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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금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그것은(세금 : 역자 주) 아마 이번 10년 동안 오를 것이고 그 증분은 영속적일 것이다. 반세기 동안 미국의 세금은 미국 경제의 규모에 상대적으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 국내 총생산의 18% 수준. 그러나 18% 시대는 곧 막을 내릴 것이다.
They will probably go up in the coming decade, and the increase will be permanent. For a half-century, U.S. taxes have remained fairly constant relative to the size of the American economy – equal to about 18 percent of gross domestic product. But the 18 percent era has to end soon.
(중략)
지난 60년 중 어느 시기에 미국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했을까? 1950년대와 1960년대인데 한계세율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90%였다. 그리고 지난 세대의 어느 시기에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했을까? 1990년대 후반인데 빌 클린턴 대통령이 GDP의 약 20%의 세금을 거둬들였을 때이다.
When over the past 60 years did the American economy grow fastest? The 1950s and 1960s, when the top marginal tax rate was a now-unthinkable 90 percent. And when over the past generation did the economy grow fastest? The late 1990s, when President Bill Clinton briefly took U.S. taxes to 20 percent of the GDP.

U.S. taxes must ris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009. 2. 25

좀 알아본 결과 위 기사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자료들(1. 2.)에 따르면 미국 GDP에 대한 세금 비율은 대략 28% 수준이다. 글쓴 이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사한 26%~28% 수준이다.

하루 뒤

비밀댓글을 남겨주신 어느 분의 지적이다. 이 지적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덧붙인다. 집단지성이 내 블로그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퍽~*).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위의 기사에서는 연방정부의 소득세만을 얘기하고(앞에 US가 붙으면 연방정부라는 뜻이고 이런 논의에서는 늘 ‘소득세’만을 얘기합니다) 위키피디아 자료는 주가 걷는 소득세나 sales tax 등 모든 세수를 말하는 걸 겁니다.

반나절 뒤

댓글 의견에 대한 조금 다른 의견을 어떤 분이 편지로 주셔서 또 더 내용을 파악해보았다. 처음 헤럴드트리뷴에서 이야기한 GDP대비 18%는 댓글에서 지적해주셨듯이 연방의 세금이 맞는 것으로 판단된다.

Between 1986 and 1990 the Federal tax burden rose as a share of GDP from 17.5 to 18 percent.[출처 : 미재무부 홈페이지]

531:1

한 자료에 의하면 2004년 미국 회사의 CEO 보수와 종업원 평균 임금의 비율은 531:1에 이르렀는데 이는 영국의 25:1, 프랑스의 16:1, 독일의 11:1, 일본의 10:1 등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것이다. 미국 기업과 유럽기업 최고경영자 보수는 규모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면에서도 미국의 경우 스톡옵션의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차이를 가진다.1 2001년 기준으로 S&P 500 기업 CEO들의 보수에는 스톡옵션 비중이 66%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1990년에는 8%에 불과하였다.[이사회 운영원리와 법률적 책임, 김화진, 박영사, 2005년, pp72~73]

