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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를 괴롭히는 학생들을 찍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상념

# 페북에 누군가 올린 기간제 교사를 괴롭히는 고등학생들의 동영상을 보았다. 굴욕적인 장면이지만 교사는 학생의 처벌을 바라지 않는단다. 암튼 학생들은 그저 교육받았을 뿐이란 생각도 든다. 기간제는 괴롭혀도 된다는, 이미 사회가 괴롭히고 있으니까 말이다.

# 기간제, 파견직, 비정규직.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노동계급의 힘도 함께 발달하며 임금을 올리니까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자본가가 고안해낸 노동자 아래 노동자다. 사회는 그러고는 상대적 우위에 놓인 노동자를 “귀족노조”라고 매도하여 노노분열을 부추겼다.

# 노노분열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너희들이 천대받는 것은 나때문이 아니라 귀족노조때문이다’라는 착시효과를 일으키기 위해서인데, 이게 꽤 잘 먹혀들었다. 누구도 “귀족자본가”라고 부르지 않지만 정규직만 많은 회사도 “착한 회사”라고 칭송한다.

# 이제 정부는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저성과자는 자르고 취업규칙도 불리하게 고칠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노동자 지위 향상 – 비정규직 양산 – 정규직 고용안정 해체 – 모든 노동자의 각자도생’의 과정이 진행 중이다. 명심할 것은 치킨집은 차리지 말 것.

# 이러한 경제 체제를 공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회적 요인은 바로 문화다. 노동자를 천시하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는 것이 용납되는 문화가 제도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그 학생들만 욕할 수는 없다.

요새 아이들 시험문제는 왜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지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딸의 사회 시험지다. 문제를 보면 요즘 시험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13번 문제는 反노동적인 이 사회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게(?) – 시험을 보는 이가 反노동적인 관점으로 시험에 임했다면 – 답을 맞힐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14번 문제, “기업가들의 노력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란 질문에 답하는 문제다.

 

오지선다형 객관식의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솔직히 답을 찾지 못하겠다. 교사가 원하는 답은 1번 “수입을 늘렸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시험 문제를 풀어서 틀린 친구가 내 딸이라면 이 답을 추출하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전제가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과연 내가 딸에게 차근차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 도저히 자신이 없다.

이 문제의 정답이 “수입을 늘렸다”라는 문제 출제자의 기업가, 혹은 기업에 대한 시각은 출제자의 기업에 대한 시각이 딱 개발도상국의 수입대체 산업화 발전전략의 시각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가가 기업을 성장시키면 기업이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던 볼펜도 만들고 핸드폰도 만들고, 소비자가 외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수입이 줄 것이다”라는 그런 선입견 말이다.1

2번의 “기업을 발전시켰다”는 항목은 동어반복적인 항목이라 당연히 답이 아닐 것이다. 한편 3번의 “국가 경제를 발전시켰다” 역시 개별 기업의 성장과 국민경제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개발도상국의 일국경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고다. “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였다”, “새로운 일자리를 늘렸다”라는 나머지 항목 역시 자본의 금융화, 세계화에 따른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편견이다.

즉, 예를 들어 LBO식의 M&A를 주업으로 하는 “기업가” – 소위 “프라이빗에쿼티” – 는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늘리거나 소득을 높이는 기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들은 기업을 인수한 후 구조조정을 – 가장 손쉽게는 근로자들의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 통해 이익을 쥐어짜는 임무를 수행한다. 교사는 아마도 그러한 업태의 기업가는 시험문제의 “기업가”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인의 딸은 답이 5번이라고 응답해서 틀렸다. 지인의 딸이 어떤 배경지식을 가지고 이렇게 문제를 풀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업장을 필리핀으로 옮겨서 국내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은 한진중공업의 예를 들어 교사에게 항의를 했을 때 교사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일국경제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교사가 설마 “글로벌 경제적 관점에서는 일자리가 늘었다”라고 대답했을 것 같지는 않다.

