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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화되는 화폐전쟁

우리는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 : SDR)이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SDR은 초국적 기축통화의 특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SDR 할당 증가를 통해 펀드가 그 금원 문제와 발언의 어려움과 대표성 개혁을 처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SDR 할당을 추진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어야 한다. 이는 회원국 간의 정치적 협조를 필요로 할 것이다.
Special consideration should be given to giving the SDR a greater role. The SDR has the features and potential to act as a super-sovereign reserve currency. Moreover, an increase in SDR allocation would help the Fund address its resources problem and the difficulties in the voice and representation reform. Therefore, efforts should be made to push forward a SDR allocation. This will require political cooperation among member countries.[Reform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23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가 웹사이트에 기고한 “Reform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라는 글의 일부다. 지난번 유럽에서의 SDR 위상 강화에 대한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중국이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은 SDR 강화라기보다는 – 본문에서 美달러를 구체적으로 지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 명백히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을 폐기처분하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어떤 국가나 중앙은행도 공식적으로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안을 최대의 달러 보유국(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조 달러이고 이중 상당수 자산을 미국에 재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의 중앙은행에서 대외에 천명한 셈이다.

World Socialist Web Site 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이러한 태도표명은 미행정부의 금융위기 해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연방준비제도는 최근 엄청난 규모의 국채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의 재정상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실제로 연방준비제도의 국채매입 계획 발표 이후 달러는 이틀 만에 유로 대비 4.5% 하락하였다. 따라서 비록 국가간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SDR 체제 구축이라는 학술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위 글은, 사실 그 어떤 글보다도 중국의 국가적 이해관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wsws는 왜 중국이 직설화법이 아닌 우회적인 표현으로 미국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곤경에 처해있다. 한편으로 미국의 정책은 잠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리라는, 그래서 거대한 달러 위기의 가능성이 매우 현실적임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미국 부채에 대한 의존도를 경감할 방도를 찾고 싶어 한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이러한 방향으로의 여하한의 시도는 시장을 위협할 것이고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위기를 촉진시킬 것이다.
The Chinese government is caught in a bind. On the one hand, it knows that US policy is potentially inflationary, that the prospect of a massive dollar crisis is very real. It would like to find a way to lessen its dependence on US debt. On the other hand, any moves by the Chinese in this direction could spook the market and precipitate the very crisis it fears.[Chinese central banker says US dollar should be replaced as global reserve currency]

한마디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미국에 대한 인질인 동시에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인질인 셈이다.

이러한 모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은 궁극적으로 저우샤오촨 총재가 제안한대로 기축통화를 한 국가의 화폐가 아닌 세계화폐로 대체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순수한 “회원국 간의 정치적 협조”를 기대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그러므로 아직 먼 이야기다. 그나마 현실적인 것은 대륙간 경제권을 아우르는 지역 기축통화의 역할분담을 통해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정도일 것이다. 유로와 위안화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일 것 같다.

하나의 현상, 두개의 처방, 그리고 기축통화

미국은 구제금융 제공과 국유화 등으로 이 위기에 대응하고 있고,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에게 향후 더 과감하고 대규모 재정지출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대공황의 경험을 통해 살펴볼 때 이것은 인위적인 이자율 인하로 인해 유발된 동시다발적인 잘못된 투자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이를 지연시키고 더 심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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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순환에서 경기침체기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종전에 행해진 잘못된 투자들을 재조정하는 치유의 과정이다. 비(非)팽창적인 통화정책 속에서 긴축재정(혹은 최소한 비(非)확장적 재정정책)과 감세를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이런 조정의 과정을 빠르게 종결시킨다. 확장적 통화정책과 마찬가지로 확장적 재정정책도 잘못된 투자들의 조정을 지연시키고 지속될 수 없는 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불황의 장기화를 초래한다. [출처]

한국사이버대 김이석 교수의 글이다. 전형적인 시장자유주의자의 논리다. 긴축재정(최소한 비확장적 재정정책), 고금리(최소한 인위적인 이자율 인하 금지), 감세정책 등등. 이들은 이를 통해 ‘잘못된 투자들을 재조정하는 치유의 과정’을 신봉한다. 시장은 물 흐르듯 흐르게 내버려두면 침체기에 자연스럽게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논리다.

위와 같은 처방은 또한 IMF의 단골처방이었다. 이른바 ‘워싱턴컨센서스’라는 것. 실제로 워싱턴에서 그러한 컨센서스를 위한 회합을 열었는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 한 정치학자가 명명하고 난 후에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진보주의자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신자유주의적 조치로 인해 발생하였고 케인즈주의, 또는 보다 급진적인 수단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정부의 인위적 개입 등 ‘정부의 실패’에서 기인하였고 – 예를 들면 패니메, 프레디맥 등의 우월적 지위에서의 영업 – 이에 따라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조치의 강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

한편 김교수는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으로 “건전화폐의 실종”을 들고 있다.