같은 책에 보면 구미에서 경영진 보수가 CEO의 전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상위원회(compensation committee)가 활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보상위원회가 경영진의 성공적인 기업경영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지급하게끔 추인하는 기능도 하였으나 역시 위의 인용에서의 상황을 보면 보상위원회가 보상에는 충실하되 견제에는 부실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에 비해 유럽은 왜 경영진의 보수가 미국보다 현저히 낮은가에 대한 힌트를 잠깐 주자면 독일 대기업의 경우 종업원들이 경영진의 보수를 결정하는 감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유럽기업들의 이런 관행도 점차 영미식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주주 자본주의가 크게 강화된 현대 자본주의 회사체제에서 경영자의 높은 보수, 특히 스톡옵션은 대리인으로서의 경영자가 어떻게 회사의 장기 비전이랄지 핵심역량 강화랄지 하는 중장기적 전략보다는 보다 단기적인 주주이익 극대화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은행들의 광란의 질주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다가온 경제공황,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올해 1월 23일 발행했던 글을 다시 갱신하여 발행한다. 내용은 고치지 않았다. 1년도 안 된 글인데 미숙한 논리가 곳곳에 보여서 부끄럽지만 전후 자본주의가 현재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 약사가 어느 정도 서술되어 있어 독자 분들께 참고하시라고 – 그러나 다 믿지는 마시라는 – 다시 올려놓는다. 어쨌든 주초부터 경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앞으로의 세상은 이전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과거 많은 진보적 학자들이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제3세계는 경제, 정치적으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제1세계로부터 착취를 당한다는 종속론적 입장을 취해왔었다. 실제로도 정치적으로 제3세계의 대다수 독재자들은 제1세계로부터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아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였고, 국내 산업을 제1세계에 대한 하급 생산기지로 수직계열화함으로써 자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수탈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놀랍게도 그 착취당하던 제3세계 국가들 중에서 꽤 여러 국가들이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같은 제1세계이긴 하지만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 등은 제1세계의 지도국가인 미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이 소련을 위시한 제2세계와의 체제경쟁에서의 체제강화 과정에서 의도된 것도 상당수 작용한 것도 사실이거니와 몇몇 성공 사례에 있어서는 개별 국가 특유의 노력과 다양한 역동성에 의해 빚어진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전후 비할 데 없는 절대빈곤에서 세계 11위 무역규모를 가진 나라로 성장하여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보인 국가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쨌든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물질문명은 실질적으로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로마를 정점으로 하고 이로부터 모든 생산력의 리비도가 뿜어져 나오는 일극체제였다 할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멸망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이(주1) 세계가 양극체제라고 말하여 왔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소련은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체제경쟁을 부르짖었을 뿐 애당초 사회주의 블록의 방어에도 힘겨운 경제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스포츠 경쟁, 우주선 만들기 경쟁 등에서나 힘겹게 양극체제를 유지하였을 뿐이었다.

따라서 현대적인 의미의 자본주의는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 석유를 대표로 하는 화석연료, 미국의 왕성한 상품소비력과 군사적 헤게모니 등을 특징으로 하는 경제체제이다.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으나 이들 특징 들은 어느 하나가 결여되면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여러 변수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들이 구현한 사회는 현란한 마천루, 쭉 뻗은 고속도로, 자가용 중심의 교통체제, 신용카드나 모기지 등 활발한 신용공급 등이다.(주2)

문제는 (제1세계에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러한 물질문명이 영속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가 언젠가 바닥날 게 빤한데도 자가용은 배기량이 커지고, 빚내서 집을 사고, 에어컨을 틀어댔다. 특히 미국의 소비력은 거의 공룡을 연상시킬 정도로 왕성했다. 전 세계 인구의 3~4%에 불과한 나라가 잡아먹는 석유가 전체 소비량의 1/4을 넘는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사실 이러한 미국인들의 폭식이 자본주의를 먹여 살렸다. 제3세계 인민들은 미국인이 돈을 써대야 떡고물이라도 얻어먹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여태 미국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펑펑 써 제켰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의 전 세계 상품의 1/4을 생산하는 생산대국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돈이 넘쳐흘렀다. 그러니 썼다. 점차 생산기지가 유럽과 아시아로 넘어가고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자 미국은 이제 돈장사에 나섰다. 팽창하는 세계경제에 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달러를 찍어낸 것이다. 그런데 달러 찍는 데는 돈이 거의 안 든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썼다. 그러다 달러가 너무 많이 발행되어 이제는 더 이상 금과 바꿔줄 수 없을 것 같으니 금환본위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제는 금융업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놀이에 나섰다. 각국의 진입장벽이 있어 돈놀이가 여의치 않자 금융세계화(주3)를 외쳐 진입장벽을 없애고 환투기, 주식투기로 돈을 거둬들였다. 그래서 또 썼다. 뭐 언제든 이런 저런 대책이 나와서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돈을 쓸 수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미국의 금융자본은 점차 경제적으로 양극화되어가는 자국에서의 소비력이 절대적으로 감소되는 추세를 막기 위해 자국민에게 신용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프라임 론, 서브프라임 론, 신용카드 론, 오토론, 스튜던트론, 기타 등등 론… 현재 가처분소득이 없는 노동자는 미래 예상수입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쓰는, 자멸적인 소비패턴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패턴이 지속적인 부의 증가에 기반 한 소비가 아닌 화폐증발, 신용공급에 의한 소비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미국이라는 집구석에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자기들끼리 종이돈 만들어 서로 빌려주고 쓰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미국 발 불황은 일시적인 경기후퇴(recession)라기보다는 경제공황(crisis)의 성격이 짙다. 어느 한 구석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의 전제조건을 다시 상기해보라. 달러는 거의 휴지조각이 되었고, 석유는 천정부지로 올라 떨어질 전망이 없고, 미군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지극히 경제비효율적인 전쟁을 치르느라 천문학적인 예산을 쓰고 있으며, 미국인들의 소비력은 바닥이 드러났다.

