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구제금융

티모시 가이트너가 설명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대한 단상

그렇다고 해서, 나는 “정부가 금융업계에 대해 관대했다.”는 일반인들의 인식이 근거 없다고 반박하지는 않는다. [중략] 부실금융회사의 경영진들이 저택이나 멋진 자가용 비행기를 사도록 구제금융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금융의 재앙이 경제 전반을 망치지 못하게 막을 다른 방법이 없어서 한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정지되면 신용은 얼어붙고, 저축은 사라지며, 상품과 용역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게 되어 대량실업과 가난 그리고 고통을 초래하게 된다. [중략] 이것이 ‘금융위기의 역설’로, 우리가 적절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이 때로는 적절하고 공정한 결과를 낳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과 정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책결정자들이 위기를 더욱 확대시키는 이유이며, 위기관리의 정치학이 항상 지지를 받지를 못하는 이유이다.[스트레스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 김규진/김지욱/홍영만 옮김, 인빅투스, 2015년, p591]

경제시스템의 버블이 터짐으로써 위기가 발생한다면 상식적인 대안은 내핍을 통하여 다시 재무제표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일개 가계의 이야기이고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여태 형성되어온 버블을 통해 국가의 각 부문이 그에 맞게 성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가적인 내핍을 강요하게 되면 버블로 먹고 살던 부문은 영양실조에 걸려 쓰러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결국 버블의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 때까지 정책결정자는 가이트너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기 없는 ‘금융위기의 역설’에 근거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다. 분명히 월스트리트는 경제위기의 방화범임이 확실한데, “월스트리트 출신”의 가이트너가1 방화범을 구제해줘서 저택과 자가용 비행기를 안겨주었다는 것이 분노의 주된 내용이다. 실제로 그의 회고록에 보면 이렇게 보일 수 있는 정황이 많다. AIG에 구제금융을 안겨주었는데, 그 와중에 직원은 이미 약속되어 있는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예정이었다. 재무부 장관으로서 그 계획을 막아보려 했지만, 법적으로 이는 불가능하였기에 수많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가이트너의 회고다. 정확히 정책결정자가 방화범에게 보너스를 주는 그림이 그려진다.

한편 이 시점에서 왜 금융시스템에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는 ‘금융위기의 역설’이 생기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 또는 서구의 선진 금융시스템 – 시장의 완전경쟁과는 거리가 먼 독점체제이다. 골드만 삭스를 비롯한 많은 투자은행이 포진해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어떻게 보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월스트리트라는 기업명의 단일 투자회사다. 세계화와 탈규제의 와중에 이들은 엄청난 금융버블을 지구단위로 키웠다. 그런 와중에도 금융시스템의 감독체계는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후진적이었다. 가이트는 이런 상황을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로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르는 것”(602p)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결국 가이트너가 각종 경제지표를 보여주며 회고하듯이 분명 인상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위기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 장군의 군대는 도드-프랭크 법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선진화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시장참여자 모두가 어느 선까지가 “건전한” 버블이고 어느 선까지가 “불건전한” 버블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고, 자신들은 처벌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고2 단지 잠시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금융의 귀재”들이 월스트리트에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용이 얼어붙지 않게 하는 대신에 우리는 방화범인 금융독점자본주의를 보호해줄 수밖에 없었다.

가이트너는 회고록에서 월스트리트를 처단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구약성서적인 정의”를 요구하는 근본주의자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은 ‘금융위기의 역설’에 따른 정치학이라는 케인스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는 한편으로 납세자나 – 심지어 의회에게 – 금융과 같이 어려운 분야를 난도질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엘리트주의적 사고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부당하게 월스트리트 출신이라고 몰아세웠지만, 그의 지사(志士)적 업무처리에는 월스트리트 편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금융시스템 고유의 – 특히 미국 Fed의 – 엘리트주의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현상온존 위주의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제쳐두고 본다면 가이트너의 처방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불길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데 채권자에게 헤어컷을 요구하면 그 채권자는 불씨를 다른 산으로 가지고 갈 것이었다. 그래서 구약성서적 정의를 실천하기 보다는 헤어컷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씨를 옮기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런데 이런 처방은 여태 IMF외환위기 때 한국 등 제3세계에 취한 조치 등을 생각하면 극히 이례적인 처방이다. 명분은 그때의 위기는 국지적이고 2008년의 위기는 세계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옳은 말이고 그게 또한 월스트리트 단일기업의 금융시스템이 가지는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바로 온 세계의 금융시스템, 또는 미국 정부조차 월스트리트의 인질이라는 사실.

