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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실수”를 수습해야할 한국 정부

“우리는 한국의 우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한 논의를 할 자세가 되어있다.” (美국무부 산하의) 경제성장, 에너지, 환경 차관 호세 W. 페르난데즈는 한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음 달에 국내 규칙제정 과정을 시작함에 따라 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은 언급한 문제에 익숙한 두 번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美하원의장 낸시 팰로시가 지난달 남한을 방문했을 때에 직접 만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만남이 있었더라면 법의 통과 전에 조율을 시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는 말했다.[South Korea Sees ‘Betrayal’ in Biden’s Electric Vehicle Push]

한국 대통령이 워라벨 추구하느라 내한중인 미국 정부의 2인자를 만나지 않아서 한국 정부가 한국의 전기자동차 수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인플레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1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율할 수 있었을 기회를 놓쳤다는 美국무부 관리의 주장이다. 짧은 만남을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가능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전화통화에서는 다룰 수 없었던 주제였다는 점에서는 아예 기회를 원천차단 해버린, 그럼으로써 美관리가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주장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This 1973 photo of a charging station in Seattle shows an AMC Gremlin, modified to take electric power; it had a range of about 50 miles (80 km) on one charge.
By Seattle Municipal Archives from Seattle, WA – Seattle Municipal Archives, CC BY 2.0, Link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한국산 차량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이 한미FTA와 WTO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고 밝혔다. 이 법이 한미FTA의 비차별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해당법과 관련해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전 정보나 통보를 받은 것도 없다한다.2 FTA도 맺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동맹”이라고 치켜세우던 초강대국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하지만 동맹이고 뭐고 간에 늘 그렇듯이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적 행동이었을 뿐이고 우리는 뒤통수를 맞았을 뿐이다.

美정부의 유력자가 내한했어도 우리 권력자가 만나지 않을 자유는 있다. 그게 자주적(自主的) 정부의 권리일 것이다. 그래서 자주권을 가지고 FTA도 맺었고 주권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약속을 어겼을 때는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찾아와야 오롯한 자주 국가라 할 것이다. FTA나 투자보호협정은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 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 조항 탓에 주권을 뺏긴 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처분에 따라 거액을 론스타에게 뺏기는 험한 꼴만 당한다면3 FTA의 존재의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워라벨을 지켜낸 그 결기로 주권을 지켜야 한다.

흥미로운 그래프 하나

이 그래프를 보면 유럽이 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대해 수세에 몰려있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EU는 총에너지 소비량 중 57.5%를 수입하는데, 러시아는 2020년 기준 EU 전체 석유 수입의 26.9%, 석탄 수입의 46.7%, 천연가스 수입의 41.1% 비중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가스관 운영사인 ‘노르트스트림 AG’는 “자동화 시스템 정비를 포함한 정기 점검”을 핑계로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1’을 통한 가스 공급을 통제하고 있다. 유럽의 올겨울은 매우 추울 것 같다. 그리고 신재생발전을 포함한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있을 것 같다. EU가 최근 원자력을 그린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것도 이러한 고민의 일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은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까?

G7 국가들이 이번 주 콘월의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협정은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첫째, 여러 나라에서 영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이 어디에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특정 국가에서 어떤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벌지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매우 적은 세금만을 내곤 했다. 이것은 그들이 더 낮은 세율로 더 많은 이윤을 취하는 곳에 본사를 두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G7 협정에 따라 매출 대비 10%의 이윤을 취하는 어떤 나라 정부라도 이들 기업에게 과세할 수 있게 된다. [중략] 협정의 두 번째 부문은 15%의 국제적 최저 법인세율이다. 이것의 목적은 각국이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율을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중략] 아일랜드는 작은 나라들의 사정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EU의 멤버이고 협정의 구속을 받는다.[G7 tax deal: What is it and are Amazon and Facebook included?]