이 상황에서 중국과 인도 등의 신흥공업국가들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외쳐대는 소리가 “비동조화(decoupling)”라는 단어다. 단기적으로 이들은 신흥공업국들의 증시가 미국 증시의 폭락 장세와 따로 노는 듯이 보이는 현상을 금융교란의 대안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들 국가가 발달하면 미국의 소비력을 그들이 대체해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다. 요 며칠 새 중국과 인도의 살인적인 주식폭락으로 첫 번째 희망은 사라졌다. 더불어 이들 국가의 주요 교역국이 결국 미국이고 또 하나의 주요 교역국인 유럽이 미국 못지않게 서브프라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동조화”는 비과학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지난 몇 년간 수출선을 미국과 일본 위주에서 중국과 제3세계로 다변화시킨 덕에 2007년 수출은 호조를 이루었고 2008년에도 그럭저럭 수출신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역시 우리에게도 비동조화의 신화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증시는 예상보다 더 민감하게 세계증시와의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국내 부동산 시장은 한국판 서브프라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니 새 정부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어야 할 때일까.

한반도 대운하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부양? 영어몰입교육을 통한 국제적 경제인의 양성? 금산분리 철폐를 통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국가의 농업연구기능 포기? 일부 수긍이 가는 구석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오류를 답습하고 있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인위적인 소비부양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즉 한반도 남쪽이라는 경제권은 이제 수출을 통한 부의 창출로서만 유지되는 경제 시스템이 아닌 실질적인 소비력을 지닌 소비자에 의해 지탱되는 내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빚을 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번 돈으로 풍족하게 소비를 할 수 있을까. 지난번에 사르코지가 대안을 하나 제시해줬다. 기업과 주주와 노동자가 각각 기업이윤의 1/3씩 나눠가지면 된다. 쉽지 않은가. 성장과 분배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한동안 심각한 경기후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신용공황, 경제공황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들이 앞으로 귀중한 것으로 대접받게 될지도 모른다. 수출로 경제를 꾸려나가던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이런 면에서 매우 어려운 처지다. 그렇다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자유무역도 좋고 수출도 좋지만 결국 나라 안에서 경제의 주요기능이 발휘될 수 있는 자급자족 기능이 강화된 내수경제 체제를 –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주1) 공산주의로부터의 위협을 부르짖는 우익과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부르짖는 좌익 모두

(주2) 물론 여전히 제3세계 대부분은 오염된 하천과 열악한 주거, 그리고 쥐꼬리만한 소득이 주어졌을 뿐이다.

(주3) 그런 점에서 금융세계화는 실은 금융의 미국화라는 것이다. 헐리웃 영화가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다고 우리는 그것을 영화시장의 세계화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책임의 전형, 알란 그린스펀

지난 글에서 나도 그린스펀의 개념 없고 무책임한 발언에 한마디 한바 있는데 폴 크루그먼도 그린스펀의 몰염치에 질렸는지 최근 그에게 직격탄을 한 발 날렸다.

Greenspan: not a mensch(그린스펀 :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글에서 크루그먼은 자신의 부모님이 어릴 적 늘 mensch(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take responsibility for your actions)’ 의미였다고 전제했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는 그린스펀이 버블 이후 경기전망에 대해 지나치게 – 무책임할 정도로 – 낙관적이었으며, 이는 결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행위가 아니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지역경제가 상당할 정도의 투기적인 가격 불일치를 경험할 수도 있다. 미국 전체에서의 국가적인 심한 가격왜곡은 거의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 규모와 다양성(주1)을 고려하면 말이다.
Overall, while local economies may experience significant speculative price imbalances, a national severe price distortion seems most unlikely in the United States, given its size and diversity.[Remarks by Chairman Alan Greenspan The mortgage market and consumer debt At America’s Community Bankers Annual Convention, Washington, D.C., October 19, 2004]

크루그먼은 더 나아가 그린스펀이 WSJ 와의 인터뷰 에서 “가격이 2009년 이후까지 계속 떨어질 거라는(prices could continue to drift lower through 2009 and beyond)” 요지의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순되게도 그린스펀은 2006년에는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다고 발언했었기 때문이다.

