다”면서 “여성운동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 내렸다.[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아르테, 2017년, p138]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야금야금 읽고 있는 책이다. 1991년 발행된 이 책의 제목은 그 뒤 여성운동이나 성평등에 반하는 인용문과 같은 온갖 언행을 규정짓는 대표적인 표현이 되었다. 어쨌든 이 책은 주로 인용문과 같이 1980년대까지의 미국 사회에 벌어진 갖가지 백래시적인 현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데, 읽으면서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1980년대의 미국사회를 많이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이전 세대보다 자산을 덜 가지게 될 확률이 높은 젊은 세대, 과도한 집값에 대한 불안과 이를 이용해 소위 “영끌”을 부추기던 작년의 매스미디어, 루나 사태에서 보는 물질만능주의 등등 여러 상황이 미국의 80년대와 오버랩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백래시 현상은 사회에 만연해 있고 급기야 선거에서의 표심도 일정 정도 그러한 요소가 작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즉, 사회에 대한 건전한(?) 불만은 원인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통해 기득권에 저항하게 마련인데 불건전한(!) 불만은 원인을 혼동하여 여성이나 노동자 등 소수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곤 한다. 최근 연세대 재학생의 노동자 시위에 대한 고소 건이 비근한 예다. 그런데 인용한 책에도 분석하듯, 소위 “여혐”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받는 2030 남성들은 反페미니즘의 – 또는 反노동의 – 창시자들이라기보다는 수용자에 가깝다.

쿠팡 본사 로비에서 농성 중인 쿠팡물류센터지회가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는 한국경제신문의 기사를 두고 공공운수노조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국경제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술판의 증거로 사진을 제시했는데, 공공운수노조는 해당 사진에 있는 캔음료는 맥주가 아닌 커피라고 정정했다. 명백한 오보지만 기사를 작성한 한국경제신문의 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인지 후에도 기사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쿠팡 노조가 ‘대낮 술판’ 벌였다고 오보낸 한경, 2022년 6월 30일]

기사에서와 같이 한국경제신문은 명백한 오보로 反노동을 부추기고서는 사과는커녕 기사도 삭제하지 않는 뻔뻔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신임 서울경찰총장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권력과 매스미디어가 약자에 대한 음해와 공갈로 反소수자의 수용자들의 판단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혜자는 늘 그렇듯 혐오의 수용자가 아니라 창시자일 것이다.

탈원전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에 관하여

조선일보는 2020년 1월 14일,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의 자료를 받아 <한수원, ‘1778억 이득’ 초안 보고서 19개월간 덮었다>라는 기사를 냈고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6일 이후 현재까지 조선·중앙·동아·경향·한겨레·한국일보 6개 주요일간지 지면 기준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총 326건인데 이 중 121건이 조선일보 기사였다. 타 언론사의 경우 25~50건이였다.[보수진영은 왜 ‘월성 1호기’를 겨냥했나, 공시형, 참여사회 202104, p8]

2012년 설계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는 당시 행정절차를 무시하고1 7천억 원에 달하는 수리비를 들여 재가동시킨 이후에도 막대한 적자 운영이 이어왔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이 시설의 경제성 분석에 관한 자료를 삭제하며 감사에 저항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검찰은 자료 삭제를 이유로 산자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하였다. 극우 매스미디어는 이 이슈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을 흔들고자 함이다.


월성1호기는 운영 연장 이후에도 계속 적자였다(출처)

사실 현 정부의 최대 실책 중 하나가 대통령의 무리한 인사권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함에도 대통령이 인선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부처가 정부의 공약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과하게 시비를 거는 상황은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한 자정작용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원자력 기득권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선언적으로는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표방한 현 정부의 정책 이행속도는 여러 면에서 지지부진한 편이다.

신재생 정책에 있어서도 초기에 새만금 등지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수소경제’와 ‘그린뉴딜’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히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탈원전이 불러올 부정적 이미지를 – 전기료 인상 등 – 극우 매스미디어가 계속 부추긴다면 극단적으로는 임기말에 탈원전 정책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이 지자체 정권 교체만으로도 도전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 정부의 많은 것이 그렇지만 부동산과 탈원전 등의 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배경에는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규제는 양질의 사회주택 공급을 병행했어야 함에도 그 역할을 방기하여 가수요를 부추긴 정황이 있었고, 탈원전 역시 원전 폐쇄로 인한 공백을 신재생발전으로 재빨리 메워야 함에도 현재 수요공급의 조절이 적절히 이루어질지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철저한 개혁이 초래할 결과는 결국 개혁에 대한 염증과 수구로의 회귀다.