우리는 또한 이 문제에 글로벌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기가 전 세계적이었고, 미국은 국내의 실패만이 아니라 해외의 취약한 감독기준으로 인해서도 손상을 받았다.. 만일 우리가 강화된 기준을 글로벌하게 권유하지 않고 단독으로 부과했다면, 미국은 시스템 강화의 성과는 못 얻으면서 미국업계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만 감소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런던 G20회담에서부터 시작하여, 바젤III라고 알려지는 체계와 파생상품 감독, 글로벌 은행의 청산 처리방식을 포함하는 국제금융 대책을 추진하였다.[같은 책, p465]

슈퍼볼은 끝났지만 하프타임 광고는 끝나지 않았다

슈퍼볼은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있어 최대의 스포츠축제 중 하나일 것이다. 슈퍼볼이 중계되는 동안 맥주와 팝콘을 잔뜩 들고서 TV앞에 미국인 가족들이 모여앉아 슈퍼볼을 즐기는 장면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축제를 기다리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면 바로 하프타임에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는 기업들이 아닐까 싶다. TV에 대한 시청자들의 집중도가 최고조에 달할 즈음 내보내는 광고는 단연 그 광고효과가 뛰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기업들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광고를 이 순간을 위해 제작한다.

소개할 크라이슬러의 광고도 바로 슈퍼볼 하프타임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광고다. 내용을 보면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순간이 슈퍼볼 하프타임이라는 것을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러면서 후반전을 미국경제의 재기를 위한 승부처에 비유하고 있다. 실로 절묘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이 광고에 대한 뉴스 보기

개인적으로는 이 광고가 마음에 드는데, 에미넴을 기용한 이전 광고에서도 쇠락해가는 도시 디트로이트의 맨살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광고는 아름답고 현실도피적인 것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도식적 관념에서 탈피했고 이번 광고 역시 그러하다는 점에 있다. 경제위기와 애국주의를 결합한 교묘한 프로파간다가 일품이다.

그런데 이 광고는 뜻밖의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표적인 공화당 성향의 보수적인 이미지의 배우임에도 미국의 우익진영에서는 이 광고를 오바마의 재선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강력 부인하고 있지만 하프타임과 후반전이 주는 비유를 우익진영은 그렇게 받아들인 셈이다.

한편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보수적인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사람들에게 고루 인기를 얻고 있는 그의 매력은 원칙주의에 충실하다는 강직한 이미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이 광고를 찍기 전에 자동차업계의 구제금융을 반대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반대한 회사의 광고에 나온 것이다.

슈퍼볼, 자동차, 클린트 이스트우드, 디트로이트, 신용위기, 구제금융, 거대양당의 대립 등 온갖 미국적인 다양한 요소가 이 광고 하나에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요컨대 슈퍼볼 하프타임에 구제금융을 반대한 배우가 그 구제금융을 받은 회사를 위해 후반전을 미국경제의 재기에 비유했지만, 보수는 이를 오바마 선거운동으로 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스포츠, 경제, 자본 그리고 이를 둘러싼 온갖 상징들이 하나하나 개별 인간들에게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복잡함을 말해주는 것일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가 되어 후반전을 뛰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감동적인 읊조림은 이런 복잡한 지형에서 과연 편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다.