이 하강세의 끝이 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항목인 새로운 모기지에 대한 신청이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I suspect that we are coming to the end of this downtrend, as applications for new mortgages, the most important series, have flattened out.[Greenspan: Housing market worst may be over, MSNBC, Oct. 9, 2006]

“미국의 집값은 2009년 첫 반기 쯤에 안정화되거나 바닥을 찍을 것 같다. 가격은 2009년 내내 떨어질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갈 수도 있다.”
“Home prices in the U.S. are likely to start to stabilize or touch bottom sometime in the first half of 2009. prices could continue to drift lower through 2009 and beyond.”[Greenspan Sees Bottom In Housing, Criticizes Bailout, Wall Street Journal, August 14, 2008]

확실히 크루그먼의 말대로 무책임한 발언이다.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위기가 지나갔느니, 심지어는 위기란 없느니 온갖 거짓을 늘어놓고 이제 와서는 가격하락이 2009년까지 갈 것이라는 둥, 프레디맥과 페니매에 대한 Fed의 처리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둥 훈장질이니 말이다. 거기에다 얼마 전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에 대해선 거의 안면몰수의 분위기다.(주2)

한편 요즘 인터넷에서 이른바 경제에 대한 Pundit 으로 통하고 있는 블로그인 Calculated Risk(주3) 는 크루그먼의 해당 글을 인용하면서 이미 자신이 지난 2006년 그린스펀의 헛소리를 까주었다고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배구에 비유하자면 크루그먼이 토스하고 Calculated Risk 가 스파이크를 매긴 셈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그린스펀이 모기지 신청이 ‘안정세로 접어들고(flattening out)’ 있다고 주장하던 기간 동안의 ‘MBA 구매지수(the MBA Purchase Index)’(주4)를 살펴보면 어디 한 군데도 ‘안정세로 접어들고(flattening out)’ 있는 구간을 볼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래 표를 보면 과연 그의 말이 맞다.

크게 보려면 클릭

재임 중에 그린스펀은 시장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신념대로 월스트리트에 대한 감독기능을 해체시켜 폭주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없애는 한편, 저금리 정책 등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시장의 버블을 키워놓았다. 그리고는 거품은 없다고, 가격변동 현상은 국지적이라고 떠들던 그가 이제 와서는 감 놔라 대추 놔라 훈장질을 해대고 있다. 훈장질도 잘하면 모르겠는데 이민자 늘려서 집 팔아야 한다는 자다 봉창 뜯는 소리나 하고 있다. 정말 크루그먼 말대로 무책임의 전형인 셈이다.

(주1) 이 다양성이란 그린스펀이 그 당시 신봉하고 있던 파생상품 시장에서의 증권화나 유동화의 자유도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2) 여하튼 지난 글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그의 이러한 안면몰수는 그가 인터뷰만 해주겠다고 하면 좋아서 침을 질질 흘리며 어떠한 비판도 없이 이를 기사화할 소위 ‘경제부’ 기자라는 족속들이 미국 주류언론에 계속 존재하는 한에는 적어도 2009년 혹은 그 이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주3) 미국의 경제위기를 맞아 미국의 블로그 계에서는 이른바 투자와 거시경제에 대한 여러 블로그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중 가장 권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블로가 가운데 하나다. 전직 투자은행의 임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필자와 다른 또 하나의 금융전문가가 운영하고 있다.

(주4) 미국의 ‘모기지 은행 협회(MBA : Mortgage Bankers Association)’가 모기지의 신청, 구매, 리파이낸싱 추이를 살펴 매주 발표하는 지수로 주택시장의 선행지수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요즘 미국경제 스케치

우리나라 경제도 죽을 맛인데 남의 나라 경제 살펴보게 되었느냐고 뭐라 할 분도 계시겠으나 역시 미국은 세계경제의 버팀목이니까 – 썩은 버팀목인지 든든한 버팀목인지는 모르겠으나 –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 생산자 물가상승이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높다고 하는데(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안 좋은 항목의 랭킹에서는 항상 멕시코 다음의 수위를 차지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역시 1991년 이래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즉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작년 7월 이후 5.6% 상승했다. 역시 원인은 유가와 식료품값의 폭등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살인적인(?) 물가상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미국인들의 소비행태가 달라지고 있다. ‘연방도로청(the Federal Highway Administration)’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승용차 주행거리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미 지난 11월부터 전년 동월 대비 주행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6월에는 휴가철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주행거리가 최대하락폭인 4.7%다. 놀라운 것이 전체적으로 주행거리가 지난 70년대의 석유위기 때의 그것보다 더 많이 줄었다고 한다.[관련기사]

