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네트워크 하청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Workers in the fuse factory, Woolwich Arsenal late 1800s
By Unknown author – National Maritime Museum Reproduction ID: H0698.This version from https://www.flickr.com/photos/nationalmaritimemuseum/4615367952, No restrictions, Link

2023년 뉴욕 타임스 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TSMC 최고경영자인 마크 류는 “우리는 의회, 상무부, 백악관에서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대만에서 공급망을 다각화하고 TSMC의 두 번째로 큰 고객인 화웨이가 2020년에 최첨단 칩에 접근하는 것을 막자 대만의 파운드리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략] 대만의 사실상 미국 대사인 알렉산더 타레이 유이는 2025년 2월에 비슷한 발언을 하며 대만의 산업은 미국의 산업에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주장했다. TSMC는 반도체 판매에서 1달러당 0.11달러만 벌었다. 칩,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특허를 소유한 미국의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판매에서 1달러당 0.38달러를 벌었다.[Taiwan’s Lai Ching-te vows to build “democratic supply chains” as US tariffs loom]

실낱같이 연결되어 있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 네트워크에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 정확하게는 TSMC – 처해있는 위치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파운드리라는 것은 결국 팹리스의 생산 주문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산업인데 현재 그 팹리스는 압도적으로 미국에 위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다 최근 트럼프는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쳐갔다’고 말하며 TSMC가 인텔에 투자하여 인텔의 기업 경쟁력을 회복시켜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돌이켜보자면 사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아시아의 손재주가 좋고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시작된 글로벌 반도체 제조 네트워크가 현재의 반도체 네트워크의 시작인데도 트럼프는 그걸 맥락 없이 – 사실 제국주의적 야욕의 맥락은 배경에 명백하지만 – 하청국에게 맛이 간 본토 업체를 살려내라는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다.

Texas Instruments는 대만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산업을 건설하고 기술 노하우를 이전할 수 있었다. 한편 전자제품 조립은 다른 투자를 촉진하여 대만이 더 높은 가치의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도록 도울 것이었다. 미국인들이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공약에 회의적이 되면서 대만은 미국과의 관계를 절실하게 다각화가 필요했다. 대만을 방어하는 데 관심이 없는 미국인들은 Texas Instruments를 방어할 의향이 있을 수 있었다. 섬(대만 : 역자주)에 반도체 공장이 많을수록,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많을수록 대만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1 1968년 7월, 대만 정부와의 관계를 완화한 TI 이사회는 대만에 새로운 시설 건설을 승인했다. 1969년 8월, 이 공장은 첫 번째 장치를 조립했다. 1980년에는 10억 번째 장치를 출하했다.[Chip War: The Fight for the World’s Most Critical Technology, Chris Miller, Scribner, 2022]

1960년대 반도체라는 상품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할 기술이라는 것이 명백해지면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는 단연 TI, Fairchild 등의 첨단기업이 있는 미국이 주도했고, 일본은 이 반도체를 활용한 첨단 전자제품 개발의 선도국이 되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이 공급망의 하청 역할을 수행하며 돈도 벌고 자국 안보를 위해 반도체 기업을 인질로 잡는 복합적 목표를 달성하였다.2 그리고 당시 TI에 있던 한 인물이 오늘날의 TSMC를 만든 모리스 창(Morris Chang)이다. 그가 대만에서 TSMC를 설립을 주도하고 60년대 이후의 하청 구조를 고도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TSMC라 할 수 있는 것이다.3 그런 면에서 대만은 사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훔친 적이 없다. 늘 하던 대로 미국의 하청국 역할을 (더 확대하여)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제국주의 정복의 길로 이끈 미국 대통령은 윌리엄 매킨리였다. 1896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매킨리는 미국 기업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매킨리를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북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데날리 산에 매킨리의 이름을 다시 새기겠다고 발표했다. [중략] 트럼프는 매킨리를 관세의 대통령이자 후임자 시어도어 루즈벨트 시절에 파나마 운하 건설을 가능하게 한 “천부적인 사업가”라고 극찬했다. [중략] 미국이 1898년에 하와이를 합병하고,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괌, 쿠바,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하고, 매킨리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된 필리핀 정복 전쟁을 시작한 것은 매킨리의 통치 기간이었다.[Trump, McKinley, and US imperialism in Asia]

이렇게 트럼프는 매킨리의 길을 쫓아 19세기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 그 와중에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 위계구조는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중국과의 AI 전쟁 와중에 미국에서는 빅테크들이 AI 투자를 주도하고 있고, TSMC와 SK하이닉스는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한때의 하청의 위치를 벗어나 선도 기업을 꿈꾼 삼성전자는 신분을 망각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4 국가적으로는 이 살벌한 네트워크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네오파시즘적 징후가 점점 짙어지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5 앞으로 제국주의 “기술산업복합체“가 어떻게 우리 기업의 팔을 꺾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6 처음 인용한 글에서는 “국가적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은 사실상 상호 국가적 몰살”이라 말하지만, 한국처럼 조그마한 하청국가에게는 생존 자체가 투쟁이기도 하다.

  1. 당시 아시아의 반공(反共) 정부는 베트남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장악되어 가는 상황을 목격하며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 사실이다.
  2. 페어차일드는 그해 214만5000달러를 직접 투자, 한국에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조립 생산 공장을 짓는다. 합작이 아닌 직접 투자로 한국에 진출한 반도체 업체는 페어차일드가 처음이다.(관련 기사)
  3.  블룸버그통신은 “TSMC는 대만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산(護國神山)’으로도 불린다”며 대만인들의 TSMC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있다. TSMC의 대만내 전기 소비량이나 시가총액 비중을 볼 때 사실상 대만은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는 TSMC와 같은 느낌이다.
  4. 그런데 하청기업답게 초과노동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5. 최근에는 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희토류 및 전략 광물을 내놓으라고 을러댔다고 한다. 조선일보마저 헤드라인에 “조폭”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편, 이 영상에서의 패널은 사실 여태 그래 왔던 것을 오히려 트럼프라서 속내를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6. 국내에서는 트럼프가 TSMC의 팔을 꺾고 있는 와중에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기사회생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을 품는 이들도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운다. 처맞기 전까지는”

3 Comments on “첨단산업 네트워크 하청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1. 우리나라 팹리스의 글로벌 비중은 1% 정도밖에 안 되는 미미한 상황이라고 한다. 팹리스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설계를 위한 지적재산권을 보유해야 하는데 미국 기업의 경우 그러한 IP를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전략을 삼아서 몸집을 키워갔다. 그런데 강의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재벌의 수직계열화 경향에 따라 실력 있는 스타트업을, 돈을 주고 사기보다는 자체 개발에 주력하다 성장이 늦어졌다는 취지다. 지분이 적더라도 자체 팹리스가 있어야 파운드리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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