사악한 구글과 미련한 아일랜드

해외 세금계산서를 줄이기 위해, 구글은 복잡한 법적 구조를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2007년에 31억 달러를 절감하고 지난해 총수익을 26%증가시킬 수 있었다.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비슷한 구조를 활용하는 가운데, 구글은 그들의 해외 세율을 기술 분야의 경쟁자들보다 더 낮게 낮출 수 있었다. 2007년 이래 그들의 세율은 2.4%이다.[중략]
미재무부에서 일했던 세무 경제학자 마틴 설리반은 “이 회사는 평균적인 법인세율이 20%이상인 고세율의 나라들에서 대부분 영업활동을 합니다.” 미국 다음으로 구글의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영국은 28%다.
버뮤다에서는 법인세가 전혀 없다. 구글의 이익은 세무 변호사들로부터 “더블 아이리쉬”와 “더취 샌드위치”로 불리는 대단히 난해한 경로를 통해서 이 섬의 백사장으로 여행한다. 구글의 경우 이렇게 작동한다.: 유럽, 중동, 또는 아프리카의 어떤 회사가 구글을 통해 검색광고를 구입하면, 이 돈은 구글 아일랜드로 송금된다. 아일랜드 정부는 기업이윤에 대해 12.5%를 과세한다. 그러나 구글은 이 이윤을 더블린 사무실에 머물게 하지 않게 함으로써 대부분의 세금을 내지 않았는데, 보도된 바로는 2008년에 세전이윤이 매출의 1%도 안 된다.
아일랜드 법으로는 구글이 거액의 세금을 부과 받지 않은 채 버뮤다로 직접 돈을 보내기 어렵다. 그래서 지불된 돈은 네덜란드를 통해 짧은 우회로를 경유한다. 아일랜드에서는 다른 EU국가들의 회사로의 일정액의 지불에는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돈이 네덜란드로 가면, 구글은 너그러운 네덜란드의 세법을 활용할 수 있다. 거기에 있는 그들의 계열사 구글 네덜란드 홀딩스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고(직원이 아무도 없다) 모여진 돈의 99.8%가 버뮤다로 넘어간다.(버뮤다에 있는 이 계열사는 기술적으로는 아일랜드 회사다. 그래서 “더블 아이리쉬”란 별명이 붙었다.)[The Tax Haven That’s Saving Google Billions]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이 저지르고 있는 “사악한” 짓의 일부다. 어제 이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댓글 달아주신 daremighty님의 제보(!?)로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구글을 통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 와중에 – 비록 공짜이긴 하지만 그게 과연 공짜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는 – 구글마저, 아니 다른 IT기업보다 더 잔머리를 굴리며 이렇게 탈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왠지 악덕기업에 한 푼 보탠 것 같아 당황스럽기도 하다.

한편, 이 “돈의 세계여행”에서 눈에 띄는 나라는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최근 8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나라여서 특히 눈에 밟힌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말부터 강력한 대외개방경제를 표방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였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12.5%라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로 다른 나라의 기업을 유혹하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성공을 거두어, 아일랜드는 유례없는 높은 성장률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성장추세는 꺾이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구글의 행태가 왜 아일랜드의 성장추세가 꺾일 수밖에 없었던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즉,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한 국가의 세금 세일즈는 언젠가 더 낮은 세율, 그리고 더 교묘한 탈세(또는 절세) 방법이 나타나면 쇠락할 수밖에 없는 영업 전략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구글에 자국 기업이 2개나 되면서도 푼돈만 걷고 있는 꼴이라니…

그럼에도 아일랜드는 어이없게도 구제금융에 대한 반대급부로 12.5%의 법인세율을 올리라는 채권단의 주문에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그대신 그들이 150억 유로 규모의 재정긴축안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대책에서는 최저임금 삭감, 복지예산 축소, 공공분야 일자리 축소 등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피해가 가는 대안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심지어 부가가치세의 세율은 21%에서 23%로 올렸으면서도 말이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아일랜드가 EU에 참가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특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거칠 것 없는 자본의 세계화라는 상황은 처음 얼마간 아일랜드에게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였으나, 이제는 경제적 재난을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법인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검을 강물에 떨어트리고 그 떨어진 배의 위치에 표시를 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미련한 짓일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미련한 짓이 비단 아일랜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여전히 경쟁적으로 다국적 기업유치를 위해 사탕발림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히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그것은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심지어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인 디트로이트조차 메뚜기 떼처럼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을 잡지 못해 폐허가 되지 않았는가? 자본은 바람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대안은 뭘까? 전에 농담 삼아 말했지만 전 세계가 단일세율을 적용하는 것만이 구글과 같은 잔대가리들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여전히 그게 실현가능하냐 하는 의문이 드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영토적 개념의 국가이익이 국제경제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세율이 국가경쟁력이라고 강변하는 이가 있다면 뭐 아마도 세율 0%가 될 때까지 내달리는 치킨게임을 좋아하는 이일 것 같다.