0.01%가 다시 앞서가고 있는 미국의 자본주의

런던 경제학 스쿨의 Saez씨와 Gabriel Zucman의 새 보고서는 이전에는 최상위 부자들의 부(wealth)의 지분을 매우 과소평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략] 1920년대에 하위 90%는 미국의 부의 단지 16%를 소유하였을 뿐이다. 이는 1929년의 붕괴 이전까지 전체 부의 4분의 1을 통제한 상위 0.1%의 것보다도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다. 대공황의 시작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까지 전체 부에 대한 중산층의 지분은 꾸준히 들었는데, 이는 주요하게는 부유한 가구가 망가진 탓이다. 그 이후로 중산층의 지분은 보다 광범위한 자본 소유, 중산층의 소득증가, 그리고 주택소유 상승률 덕분에 국부와 함께 증가하였다. 퇴직연금에 대한 세금면제 확대도 또한 기여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중산층의 가구의 부에 대한 지분은 36%까지 증가했고 거칠게 볼 때 상위 0.1%의 지분의 네 배에 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추세는 역전된다. [중략] (차트를 보라) 1986년에서 2012년까지 상위 1% 가구의 실질소득은 연 3.4% 증가한 반면 하위 90% 가구는 0.7% 증가하였다. 그러나 Messrs Saez와 Zucman은 추락하는 중산층의 순수자산 추이의 주된 원인은 치솟는 부채 탓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치솟는 주택가격은 모기지 부채 역시 늘어났기 때문에 중산층의 부의 증가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라한 주택의 가격이 떨어져도 부채는 그대로 남아 중산층의 부를 더욱 쥐어짠다.[It is the 0.01% who are really getting ahead in America]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 미국 산업에서의 금융업의 예외적 성장, 배당과 소득 비중의 역전, 인터넷 산업의 융성, 노조운동의 쇠퇴 등이 떠오른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만 놓고 본다면 소위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을 것이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피하지 못할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과연 부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의 집중 경향에 있어서의 예외적인 시기였던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출처 : cfr.org)

최근에 빌 게이츠가 토마 피케티의 책을 읽고 이에 반박하면서 최상위 부자들이 상당수 이전 세대의 부자들에서 바뀌었다는 정황을 들어 피케티의 논지를 반박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산 축적의 작동방식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음은 분명하며 이를 이용해 부를 쌓는 이에 대한 부의 집중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음은 추세적인 것 같다. 즉, 자본(equity)의 소유는 소득 없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보편화된 수단이며 금융위기 전까지 정치권은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 평등을 주창하였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그 신화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반면 최상위층의 자본 소유와 축적 방식은 세계화와 더불어 더 세련되어 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에 어느 나라보다 앞선 나라였다. 한때는 망국병이라 할 만큼 부동산 투자, 즉 자본소유를 통한 시세차익의 시현은 국민적 붐을 이루었고 이는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들어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며칠 전에 발생한 일가족 자살사건에서 알고 보니 가족 명의로 열다섯 채나 집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그들이 그렇게 많은 집을 갖게 된 것이 부채를 통한 주택 구입이었다. 자본의 부의 축적 방식은 진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중산층의 부동산 신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 후 자기계발서 시장을 연다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불안사회를 전제하고 있다. 가령 노후 자금을 최소한 10억은 모아놓아야 안정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를 위해 실제 이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노후의 경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물론 금융회사와 그와 연계된 경제 연구에서 나온 공포마케팅의 일환이다. [중략]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집단과 나아가 한 사회 전체에 공포의 감정을 조장한다는 점이다.[거대한 사기극, 이원석 저, 북바이북, 2013년, p201]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 자체만으로도 특정상황에 대한 은유 등으로 쓸모가 많은지라 각종 지면에 꽤 많이 인용되는 영화다. 인용문의 메시지를 이 영화제목에 끼워 맞추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 후 자기계발서 시장을 연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공포심이고 현대의 자기계발서나 재테크서는 이러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시장을 창출한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계시를 통해 독자들의 불안도 잠재우고 영혼도 계발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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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ream“. 위키백과에서 제작됨.

이 그림을 자기계발서의 표지로 쓰면 어떨까?

‘거대한 사기극’의 저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기계발서를 읽고 신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계발서가 미국, 개신교, 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을 통해 탄생하고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이 세 요소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남의 도움이 아닌 자조(自助, self-help)를 최대의 미덕으로 여기는 자기계발의 메시지다.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마치 종교의 그것처럼 ‘믿고 실천하면 당신만은 현실의 난관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그 성공은 대개 자본주의에서의 물질적 성공이다.

자기계발 전파자들은 메시지 전파의 대상을 미국의 세일즈맨에서 직장인, 여성, 심지어는 어린이까지 넓혀왔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각각의 대상에게 자기계발 신화는 불안을, 특히 물질적 빈곤에 대한 불안을 조장한다. 그나마 자본주의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류의 “윤리적 자기계발”이, 저성장으로 접어든 때에는 「시크릿」 류의 “신비적 자기계발”이 유행한다는 정도의 차이다. 이제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은 자기계발 신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개인의 불안으로 전가되었다.

