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법안의 입법 좌절에 관하여

SNS와 서명운동까지 동원하여 오바마 정부가 관철하려 했던 미국의 석유/가스회사들에 대한 세금감면 폐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오바마 정부는 이번 회기에서 미국의 5대 석유 회사들이 향후 10년간 내야할 240억 달러에 해당하는 세금을 감면시켜주는 혜택을 폐지하여 재정확충과 재생에너지 개발에 쓸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 표결로는 51대 47로 앞섰지만 필요한 찬성의원 수 60표에는 미달하였다.

법안 반대를 주도한 공화당의 논리는 언제나 그렇듯 명쾌하다. 세금감면을 폐지하면 가솔린의 소비자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세금을 감면해주지 않으면 석유회사들이 새로운 유전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 때문에 공급이 달려 가격이 오른다는 논리다. 민주당은 반면 유가는 정부의 각종 조치에 그리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격하였다. 유가가 단순히 국내 생산만이 아닌 국내외의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는 논리다.

단순히 이 사안만 놓고 보자면 흥미롭게도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민주당이 자유방임주의 논리를 따르고 공화당이 국가개입주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넓게 보아 양당 모두 현재 어떤 경제학 관념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는 집권당으로서의 실용과 야당으로서의 반발심에서 비롯된 행동유인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Think Progress의 분석에 따르면 보다 흥미로운 행동유인도 엿볼 수 있다. 바로 돈.

  • 법안에 반대한 47명의 상원의원은 석유/가스회사로부터 23,582,500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세금감면의 폐지에 찬성한 51명의 상원의원은 5,873,600달러를 받았다.
  • 거대 석유기업에 대한 지원에 찬성한 상원의원은 평균적으로 폐지에 찬성한 의원보다 4배 이상의 기부를 받았다.
  • 2011년 이후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거대 석유기업의 이해에 부합하는 안건에 7번 찬성했고 클린에너지를 반대하는 안건에 3번 반대했다.

[Senators Who Voted To Protect Oil Tax Breaks Received $23,582,500 From Big Oil]

지난번 ‘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또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댓글 대화에도 언급하였듯이, 나는 미국의 입법시스템과 그것을 지키고 다듬는 시스템이 문명사회의 그 어느 곳보다도 선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독과점이 강해지고, 정치권의 역할이 많아지고, 정치인이 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의원은 그들의 유권자로부터 격리되어 정경유착의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힘을 얻으며 유행하는 구호가 “우리는 99%다”인데, 이 구호는 그 운동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진행됨에도 현실정치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99%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1%만큼 돈이 많지 않다. 1%는 이해관계도 단순하고 돈도 충분하다. 그리고 99%중 상당수는 이 1%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한 선동에 동화되어 투표할 것이다. 1% 덕분에 기름 값을 절약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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