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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할인점 강제휴무에 관한 단상

운전면허증을 그동안 쭉 미루다 올해 땄다.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세상 살다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느지막이 따게 됐다. 지난 주말 운전연습을 하러 도와줄 친구와 함께 차를 몰고 나갔다. 처음에 좀 버벅거리니까 친구가 바짝 긴장을 하더니 내가 어느 정도 하자 이내 안심하고 초보치고는 잘 한다고 칭찬해줬다. 쫄기는~

친구는 차를 최근에 처분했다. 아이의 학교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등 이러저러한 이유에서였다. 다만 쇼핑에는 좀 불편했을 텐데 차 몰고 나온 김에 가자며 내 차에 친구 가족을 태우고 양재에 있는 코스트코에 갔다. 나도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차가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날은 의외로 차가 적어 쇼핑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쇼핑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소위 지역상권 보호를 위한 대형할인점 강제휴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스트코 같은 경우는 일일매출액이 엄청나서 휴무를 하지 않을 경우 물어야 하는 벌금을 물고도 충분히 남는지라 문을 닫지 않는 곳으로 벌써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 유명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매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코스트코가 쉬면 재래시장에 가겠느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여기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기 때문에 그러기는 쉽지 않을 거라 대답했다. 또한 주차 때문에 친구가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차로 와서 바로 매장으로 갈 수 있고, 카트에 물건을 싣고 집으로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재래시장은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란 점도 큰 차이다.

석사논문을 쓸 때 대규모 소매점의 입지 전략에 대해 쓰려고 했었는데 그 당시엔 미국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그런 소매점이 국내에선 가뭄에 콩 나듯 있는지라 결국 논문이 지리멸렬해져버린 아픈 추억이 있다. 시대적 상황이 이제는 바뀌었다. 사람들은 차를 가지고 있고 외곽으로 나가서 창고형 매장에서 쇼핑하는 패턴에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가서 쇼핑할 수 있는 곳, 매장 안에서 표준화된 물건을 카트 등으로 편리하게 담을 수 있는 곳, 또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코스트코 같은 매장은 그런 편리함과 문화적 소비심리를 충족시킨다. 재래시장에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둘 간에 서로 대체재가 아닌 것이다.

제조업도 그렇지만 소매유통업에서도 집적과 대규모화는 ‘규모의 경제’라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다. 우리 소매유통체계가 여태 그러지 못한 이유는 공간적 개발과 자동차 보급의 부진 등으로 인해서였고, 이제 그런 배경이 갖춰진 상황에서 우리 소매 패턴은 빠른 속도로 미국화되고 있다. 큰 차로 큰 매장에 가, 많이 사와서 큰 냉장고에 저장한다.

1888년 발표되어 세계 최초의 SF소설로 평가받는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에서 작가는 일찍이 이런 장점을 간파하고, 혁신적으로 대형할인점과 신용카드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표준화, 대형화, 일관화 등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작가는 이런 경제를 실현한 사회는 사회주의 경제일 것이라 예언했다.

한편, 경복궁 근처의 통인시장은 돈을 내고 도시락 용기를 받아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반찬을 모아 자기만의 도시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나름의 생존전략을 찾고 있는 것이다. ‘통큰’ 치킨과 같은 전혀 통 크지 않은 대형매장의 꼼수에 대응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다면 뭔가 스토리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혁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소매유통업계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재래시장은 대형할인점, 동네 구멍가게는 편의점이 잠식하고 있다. 소비패턴은 어느새 이에 익숙해져 있고 자영업자는 대형매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싸움에 경향성이 존재하는데 단순히 하루 쉬게 하는 개혁으로 그 경향성을 되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불카드의 새로운 실험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오. 셀 수 없이 많은 상이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계와 편의를 위해 필요한 많은 물건을 생산했을 때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공급하기 위해 개인들 사이에 끊임없는 교환이 필요하지요. 이런 교환이 거래를 만들고 그 매개체로서 화폐는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국가가 모든 상품의 유일한 생산자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개인들 사이의 교환이 필요 없어졌소. 모든 것은 한 곳에서 구할 수 있고, 그 밖에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국영 창고에서 직접 분배하는 제도가 상거래를 대신했고 이런 까닭에 화폐는 필요 없어진 것이오.”
“이러한 상품 분배는 어떤 방식으로 관리됩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요.”리트 박사가 대답했다. “국가의 연간 생산 범위에서 개인의 몫에 해당하는 신용이 매해 초에 공공 장부 형태로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고 있소. 그러면 그 사람에게 발급된 신용카드(credit card)로 모든 동네에 있는 공공 창고에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구입할 수 있지요. 당신도 곧 알게 될 이 제도는 개인과 소비자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사업상 거래의 필요성도 완전히 없애버렸소. 아마도 당신은 신용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을 거요.”[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p 93~94]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에는 위대한 통찰력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된 2000년의 미래세계를 그려 최초의 SF소설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작품 역시 그러한데, 작품이 발표된 1888년에는 싹조차 없었던 신용카드와 – 개념상으로는 직불카드(debit card)에 더 가까운 개념이지만 – 대형할인점을 근사하게 예언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물론 뒤에 살펴보겠지만 구체적인 사용방법 상으로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차이라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 체제인 반면에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상은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일 것이다.