영국의 한 해변 마을에서 G7 회담이 열리고 있다. 그 와중에 G7 회의석상에서는 미증유의 세금 “혁명”이 진행 중인데 팬데믹 와중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초대를 받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인지, 우리 매스미디어의 관련 소식은 코로나19 관련이나 문 대통령의 동향에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특별히 세금 협정의 의미에 무관심하거나 또는 그 의의를 싫어하는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1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이 뉴스가 특히 반가운 소식인 것이 몇 년 전에 이 블로그에 ‘전 세계에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라는 부질없는 희망사항을 끼적거린 적이 있는데, 이제 그것이 현실에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HedgeFund.net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단일세율’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은 낮은 세율과 낮은 임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옮겨 다니는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내리고 있는 형편이다. [중략] 그러나 결국 조세피난처와 같이 극단의 세율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의 자본유치활동은 결국 자본이 거쳐 갈 하나의 정거장을 제공하는 행위일 뿐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주요 국가들이 단일세율로 자본유치에 대해 일종의 공정경쟁을 선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쿄토 의정서에서 CO2 감축을 위해 의무감축량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또 이래놓고 미국이 빠져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말이다.[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면 어떨까?]

이번 협정이 각국의 세법에 적용이 된다는 그동안 각국 세무당국을 조롱하며 탈세를 일삼던 테크자이언트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금액의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매출을 달성할 동안 “稅테크”를 통해 쥐꼬리만큼의 세금만을 내는 동안 지구상의 자산은 점점 더 소수에 집중되어 왔고, 각국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국채로 발행하거나 엄한 국민에게 소비세를 더 걷는 방식으로 예산을 충당해왔다. 팬데믹 사태 이후 각국의 부채비율이 치솟고 중앙은행의 재정부실이 가속화되는 이 상황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망한 시스템을 빚으로 메꾸고 있는 상황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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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jksvoorlichtingsdienstFlickr: G7 in het Catshuis, CC BY 2.0, Link

플랫폼 경제와 테크자이언트가 득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이전 체제와 다른 가장 큰 특징중 하나는 “이동성(mobility)”다. 대규모 부지에 세워진 제조업 공장은 이제 우버나 카카오톡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안에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어 그 안에서 생산, 유통, 노동자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영업범위와 기업 본사의 위치가 공간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기업과 달리 테크자이언트들은 언제든지 M&A, FTA, 각국의 세법과 유치정책 등을 활용하여 본사를 자유로이 옮길 수 있게 됐다.2 노동조합도 정부도 이렇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본의 이동성에 굼뜨게 대응하느라 넋을 놓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하튼 이번 협정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큰 배경은 역시 미국 행정부의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으로의 정권 교체일 것이다. 테크자이언트 대부분의 CEO가 바로 미국인임에도 민주당으로서는 더이상 이들의 전횡과 오만함을 묵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미재무부는 각국의 세율 인하를 통한 기업 유치 행태에 대해 “바닥을 향한 레이스를 종식(ending the global race to the bottom)” 시켜야 한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이 협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전 세계 최저 법인세율이 관철되면 여러 다국적 기업의 본사,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세금이 미국으로 귀속되리라는 복안도 깔려 있을 것이다.

국제자본주의인터내셔널(!)이 테크자이언트를 길들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탈원전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에 관하여

조선일보는 2020년 1월 14일,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실의 자료를 받아 <한수원, ‘1778억 이득’ 초안 보고서 19개월간 덮었다>라는 기사를 냈고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6일 이후 현재까지 조선·중앙·동아·경향·한겨레·한국일보 6개 주요일간지 지면 기준 ‘월성 경제성 평가 조작’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총 326건인데 이 중 121건이 조선일보 기사였다. 타 언론사의 경우 25~50건이였다.[보수진영은 왜 ‘월성 1호기’를 겨냥했나, 공시형, 참여사회 202104, p8]

2012년 설계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는 당시 행정절차를 무시하고1 7천억 원에 달하는 수리비를 들여 재가동시킨 이후에도 막대한 적자 운영이 이어왔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이 시설의 경제성 분석에 관한 자료를 삭제하며 감사에 저항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검찰은 자료 삭제를 이유로 산자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하였다. 극우 매스미디어는 이 이슈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바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전반을 흔들고자 함이다.