이러다보니 실제로 연료소비도 많이 줄었다. 2007년 11월부터 줄어든 연료소비량은 전년 동 기간 대비 휘발유는 약 4억 갤런, 디젤은 약 3억 갤런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비감소 덕택으로 최근 석유선물 값이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사실 지난 8개월 동안 줄어든 수치니 아무리 국제원유선물가격이 후행지수라 하여도 – 근데 후행지수 맞나? ^^ – 내리려면 진작 내렸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선물투자세력들 빠져나가면서 댄 핑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와중에도 빛을 발한 곳이 있다. 바로 저가상품의 메카로 서민들의 든든한 친구(?) 월마트(Wal-Mart)다. 월마트는 2분기 순이익이 34억5천만 달러로 29억5천만 달러였던 전년도 2분기에 비해 순이익이 1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관련기사] 이러한 월마트의 탁월한 성적은 지갑이 얇아진 미국인들이 더더욱 저가상품 소비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특히 월마트는 얼마 전 행정부가 공중살포한 ‘환급세금 수표(tax-rebate checks )’를 수수료 없이 현금으로 바꿔주는가 하면 각종 생필품 가격을 더욱 내리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관련기사]

어째 이런 풍경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다. 살인적인 물가에 몰고 다니던 자동차는 집에 두고(근데 우리나라는 어째 아직도 거리에 이리 차가 많은지), 씀씀이는 줄이려고 한 푼이라도 싼 가게로 순례를 하고, 그 와중에 산유국, 석유메이저, 석유관련기업, 원자재생산업자, 그리고 선물거래에 성공한 투자세력 등은 쾌재를 부르고 하는 모습들 말이다.

다른 소린데 나는 아직도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것이 정말 인플레이션과 별도로 구분하여 개념지을만한 특성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인플레이션이란 것이 경제가 성장하며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주2)을 일컫는 말인데 경제성장에는 대개 분배의 불평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 스태그플레이션은 좀 더 분배 불평등이 심화된 인플레이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물가가 상승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가가 상승하였으면 누군가는 분명히 이득을 본다. 바로 지금 시점에서는 석유, 식료품, 기타 원자재와 관련된 세력들이다. 그들에게는 절대 현 상황이 경기침체가 아니다. 최고의 호황기다. 요컨대 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좀 더 분배 불평등이 심화되는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옆으로 샜는데 (워~ 워~) 이 와중에 요즘 복덕방에서 장기로 세월을 보내실 것 같은 얼굴의 소유자 알란 그린스펀 할아버지가 또 이런 미국경제에 관해 월스트리트저널과 대담을 나누셨다. 솔직히 언제까지 언론들이 이 영양가 없는 할아버지의 넋두리를 넙죽넙죽 기사로 써댈지 궁금하다. 언제쯤 약발이 떨어질까? 암튼 오늘도 참 영양가 없는 소리를 해대셨다.

요는 Fed 가 프레디맥과 페니메를 처리한 방식에 심히 불만이 많은 그린스펀이 특유의 우회적인 화법을 물리치고 직설적으로 비난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다가 덧붙여 현재의 주택위기를 타개할 묘책을 하나 가르쳐 주셨는데 그게 바로 ‘숙련(skilled)’ 이민자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두 배 세 배 받아서 그들이 집을 사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대충 현재 매년 80만 가구가 신규로 느는데 그 중 1/3이 이민자고, 또 그 중 15만 가구(주1) 가 바로 ‘숙련’ 이민자인데 이들 구매력이 있는 이민자 수를 늘려 현재의 과잉 공급 분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경제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가 할 소리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린스펀은 그들이 미국 와서 아무 짓도 안하고 집만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들 이민자들이 그린스펀의 주문대로 ‘두 배 혹은 세 배(A double or tripling of this number)’ 늘면 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직업을 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신규고용이 30만 개 혹은 45만 개의 ‘이민자’ 고용을 받아줄 처지인가?

수치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미국의 고용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월街에서 사람 몇 백명 자른다는 소식은 이제 언론에서 기사화하지도 않는다. MIT 졸업생인데 실직자라고 광고를 해야 그때서야 주목을 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린스펀은 주택수요자, 즉 소비자가 곧 노동자고 고용시장이 그 노동자를 받아줄 여력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나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집값 떨어지니 우리나라 이민오고 싶어하는 돈많은 동남아 사람들 불러들여서 집을 팔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언론이 뭐라 할까? 아마 새날아가는 소리 하고 있다고 하겠지.