현행 국제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의 화폐제도에 대한 간섭으로 인한 “건전한 화폐”의 실종과 만난다.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건전한 화폐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불환화폐를 발행하고 각국의 불환화폐들의 가치가 변동되는 제도 아래에서는 이를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 그 결과 경제계산의 척도가 수시로 교란될 수 있다. 국제 금융위기로 환율의 변동폭이 커지면 국제간 거래에서 어떤 것이 사업성이 있는지 경제계산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만큼 거래가 실종되고 그만큼 세계는 가난해진다. 화폐의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출처]

일부 논자들은 Fed와 같은 민간기관이 국가의 화폐주조권을 훔쳐갔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교수는 시장이 가지고 있어야 할 화폐주조의 권리를 – 명백하게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 국가가 “간섭”하고 있고, 이로 인해 “경제계산의 척도”가 수시로 교란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시장가격과 각국 이자율의 괴리 등이 시장에 ‘자연스럽게’ 반영되면 화폐가치가 ‘자연스러운’ 경제계산의 척도가 될 것인데 국가가 유동성의 확장 또는 회수를 위해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이것이 그 척도를 왜곡시킨다는 논리다.

이는 화폐수량설의 고전적 논리(화폐수량설에 대한 빠삭한 해설은 여기를 참고하실 것)로 여겨진다. 논리에 별로 발전도 없는 것 같다. 결국 김 교수도 그렇다면 다시 금본위로 회귀하자는 것인지, 완벽한 민간금융기관을 통한 발권을 지향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없다. 그저 “현행 부분지불준비제도 아래에서 신용(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런 소리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시장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이번 사태의 단기적 원인과 처방에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지만, 그 근원적 원인에 대해서는 단순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증권이 월스트리트의 탐욕으로 인해 지나치게 공세적으로 발행되었다는, 특수한 국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현 위기는 보다 거슬러 올라가 달러본위제라는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전 세계의 – 특히 중국과 산유국의 – 대미무역 불균형이 한 몫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공인된 셈이다.

달러가 현재와 같이 미래에도 그 경제위상에 걸맞지 않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 그것의 현태가 바로 달러에 대한 통화스왑 – 은 세계경제의 또 다른 잠재적인 폭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무제한으로 공급하겠다는 달러가 – 또 그에 대응하여 공급되는 각국 주요통화가 – 단기간에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어느 순간 경기가 어느 정도 풀려 화폐의 유통속도가 개선될 경우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신용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 경제의 불균형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적자와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복잡하게 설계된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신(新)금융자본주의를 통해서 연결된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경상수지 흑자국으로의 달러유출을 일으켜 해당 국가의 달러유입이 풍부해진다. 따라서 인위적인 환율개입이 없다면 달러의 상대적 공급이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 국가의 통화가치가 올라가고, 이는 적자국가의 상품가격하락과 흑자국가의 상품가격 상승을 통해 경상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자율조정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국가들 중에서 수출에 의존하여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국제 경제의 불균형, 금융위기, 그리고 구제금융의 한계, 연구위원 황세운, 자본시장 weekly, 한국증권연구원, 2008-42호]

이 짧은 문단에서 황 연구원은 1970년대 말 이후 지속되는 미국의 무역적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의 신(新)금융자본주의 시도, 미국으로의 주요 수출국들의 외환정책, 이로 인한 미국의 자본수지 균형의 흐름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전체 글 역시 근래의 금융위기의 원인과 미래를 가장 통찰력 있게 진단한 글이 아닌가 싶다.

이글에서 지적하는바와 같이 현재의 금융위기는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 고수, 파생상품 거래규모의 급증, 신용평가사의 도덕적 부패, 부동산 대출의 남발 등 여러 금융적 특성을 지닌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미국으로 돈이 다시 유입될 수밖에 없었던 국제거래 불균형 구조, 이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방치해놓았던 국제공조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오바마가 최근 중국의 환율조작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러한 근본모순에 대한 민주당식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파생상품

이제 우리는 DWSR(Dollar Wall Street Regime)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패턴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달러는 국제통화로서, 다른 모든 태환성 통화는 달러와 환율이 가능하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달러와 다른 주요 통화 사이에 고정환율이 적용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 정부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달러 가격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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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월스트리트는 (자국통화의 방어용을 포함해) 여러 가지 용도로 자금을 차입하고자 하는 각국 정부에게 다른 어떤 금융시장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또한 각국 정부와 경제활동주체가 환율 격동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수단을 제공한다. 즉 엄청나게 팽창한 외환시장뿐만 아니라 외환선물과 통화 스와프, 대출 등 이른바 전혀 새로운 형태의 파생상품 시장을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새로운 시장의 등장이 ‘기술적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외환시장의 엄청난 격동에 적응하려는 창의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외환선물시장과 금리 스와프 시장은 장래의 통화시세 변동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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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엄청난 규모와 양은 대다수가 정치적 동기에 따라 빚어진 국제 통화관계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피터 고완 著, 홍수원 譯, 세계없는 세계화, 시유시, 2001년, pp82~84]