의사결정의 신탁(信託)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시장에서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합 경제에서는 위험 가능성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힘이 널리 확산되고 분산되어 있는 반면, 사회주의 제도 안에서는 중앙 집권화 되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위험이 비용으로 ‘전환’된다. 사회주의 제도 안에서 비용은 관리 가격으로 국민들에게 부과된다.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 비용은 보험이 생산과 분배 과정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물건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로 떨어진다. [국가의 퇴각, 수잔 스트레인지 지음, 양오석 옮김, 푸른길, 2001년, p203]

이렇듯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은 위험을 감수하는 이, 재화나 용역을 이용하는 이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또는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다. 하다못해 일회용 라이터를 사더라도 그 가격에는 판매회사가 화재보험에 가입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이번 구제금융에 – 새로운 이름은 “예외적인 지원(exceptional assistance)”이라고 – 특히 분노하는 것이 있다면, 반(反)시장적인 저항이나 반(反)자본주의적인 저항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 구제금융을 받은 기관들이 ‘보편적이지만 반드시 정확하지만은 않은’ 시장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태의 수익은 천문학적인 보수로, 또 나아가 구제금융 받은 돈까지 이른바 잔류보수(retention bonus)라는 명목으로 가져가는 반면 위험감수에 대한 비용은 수잔 스트레인지가 사회주의 제도에 대해 묘사한 것처럼 국가가 – 결국은 국민이 – 부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모순된 상황을 월스트리트의 탐욕이나 부패한 정치가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거대집단으로 – 때로는 개별국가보다도 큰 단위로 – 성장한 금융 및 제조업 등의 산업부문은 이미 몇 번 강조하였다시피 단순히 자본가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이상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개별 국가, 나아가 문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존재를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문들이 소유권 상으로 사유화되어 있는 한편, 더 나아가 이익창출 – 동시에 수반되는 위험감수 – 의사 결정이 여러 보완책에도 불구하고 – 예를 들면 이사회나 주주총회 – 여전히 극소수 소위 경영진의 수중에 놓여 있다는 점이 현 경제체제의 문제 중 하나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의사결정단위를 좀더 확대하여 노동자평의회 혹은 그 이상의 공동체 단위에서 위험을 감수하기로 의사결정을 하였다면 적어도 그에 수반되는 비용이 사회적으로 처리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더 관대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선입견에 의해서건 또는 경영학적인 명민한 연구에 의해서건 여전히 집단주의적 사고에 의해서보다는, 번뜩이는 상상력의 소유자 또는 전문가의 ‘고뇌에 찬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결국 소유권이 사유화 또는 집중화의 모순을 극복하고 좀더 광범위하게 확산된다 할지라도 – 이는 사실 꽤 진척이 되어 있는데 공모펀드랄지 연기금 등이 투자를 할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 여전히 그 재산권자들이 의사결정을 소수의 경영진 또는 전문가에게 신탁(信託)할 경우 소위 공정성 시비가 재연될 개연성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결국 유효한 수단들이 법제화 등의 각종 규제, 언론 등을 통한 사회적 감시, 그릇된 또는 부도덕한 결정에 대한 징벌 정도 일 것이다. 그나마 그 징벌도 권력자들에게는 예외가 적용되지만 말이다.