벨러미의 구상은 사적소유와 개인들 간의 교환이 사라져 화폐의 축장기능과 교환기능이 필요 없게 되자 자연히 화폐가 사라지고, 대신 국가라는 단일한 공급자로부터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카드가 화폐의 결제기능을 대신하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현대 자본주의에서 발전해온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와 같은 지불카드(charge card)는 1920년대 특정업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멤버십 카드로 시작하여 다이너스클럽이 여러 소매점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내놓으면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공급자를 단일화한 것이 아니라 지불카드를 단일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은 지불카드가 마냥 단일화되어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메리카익스프레스, 마스터카드 등 몇몇 거대 카드회사가 시장의 강자로 등장하였지만 이후에도 수많은 카드발급회사가 저마다의 지불카드를 내놓았고, 그래서 자본주의의 시민은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디자인은 다양한 지불카드를 여러 개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1인당 신용카드 발급수는 4.64 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화폐가 사라졌기 때문에 은행도 사라지리라는 벨러미의 예언과 달리 신용카드는 돈까지 빌려준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현재 가구당 약 1만6천 달러 수준의 신용카드 부채를 지고 있다 한다.

이렇듯 카드가 화폐의 효용이 사라진 곳에서의 결제기능을 담당하리라는 예언자의 바람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지불카드는 오히려 소지하기 부담스러운 화폐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동시에 금융의 기능까지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카드는 체제의 한 축으로 체제를 보완하는 한편으로 체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사례는 가깝게 김대중 정부에서의 이른바 “카드 대란”을 들 수 있다. 신용사회에서 신용을 바탕으로 발급되어야 하는 신용카드가 무자격자에게 발급이 남발되면서 연체가 급증하며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종내에는 여러 카드회사가 문을 닫는 신용위기로까지 이어졌던 사건이다.

한편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베네수엘라에서는 이와는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9월 1일 “좋은 생활 카드”라 칭한 지불카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이 카드는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에서 채소 등 생필품을 “합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카드다. 지불계좌는 국영은행과 연계된 공동체은행에 개설한다. 사용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멤버십 카드를 닮았다. 차베스는 이 카드가 “소비지상주의가 아닌 필요에 의한 소비”를 독려하는데 쓰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판자들은 이 카드가 쿠바가 빈곤한 경제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배급카드의 베네수엘라 판에 불과하며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공산주의적 야망”일 뿐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사실 이 카드는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석유수출을 통한 경제부흥을 꾀했던 이 나라에서 유가하락 등 경제여건이 그리 녹록치 않게 되자 물가는 치솟았고 차베스 정부는 이런 상황이 이윤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사적자본의 매점매석에 의한 것이라 몰아붙였다. 그리고 급기야 “매점매석하지 않는” 국가가 공급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지불카드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런 점은 시장가격 그대로 값을 지불하는 자본주의에서의 카드와는 다르다. 문제는 과연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이 차베스 정부가 주장하는 “합당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지의 여부겠지만 말이다.

현재도 베네수엘라에서는 자본주의식 슈퍼마켓이 앞서 언급한 슈퍼마켓과 공존하고 있다. 이른바 “식량 주권” 확보를 목표로 하는 국영 또는 지역공동체 슈퍼마켓은 물건을 다른 곳보다 싼 값에 공급하고는 있지만 물품이 딸리고 겉보기도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부자들은 자본주의식 슈퍼마켓을 선호한다. 인플레이션에 무관하게 합당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생활 카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서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차베스 정부는 쿠바를 흉내 내 도시근교 농업을 활성화시켜 공급을 원활하게 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베네수엘라 식량 사정에 관한 뉴스

요컨대 베네수엘라가 추진하고 있는 지불카드는 여태의 카드보다는 벨러미의 개념에 더 접근한 카드라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공급자가 국가로 단일화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국가가 공급자로 나섰으니 만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카드는 지역민의 생산적 활동과 노동의 성과를 지역 외부로 뺏기지 않고 지역 내에 보존, 순환시킴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지역화폐 운동의 국가주의 버전이랄 수도 있다. 다만 도시근교농업, 공동체은행, 지역공동체 운동 등 보다 광범위한 사회계획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소비자 위주의 지역화폐 운동보다는 보다 확대된 형태이다.