일부 “좌파”들이 – 또는 우파까지도? –  금번 신용위기에서의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파생상품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정황에 대한 ‘뉴레프트리뷰’의 편집자인 피터 고완 Peter Gowan 의 설명이다. 이 글에서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파생상품의 본격화는 닉슨 행정부의 금태환 정지와 고정환율제 포기에 따라 환율변동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머지 세계의 수세적 대응의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요상품의 도입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1972년 시카고 상업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 8개 주요 통화에 대한 통화선물이 상장되었다. 이어서 1973년 주식옵션거래, 1982년 주가지수 선물, 1983년 주가지수 옵션 등이 차례로 제도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다양한 금리 관련 파생금융상품이 개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신종옵션, 구조화채권, 신용파생상품 등 새로운 파생금융상품이 등장하였다.[금융허브 기반구축을 위한 파생금융시장 활성화방안,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2006년, pp26~27]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 기초자산에 수반되는 위험의 평가/분리/이전 등의 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파생상품 시장에서는 학계조차 발맞춰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이 난무하게 된다.

‘금본위’와 ‘금환본위’

가끔 보면 경제적 식견이 상당한 분들도 ‘금본위(gold standard)’와 ‘금환본위(gold exchange standard)’를 혼동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 개념을 정리해둔다.

IMF의 대출 및 정책 감독 기능은 고정 환율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IMF에 관한 합의 조항>은 IMF 회원국들이 (IMF의 동의를 얻어) 통화 단위들 사이의 공식 환율을 결정하고 외환 시장 개입을 통해 시장 환율이 이 공식 환율을 중심으로 상하 1% 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의무를 명시했다.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금 가격을 정해 놓고 민간이 원하는 대로 중앙 은행이 금을 사고 파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앙 은행이 외환 시장에 개입해서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환율)을 일정 수준에 묶어 놓는 것이었다. 만일 대부분 회원국들이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브레턴 우즈 체제는 고전적인 금본위제도와 매우 유사한 체제가 될 것이었다. 만일 소수의 회원국들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하고 다른 대부분 회원국들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한 나라 통화와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택하면 브레턴 우즈는 금환본위제도가 될 것이었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 나라는 상당 규모의 금 스톡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국제 수지가 안정되어 있던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1온스 금=35달러의 비율로 금 태환성을 회복시켰고,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달러에 대한 환율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달러 환율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외환 시장 개입이 필요한데 미국 이외 나라들은 여기에 필요한 달러를 <준비 화폐 reserve currency>로 보유했다. 이렇게 해서 브레턴 우즈 체제느 유일한 금태환 통화인 달러를 <기축 통화 key currency>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로 출발했다.[차명수, 금융 공황과 외환 위기 1870-2000, 대우학술총서, 2000년, p141-142]

이 글에서 보듯이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만이 유일하게 금본위제도를 택하고 나머지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자국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금환본위제도를 채택한, 결국은 금환본위제도를 축으로 하는 체제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금태환이라는 것은 하나의 심리적 기제였을 뿐 실제로는 ‘달러본위제도(dollar standard)’이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금환본위제도는 미국의 금태환 정지 선언으로 막을 내리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던 다른 나라들이 여전히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하여 달러본위제도는 현재까지도 유지되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입 국가 이데올로기와 정부의 광범위한 시장개입은 브레턴 우즈 체제의 이 두 기둥을 무너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우선 미국 정부의 복지 예산 지출이 팽창하고 베트남 전쟁 개입이 심화되면서 미국 재정 적자와 국제 수지 적자가 확대되어 미국 밖의 달러 잔고가 급속히 누적되어 달러의 금태환성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지고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1971년 일방적으로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고 이는 금환본위제도에 종지부를 찍었다.[같은 책, p33]

미국의 군사력이 달러를 지켜주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미국의 현 상황은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리고 그 증상도 얼핏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미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당시의 일본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 미국은 당시 신속히 대처하지 않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본당국과는 달리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하고 – 덕분에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돌입 – 은행들은 대손상각을 해대고 있어 손실을 현재화하고 있다.(주1)

그런 면에서 불황의 골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이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헨리 폴슨 주니어 재무장관일 것 같은데 그는 여전히 미국경제는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recession 이라고 할 때에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야 하기에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데 할 말은 없지만 그 말에 안심할 사람들도 별로 없다.