요컨대 불황은 항상 주기적으로 다가오지만 이번 불황은 참 골이 깊어 보인다. 이 블로그에서도 ‘다가오는 경제공황’이라고 설레발을 칠만큼 심각해보였었다. 내가 꼭 엄청난 허풍을 친 것은 아닌 것이 미국 관계당국이 지난 몇 달 동안 사상 초유의 조치를 일삼아서 해댔다는 사실만 봐도 그 심각성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소위 좌파가 이야기하는 최종심급일 수도 있고 아주 깊은 골일 수도 있겠다.

오늘 발견한 또 다른 미국식 유머코드의 경구 한마디로 글을 마무리.

“Cheer up, this may be the last crisis of the oil age.”
“힘내. 어쩌면 이번 위기는 석유세대의 마지막 위기일지도 모르잖아~”

(주1) 이 와중에 오늘자 머니투데이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베끼면서 “15만 가구”를 “15만 명”으로 번역하는 번역실수를 저질렀는데 내가 지금 가서 링크를 달으려고 보니 그 사이 고쳐 놓았다.

(주2) 좀 유식한 말로는 사회적 총수요(소비수요와 투자수요의 합계)가 사회적 총공급(소비수요와 저축의 합계)을 초과하는 총수요 어쩌고저쩌고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공공기관의 공공성에 관하여

미국 주택금융시장의 큰 손인 이른바 ‘정부보증회사(GSEs:Government sponsored enterprise)’ 패니메(연방저당협회 : 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와 프레디맥(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 : Federal Home Loan Mortgage Corp.)이 유동성 위기설에 휘말리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였고 미국의 부동산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시장에서 프라임 시장으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또 다시 미국정부는 두 기관을 국유화 내지는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하면 주식시장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양대 국책 모기지 기관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등의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제한하기로 했다.(관련기사)(주1)

패니메와 프레디맥은 어떤 회사인가? 이들은 주택과 관련된 대출을 일으키거나 보증을 설 수 있는 기능을 하는 주식회사다. 패니메는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1938년 설립한 정부기관이었다. 이 기관은 그뒤 30년간 미국의 2차 모기지 시장에서의 독점기관이었다. 1968년 베트남전의 전비 등으로 예산압박을 받은 정부는 패니메를 민영화시키고 상장하였다. 1970년 패니메와 똑같은 일을 수행하는 프레디맥이 탄생하였다. 이들은 2차 시장에서 모기지를 사서 이른바 모기지를 채권으로 하는 증권 MBS(mortgage-backed securities) 상품을 기획하여 공개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즉 부동산의 증권화(securitization)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이들은 시장의 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회사인데 그렇게 강자로 행세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들이 ‘정부보증회사(GSEs:Government sponsored enterprise)’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기관은 마치 사기업인 것처럼 주식이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누구나 이들 기관이 도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 정부가 암묵적인 보증을 서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암묵적 보증으로 인해 두 기관은 싼 비용의 자금 차입을 통해 차입 비중을 높일 수 있다.

Financial Times 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지난번에 나역시 주장한 바와 같이(!) 미국은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미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버전은 내가 아는 한 가장 기만적인 것이다.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회주의 정부라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을 것이다. : 이는 사회적 목적(주택소유자들의 자금조달, 월스트리트의 나의 친구들을 돕기)의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조달을 위해 추가적인 세금(또는 공공지출의 삭감)이 있을 것이다.

There are many forms of socialism. The version practiced in the US is the most deceitful one I know. An honest, courageous socialist government would say: this is a worthwhile social purpose (financing home ownership, helping my friends on Wall Street); therefore I am going to subsidize it; and here are the additional taxes (or cuts in other public spending) to finance it.[Time for comrade Paulson to pull the plug on the Fannie and Freddie charade, FT.com, 2008.7.12]

한편으로 극우적 음모론자의 냄새가 풍기기도 하는 이 기사는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정부보증회사라는 독특한 지위로 인한 시장의 비효율에 대한 우파들의 전형적이고 신랄한 공격이다. 이러한 분위기와 관련해 폴 크루그먼은 “Ideology and GSEs”라는 글에서 이번 사태가 이념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당신이 여기서 알 필요가 있는 사실은 우익들이 – WSJ 사설, 헤리티지 등 – 패니와 프레디를 매우, 매우,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패니가 주택시장에서의 핼리버튼인가?(주2) 꼭 그렇지는 않다. 원칙적으로 정부보증회사의 투자의 일면적 특성은 거대한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정부보증회사의 현실상의 특권남용은 제한적이었던 것 같다.

