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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청구권조약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 하나

어제 치러진 일본의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정권의 “절반의 승리“로 끝났다. 적어도 그의 임기 동안 그가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던 평화헌법의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이라는 새로운 주적(主敵)을 설정하는 무리수를 통해 소비세 인상 등의 악재를 뚫고 개헌이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려던 아베의 꿈은 다행히 저지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의 남한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는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처음 남한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칠 때 아베는 “지금까지의 우호관계에 반하는 한국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수출 규제 조치의 원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그런 애매모호한 변명이 궁색하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에칭가스는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데, 행선지는 북한이다“라는 안보상의 이유라는 궤변을 들이대기 시작한다. 거기에 “사린가스“라는 일본인의 트라우마까지 써먹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누가 보기에도 아베의 야비한 수출 규제 조치의 원인은 “식민지 기간에 일본 기업이 저지른 강제노역에 대해 그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한 앙갚음”이다. 아베 스스로도 선거 개표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압박을 하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다.

이번 아베의 도발은 근본적으로 박정희 정권이 1965년 당시의 일본 정부와 체결한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칠게 보아 현재의 문재인 정부 포함 민주적 선출을 통해 집권한 정부는 당시의 조약을 일제의 불법적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이 배제된 독재정부의 일방적 조약이라고 보는 반면, 아베 정권은 정권의 연속선 상에서 모든 보상 및 배상이 정리됐다고 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조선일보

1991년 일본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의 야나이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의 입장 표명,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의 의견, 2012년 김능환 전 대법관이 주도한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인한 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의견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베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양국 정부의 의도를 해석해보자. 우선 일본 정부는 굳이 선한 의도로(!) 해석하자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입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너희가 보기에 불충분한 조약이었다 할지라도 수긍해야 한다’가 아베의 의도다. 한편 독재정권의 정통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현 정부의 의도는 이를 “불쾌한 채무(Odious Debt)“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그 조약을 정통성 없는 독재 정권이 졸속으로 맺은 밀약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3세계에서 한 정부의 정통성이 이전 정부의 그것과 다를 경우 “독재정부가 부패한 방법으로 빌린 ‘불쾌한 채무(Odious Debt)’를 갚지 않겠다고 디폴트 선언을 하기도 한다. 법리적으로 보나 애초 일본 정부의 의도로 보나 1965년 조약은 그러한 채권채무 관계보다 더 조악한 밀실 조약임이 분명하기에, 어쨌거나 진보적인 정부나 일제의 불법행위의 피해자가 보기에는 – 피해자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 부정한 채권 청구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베 극우 정권에게 1965년 조약에 대한 남한 행정부의 입장과 사법부의 강제징용자에 대한 판결은 수용 불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하기에 어떤 식으로든지 압박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글로벌 제조업 체인을 뒤흔드는 현재와 같은 경제 보복 조치는 너무나 무모하고 근시안적이기에 조만간 최소한 미세 조정이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지만 남한에 친(親)아베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정치적 긴장은 상당기간 온존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우쓰노미야 겐지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이 제시한 해법을 소개한다. 그는 한일청구권협정의 조항의 내용과 범위에 관한 “양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해석과 대응”을 지적하며 “협정 체결 과정에 관한 문서의 공개와 인식 공유“를 통해 해결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은 이 밀실 조약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발목 잡는 현 상황을 타개할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가 박아놓은 쐐기가 너무 어설프기에.

‘한 나라가 기초부품 등을 수출하면 ‘다른 나라가 중간재를 조립하거나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연쇄 생산 과정 중 장애가 발생할 경우 양국 사이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일본 경제산업성 2019년 통상백서]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 나라 경제가 이런데….

