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

영혼 깊숙이 뿌리내린 원초적 힘에서 비롯된 『가득 추구』(Erwerbssuch)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합리적 인간에게만 내재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토란이나 돗자리, 조개껍질 고리(디와라 Diwara)나 상아, 쇠괭이나 마닐라(Manillas), 동판이나 모직 담요 등을 축적하고자 하였던 원시인이 이미 탐닉하고 그에 지배되었던 것과 동일한 『열정』이다. 인간의 『인정에의 욕구』는 스스로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구하는 마음』(貪求心)에 불을 지피며 자신을 충족시키는 중요한 수단을 바로 『소유권』과 그 『소유권』을 사회화하는 ‘화폐’라는 대상에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doxomania)은 스스로에게 필요한 치료약을 찾게 되었다.[화폐 계급 사회, 빌헬름 게를로프 저, 현동균 번역 역주 해제, 진인진, 2024년, p110]

화폐가 탄생한 기원과 그 발달 과정을 다룬 책에서, 인간 개인의 탐구심(貪求心)이 화폐를 통해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짧게 설명해놓은 필력이 인상적이어서 옮겨 적어봤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s누군가 소유한 물건은 대개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특정한 상품명으로 판매되기에 그 소유자의 인정욕구는 그 브랜드를 드러내며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꼭 고급소재의 옷이라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나 샤넬 옷 한 벌 샀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같이 어울리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 진가(眞價)를 알아주고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의 『평판에의 집착』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게 화폐일 것이다. 샤넬의 진가는 몰라도 화폐의 진가를 모르는 이는 훨씬 적을 것이다. 바보라 하더라고 1만 달러가 1천 달러보다 더 값지다는 것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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