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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Bühnenbildentwurf Rheingold.JPG
By Viktor Angerer – postcard, Public Domain, Link

리하르트 바그너의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니벨룽의 반지’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있다. 10시간이 훌쩍 넘는 대작인지라 작년부터인가 ‘한번 완주해봐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있기는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 긴 연휴 기간이라 일단 영상을 틀어놓고 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엄청난 걸작이라고는 하는데 저 유명한 ‘발퀴레 동기’ 연주가 흐르기 전까지는 그 노래가 그 노래같고 그 연주가 그 연주같아서 도닦는 기분으로 계속 보고 있고 현재는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보탄이 그의 명령을 거스른 딸 브룬힐데를 힐난하는 부분까지 감상하였다.(이제 한 4분의 1 온듯)

다만 스토리의 밑바탕은 북구신화인지라 극의 전개는 흥미롭다. 특히 절대반지가 최고의 권력을 상징하는 상징이라는 설정은 이미 많은 이들이 톨킨이 쓴 ‘반지의 전쟁’ 등으로 익숙한 설정이다. 지금 읽고 있는 빌헬름 게를로프의 ‘화폐 계급 사회’라는 책에서 상류층이 자신들만의 화폐로 사용하기 위해 금을 사용하고 이를 반지로 만들어두었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바로 인간 스스로가 절대반지를 꿈꾸며 그러한 ‘사회/경제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화를 통해 이야깃거리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현대의 절대반지는 뭘까? 금? 달러? 비트코인?

전에 당근에서 북구신화를 사놓고 어딘가에 팽겨쳐 놓았는데 찾아서 한번 진지하게 읽어봐야겠다.

상류층의 행위 양태를 모방하여 확산한 화폐

「화폐소유」와 「화폐관용」은 그 초기 단계에 있어서 위상에 따르는 특권이자 귀족 계층의 생활양식에 속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화폐의 사용범위」가 이러한 최초의 사용자들의 범위를 넘어 확산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확산은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여 하류 계층들이 「문화적 재화」를 유용하는, 이미 잘 알려진 과정에 따라 발생한다. [중략] 사회에서의 귀족 계층화가 소멸되고 사회가 경제적 「권력의 소유」에 기반한 사회로 바뀌어감에 따라, 화폐는 더 많은 사용자층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확산된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가지게 된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28]

인용한 책의 전반적 내용의 큰 틀이 이 문구에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옮겨 적어보았다. 요컨대 화폐는 처음에 지배계급이 일종의 “화폐관용”을 베풀기 위해 비축하고 있던 자산인데 물질적 재화의 비축품을 현재의 개인적 필요 수준 이상으로 쌓아놓는 것은 바로 지배계급의 특권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권의 상징이었던 화폐를 피지배계급이 마치 지배계급의 문화를 흉내 내듯이 화폐의 사용을 흉내 내면서 사용자층이 넓어졌고 마침내 화폐에게 교환수단 등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됐다는 것이다.

American Express Centurion Card front.jpg
By Clemson from San Francisco, USA – AMEX Black Card, CC BY 2.0, Link

어찌 보면 현대문명의 실질적 화폐인 신용카드도 비슷한 패턴을 취하고 있다. 에드워드 벨라미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묘사한 1887년 작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에서 그 기초적인 개념이 제시되었던 신용카드는 초기에는 백화점 고객이나 비행기 승객이라는 당시의 특권층을 위한 지불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일반화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초기의 화폐처럼 상류층의 행위양태를 모방하는 대중사회의 대량소비 패턴이 그대로 반복된 셈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카드 회사들은 대중화된 신용카드를 다시 세분화하여 상류층의 고객을 위한 별도의 카드를 만들어서 또 다시 이 현대의 화폐를 계급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멕스의 블랙카드는 아멕스 플래티넘 고객 중 최소 수십만 달러 이상 사용한 이들 중 심사를 통하여 발급한다고 한다. 이러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신용카드라는 화폐는 다시 초기 형태의 화폐처럼 소유 자체가 계급의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역사 속의 장신구는 그렇게 때로 그 본질의 발현을 반복하고 있다.

로마 황제들은 금화와 은화의 주조에 대한 권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고, 원로원은 동화의 주조권을 가졌다. 라움에 따르면, 이러한 분권적 주화 주조권은 “사회적 위계의 표현 및 수단”이었다. 주화의 용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적용된다. 보다 가치가 높은 주화는 귀족들과 혹은 귀족들 간에 거래할 때만 사용된다.[같은 책, p129]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

영혼 깊숙이 뿌리내린 원초적 힘에서 비롯된 『가득 추구』(Erwerbssuch)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합리적 인간에게만 내재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토란이나 돗자리, 조개껍질 고리(디와라 Diwara)나 상아, 쇠괭이나 마닐라(Manillas), 동판이나 모직 담요 등을 축적하고자 하였던 원시인이 이미 탐닉하고 그에 지배되었던 것과 동일한 『열정』이다. 인간의 『인정에의 욕구』는 스스로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구하는 마음』(貪求心)에 불을 지피며 자신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을 바로 『소유권』과 그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doxomania)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치료약을 찾게 되었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10]

화폐가 탄생한 기원과 그 발달 과정을 다룬 책에서, 인간 개인의 탐구심(貪求心)이 화폐를 통해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짧게 설명해놓은 필력이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어봤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s누군가 소유한 물건은 대개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특정한 상품명으로 판매되기에 그 소유자의 인정욕구는 그 브랜드를 드러내며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꼭 고급소재의 옷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나 샤넬 옷 한 벌 샀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같이 어울리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 진가(眞價)를 알아주고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게 화폐일 것이다. 샤넬의 진가는 몰라도 화폐의 진가를 모르는 이는 훨씬 적을 것이다. 바보라 하더라고 1만 달러가 1천 달러보다 더 값지다는 것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