월성1호기는 운영 연장 이후에도 계속 적자였다(출처)

사실 현 정부의 최대 실책 중 하나가 대통령의 무리한 인사권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함에도 대통령이 인선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부처가 정부의 공약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과하게 시비를 거는 상황은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한 자정작용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원자력 기득권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선언적으로는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표방한 현 정부의 정책 이행속도는 여러 면에서 지지부진한 편이다.

신재생 정책에 있어서도 초기에 새만금 등지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수소경제’와 ‘그린뉴딜’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히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탈원전이 불러올 부정적 이미지를 – 전기료 인상 등 – 극우 매스미디어가 계속 부추긴다면 극단적으로는 임기말에 탈원전 정책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 정책이 지자체 정권 교체만으로도 도전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 정부의 많은 것이 그렇지만 부동산과 탈원전 등의 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배경에는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규제는 양질의 사회주택 공급을 병행했어야 함에도 그 역할을 방기하여 가수요를 부추긴 정황이 있었고, 탈원전 역시 원전 폐쇄로 인한 공백을 신재생발전으로 재빨리 메워야 함에도 현재 수요공급의 조절이 적절히 이루어질지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철저한 개혁이 초래할 결과는 결국 개혁에 대한 염증과 수구로의 회귀다.

에보 모랄레스, 쿠데타, 그리고 일론 머스크

한때 전 세계 좌파들에게 건강한 진보적 대안이 되리라 여겨졌던 ‘중남미 사회주의 블록’은 우고 차베스의 죽음과 베네수엘라의 처참한 경제난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베네수엘라의 이러한 불행은 단순히 체제 실험의 실패로만 간주할 수 없는 보다 복잡하고 구조적인 역사, 정치, 경제적 맥락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난맥상은 그 지역의 좌파 블록을 주도했던 나라로서의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진보주의자들을 심난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로기 상태에서의 또 하나의 결정타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前 대통령의 사임이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前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함께 중남미 좌파 블록의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적 지향성과 더불어 스페인이 볼리비아를 점령한 이래 470년 만에 그 나라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미국이 반대하는 코카나무 재배를 합법화시켰다는 이유로 당시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4선을 무리하게 시도했다는 이유 등의 군부의 반대로 국외 망명을 하게 되자 중남미 좌파 블록의 큰 두 축이 모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외상을 입게 된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었다.

한편, 그의 국외망명의 원인을 두고 제기된 설 중 하나가 바로 리튬(Lithium)의 확보를 위한 서구 자본의 기획이라는 설이 있다. 원자번호 3인 리튬은 오늘날 고효율 배터리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자원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처음 등장한 1991년 이후, 아직까지 리튬을 완전히 대체할 차세대 충전식 배터리 소자는 개발되지 않고 있다. 전자기기의 이동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리튬은 오랜 기간 동안 미래경제를 위한 유용한 자원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볼리비아는 주요한 리튬 산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정황이 바로 에보 모랄레스 망명 음모론의 배경이 되고 있다.

모랄레스 정부는 최근 중국 및 독일회사의 총 30억 달러에 달하는 리튬 개발계약을 체결한바 있다. 그런데 작년 11월, 그는 독일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계약 파기는 개발지역인 포토시(Potosí) 지역의 저항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정황은 모랄레스의 사임은 다국적 기업의 이해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되었다. 이에 대해 포린폴리시는 리튬이 중요한 자원이기는 하지만, 석유와 같은 자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중요한 자원이기는 하나 채취보다는 기술개발이 핵심이라는 취지다. 그러니 서구가 리튬 확보를 위해 모랄레스를 쫒아낸다는 것은 좌파의 망상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와 관련 트위터에서 지난 7월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다. 주인공은 테슬라의 아이언맨 일론 머스크다. 지난 7월 24일 일론 머스크는 “사견으로는 다른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국민들의 최선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트윗했다. 이에 historyofarmani 라는 계정이 “국민이 최선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뭔지 아냐?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조직했고, 당신은 거기에서 리튬을 계속 조달할 수 있다”고 그를 비난했다. 그러자 일론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 누구든지 쿠데타로 몰아낼 것이다. 받아들여!”라고 대답한 것이다.

