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패전론, 전후 일본의 핵심” 독후감

일본의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聡)의 전후의 기만적인 일본 정치 체제에 관한 비판적인 저서 “영속패전론, 전후 일본의 핵심(永續敗戰論 戰後日本の核心)”을 읽었다. 영속패전론이라는 낯선 용어는 얼핏 러시아의 혁명가였던 레온 트로츠키의 유명한 혁명이론인 “영구혁명론” 혹은 “연속혁명론”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혁명을 영구적으로 행하자는 것이라면 뭔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데 패전을 영구적으로 반복하자는 것은(혹은 반복하게 된다는 것) 선뜻 이해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조악하게 요약하자면 그 용어는 […]

요즘 읽고 있는 책

두서없이 몇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수전 손택 /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은 워낙 글솜씨가 현란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약간의 열등감도 느끼게 되는 그런 사진을 주제로 한 에세이 모음이다. 작가가 사진에 관한 프로페셔널이 아님에도 사진에 관한 철학적이고 기술적인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좋은 작가와 작품도 소개해주고 있어서 서양의 사진사에 대해 표피적으로나마 학습할 수 있는 좋은 수필이다. Michael […]

“법복과 털외투는 악행을 감춰주지”

By Edwin Austin Abbey – Metropolitan Museum of Art, online database: entry 10049, Public Domain, Link 넝마 옷 사이로 보이는 악행은 크게 보이는 법이지만, 법복과 털외투는 그 모든 걸 감춰주지. 죄에 황금 칠을 하면 강력한 정의의 창이라도 상처 하나 못 입히고 부러지는 거다. 누더기로 무장하면, 난쟁이의 지푸라기라도 뚫을 수 있다.[리어 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김태원 옮김, […]

올해 읽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들

올해의 책읽기 중에 가장 모험적인 시도였다면 연초에 시도한 ‘롤리타 원서로 읽기’였다. 소설의 원작자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국적이었지만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난 천재인지라 여러 나라 언어에 능숙하였으며, 이 소설을 쓸 때 그는 모국어인 러시아어대신에 영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네이티브가 쓴 영어소설이 아니라고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물론 영어실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나보코프가 […]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 斷想

소위 “미래학자”들의 저서는 별로 읽지 않는 편이다.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선입견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암튼 최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을 일부분 읽었다. 읽었던 서문과 일부 챕터를 요약하자면 기술의 상상을 초월한 발전으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지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최적의 복지”가 이루어지면 다가올 미래는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ons)”로 발전할 것이라는 긍정적 […]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경제사범에 대한 인식

카센티노의 푸른 언덕에서 아르노 강으로 서늘하고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실개천들이 언제나 눈앞에 속절없이 아른거립니다.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일이 얼굴 살을 뜯어내는 병보다 나를 더 애타게 목을 태우고 있소. 나를 괴롭히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정의가 하필 내가 죄를 지은 곳을 떠올리게 하며 더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구려. 거기는 로메나, 내가 세례자의 얼굴로 주화를 찍어 위조화폐를 만들던 곳이오. 나는 […]

올해의 책

슬슬 한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오늘 ‘올해의 뫄뫄’ 시리즈를 써볼까 하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다보니 올해는 개인적으로 나름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참 많은 일이 벌어졌던 – 그리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 해이기도 하다. 많은 사건이 비극이었지만, 그 와중에 그러한 비극을 계기로 화해와 상처 회복의 단초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한 양면성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

올해의 즐거움 : 冊편

한해도 어느덧 일주일여를 남겨놓고 있다. 작년 이맘때에는 이스탄불에 있었기에 한국의 연말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올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연말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거리는 연말답지 않게 한산하다. 뭔가 나라 전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의기소침해 있는 듯하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그럴만한 아픈 일들이 많았기에 의아하기보다는 나 역시 조금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한에는 인간은 언제나 […]

한 경제지의 과욕은 어떻게 왜곡을 촉발시키나

한국경제신문이 사고를 친 것 같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의 저서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를 번역 출간하는 과정에서 그의 저서를 고의 또는 부주의하게 오역하였다는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몇몇 누리꾼들의 문제제기로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몇몇 이들이 디턴 교수 본인에게도 이메일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친절한 디턴 교수는 […]

소설을 읽다가 샘터 주인인 척 했던 어떤 인간이 떠오르다

“아니, 내가 뭐, 버는 게 있어서? 빨래라야 그저 여름 한철이지, 그것두 이제 장마나 지면 다 쓸려내려가구…. 흥! 그야말루 오 전 십 전 빨래 값 받어가지구 해마다 세금 바치려면 쩔쩔매는 판인데….” 그리고 그는 잠깐 말을 끊었으나, 칠성아범이, “허지만….” 하고, 또 이의를 제출하려는 기색에, 그는 즉시 말을 이어, “더구나, 소문을 들으면, 뭐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