서로 대조적인 길을 걸으려는 두 체제에서의 이러한 지불카드 실험은 특정한 제도나 도구가 어떠한 지향점을 갖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불카드가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기보다는 소비시장의 확대와 표준화, 궁극적으로 대량소비를 독려한 반면 베네수엘라의 지불카드는 “소비지상주의”적인 부정적 측면을 지양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체제를 보조하기보다는 기존 체제를 강화하면서, 예언자의 바람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지불카드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엑슨 회장이었던 크리프튼 가빈 Clifton C. Garvin 이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한다.

“미국인에게는 우스운 면이 있다. 그들은 대규모, 규모의 경제성, 대량생산 등의 성과를 숭배하면서도, 크고 강력한 힘을 가진 것 자체는 싫어한다. 석유산업은 그들 눈에 가장 크고 힘이 센 산업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법무부는 스탠다드오일 트러스트가 독점을 통해 표준화와 효율화를 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점이 더 큰 폐해를 가져온다고 판단하고 여러 회사로 조각내버렸으니 말이다. 또한 2차 대전이후 중동에서 석유가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석유 메이저들이 산유국과 이익분배에 대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미국 정부는 국익의 도모와 담합의 저지라는 모순된 정책을 시행할 정도로 독점과 담합에 대해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보여 왔다.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독점을 거부한 반면,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의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Looking Backward:2000-1887)’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사회주의 세계는 흥미롭게도 바로 이 독점자본주의가 독점사회주의로 전화된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레닌 Vladimir Il’ich Lenin 의 글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레닌이 독점자본주의를 자본주의 또는 제국주의가 사멸해가는 과정에서의 마지막 형태라고 정의한 시대적 패러다임과 유사하다.

“이들 기업연합, 기업협동(pools), 기업합동(trusts) 등 그 명칭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들이 가격을 결정하고 연합체 자체가 거대하지는 경우가 아니면 모든 경쟁을 분쇄시켰소. 그런 다음에 거대해진 합동의 결과 투쟁이 뒤를 이었던 것이오. [중략] 그리고 새로운 체제가 구체제를 대신한 이래 세계의 부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증대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요. [중략] 일군의 무책임한 주식회사와 기업연합에 의해 경영되던 것을 멈추고, 인민을 대표하는 유일한 기업연합에 위탁되어 공동 이익을 위한 공동소유로 운영되기에 이르렀지요.”[pp68~70]

2000년의 사회주의 미국의 시민인 리트 Leete 박사가 113년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난 부르주아 출신의 줄리언 웨스트 Julian West 에게 설명한 체제전환의 짧은 역사다. 비록 세부묘사에 있어서는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그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압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장면이다. 즉, 독점이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인민은 그 독점업체를 공동소유의 기업으로 전환시킨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자본주의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볼 때 독점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독점은 건전한 중소기업의 육성을 저해하고 독점가격을 형성하여 시장의 왜곡을 불러오곤 했다. 또한 관료화 및 보수화, 심지어 범죄화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소설의 내용이 짧기에 이런 동전의 이면까지 다루기는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야 할 것 같다. 요컨대 자본주의 그 자체가 대량생산의 이점을 가장 잘 설명해온 체제이고 독점이 그 이점을 극대화해주는 측면이 있다는 정도만 언급하기로 하자.

Looking Backward.jpg
Looking Backward” by Edward Bellamy (writer)
Houghton Mifflin (publisher) – Scan from the original boo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88년 초판이 발표된 이 소설은 시간을 뛰어넘은 한 남자가 겪는 사상적 혼란과 문명충격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상과학 소설의 효시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동시에,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은 두터운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냐면 주요 독자층들은 산업국유화론자 클럽을 조직하고 인민당의 결성과 강령 채택에 적극 참여하여, 소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실현하고자 할 정도였다. 미국의 대표적 사회주의 운동가 유진 뎁스 Eugene V. Debs 역시 이 소설에 많은 감화를 받았다 한다.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사회적 함의가 너무 크기에 다소 딱딱한 평이 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은데, 무엇보다 이 소설의 미덕은 공상과학소설이 지녀야할 참신함과 기발함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의 구입 동기는 소설에 그 당시 등장하지도 않은 신용카드(credit card)의 개념과 더불어 대형소매점의 개념이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이다. 과연 그 묘사는 현재의 신용카드나 대형소매점의 개념과 거의 일치할 만큼 생생했다.(물론 그것을 사용하는 경제체제는 다르다) 더불어 소설이 당연히 지녀야 할 극에 대한묘사도 짱짱하다.