“왜 빵의 부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다른 병사가 소리쳤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쮸드노프스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다음에는 멘셰비키적 방위주전론자로서 비테브스키 소비에트의 대표인 한 장교가 말했다. “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리고 어떤 변혁보다도 우선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여기에서 야유와 빈정거리는 박수가 있었다. “볼셰비키 선동가들은 데마고그다!” 회의장은 웃음소리로 진동했다. “잠시 동안 계급투쟁을 잊어버리자”고 그는 말했으나 그의 말은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었다.[세계를 뒤흔든 10일, 존 리드 저, 장영덕 역, 두레, 1993년, p63]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꺼내 읽은 책의 일부분을 인용해보았다. 미국 언론인 존 리드가 볼셰비키 혁명을 직접 체험하고 책으로 엮은 르포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니 만큼 현장에서의 생동감이 1세기가 지난 지금에 읽어도 어렴풋이 느껴질 정도다. 인용한 장면은 10월의 어느 날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한 철야회의에서의 모습이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중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라는 사회변혁의 오래된 이슈가 이 장면에서 또 한 번 연출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심사는 치열했습니다. 9시간을 넘겼습니다. “분식회계도 횡령도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한 줄 알았다”는 게 김태한 대표의 입장, “분식회계도 증거인멸도 횡령도 김 대표의 지시를 받았다”는 게 김동중 삼바 전무의 입장이었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이런 날선 내부 다툼과 법적 공방 끝에 삼성 측은 호소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쩌면 ‘일격’에 가까운 호소,

“일본 문제도 있고, 나라 경제가 이런데….”

영장심사 결과는 김 대표도 김 전무도 모두 기각.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삼바’ 영장심사에서 나온 말, “나라 경제가…”]

존 리드의 책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낮에 읽은 이 기사가 떠올랐다. 정확히 삼성 측의 누가 저 말을 했는지는 보도에 나와 있지 않지만, 여하튼 참으로 어이없는 적반하장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이 현재 일본의 무모한 정치적 도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는 아니고, 일면 그 도발로 인한 피해자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구속영장심사 자리에서 피의자가 할 소리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할 말로 일본 문제와 이들 기업의 분식회계가 무슨 상관이나 있기는 한가?

어쨌든 존 리드의 책을 읽다가 삼바 기사가 떠오른 것은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을 팔아 회피하려는 작태가 유사 이래 정치집단 내, 계급적 갈등관계에 있던 집단 사이, 심지어는 범죄 집단과 이를 단죄하려는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던 핑계거리가 되곤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연상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앞서의 장교는 어쨌든 선의에 의한 발언이라고 여겨지는 반면, 삼성 측의 주장은 본인들의 범죄를 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틈타 빠져나가려는 야비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나라 경제를 망쳐놓은 것은 본인들인데.

블로그에는 글도 안 쓰는 제가 청와대 게시판에 글 하나 올렸습니다

청룡봉사상을 없애야 합니다[해당 페이지 가기]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포항경찰서 소속 A 경감은 지난 26일 ‘청룡봉사상이 우리의 자존심을 구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폴넷)에 올렸다.
….
경찰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민갑룡 청장은 지난 20일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조선일보가 심사해 1계급 특진하는 방식에 대해 유지 입장을 밝혔다. <"자존심 구기는 청룡봉사상 없애야" 경찰간부 공개반발>

2019년 5월 29일 자 노컷뉴스 보도의 일부입니다. 이 사회는 지금 검찰과 경찰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부 기관의 수사권 조정, 버닝썬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김학의/장자연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한 검경의 수사 등 검경을 둘러싼 여러 갈등과 사건에 대한 이슈로 온 국민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우려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버닝썬 수사는 “명운을 걸겠다”는 경찰청장의 비장한 각오가 무색하게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고, 고 장자연 씨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재수사 역시 다시 답답했던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뒤에 무언가 정당하지 못한 수사기관과 이해당사자 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인 청룡봉사상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최근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 판에 경찰이 그동안 조선일보라는 특정한 매스미디어와 공동으로 특진의 기회까지 주는 상을 일선 경찰들에게 수여해왔다는 사실은 속담에서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게 또 기사 속에서 보도된 많은 일선 경찰의 생각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오래된” 상이라는 이유로 폐지가 어렵다는 경찰청장의 발언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적폐를 없애고 깨끗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 시대적 요청입니다. 반공 제일주의도 오래된 적폐였고, 공직자의 접대 관행도 오래된 적폐였고, 관권선거도 오래된 적폐였습니다. 경찰과 특정 매스미디어와의 유착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경찰청장의 발언 역시 앞서 사례와 같이 오래된 또 하나의 적폐라 생각합니다.

청룡봉사상 폐지해주십시오.

