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소유」와 「화폐관용」은 그 초기 단계에 있어서 위상에 따르는 특권이자 귀족 계층의 생활양식에 속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화폐의 사용범위」가 이러한 최초의 사용자들의 범위를 넘어 확산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확산은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여 하류 계층들이 「문화적 재화」를 유용하는, 이미 잘 알려진 과정에 따라 발생한다. [중략] 사회에서의 귀족 계층화가 소멸되고 사회가 경제적 「권력의 소유」에 기반한 사회로 바뀌어감에 따라, 화폐는 더 많은 사용자층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확산된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가지게 된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28]
인용한 책의 전반적 내용의 큰 틀이 이 문구에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옮겨 적어보았다. 요컨대 화폐는 처음에 지배계급이 일종의 “화폐관용”을 베풀기 위해 비축하고 있던 자산인데 물질적 재화의 비축품을 현재의 개인적 필요 수준 이상으로 쌓아놓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의 특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권의 상징이었던 화폐를 피지배계급이 마치 지배계급의 문화를 흉내 내듯이 화폐의 사용을 흉내 내면서 사용자층이 넓어졌고 마침내 화폐에게 교환수단 등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By Clemson from San Francisco, USA – AMEX Black Card, CC BY 2.0, Link
어찌 보면 현대문명의 실질적 화폐인 신용카드도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에드워드 벨라미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묘사한 1887년 작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에서 그 기초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던 신용카드는 초기에는 백화점 고객이나 비행기 승객이라는 당시의 특권층을 위한 지불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일반화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초기의 화폐처럼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는 대중사회의 대량소비 패턴이 그대로 반복된 셈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카드 회사들은 대중화된 신용카드를 다시 세분화하여 상류층의 고객을 위한 별도의 카드를 만들어서 또 다시 이 현대의 화폐를 계급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멕스의 블랙카드는 아멕스 플래티넘 고객 중 최소 수십만 달러 이상 사용한 이들 중 심사를 통하여 발급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신용카드라는 화폐는 다시 초기 형태의 화폐처럼 소유 자체가 계급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역사 속의 장신구는 그렇게 때로 그 본질의 발현을 반복하고 있다.
로마 황제들은 금화와 은화의 주조에 대한 권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고, 원로원은 동화의 주조권을 가졌다. 라움에 따르면, 이러한 분권적 주화 주조권은 “사회적 위계의 표현 및 수단”이었다. 주화의 용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적용된다. 보다 가치가 높은 주화는 귀족들과 혹은 귀족들 간에 거래할 때만 사용된다.[같은 책,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