물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09년은 에드워드 벨러미가 예언했던, 또는 바랐던 것처럼 사회주의 세상은 아니다.(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세상은 여전히 그가 야만적이라고 비판하였던 계급사회이고 국가와 산업은 파편화(?!)되어 있다. 더군다나 금융자본주의의 내폭으로 말미암아 모순은 심화되고 있다. 2009년 혼란스러운 자본주의 세상에 2000년 사회주의 세상을 그린 미래소설을 읽는 상황을 작가가 목격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약간 궁금하다.

전화(telephone)

“이제 오늘의 설교를 듣는 것과 관련해, 만일 그러길 원한다면, 교회에 가도 되고 아니면 그냥 집에 있어도 되오.”
“내가 집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까?”
“단지 우리와 함께 적당한 시간에 우리 집에 있는 음악실에 가서 편안한 의자를 고르면 되오. 아직도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의 설교는 공중 시설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 연주회를 듣는 것처럼 가입자들의 집과 전선으로 연결된, 음향 시설이 갖추어진 방으로 전달되지요. 만약 당신이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기꺼이 같이 가겠지만, 나는 당신이 어디에 가든 집에서보다 더 훌륭한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소. 신문을 보니 오늘 아침에 바턴(Barton) 목사가 설교하기로 되어 있더군요. 그분은 전화(telephone)로만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의 수신자가 종종 15만 명에 이르기도 하오.”[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 182]

지난번에도 언급했다시피 이 소설은 1888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그런데 이글에 보면 “전화(telephone)”라 불리는 장치는 – 그 단어가 이제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소리(phone)를 원거리(tele)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 오늘 날 우리가 라디오(radio)라 부르는 그 장치의 원리와 거의 근사하게 맞아떨어진다. 또한 신문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는 발상도 오늘날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떠한 메시지를 먼 곳으로 전송시킨다는 발상은 실제로는 1901년 마르코니가 무선진신을 이용하여 대서양 건너로 무선신호를 보내면서 실현되었고, 위와 같은 브로드캐스팅 개념으로 라디오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이후부터였다.

신용카드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오. 셀 수 없이 많은 상이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이 사람들의 생계와 편의를 위해 필요한 많은 물건을 생산했을 때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공급하기 위해 개인들 사이에 끊임없는 교환이 필요하지요. 이런 교환이 거래를 만들고 그 매개체로서 화폐는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국가가 모든 상품의 유일한 생산자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개인들 사이의 교환이 필요 없어졌소. 모든 것은 한 곳에서 구할 수 있고, 그 밖에 다른 곳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국영 창고에서 직접 분배하는 제도가 상거래를 대신했고 이런 까닭에 화폐는 필요 없어진 것이오.”
“이러한 상품 분배는 어떤 방식으로 관리됩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요.”리트 박사가 대답했다. “국가의 연간 생산 범위에서 개인의 몫에 해당하는 신용이 매해 초에 공공 장부 형태로 모든 시민에게 주어지고 있소. 그러면 그 사람에게 발급된 신용 카드(credit card)로 모든 동네에 있는 공공 창고에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지 구입할 수 있지요. 당신도 곧 알게 될 이 제도는 개인과 소비자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사업상 거래의 필요성도 완전히 없애버렸소. 아마도 당신은 신용 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을 거요.”[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 에드워드 벨러미 Edward Bellamy 지음, 손세호 옮김, 지만지 고전천줄, 2008년, pp 93~94]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였던 에드워드 벨러미가 1888년 내놓은 소설 ‘뒤를 돌아보면서:2000-1887(Looking Backward:2000-1887)’에서 주인공 줄리안 웨스트와 리트 박사가 주고받는 대화다. 보스턴에 살던 줄리안 웨스트는 1887년 5월 30일 잠들었다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2000년 9월 10일 깨어난 자본가 계급의 젊은이다. 그가 깨어난 2000년의 보스턴, 나아가 전 세계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어 있었고 소설은 이러한 세계에 대해 그를 돌봐주는 리트 박사가 설명해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위의 신용 카드에 대한 묘사를 보면 비록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 카드보다는 직불 카드의 개념에 가깝긴 하지만, 마치 신용 카드업계가 이 소설을 보고 상품화에 착안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논리가 치밀하다. 단, 차이는 벨러미 소설에서의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폐지로 말미암은 화폐의 완전한 대체물이고 현재 우리가 쓰는 신용 카드, 또는 직불 카드는 화폐 사용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보조물이라는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