지금은 그 트윗 들을 볼 수 없지만, 정부의 부양책을 비판하는 자본가의 트윗에 그의 위선을 지적하는 댓글, 다시 그것을 초강력 핵펀치로 반박하는 자본가의 대댓글은 당시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은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괴짜로 소문난 일론 머스크이니 만큼 그의 개성을 높이 산 이도 있었을 것이고, 다국적 자본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일갈한 좌파도 있었을 테고, 농담이든 실언이든 그러한 무심함에 분노를 한 볼리비아인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 발언은 서구 자본가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한 편린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최근 그 트윗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모랄레스 정부의 경제 장관을 지낸 루이스 아르세가 이번에 치러진 대선에서 54.5%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 정부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트위터 좌파들은 다시 일론 머스크의 그 트윗을 거론하며 그를 조롱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선거결과가 지리멸렬해가고 있는 중남미 좌파 블록의 새로운 희망이 될지 중남미 포퓰리즘의 한 사례로 남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팬데믹와 저유가 상황, 그리고 자원수탈 위주의 경제는 이 블록에게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러드 쿠슈너는 어떻게 이념적 경직성에서 탈피하였는가?

그 대출 덕분에 쿠슈너의 회사는 매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수천 채의 아파트를 퍼 담을 수 있었는데, 이 거래는 10년 동안의 업계에서의 최대의 구매량이었다. 블룸버그에서 처음 보도한 이 거래는 프레디맥에게 있어서도 역사상 가장 큰 거래였다. [중략] 쿠슈너의 변호사는 재러드가 회사의 의사결정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략] 프레디맥은 2019년 8월 이 16건의 대출을 채권으로 묶어서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중략] 쿠슈너 가족의 회사는 이 대출을 통해 유사한 다른 통상적인 대출보다 더 낮은 월 금리와 더 많은 대출금액을 얻어낼 수 있었다. [중략] 트럼프 정부가 이러한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 그러나 프레디맥은 연방주택금융청의 수장이 오바마 행정부의 피지정인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前 수석경제자문이었던 마크 칼브리아로 바뀐 그 순간에 대출 승인에 착수했다.[The Kushners’ Freddie Mac Loan Wasn’t Just Massive. It Came With Unusually Good Terms, Too.]

회사 설립 이후 상당기간 동안 정부보증기관(GSE; 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진 민간회사로 미국 주택시장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을 영위해왔던 프레디맥과 패니메는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인한 금융위기의 중심이 되어 회사가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만, 당시 막대한 정부자금을 투여 받은 “법정관리(Conservatorship)” 회사로 사실상의 국유기업이 되어 여전히 미국 주택금융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1 그런데 이러한 두 기업 중 프레디맥이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인 재라드 쿠슈너의 회사에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실행하여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현재 몇몇 정치인과 매스미디어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들 회사의 독특한 지위로 인해 회사는 사실 시장경제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는 – 여긴다고 여겨지는 – 미국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종종 이념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공화당의 짐 버닝 상원의원은 두 회사의 구제금융 계획을 듣고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고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바 있다. 또한 Cato Institute는 Fannie and Freddie: Socialist from the Start라는 글에서 두 회사가 시작부터 사회주의적인 것이었고 사기업이었던 적도 없거니와, 2007년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실패’라고 비난한바 있다. 아마도 이들에게 국유기업은 곧 사회주의고 금융위기는 시장에 정부가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이러한 순수한 이념적 기준에 따라 집권 후 두 회사의 소유권을 바로 민간에게 넘겼던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기술적 이유와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기술적 난제는 GSEs가 발행하는 MBS가 이제 민간이 아닌 정부의 비즈니스가 됐다는 점이다. 현재 MBS의 최대 인수자는 연방준비제도다. 2 금융위기 이전 MBS를 사들였던 월가는 더 이상 그럴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서 미국채 다음으로 큰 채권시장인 미국 MBS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더더욱 민간자본이 통제할 수 없는 – 통제할 이유도 없는 –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비즈니스가 됐다.3 그리고 트럼프가 GSEs를 사유화하지 않는 정치적 이유는 이런 기술적 난제에서 출발한다.


