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군사력이 달러를 지켜주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미국의 현 상황은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버블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그리고 그 증상도 얼핏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미국 정부와 금융당국이 당시의 일본과 달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 미국은 당시 신속히 대처하지 않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일본당국과는 달리 재빠르게 금리를 인하하고 – 덕분에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로 돌입 – 은행들은 대손상각을 해대고 있어 손실을 현재화하고 있다.(주1)

그런 면에서 불황의 골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이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헨리 폴슨 주니어 재무장관일 것 같은데 그는 여전히 미국경제는 ‘경기침체(recession)’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recession 이라고 할 때에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야 하기에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데 할 말은 없지만 그 말에 안심할 사람들도 별로 없다.

어쨌든 최근 롤러코스터 주식장세를 연출시키고 있는 미국의 속전속결 막가파식 해법들이 가능한 든든한 뒷배경은 뭐니 뭐니 해도 US달러의 무한발권력일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가 가지는 위력은 뭐 입 아프게 설명할 것도 없다. 미국은 돈이 없어서 경제가 안 돌아가면 다른 나라처럼 고민하지 않고 돈을 찍어대는 유일한 나라다.(주2) 예전에는 달러가 곧 금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그 금환본위제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음에도 다른 나라는 여전히 달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에서 밀려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예측은 크게 어렵지 않다. 발권력에 제동이 걸린, 사상최대의 채무국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국가부도의 나락으로 전락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러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달러가 곤두박질치고 있고 차베스가 석유수출 결제통화를 유로로 바꾸자고 주장하더라도 달러는 여전히 막강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전 세계 외환거래의 86.3%가 달러화다. 세계 주요 국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2007년 9월 말 현재 64%에 달한다. 이 통계에는 중국과 산유국인 걸프만 국가들이 제외돼 있어 실제 비중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국제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통화별 비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국제 채권시장에서 달러는 44.1%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국가 간 교역 현장에서도 달러는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결제 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선호 현상은 여전하다. OPEC 회원국 가운데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반미국가들이 달러 이외의 결제수단을 채택하려 노력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친미국가에 의해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는 바로 경제대국 미국의 뒤에 안보대국 미국의 존재가 뒷받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기축통화 대체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이도 있다. VOX 라는 사이트에서 Jeffrey Frankel 라는 경제학자는 그간 일본, 독일, 중동국가 등의 나라들이 미국채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군사강국으로서의 미국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신분보장의 대가로 받아들여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주3) 그런데 부시 등장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 행동 때문에 이들 채권자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였고 그로 인해 달러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래 그래프와 같이 10년 이후 유로가 달러를 대체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고 있다.


물론 그의 주장이 완전히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강대국의 통화와 군사력이 지니는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는 면도 적지 않다. 로마가 세계 최강대국으로 권력을 휘두른 이래 그들의 군사력이 미치는 범위와 그들의 화폐가 통하는 범위는 일치하여 왔다. 한편으로 강대국은 간혹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군사력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러한 군사행동은 경제적 세력권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전혀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최근 헤럴드트리뷴은 “Europe learns to live with almighty euro”이라는 기사에서 달러당 1.6유로가 되어버린 이 기막힌 현실에서도 유럽이 의외로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는 유럽 자본들이 유로 강세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에 대처하여 생산기지를 다국적 화하고 있는데다 수출시장이 러시아, 산유국 등으로 다변화되어 점점 더 미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일각에서 주장되고 있는 디커플링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경제동조화가 정말 터무니없이 완전한 디커플링은 아닐지라도 점점 나머지 세상들이 ‘미국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정말 당연하게도 미국에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국채를 인수해주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될 테고 그럼 자연히 달러는 20세기 초반 파운드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존의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주1) 이에 반해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얼마 전에 새로운 대손충당금 운용기준을 저축은행에 올 상반기에 적용시키려 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행을 미뤘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게 되면 부동산PF로 부실해진 저축은행 몇 개가 다치게 될 것이라는 추측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주2) 물론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아 경기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가까운 상황이 되면 그도 별무소용이지만 말이다

(주3) 물론 중국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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