설민석 방송 스캔들에 관한 트윗 모음

# 모든 방송이 예능화되면서 정보 제공 방송마저 예능화된 최악의 사례가 설민석인 것 같다. 백종원 씨도 스푸파에서 팩트 오류를 지적당했지만, 이는 대본대로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권위에의 오류’라면 설 씨의 경우는 그에게 엄청난 재량권 부여와 최소한의 팩트체크조차 없었던 참극이 아닌가 싶다

# 그런데 이런 참상의 저변에는 이 사회가 50대 남성 “지식인”에게 과한 발언권을 준 호모소셜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 유의 예능에서도 그 또래 남성들의 짖고 까부는 예능이 인기를 얻고, 그 “지적인” 버전 알쓸신잡이 인기를 얻고, 진중권의 페북글이 바로 복붙 기사화되는 알탕호모소셜

# 왜 알쓸신잡을 생방송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유시민 발언에 나중에 찾아보면 다 틀린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고 반농반진으로 피디가 대답했지만,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50대 한남이라는 권위에만 호소하는 형식논리학적 오류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어차피 엉터리면 여성 패널을 쓰면 안 되나?

# 사실 난 설 씨에게 부정적 편견이 있어 그의 방송 기사를 보고 ‘또 무슨 허풍을 떨었나’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절대다수의 피곤한 시민은 팩트체크 기력 없이 연예뉴스로 그의 인기만을 확인할 따름이다. 설 씨의 경우는 도가 지나쳐 얻어맞은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설 씨가 판을 칠 것이다

# 문제는 이번 사태도 그렇게 되겠지만, 방송 스캔들의 주범은 제작진이라는 사실이 쉽게 잊힌다는 점이다. 이희진이라는 주식 사기범 뒤에는 그와 공생한 방송이 있었고, 기안84의 기행의 뒤에는 그를 우쭈쭈해주는 제작진이 있지만, 이들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같은 양아치 짓을 반복할 뿐이다

# 또 하나의 원인으로 방송의 ‘유튜브化’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제작진이 “방송 시간에 맞춰 편집하다 보니 일부 오류가 있었다”고 했다는데 어설픈 변명임에도 이렇게 방송마저 유튜브 스타일로 패스트푸드처럼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팩트체크는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가 산사태를 불러왔다는 주장에 대하여

무분별한 태양광 시설이 재해를 키웠다는 주장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최근 집중호우와 함께 산사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태양광 발전시설의 난개발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 정부가 ‘탈원전’과 ‘신재생 에너지 확대’를 내세우면서 최근 몇 년간 태양광 발전소는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연간 500헥타르(ha) 정도씩 늘어났던 산지 태양광 설비는 2017년 1435ha, 2018년 2443ha 규모로 신규 증축됐다. [나무 자르고 패널 놓더니 폭우에 와르르… “태양광이 산사태 피해 키웠다”]

조선일보가 현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기조가 이번 집중호우에서 발생한 산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도는 문재인 정부의 집권 시기인 2017년과 2018년에 임야의 태양광발전소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사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현 정부의 잘못인양 몰아가고 있지만, 실은 사업자의 사업 준비나 인허가 일정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발전소의 인허가가 이전 정부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오히려 현 정부는 2018년 임야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함으로 인하여 지목의 변경이 잡종지로 변경되는 등의 부당한 이득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당 발전소에 대한 규제를 실시하였다.

정부는 2018년 10월 제6차 부담금 운용심의위원회에서 산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면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대체 산림자원 조성비 감면 기간 설정 및 감면 대상 변경안’을 심의·의결했다. [중략] 같은 해 11월에는 산림자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산지 태양광발전시설을 일시사용허가 대상으로 전환해 지목변경을 금지했다. [중략]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이 같은 조치에 따라 산지 태양광발전시설 신규 허가 면적은 2018년 2천443ha에서 2019년 1천24ha로 58% 줄었다. 또 허가 건수는 2018년 5천553건이던 것이 2019년 2천129건으로 62% 감소했다.[[팩트체크] 산지 태양광설비와 산사태 연관성은?]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은 때로 단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장기적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정책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것이 경제지표로 발현되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는 장기적인 정책과제를 뚝심 있게 밀고나가기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더군다나 정부의 수권정당이 바뀔 경우 정책적 연속성은 더욱더 유지하기 힘들다. 한편으로 때로 정치적 이해가 다른 집단은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이전 정부의 잘못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땔감으로 쓰기도 한다. 조선일보와 김종인처럼.

증거인멸에 나선 조선일보를 위한 캡처 이미지

이번 ‘홍석천씨 오보’는 조선일보 역시 <홍석천 “최저임금 상승 여파로 이태원 가게 2곳 폐업”>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홍석천 씨의 비판 이후 중앙·동아일보는 제목을 바꿨지만, 조선일보는 계속 애초 기사 제목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검색해보면 “해당 기사 링크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중앙일보 ‘홍석천 오보’ 개인사과로 끝낼 일인가]

최근에 가게 두 곳의 문을 닫은 홍석천 씨가 이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언급만 따옴표를 써서 오보를 냈던 조중동의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글을 쓴 바 있는데, 인용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앙은 슬쩍 제목만 바꿨고 조선은 기사를 없애버렸다고 한다.(그 와중에 동아는 복지부동) 증거를 인멸한 뻔뻔한 조선일보의 기억력을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캡처 화면을 제공하도록 하겠다.

 

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