정상적인 시장에서 MBS가 유통되는 모습

GSEs를 사유화하여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면 트럼프가 이를 놓쳤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집권 후 한동안 두 회사의 “법정관리” 탈출에 무관심했다가 겨우 취근에야 IPO 로드맵에 시동을 걸었다. 어쨌든 그런 시도도 다시 팬데믹으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지만, 트럼프 일가는 그런 시장의 “정상화”를 택하기 보다는 두 회사가 국유화 상태에 있고 또 트럼프 일가가 정부의 권력층인 이 시기에 회사의 곳간을 털어먹기로 작정한 듯하다. 두 회사를 사유화하기보다는 정부를 사유화하는 편이 기술적으로 더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우익정권이 그래왔듯 권력을 잡은 우익 트럼프 일가는 이념적인 순수성보다는 경제적인 실리를 추구하기로 맘먹고 프레디맥을 사유화한 것이다.4

따라서 분명하게 미합중국을 개인 자산으로 취하려는 트럼프 일가와 그의 집사들의 – 그리고 백만장자들이 여기에 편승하려는 – 노골적인 프로젝트는 저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진지한 반부패 개혁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당신은 오직 월스트리트의 친구들이 어떻게 각 선거진영을 에워쌓았는지를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중략] 그들을 정신차리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들을 뽑아라. 그리고 더더욱 만만치 않은 것이지만, 그들이 사무실에서 집무를 시작하고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한 미래의 장기전에 긴장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한다.[How Corruption is Becoming America’s Operating System]

어떤 의미에서 나는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라는 짐 버닝 의원의 발언에 공감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상품 중 하나가 국유기업이 생산하고 중앙은행이 소비하는 시스템을 자본주의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색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경제 선순환적으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굳이 이념적 경직성에 매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할 것은 “어떻게 부패는 미국의 운영체계가 되었나”라는 인용한 글의 제목처럼 양당을 초월하여 정치인이 부패가 이 시스템에 상주하여 마침내 그 운영체계가 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운영체계의 채택은 인용문처럼 깨어있는 유권자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빌자면 부패한 권력층은 처단된다는 경험은 유권자를 각성시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는 당장은 쿠슈너의 목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념일에 대한 괴롭힘,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던 1938년 메이데이도 ‘근로일’로 창씨개명을 한다. [중략]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대한노총은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생일을 바꾼 것이다.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중략] 1989년 재야의 민주 노동 세력은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탄압의 상징인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함과 아울러 메이데이를 우리의 진정한 노동절로 엄숙히 선포한다”, 그리고 1990년 메이데이 기념 100년 만에 민주노총의 누룩 전노협이 결성된다.[정운영,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웅진지식하우스, 2006, pp22~23]

이 기념일이 뭐라고 이렇게 끊임없이 일제가, 이승만이, 박정희가 괴롭힐 일인가 싶다. 하지만 그만큼 어떠한 대상물에 – 여기서는 기념일 – 대한 호칭은 중요하다. 모욕적인 호칭은 대상물의 지위를 규정하고 많은 경우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한다. 일제의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주체성을 말살했다. 우리가 건설노동자를 “노가다”로 부르고 나이 어린 편의점 서비스 노동자를 “알바”라고 부르면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아가 현재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법에 의해 자영업자로 규정 ‘당하고’ 있다. “사장님”이니까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바로 실질적인 사장님이 노동자를 고용하며 응당 치러야할 노동의 대가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 문제다. 호칭은 그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