대한민국 가계소비의 큰 멍에, 교육비

총가계지출액에서 식료품비와 같은 필수재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계수”라 하고,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엔젤계수”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수준에 따른 엥겔계수와 엔젤계수는 어떠할까? 최근 산업연구원이 ‘우리나라 가구의 소비지출 행태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분석결과는 익히 짐작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소득수준별 엥겔계수와 엔젤계수 비교(명목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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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Meta 자료 재구성한 자료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서 재인용
주 : 2인 가구 이상

즉, 우리나라의 가구는 소득이 적을수록 식료품에 더 많이 소비하고 교육에 더 적게 소비하는 반면, 소득이 많을수록 식료품에 더 적게 소비하고 교육에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성향은 사실 예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문제는 2013년 현재시점에서 과거와 비교해서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엔젤계수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엔젤계수는 낮아졌다.

2003년 소득수준별 엥겔계수와 엔젤계수 비교(명목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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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Meta 자료 재구성한 자료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서 재인용
주 : 2인 가구 이상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 대비 교육비 지출비중이 6.7%로 미국(2.4%). 영국(1.5%), 독일(1.0%)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 교육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녀들의 학원비다. 2012년 기준 교육비 지출액 대비 학생학원 교육비 비중은 56.2%다. 공교육이 싼 것도 아니다. 교육비 중 우리나라의 가계부담은 21.5%로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공교육비 중 민감부담 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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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13.

그렇다면 가계는 교육비 지출을 얼마나 부담스러워 할까? 통계청이 201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설문응답자의 73%(매우 부담 31.6%, 약간 부담 41.4%)가 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세대별 교육비 부담을 어떨까?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를 보면 엔젤계수로는 40대(17.8%), 50대(17.2%)가 가장 교육비 부담이 크다. 가장 소비활동이 왕성할 40~50대가 교육비에 눌려 살아가고 있다.

이러다보니 빚이 늘고 있다. 203년 우리나라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는 28.4조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받아 교육비로 쓰는 것이다. 지출 항목 상으로 교육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부동산은 교육관련 변수가 매우 큰 지출항목이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강남의 한 학군 유명한 아파트의 월세는 1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소득별 세대별로 차이는 나지만 자녀교육 올인의 나라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소득별로 교육비 지출 비중이 다르고 이런 경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교육 불평등에 따른 부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또한 소득수준을 가리지 않고 공교육,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 여타 나라에 비해 높다. 가계 대부분은 이러한 지출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고 가장 소비가 왕성한 40~50대에서 교육비 지출비중이 높다. 비용의 적지 않은 부분은 빚을 얻고 있다.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며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꺼내든 카드가 LTV, DTI 완화 카드다. 이상에서 알아본 가계의 상황을 보면 그 정책이 어떤 식으로 작용할 것인가를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다. 사람들은 늘어난 LTV 여유분만큼 돈을 빌릴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교육비 등 생활자금을 쓸 것이다. 또는 전세대출로 좋은 학군에 전세 얻는 데 쓸 것이다. 집값이 오를지도 의문이고 올라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가장 채산성 없는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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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s Academy mosaic from Pompeii” by Unknown – http://www.departments.bucknell.edu/History/Carnegie/plato/academy.html.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대부분의 학생에게 대학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학위취득으로 생애소득을 증진시킬 수 있다. 순현재가치(net-present-value) 조건으로 보면 59만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부채에 빠져드는 – 특히 학위를 마치지 못한 미국인의 47%와 영국인의 28% – 증가하는 학생들에게 그건 단순히 돈값을 못하는 것이 된다. [중략] 자동화는 블루칼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화이트칼라에게도 같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수십 년 내로 직업의 47%가 자동화될 위기에 처해질 것이다.[Creative destruction]

대량생산의 시대 이전까지 소수만이 전유하는 권리였던 고등교육이 중산층에게까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어찌되었든 경제적 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 정부의 고등교육 육성책은 “인적자원”의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인적자원은 고등교육을 통해 고도성장 기간 동안 높은 NPV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의 구조적 경향 때문에 이런 높은 수익성은 옛말이 되고 있다. 교육은 가장 채산성 없는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대체할 비즈니스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 등으로 온라인 교육 등 저렴한 값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일류대학 학위가 성공의 첩경 심지어는 그 출발점정도로 여기고 있다. 사회의 저성장에 따른 이런 눈높이의 하향화는 대안이 뚜렷치 않은 상태에서 역설적으로 경쟁을 더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이 단순히 교육 그 자체만의 해법이 아닌 경제 및 사회정책과 결합되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