홍석천 씨의 선의는 어떻게 악의로 둔갑하는가?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수완 좋게 여러 접객업소를 운영 중이던 홍석천 씨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밝혔다. 수완 좋은 그 역시 높은 임대료와 상승하는 최저임금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운영 중이던 가게 두 곳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현재 문제는 기존의 높은 임대료라는 한계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가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임대료와 임금 이 둘은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는 가장 큰 두가지 변수임은 틀림없다.

홍석천은 “일부 건물주는 이미 임대료의 과도한 폭등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고 이제 현실화해야한다는 데 다행히 동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제의 인상 역시 너무 가파른 게 현실이지만 결국 장사를 잘해야만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홍석천은 수제맥주의 본산지였던 경리단길의 특색을 살려 특정 요일에 차 없는 거리, 수제맥주의 축제, 원주민이었던 아티스트의 전시공간 확보 등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홍석천 “저도 가게 문닫아..사람 모이게 임대료 내려야 상권 살아요”(인터뷰)]

홍 씨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장사를 잘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칙적인 해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가 보기에 그간 경리단길은 – 또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상업지역 – 상업지역으로 인기를 얻은 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였고, 그 와중에 최저임금이 올라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 상황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람들이 경리단길을 찾았던 그 매력을 제시해주는 것이 현 위기의 타개책이라 보는 것이고 나도 그의 그런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홍 씨의 소식을 전한 일부 “언론” 들의 보도행태가 논란이다. 홍 씨가 직접 페이스북에 언급한 중앙일보는 홍 씨의 이데일리 인터뷰를 전하는 기사 타이틀에 마치 자사 기자가 직접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따옴표를 따서 홍석천 “이태원 가게 2곳 문 닫아 … 최저임금 여파”라고 적어놓았다.1 홍 씨는 페이스북 글에서 “욕은 제가 대신 먹겠습니다만 그래도 전화한통이라도 하시고 기사내시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는데 이는 기본도 안 된 “기레기”들을 향한 쌍욕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동아 역시 임대료 언급은 쏙 뺀 채 최저임금만 걸고넘어진 악랄한 기사 타이틀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동아의 타이틀은 한발 더 나아가 ‘연매출 70억’ 홍석천 레스토랑 中 두 곳 폐업…“최저임금 인상 감당 못 해” 이라고 써서, 홍 씨처럼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자영업자도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타이틀로 보도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같은 매체에서 다시 홍석천 씨의 중앙에 대한 항의 소식까지 전하며 홍 씨를 소재로 조회수 장난질을 두 번 우려먹었다는 사실이다. 정말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대다수 언론의 최저임금에 대한 맹공은 융단폭격에 가깝다. 상업중심지가 텅 비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2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되는 것도 최저임금 탓이요,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도 최저임금 탓이다. 이러한 꾸준한 마타도어는 실제로 여론을 움직이기도 한다. 갤럽이 최근에 조사한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그 직접적 수혜자라 할 청년층의 예비노동자군에서조차 최저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고,3 이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그런 점에서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보수 “언론”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나아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보다는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이 정책이 폐기돼야 진정으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의 여부는 별개로 하고 현 정부의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그 정책의 폐기가 궁극적으로 “진보”의 패배로 이어질 것이고 그들이 꿈꾸던 우익국가로의 회귀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월급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조선일보 기자는 왜 자기들 월급은 올려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겠는가?4

‘조찬 클럽’과 사회주의자 국회의원

요 며칠 사이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해프닝은 @AnonymousQ1776 라는 트위터 계정을 가진 이가 “여기 미국의 가장 인기많지만 무엇이든 아는 체 하는 빨갱이가 생각 없는 바보처럼 구는지 보라. 샌디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고등학교 시설 비디오다.(Here is America’s favorite commie know-it-all acting like the clueless nitwit she is……High School video of “Sandy” Ocasio-Cortez)라는 트윗과 함께 한 여성이 친구들과 춤을 추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시작했다. 비디오 속의 주인공은 해당 계정이 “빨갱이”라고 칭한, 이번 선거에서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알렉산드로 오카시오 코르테즈.