What you need to know here is that the right – the WSJ editorial page, Heritage, etc. – hates, hates, hates Fannie and Freddie. [중략] But is Fannie the Halliburton of the housing market? Not quite. In principle, the one-sided nature of the GSE’s bets could have produced enormous moral hazard, but in practice the GSE’s actual abuse of privilege seems to have been limited.[Ideology and the GSEs, Paul Krugman, 2008.7.14]

폴 크루그먼은 패니메와 프레디맥의 독특한 위치에 대해 긍정하는 편이고 이들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형태로든 지원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들 회사의 특권남용이 제한적“이었던 같다(seems)”라고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Doug Henwood 의 책을 살펴볼 것 같으면 그들의 특권남용이 꼭 제한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파니 메이와 프레디 맥은 그들이 누리는 특혜적 지위를 계속 보장받기 위해 통상적인 로비 활동을 아주 특별하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1996년에 파니 메이는 전 회장이 클린턴 후보 진영의 예산팀을 지휘하게 되자, 자금에 쪼들리는 봅 돌 공화당 후보 진영에 홍보 전문가를 자원봉사자 방식으로 파견했다. 파니 메이의 로비스트 명단에는 민주, 공화 양당의 전직 상원의원, 하원의원, 백악관 관리들이 두루 포함돼 있고, 선거자금 기부도 적극적으로 한다. 이 기관은 또 두둑한 자문 계약료의 유혹을 앞세워 학자들과도 교분을 맺는다. 이는 연준과 세계은행도 활용하는 방법이다. 미국 의회 예산국의 추정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암묵적인 보증으로 가능해진 파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저금리 혜택 가운데 3분의 2는 차입자들에게 전가되며, 나머지 3분의 1은 이들 기관의 경영자나 주주들에게 돌아간다.[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 Doug Henwood, 이주명 옮김, 사계절, 156p)

결국 이들 기관들의 독특한 지위와 일반기업 못지않은 적극적 로비를 통한 저금리가 어쨌든 차입자 들에게 혜택을 주기는 했지만 또 그 상당부분이 주주와 경영자들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은 폴 크루그먼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비록 극우들은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내에서의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완전히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특혜적인 저금리는 완전한 공공기관도 아닌 민영화된 정부보증회사라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시장의 비효율, 그리고 그것이 누적되어 결국 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때의 사태보다 더 커다란 규모의 구제금융에 나설 수밖에 없을 처지에 몰리기까지 위험이 감추어져졌다는 개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를 두고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socialism for the rich)”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나는 “부자들을 위한 관료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즉 어쩌면 자본주의 내에서의 공공기관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공공적일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러한 기관들이 취해온 행태를 사회주의적이냐 자본주의적이냐 라기보다는 그 기관의 존재의의를 위한 임무수행보다는 내부조직의 온존과 안위에 초점이 맞춰지는 관료주의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살펴볼 수 있는 그 한 사례가 최근 이른바 공모PF사업에서 발주처라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사업신청자가 자신들에게 지불할 땅값에 가장 큰 평가비중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땅장사를 한 것이다. 그 피해자는 물론 향후 그 개발단지의 입주자다.

(주1) 그동안 헤지펀드가 이러한 공매도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비록 두 기관의 주식거래에 국한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실로 혁명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주2)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딕체니 정부하에서 온갖 특혜를 받아 그야말로 말그대로의 정부보증회사나 다름없는 세계 유수의 건설회사이자 군사기업 핼리버튼의 현재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핼리버튼이 정부보증회사라는 사실은 WSJ도, 헤리티지도,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즈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새 금융규제 수단은 솜방망이?

월요일 부시 행정부가 월스트리트를 총체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지난 몇 주간 취했던 비상시의 행동을 공식화하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 계획이 시장에 대한 워싱턴의 역할을 스스로 제한하려는 지난 몇 년간의 행동의 연장선상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하였다.