구제금융 금지조항

더구나 유로권 국가들 사이에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상의 구제금융 금지조항(동조약 125조)이 적용되고 있다. 이 조항은 유로화에 참여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회원국들이 방만한 경제 운영으로 신용위기가 발생할 경우 주변국들의 피해를 막고 당사국들도 남들의 신용에 기대는 모럴 해저드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제정된 조항이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별 회원국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고 유럽중앙은행이 소규모 회원국들의 환율 불안요인을 반영한 조정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회원국들은 위기 국면에서 국채 스프레드 증가로 인해 재정 부담이 점점 더 커지며 신용등급 하락 등 악재가 추가될 경우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화의 미래, 이서원 책임연구원, LGERI 리포트, LG경제연구원, 2009년 3월 11일]

이 글을 읽고 떠오르는 것. 적벽대전. 옆 배에 불이 났는데 자기 배에 불이 옮길까봐 물을 못 뿌린다 이거지. 쇠사슬로 서로 묶여 있는데도…..

구제금융과 보호무역주의

유럽연합은 만약 미국의 자동차 구제금융의 조건들이 무역원칙을 위반한다면 WTO 제소를 준비할 것이라고 위협해왔다. 유럽의 신문들은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상당한 보조금을 받았던 유럽의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에 대항한 보잉을 대변하여 그러한 제소를 제기한 적이 있었던 2004년의 회고로 채워지고 있다. 미국의 경쟁자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국시장에 원가이하의 상품을 “덤핑”하였다고 자주 비난받았던 중국과 일본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The European Union has threatened to prepare a WTO complaint (Bloomberg) if the terms of the U.S. auto bailout violate trade rules. European financial papers are filled with reminders of 2004, when the United States filed such a complaint on behalf of Boeing against European aircraft maker Airbus, which received generous subsidies from France. China and Japan, frequently accused of “dumping” below-cost products on the U.S. market to undercut American competitors, could take similar steps.[출처]

투자은행들에 대한 천문학적인 보조금은 유럽의 투자은행까지도 아우르는 금융권의 공멸을 막기 위한 측면이 있었기에, 그리고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이런 보호무역 이슈가 제기되지 않았지만, 제조업 분야로 접어들자 각국이 이해관계를 달리 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자유무역을 위한 장벽제거를 절대선 인양 주장해왔던 미국 스스로가 자국 산업의 지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 경쟁적인 보조금 전쟁으로 돌입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로써 미국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미국인들의 정서는 위기의 진원지인 금융업에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 임원들은 “유지 보너스”까지 받고 – 그 유탄을 맞은 것으로 치장되어진 제조업은 모른 척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느낄 것이다. 거기에 블루컬러 노동자들은 내팽개치느냐는 계급적 차별의식까지 개입되게 되면 사회적 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구제금융을 실시하면 외부로부터의 저항에 시달릴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기업의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유지하여 준다는 선험논리는 사치스러운 주문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자연스레 도태되어야할 것들의 생명을 억지로 연장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각국의 위기타개책은 이미 시장의 자유경쟁이라는 대원칙을 심하게 손상시킨 지 오래 되었고, 그러한 시도들이 앞으로 어떠한 새로운 시장원칙으로 귀결될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사상초유의 실험이기에.

블룸버그, 연방준비제도를 고소하다

블룸버그 뉴스는 오늘 중앙은행이 미국의 납세자들을 대신하여 은행들에 빌려준 1.5조 달러의 대출에 대한 담보로 받은 증권을 연방준비제도가 공개할 것을 연방법원에 요구하였다.

원고의 첫 진술에 따르면 이 소송은 연방관리들이 정부서류를 언론과 일반대중이 이용가능하게끔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연방정보공개법에 의거한 것이다.

“미국의 세금납세자들은 미국의 금융업에 대한 전례 없는 정부의 구제금융이 지니고 있는 리스크, 비용, 그리고 방법론을 알 자격이 있다.” 이메일에서의 뉴욕 블룸버그의 한 단위인 블룸버그 뉴스의 편집장 매튜 윙클러의 의견이다.

5월 21일 블룸버그 뉴스는 Fed에 4월 4일부터 5월 20일까지 수령한 담보들의 자료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중앙은행은 6월 19일 서류를 찾고 그것들이 공개되어도 좋은 것인지 결정하는데 7월 3일까지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만한 어떠한 공식적인 답변도 듣지 못했다. 10월 25일 블룸버그는 또 다시 요청을 제기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받지 못했다.

Bloomberg Sues Fed to Force Disclosure of Collateral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