그가 비디오 속에서 생기발랄하게 추는 춤은 유명한 80년대 영화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에서 극중 인물(배우 Ally Sheedy)이 추던 장면을 오마쥬한 춤이다. 80년대의 십대의 문화적 정서를 적절히 반영하여 시대가 흐를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The Breakfast Club에서도 이 장면은 출연 배우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추는 춤으로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지금은 계폭한 그 계정의 해당 트윗에 많은 이들의 반응은 “뭐 어쩌라고? 멋있기만 한데?”라며 의아해 했고, 영화와 코르테즈의 비디오를 교차 편집한 비디오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https://twitter.com/heykim/status/1081054336312983552

급기야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Molly Ringwald는 “바로 이거야. 알렉산드리아 당신도 클럽에 가입했어!(That’s it, Alexandria you’re in the club!)”라며 열렬히 환호하는 트윗을 올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비디오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리아는 의회에서 자신의 의원실에 들어가기 전에 춤을 추는 장면을 트윗에 올리기도 했다. 애초에 어떤 의도였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마치 춤을 금지하는 영화 Footloose에서의 마을사람의 근엄함을 연상시키는 @AnonymousQ1776 의 트윗으로 시작된 작은 트위터 연대가 만들어낸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글로벌화된 소셜미디어가 안겨주는 작은 기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https://twitter.com/AOC/status/1081234130841600000

謹弔

그가 꿈꿨던 미래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슬로건은 ‘국민 모두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문화국가’였다. 첼로를 사랑하셨던 먼저 떠난 그에게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바친다.

이명박이 판 쥐구멍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국가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분을 예산 절감을 통해 보전하겠다는 작은 정부론의 정책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중략]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집권 1년이 지나면서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중략] 이명박 정부는 2009년 3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중략]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항목 중 긴박한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재해복구 지원’을 ‘6. 재해예방·복구지원’으로 수정했다. 재해예방이 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말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중략] 결국 4대강 사업 예산 22.2조 원 중 핵심 사업인 준설, 보 설치 등을 포함해 총 89%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오건호 지음, 레디앙, 2011년, pp169~171]

1999년 도입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한국의 국가 재정 체계에 있어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받는 제도다. 국가재정법 및 관련시행령은 예비타당성 조사의 대상사업, 사업규모, 제외사업 등 구체적 사항을 담겨 있어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오건호 씨에 따르면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업 추진 부서가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였다. 1994~1998년 동안 진행된 자체 타당성 조사 32건 중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된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면 제도가 도입된 이후인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총 378건의 조사 대상 사업 중 타당성이 있다고 판명된 사업은 216건, 사업수의 57%에 불과했다. 제도의 위력이 검증되는 수치다.

여러 근본적 결함에도 이렇듯 재정건전성에 기여했던 제도를 무력화시킨 혐의가 이명박에게 있다. 애초 보수가 의례 그렇듯 작은 정부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는 법상 500억 원 이상에만 실시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의 대상 범위를 400억~500억 원 규모의 사업에도 ‘간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운하”라는 거대한 토건사업을 기획하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제도강화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호기롭게 “민자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던 당초 계획이 무산되고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무리수는 인용문과 이 블로그에서 적은 몇몇 글에서 보는 바와 같다.

이런 사정은 국토부 내부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가 2008년 3월에 보도한 내부 문건에서 국토부는 “민간사업자의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 된다”, “관광단지 개발 같은 부대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반도대운하는 수질악화나 환경파괴 우려 외에도 애초부터 막대한 재정투입이나 주변 개발권 등 이권을 보장해주지 않고서는 경제성도 없어 추진이 불가능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의지 속에 대운하는 인수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속전속결 추진과 임기 내 완공까지 선언한 것이다.[한반도 대운하, 어떻게 ‘4대강 사업’으로 둔갑했나]

이명박 정부는 “정상적” 보수 정부일지라도 어떻게 편법으로 사익을 취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화”는 사익 앞에서는 금세 “큰 정부”와 “재정낭비”로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게다가 수자원공사라는 우량 공기업을 일종의 우회적인 자금동원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너무 큰 정부”로서의 추태까지 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다 정부재정이 악화되기라도 하면 우익 이론가들은 이를 정부무용(無用)론으로 써먹기도 한다. 사실 이점이 진보주의자들의 정부역할론의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제도는 훌륭해도 정부부문에는 얼마든지 이명박이 도망갈 쥐구멍이 있는 법이라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