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가 뭐, 버는 게 있어서? 빨래라야 그저 여름 한철이지, 그것두 이제 장마나 지면 다 쓸려내려가구…. 흥! 그야말루 오 전 십 전 빨래 값 받어가지구 해마다 세금 바치려면 쩔쩔매는 판인데….” 그리고 그는 잠깐 말을 끊었으나, 칠성아범이, “허지만….” 하고, 또 이의를 제출하려는 기색에, 그는 즉시 말을 이어, “더구나, 소문을 들으면, 뭐 청계천을 덮어버린단 말이 있지 않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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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사고
당은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원래 주장했던 모든 원칙들을 비방하고 배척했는데, 바로 그런 이름을 ‘사회주의’란 이름으로 행했다. [중략] 당은 또 중요 행정기관마저 뻔뻔스럽게 사실과 정반대인 뜻을 지닌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었다. 평화부는 전쟁을, 진리부는 거짓말을, 애정부는 고문을, 풍요부는 굶주림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중략] 신중한 ‘이중사고’에서 나온 행위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이런 모순들을 […]
‘1984’가 말하는 전쟁의 본질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 공장은 소비 물자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1984, 조지 오웰 씀, […]
양(量)은 질(質)을 바꾸는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것일까?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1984, 조지 오웰, 정희성 옮김, 민음사, 2003년, p100] 소설 ‘1984년’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쓰가 당(黨)의 눈길을 피해 몰래 쓰고 있는 일기에 적은 말이다.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이 가게에 나온 냄비를 사기 위해서는 피터지게 싸우면서 정작 체제 전복을 위해선 함성을 지르지 않는 […]
과거는 현재가 규정한다
바로 얼마 전 2월에 풍요부는 1984년 중에는 초콜릿 배급량을 줄이지 않겠다고 약속(공식 용어로는 이를 ‘절대 서약’이라고 한다.) 했었다. 그러나 윈스턴이 알고 있듯 실제로는 초콜릿 배급량이 이번 주말부터 30그램에서 20그램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처음에 약속했던 내용을 4월 언제쯤 배급량이 감소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바꿔놓기만 하면 되었다.[1984,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pp58~59]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
정보의 전파에 있어 판화가의 역할
승리를 거둔 전투나 왕의 대관식, 혹은 축제의 현장이나 발레 공연, 군주가 주관한 공연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판화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중략] 이제 그런 현장을 나가게 된 것은 화가가 아닌 판화가들이었다. 판화는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들은 오늘날의 사진가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가령 프랑스의 판화가인 […]
맨해튼 트랜스퍼 읽는 중
파란불. 시동이 걸리고 기어는 1단으로 들어간다. 차들은 서로 떨어져 유령 같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기다란 리본 모양으로 흘러간다. 콘크리트 공장의 검은 창문 사이로, 현란한 광고 간판들 사이로 노랗게 우뚝 솟은 대형 천막극장처럼 밤하늘 속으로 믿을 수 없이 치솟는 도시의 광채를 마주보며.[존 더스패서스 씀, 박경희 옮김, 맨해튼 트랜스퍼, 문학동네, 2012, pp307~308] 소설가 존 더스패서스가 1925년 발표한 […]
“몇 명의 사람이 감방에 실지로 갇혔나요? 제로.”
Matt Taibbi라는 작가가 “The Divide: American Injustice in the Age of the Wealth Gap,”이란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이 책에 대해 Democracy Now가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흥미로운 부분을 약간 해석해 보았다. 이 인터뷰를 읽어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 위기의 해소 과정에서 자행된 수많은 부조리는 정치적으로 […]
올해 읽은 중 인상적이었던 책들
올해가 아직 한 달 조금 넘게 남았지만 글 올리는 것도 뜸하고 해서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책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 : 경제 성장과 민주화, 그리고 미국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전문가인 그렉 브라진스키의 저서다. 저자 스스로도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독특한 시각을 […]
아무래도 가을엔 고전 스릴러에 빠져 지낼 것 같다
지난주는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Chandler)에 푹 빠져 있던 한주였다. 회사 도서관에서 그의 대표작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을 빌려 읽었는데, 책이 너무 낡아 너덜너덜한 탓에 정말 오랜만에 소설책을 돈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처음 읽는 그의 저서이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 감독의 동명 영화는 이미 본지라 전혀 낯설지는 않은 작품이었다. 술 한 잔 즐기기에도 피곤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