뉴욕타임스는 새 제안은 내용상으로는 새로이 출현한 각종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정책을 담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록 그 제안은 헤지펀드와 프라이빗에쿼티펀드에 대한 규제를 하겠다고 하고는 있지만 그 감독은 정부가 위기시를 제외하고는 정보를 수집하는 수준 이외의 행동을 하지 못한 다는 점에서 솜방망이에 불과할 것이다.”
“Although the proposal would impose the first regulation of hedge funds and private equity funds, that oversight would have a light touch, enabling the government to do little beyond collecting information ? except in times of crisis.”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부실한 계획은 그 입안자가 월스트리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스스로가 월스트리트의 일원이었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기에 어쩔 수 없는 귀결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헨리 폴슨은 규제정책이 시장의 순기능(주1) 을 저해할 것이라는 믿음의 신봉자이어서 그동안 언제나 좀 더 강한 규제를 주장하는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왔었다. 다음은 이러한 그의 신조를 보여주는 발언이다.

“나는 현재의 혼란을 규제 구조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고 본다.”
“I do not believe it is fair or accurate to blame our regulatory structure for the current turmoil.”

이러한 신념 속에서 새 계획은 FED에 새로운 권한을 위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FED의 행동이 시장의 자율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치계획을 요구하는 FED의 권한은 전체적인 금융시장 안정성이 위협을 받는 경우만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The Fed’s authority to require correction actions should be limited to instances where overall financial market stability was threatened,”

“금융시장의 안정성(financial market stability)”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FED의 전 주인이었던 알란 그린스펀은 파생상품시장을 시장의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매력적인 시스템으로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파생상품시장에 좀더 FED의 실력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요청을 거부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파생상품시장에 대한 믿음이 새 정부에도 고스란히 공유되고 있는 믿음이다.

파생상품시장의 참여자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위험을 분산하고자 하는 자(hedger)’, ‘그 hedger에게 위험을 넘겨받는 대신 수익을 취하려는 투기자(speculator)’,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시적인 시장의 교란으로부터 무위험차익을 실현하려는 자(arbitrageur)’가 그들이다. 이 체제의 신봉자들은 위험은 분산되어야 하며 두 번째 주체 즉 speculator가 없으면 hedger는 위험을 분산하지 못하여 시장의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논지다.(주2)

문제는 개별행위자로서는 위험을 분산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전체 자본시장에서의 위험의 총체적 크기가 유의미하게 줄어드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이 투자자들은 파생상품이 복잡해짐에 따라 그들의 채권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는 점이 사태를 증폭시켰다. 또 다른 문제는 speculator뿐만 아니라 arbitrageur 역시 리버리지 효과(주3)를 통하여 수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투기자나 다름없다.

그럼 또 hedger 가 진정한 hedger 일 뿐이냐. 그것도 조금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경제학자 Doug Hedwood 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산물 파생상품시장에 농부가 직접 hedger 로 참여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실제 참여한 이들의 취급품목을 알아봤더니 대부분 그들이 재배하는 품목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럼 뭐하려 hedger 로 참여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재밌는 것이 정말 순수한 목적에서 헤지를 했음에도 시장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수출물량이 늘어남에 따라 대규모 선물환 매도에 나섰고 이에 따라 시장에 달러 부족 현상이 심각해짐에 따라 원화가 급락한 사건이 그 예다. 하나의 헤지 행위가 다른 시장참여자의 동시다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며 시장의 자금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요컨대 헨리 폴슨이 자본의 무한자유를 외치는 무뢰한일 수도 있고 정말 현재의 금융시장, 또는 파생상품시장의 순기능을 믿는 순진한 경제학자일 수도 있다. 문제는 역시 사건이 터질 때에 뒷수습이 어떻게 되어 시장참여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일텐데 여태 진행된 모습을 보면 난세에도 덩치를 키워가는 이도 있고, 엄청난 사고를 쳐놓고도 책임도 안지고 미국판 공적자금을 날름 받아먹는 이도 있는가 하면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쥐꼬리 같은 구제책에 목말라 하는 주택소유자들이 있다. 역시 시장은 자유로운 듯(주4) 보이지만 적어도 공평하지는 않다.

(주1) 시장의 순기능이 JP 모건 체이스가 베어스턴스같은 공룡을 한 주당 2달러에 – 지금은 찔끔 올려줬지만 – 인수하는 백주대로의 날강도질을 연방제도준비이사회가 옆에서 돕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의 말이 맞다

(주2) 이런 논지로 부동산 시장에서의 투기를 옹호하는 이도 있다

(주3) 쉬운 말로 빚내서 이익률을 극대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성공했을 때에는 자기자본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실패했을 때에는 깡통 차는 경우로 이번 베어스탠스가 바로 그런 녀석들이다

(주4) 진정한 자유시장이었다면 FED가 지난 몇 주간 온갖 현란한 행동을 선보였을 때에 헨리 폴슨이 말렸어야 했겠지만