어쨌든 최근 롤러코스터 주식장세를 연출시키고 있는 미국의 속전속결 막가파식 해법들이 가능한 든든한 뒷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US달러의 무한발권력일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가지는 위력은 뭐 입 아프게 설명할 것도 없다. 미국은 돈이 없어서 경제가 안 돌아가면 다른 나라처럼 고민하지 않고 돈을 찍어대는 유일한 나라다.(주2) 예전에는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그 금환본위제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음에도 다른 나라는 여전히 달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에서 밀려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예측은 크게 어렵지 않다. 발권력에 제동이 걸린, 사상최대의 채무국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국가부도의 나락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러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달러가 곤두박질치고 있고 차베스가 석유수출 결제통화를 유로로 바꾸자고 주장하더라도 달러는 여전히 막강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전 세계 외환거래의 86.3%가 달러화다. 세계 주요 국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2007년 9월 말 현재 64%에 달한다. 이 통계에는 중국과 산유국인 걸프만 국가들이 제외돼 있어 실제 비중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통화별 비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국제 채권시장에서 달러는 44.1%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국가 간 교역 현장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결제 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선호 현상은 여전하다. OPEC 회원국 가운데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국가들이 달러 이외의 결제수단을 채택하려 노력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친미국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는 바로 경제대국 미국의 뒤에 안보대국 미국의 존재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기축통화 대체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이도 있다. VOX 라는 사이트에서 Jeffrey Frankel 라는 경제학자는 그간 일본, 독일, 중동국가 등의 나라들이 미국채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군사강국으로서의 미국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신분보장의 대가로 받아들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주3) 그런데 부시 등장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행동 때문에 이들 채권자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였고 그로 인해 달러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래 그래프와 같이 10년 이후 유로가 달러를 대체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물론 그의 주장이 완전히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강대국의 통화와 군사력이 지니는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는 면도 적지 않다. 로마가 세계 최강대국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래 그들의 군사력이 미치는 범위와 그들의 화폐가 통하는 범위는 일치하여 왔다. 한편으로 강대국은 간혹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군사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군사행동은 경제적 세력권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전혀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최근 헤럴드트리뷴은 “Europe learns to live with almighty euro”이라는 기사에서 달러당 1.6유로가 되어버린 이 기막힌 현실에서도 유럽이 의외로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는 유럽 자본들이 유로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에 대처하여 생산기지를 다국적 화하고 있는데다 수출시장이 러시아, 산유국 등으로 다변화되어 점점 더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일각에서 주장되고 있는 디커플링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경제동조화가 정말 터무니없이 완전한 디커플링은 아닐지라도 점점 나머지 세상들이 ‘미국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정말 당연하게도 미국에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국채를 인수해주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될 테고 그럼 자연히 달러는 20세기 초반 파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존의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주1) 이에 반해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얼마 전에 새로운 대손충당금 운용기준을 저축은행에 올 상반기에 적용시키려 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행을 미뤘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부동산PF로 부실해진 저축은행 몇 개가 다치게 될 것이라는 추측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주2) 물론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가까운 상황이 되면 그도 별무소용이지만 말이다

(주3) 물론 중국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 시작되나

약한 달러에 관한 발언 중 최근 가장 강성의 발언은 아마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그들(미국인)은 우리의 석유를 가져가는 대가로 쓸모없는 종잇장(달러)을 주고 있다. 미국 달러가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대놓고 볼멘소리다. 현재 미국과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나라의 수장다운 무척 신랄한 발언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무게감이 실릴 발언주체는 역시 달러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일 것이다.

중국의 원자바오가 월요일 싱가폴의 한 경제회의 석상에서 달러 약세에 대한 우려감을 표하였다고 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원자바오는

“우리는 이처럼 큰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외환) 보유고의 가치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고 발언하였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대략 1조4천억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금년 들어 달러가 주요통화 배스킷에 대해 16% 하락하였으니 중국의 환손실은 막대하다.

헨리 폴슨 미재무부 장관은

“미국 경제는 기초가 탄탄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이는 통화 가치에도 반영될 것이며 강한 달러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주된 관심사이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리는 몇 년 전부터 지겹게 들어온 레퍼토리다. 거기에다 오히려 미의회는 중국이 환율조작국이라며 중국 수입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매기자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본궤도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환율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이길까?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이지만 중국이 불리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은 외환보유고의 약 3분의 2를 달러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숨통을 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국이 추가적인 달러 폭락을 불러올 대량 환매는 하지 않겠지만 그들로서도 보유고의 포트폴리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유로화 오를 일만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